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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급들이 내게 집착한다-55화 (55/112)

〈 55화 〉 호텔에서 생긴 일 (4)

* * *

집에 있어야 할 한유정이 새하얗게 질린 얼굴로 우뚝 서 있었다.

“유정아, 괜찮아?”

방금 막 뛰어온 듯 이마에서 땀도 나고 숨이 거칠다.

아픈 건가? 안색이 워낙 나빠서 혹시 감기라도 걸렸나 걱정된다. 수건으로 이마를 닦아주며 능력을 한유정에게도 적용했다.

볼에 혈색이 감돈다.

묻지도 않았는데 한유정이 더듬거리며 변명한다.

“그, 집에 혼자 있었는데요.”

“어? 아, 응.”

“갑자기 밤이 되니까 무서워져서… 2차 시험이 코앞이니까 훈련을…… 아니, 여기 온천이 효과가 좋다고 해서….”

“뭐? 진정하고 천천히 말해봐. 괜찮으니까.”

얘가 이렇게 당황한 적이 있었나?

“그게, 그러니까요….”

눈을 질끈 감은 한유정이 불쑥 말했다.

“처, 천살성이요!”

“천살성?”

“네, 전부 천살성 때문이에요!”

연신 ‘천살성 때문이에요’ 라고 옆에서 속삭이는데, 이해가 가지 않았다.

핸드폰으로 날짜를 확인했다.

“토요일이잖아, 오늘?”

천살성이 날뛰는 때가 아닌데?

일요일을 제외하면 평범하게 활동 가능했다. 그래서 나도 마음 편하게 이지아와 여기까지 온 거고.

“한 주가 넘어갈 때마다 충동이 강해지잖아요.”

“그치.”

“쌓이고 쌓인 게 조금 커진 게 아닐까 싶어요. 아저씨가 떠나고부터 마음이 싱숭생숭한 게….”

한유정이 힐끔 내 눈치를 살피며 심장을 부여잡는다.

“막, 혼자 있으면 안 좋은 생각도 들고, 충동도 자꾸만 강해지고….”

“뭐어?”

천살성은 이지아의 우울증과 다르다.

혹시나 충동에 못 이겨 살인을 저질렀다면, 한유정의 미래는 암울하기 짝이 없었다.

만약 걸린다면 그거대로 문제였고, 한유정 스스로도 죄책감을 강하게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식겁해서 한유정의 양 볼을 붙잡고 걱정스레 물었다.

“괜찮았어? 뭔 일 있던 건 아니지?”

한유정이 슬쩍 입꼬리를 끌어올리며 고개를 끄덕인다.

“네, 아저씨가 능력 써주니까 괜찮아졌어요.”

“아씨, 유정아, 진짜 미안하다….”

한유정을 품에 끌어안고 등을 토닥여줬다. 새하얗게 질려있던 게 이제야 이해 갔다.

하루 동안에 얼마나 죄책감과 살의에 시달렸으면, 내 얼굴을 보자마자 이렇게 안심하겠어?

내가 이지아와 함께 아무것도 모르고 여행지에서 휴식을 즐길 때, 집에 있던 한유정은 어떤 마음으로 버티고 있었을까.

그런 생각을 생각하면 도저히 얼굴을 볼 면목이 없었다.

“아뇨. 전 괜찮아요, 아저씨. 처음 있는 일이잖아요.”

오히려 위로하는 한유정을 보고 있자니 자꾸만 짠해진다. 일단 호텔 방으로 들어갔다.

팔짱을 낀 이지아가 가만히 쳐다보고 있었다. 한유정이 꾸벅 허리를 숙이며 인사했다. 이지아가 고개만 살짝 까딱였다.

눈썹이 찌푸려져 있는데, 뭔가 마음에 들지 않는 표정이다.

머리를 긁적이며 내가 말했다.

“지아 씨, 미안해요. 제가 알아서 다 챙겼어야 하는데.”

“…네?”

화들짝 놀란 이지아가 고개를 젓는다.

“아뇨, 그런 거 아니에요. 잠깐 생각할 게 있어서…….”

“그러면 다행이고요. 아, 그리고 혹시.”

한유정에게 들리지 않도록 작게 속삭였다.

“유정이 속옷 입을 거 있어요?”

