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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급들이 내게 집착한다-51화 (51/112)

〈 51화 〉 송곳 (8)

* * *

“안녕하십니까, 더 헌트의 조정빈 기자입니다!”

조 기자가 박력 있게 인사했다. 이지아가 빙긋 웃으며 대꾸했다.

“네, 반가워요. 이지아입니다.”

허, 신기해서 멀뚱멀뚱 쳐다보니까 이지아가 입 모양으로 ‘왜요?’라고 퉁명스레 반응한다.

“아뇨, 그냥, 다른 사람하고도 멀쩡하게 인사하는구나 싶어서요.”

“네에?”

이지아가 눈을 게슴츠레 뜬다.

“현우 씨는 평소에 절 어떻게 봤는데요?”

어떻게 보긴.

말 더듬으면서 내 뒤로 숨을 줄 알았지.

하긴, 청문회 때도 사람들 앞에서 멀쩡히 말 잘했었다. 평소 푼수 같은 인상과는 다르게 사람 대하는 게 어색한 건 아닌가 보다.

생각해보면 당연하긴 했다. 중학생 때부터 10년간 여러 사람과 부딪히며 일했는데, 사회성이 부족한 건 말도 안 되지.

다행이네. 맨날 집에만 박혀있어서 사람 만나는 걸 무서워하나 걱정했는데.

“일단 인터뷰부터 먼저 할까요?”

말을 돌리며 이지아의 등을 떠밀었다.

“현우 씨, 조금 있다가 다시 말해줘요.”

이지아가 못 이기는 척 인터뷰룸으로 들어갔다.

젠장, 돌아갈 때 시달리겠네. 이놈의 주둥아리를 꿰매던가 해야지.

조 기자가 손등으로 이마를 훔쳤다.

“와, 실수할까 봐 긴장돼서 숨도 못 쉬었네. 이지아 씨하고 친하다더니, 진짜였나 보네요.”

아무래도 만나기 전까지는 긴가민가했는지, 팔짱을 끼며 연신 감탄하고 있다.

“까칠하기로 유명한데, 현우 씨한테는 사근사근하니까 엄청 신기하네.”

“지아 씨가요?”

“친하다면서 모르셨어요?”

까칠의 사전적 의미가 갑자기 바뀌고 그런 건 아니지?

“제가 기사 생활하면서 깨달은 건데, 원래 업계 1위인 사람들은 다들 까칠한 구석이 있어요. 설렁설렁해서 거기까지 갔겠어요? 거기에 이지아 씨는 한창 어릴 때부터 유명했…….”

덜컹!

인터뷰룸의 문이 열린다. 고개를 빼꼼 내민 이지아가 싱긋 웃는다.

“기자님, 인터뷰 안 하세요?”

“어어, 네! 바로 들어가겠습니다.”

조 기자가 머리를 긁적이며 뛰어갔다.

인터뷰가 끝날 때쯤에는 날이 어두컴컴해졌다. 이번 사건을 인터뷰하기 위해서는 청문회 때부터 짚고 넘어가야 하다 보니까 시간이 예상보다 길어졌다.

이지아는 한쪽에서 쉬게 하고 초고를 검수했다. 혹시 조 기자가 자존심 상해하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다행히 그런 기색은 없었다.

“이 정도면 얼추 되겠네요. 고생 많으셨습니다. 기자님.”

“……어후.”

작업이 전부 끝나고 조 기자가 질린 얼굴로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다.

“진짜 끔찍하게도 아끼네요.”

“뭘요?”

“이지아 씨요. 한유정 씨도 그렇고. 현우 씨는 자기 사람을 무슨 신줏단지 모시듯 아껴요?”

멀리서 핸드폰을 보며 웃고 있는 이지아가 보인다.

일이 수월하게 풀리면서부터 표정이 눈에 띄게 좋아졌다.

가슴이 한겨울의 호빵 연기처럼 훈훈해진다.

“그냥, 제가 신입 매니저라 그래요. 처음 맡은 사람들이다 보니까 아무래도 일로만 볼 수가 없게 되더라고요.”

뭐든지 처음 손에 들어온 건 소중한 법이니까.

그런데 내 말을 들은 조 기자가 입을 떡 벌리고 날 쳐다본다.

“내가 잘 못 들었나… 뭐라고요? 신입이요?”

“예? 네. 제가 말씀 안 드렸었나요?”

“일한 지 얼마나 됐는데요? 뭐 3, 4년 됐는데 신입이라고 하는 건…….”

“다섯 달이요.”

맞나? 맞는 거 같다. 이런 건 계산하기 편하다. 이지아 만나고서부터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 짐작하면 되니까.

“와….”

조 기자가 허탈하게 웃으며 펜대를 책상 위에 툭 던졌다.

“나중에 그쪽 일 그만두게 되면 꼭 저한테 먼저 연락해요.”

“제가 고졸이라.”

“편집장 멱살 잡아서라도 통과시켜줄 테니까 걱정 마시고!”

“글쎄요.”

이지아를 