“아, 아뇨.”

나도 그냥 혹시나 해서 물어본 거다.

이지아가 한유정 속옷을 왜 들고 있겠어?

“쟤 갈아입을 옷도 안 가지고 온 거 같은데 큰일 났네…….”

잠옷까지야 그렇다 치더라도 속옷하고 내일 입을 옷 정도는 챙겨줘야 하는데.

호텔이 신기한 듯 여기저기를 둘러보던 한유정에게 다가갔다.

“유정아, 잠깐 밖에 나갔다 오자.”

“네? 어디 가시게요?”

“속…….”

너무 직설적인가?

말을 돌렸다.

“옷 사게. 갈아입을 옷 안 가져왔을 거 아니야.”

씻은 게 무색하게 우리는 외출복으로 갈아입었다.

한유정, 이지아와 함께 근처 매장을 돌았다. 옷이야 내가 적당히 골라줬지만 속옷까지는 그럴 수가 없었다.

란제리 입은 마네킹이 떡하니 입구부터 서 있는데, 여자 속옷 매장은 남자가 들어가기엔 너무 벅찼다.

유정이 속옷 고르는데 옆에서 구경하는 것도 못 할 짓이고.

나는 바로 맞은편 카페로 들어갔다.

음료를 받고 주위를 살폈다. 자리가 전부 꽉 차 있다. 호텔 근처라 그런가. 3층까지 올라갔다가 어쩔 수 없이 밖으로 나가려는데, 구석에서 익숙한 얼굴이 보였다.

“김현우?”

“송 실장님? 오늘 자주 마주치네요.”

태산 길드 매니저가 떨떠름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인다. 잠깐 주위의 눈치를 살피다가 그의 앞자리에 앉았다.

매니저가 신경질적으로 머리를 벅벅 긁는다.

“우리가 겸상할 사이는 아닌 거 같은데.”

“자리가 없어서요.”

이지아와 한유정이 언제 나올지 모르는데 하염없이 밖에 서서 기다리는 것도 다리 아프고.

그런 내 말이 어이 없던 건지 매니저가 헛웃음을 짓는다.

“그렇다고 싸웠던 사람하고 마주 보면서 커피 마시고 싶냐?”

“제가 이런 거에는 무신경해서 괜찮더라고요.”

“난 안 괜찮은데, 꺼져.”

“얼굴 한두 번 본 것도 아닌데 그러지 마시고. 좀만 있다가 갈게요. 그때 맞은 깽값 대신으로요. 진단서도 떼놨어요.”

매니저가 콧잔등을 와락 구기며 얼굴을 쓸어내린다. 마음에 들지 않는 티를 팍팍 내지만, 꼭 물어보고 싶은 게 있었다.

“송 실장님, 경력 몇 년 되셨어요?”

“…….”

“깽값──”

“7년. 이직 없이 태산 길드에서 쭉 일했다. 됐냐?”

적잖이 속이 쓰릴 거다.

자기 발로 나가는 거도 아니고 회사에서 내쳐지는 것이니까.

그래서 톡톡 쏘아붙이는 말도 대수롭지 않게 흘려 넘겼다.

나였어도 멱살 잡고 싶어서 손이 근질거렸을 거다.

스무디로 입술을 축이며 물었다.

“그쪽 유망주분들, 협회하고 노예 계약할뻔한 거 아셨어요?”

“……그걸 누구한테 들었어?”

“나예정이요. 묻지도 않았는데 자기 혼자 술술 불던데요?”

‘멍청한 년’, 매니저가 팔짱을 끼며 욕설을 뱉는다.

“그게 왜? 뭐가 궁금한데.”

“……실장님은 경력도 7년 차 정도 됐으면, 그 계약이 안 좋은 계약일 거 뻔히 아셨을 거 아니에요.”

다른 것도 아닌 한유정의 계약이다 보니까 꼼꼼히 확인한 것도 있지만, 신입 매니저인 나도 한눈에 알아봤다.

태산 길드야 법무팀 통해서 전부 검토했을 거다. 실장급 매니저가 그런 계약 내용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진 않았을 거다.

당장에 협회와의 협상 자리까지 헌터들을 누가 데리고 가는데?

그래서 의문이 들었다.

“계약, 왜 안 막았어요?”

“뭐?”

“계약이요. 나중에 협회에서 목줄 채울 거 뻔한데 왜 안 막았냐구요. 매니저 일을 하다 보면 담당 헌터들한테 정도 들고…….”

매니저가 어이없다는 듯 웃는다.

“장난해? 내가 팀장급도 아니고, 회사 차원에서 진행되는 걸 어떻게 막아?”

“헌터들 미래를 생각하면….”

“함정 파고 대가리 굴리는 게 딱 이쪽 사람인가 싶었더니, 이거 완전 순둥이였구만?”

순둥이?

그런 말을 듣는 건 또 처음이네.

“이런 계약이 보일 때마다 엎어버리고 팀장하고 싸웠으면, 옛날옛적에 잘렸겠지. 안 그래?”

“그래도, 담당하는 헌터들을 생각하면 계약에 대해 최소한 알려줬어야 하는 거 아니에요? 방법은 많잖습니까. 몰래 알려줘서 자기들이 계약 안 하겠다고 하면…….”

“왜?”

매니저가 어깨를 으쓱인다.

“헌터들한테 왜 그렇게까지 해줘야 하는데? 계약 엎어지면 팀장이 나한테 설득하라고 갈굴 거 뻔한데.”

“……네?”

잠깐.

그럼, 계약이 체결되기 직전까지 방치한 게 고작,

“갈구는 거 듣기 싫어서 그랬다고요?”

“어. 문제 있어?”

당당한 매니저의 반응에 머리가 어질어질해진다.

내가 매니저의 입장이고 한유정이 그곳에 있었으면.

아마 나는 팀장과 싸워서라도 지켜줬을 거다.

“지랄 마.”

매니저가 비웃으며 커피를 마셨다.

“그런 놈들은 일찌감치 회사 그만두고 다른 일 하고 있어. 직속 상사한테 들이박고 싸워? 장난해? 주먹구구식으로 일하는 곳에서 매니저 하니까 착각하나 본데, 월급쟁이는 다 똑같아.”

“그래도, 담당하면서 붙은 정이라는 게…….”

“도와줬다 치자.”

그가 상체를 내 쪽으로 기울였다. 까마득한 후배한테 교훈 주는 선배처럼, 타이르듯 이야기를 꺼낸다.

“회사 눈 밖에 나면, 매니저가 어떻게 될 거 같아?”

“담당 변경되거나 잘리겠죠.

“헌터는?”

“헌터야 뭐….”

자기 할 일 하고 살겠지.

“새로운 담당 매니저 받아서 하던 생활 그대로 이어가는 거야. 본전 뽑을 때까지. 결국 좆 되는 건 매니저뿐이라고. 그렇다고 걔네가 고마워나 할 거 같아? 근데 내가 왜 헌터들을 위해 싸워야 하는데?”

이게 평범한 헌터와 매니저의 관계인 건가.

왜 만나는 사람마다 나와 한유정을 보고 신기해하던 건지, 이해가 갔다.

나한테 한유정은 매니저로서 담당할 헌터보다는 보호해줘야 할 동생 같은 느낌이었으니까.

일적인 관계보다 사적인 관계가 더 우선시되는 존재였다.

“만약 알았어도 지들이 좋다고 받아들였을걸? 협회하고 척만 지지 않으면 그만큼 좋은 계약이 없어. 협회 쪽에서도 죽일 생각으로 굴리진 않을 거고.”

“글쎄요. 하는 짓 보면 그러진 않을 거 같던데요.”

“그거야 네가 바스타드 길드 소속이니까 그렇겠지. 태산 길드하고 싸울 거 아니면 그렇게 못 굴려.”

그래도 목줄 잡히는 건 똑같잖아.

이미 협회와는 돌이킬 수 없는 관계가 됐지만, 무난한 관계였더라도 계약을 절대 받아들이지 않았을 거다.

돈도 아니고 목숨을 저당 잡히는 건데.

조금 돌아가더라도 늦게 도착하는 게 낫지.

“……아까 그쪽 유망주분들하고 잠깐 다툼이 있었는데요.”

“따지려면 회사에 직접 따져. 어차피 그만둘 사람한테 말해서 뭐 하게?”

“따지려는 게 아니에요. 유망주가 저한테 그런 말을 하더라고요. 고작 매니저 주제에, 라고.”

고작 매니저.

헌터의 입에서 그런 말을 들은 건 처음이라 조금 충격이었다.

그리고 동시에 의문도 들었다.

“길드 대표들의 절반은 매니저 출신 아닙니까? 영향력 있는 매니저는 어지간한 헌터보다 입김도 세다고 하고요.”

“그치.”

“저와 그 사람들의 차이가 뭔가 싶어서요. 그게 궁금했어요.”

매니저가 깊은 한숨을 쉰다.

이런 거까지 설명해줘야 하나 하는 표정이었다.

“그거야 담당하는 헌터의 차이지.”

“헌터의 차이요?”

“네가 무시 받은 건 한유정이라는 신입을 담당하는 매니저니까. 만약 네가 같은 길드의 이지아를 담당했으면 전혀 달랐겠지.”

이지아의 말이 떠오른다. 그녀와 같이 일하게 되면 어디 가서 고개를 숙일 일은 없을 거라고. 을보다는 갑의 위치라고. 분명 그렇게 말했었지.

“원래 실무 처리하는 비서 실장한테 더 잘 보이려고 하는 법이거든.”

이놈의 업계는 어떻게 된 게, 꾸준히 파면 팔수록 늘어나는 건 전문적인 기술이 아니라 정치질과 공갈뿐이었다.

결국 한유정이 그만한 위치까지 올라가지 않는 이상 이런 거지 같은 꼴을 종종 당할 수밖에 없다는 의미였다.

한숨이 나오는 이야기다.

매니저의 손에 눈길이 갔다.

“어디 다치셨어요?”

“뭐?”

“손이요. 붕대 감고 있으시길래.”

매니저가 자신의 손을 쳐다보며 생각에 잠겼다.

그리고 잠시 뒤에 다시 입을 열었다.

“……너도 물었으니까, 나도 하나만 묻자.”

“말씀하시죠.”

“한유정, 너하고 있을 때는 어떻냐?”

유정이?

“착하죠. 마음이 너무 여려서 헌터는 할 수 있을까 걱정도 되고.”

“…?”

“무뚝뚝한데 그거야 성격 탓이고, 같이 지내면 얘가 얼마나 정 많고 착한지 알아요.”

“지랄.”

매니저가 기괴한 얼굴로 내 말을 듣다가 갑자기 욕을 한다.

“내가 일하면서 마주친 헌터들이 몇 명인데 그렇게 섬뜩…….”

“아저씨.”

한유정이 매니저의 어깨를 스치며 다가온다.

“다 골랐어요.”

“지아 씨는?”

“밑에서 기다리고 있어요. 말씀 더 나누셔야 해요?”

매니저는 기계적으로 각설탕을 커피에다가 퐁당퐁당 빠트리고 있었다. 그런데 잠깐 보는 동안에만 집어넣은 개수가 일곱 개째다. 집게가 또 통 쪽으로 들어간다.

커피를 마시려는 거야, 설탕을 마시려는 거야?

어딘가 혼이 빠져나간 거 같은 매니저에게 말했다.

“실장님, 일이 있어서 먼저 일어나보겠습니다.”

그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는 호텔로 돌아갔다.

&

“아저씨, 다 씻었어요.”

“그래?”

이지아와 한유정이 먼저 씻고 나서, 김현우가 마지막으로 욕실에 들어갔다.

쏴아아아아─!

물 트는 소리.

이지아는 침대에 등을 기댄 채 힐끔, 한유정을 쳐다봤다. 헤어드라이어기로 머리를 살살 말리고 있었다. 평소 무뚝뚝하던 소녀는 뭐가 그리 신났는지 콧노래까지 작게 흥얼거렸다.

이지아가 핸드폰을 보며 생각에 잠겼다. 의심이 계속 쌓여만 간다.

머리를 말린 한유정은 침대에 베개를 깔고 누웠다. 그리고 그림자 속에서 게임기를 꺼내 타닥타닥 버튼을 눌렀다.

공교롭게도 누운 위치가 이지아와 김현우의 사이였다. 침대의 정중앙.

이지아가 욕실의 김현우를 의식하며 작게 한유정을 불렀다.

“유정아, 물어볼 게 있는데. 기억을 더듬어봐도 이해가 안 가는 게 있어서.”

“뭔데요?”

“나도 말한 기억이 없고, 현우 씨도 분명 말 안 했을 거라 생각하거든. 보통은 여행지를 갈 때 어디 놀러 간다고만 말하잖아?”

이지아가 입술을 핥았다.

“너, 호텔 이름하고 호수는 대체 어떻게 안 거야?”

버튼을 누르던 한유정의 손이 멈췄다. 잠깐의 침묵. 그녀가 다시 손을 움직이며 입을 열었다.

“우연히요.”

“우연히?”

“네, 우연히.”

이지아가 헛웃음을 지었다.

*

다음날, 기왕 온 김에 한유정도 함께 온천에 갔다.

천살성에 효과가 그다지 있을 거 같지는 않지만, 안 하는 것보다는 낫겠지 싶었다.

평소에 죄책감 때문에 많이 힘들어했고.

야외 사우나에서 누가누가 오래 버티나 내기도 하고, 끝나고 같이 식혜도 마시고, 해변도 근처니까 바다 구경하며 산책길도 걷고.

전부 마치고 호텔에 돌아가니까 체크아웃할 시간이었다.

집으로 돌아가는 차 안.

완전히 뻗은 한유정이 뒷좌석 창가에 머리를 기댄 채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백미러로 잠든 얼굴을 흐뭇하게 바라봤다. 천사가 따로 없네. 옆에서 시선이 느껴진다. 이지아가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지아 씨, 눈빛이 왜 그래요?”

“제 눈이 어때서요?”

이지아의 물음에 주말마다 봤던 형사 드라마를 떠올렸다. 그쪽에 나오던 수사반장이 딱 저런 눈을 하고 있었다.

“뭔 생각하는지 모르겠는데, 일단 저는 아니에요.”

“현우 씨.”

“네?”

이지아가 목소리를 낮추며 묻는다.

“제 이야기는 아닌데, 만약에 고등학생인 아이가 현우 씨한테 고백하면요.”

이거 되게 뻔한 패턴의 질문방식인데.

“지아 씨 고등학생한테 고백받았어요?”

“아뇨, 제가 밖에서 누굴 만난다고 고백받겠어요.”

그렇긴 하지.

그런데 질문이 뭐 이래?

“그 아이가 현우 씨 마음에 쏙 들었다고 쳐요.”

“고등학생이요?”

“네.”

나도 모르게 백미러로 한유정을 쳐다봤다. 한유정 또래의 아이가? 상상이 잘 안 간다.

최대 9살, 최소 7살 차이인데.

내 나이 기준으로 그 정도 연상을 생각해보면, 연애 대상으로 보기 힘들었다.

“그러면, 현우 씨는 고백 받아줄 거에요?”

“그 나이대에 어른들 좋아하는 게 뭐 정말 좋아서 그런 거겠어요? 그냥 호감하고 사랑하고 헷갈리는 거지. 덥석 받아주면 나중에 큰일 나요.”

이지아가 멍하니 중얼거린다.

“……친구는 친구네.”

“네?”

“아뇨, 예림 씨도 비슷한 말 했었거든요.”

“저하고 예림이뿐만 아니라 대부분 마찬가질 걸요?”

“그런가? 그럼 현우 씨는 고백 안 받아주겠네요?”

“당연하죠.”

아, 저 새끼 운전 좆같이 하네. 깜빡이도 안 켜고 차선을 변경하더니 내 앞에서 비상등을 키고 와리가리 한다. 열 받네. 뒤지려면 혼자 뒤지던가. 1톤짜리 전차를 모는 건데 저런 양아치 새끼들한테까지 면허증을 발급해주면 어떡해?

앞차의 난폭 운전에 신경 쓰느라 뒤늦게 대답이 나왔다.

“그런데, 글쎄요.”

“…네?”

“정말 천생연분이다 싶으면 모르죠. 요즘에는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커플들도 많고. 성인 돼서까지 좋다고 하면 또 모르겠네요.”

가만 보자.

한유정하고 동갑이라치면 내가 서른일 때 스물하나인가?

그렇게 계산해보니까 엄청 크게 느껴진다.

“그럼 내가 모시고 살아야겠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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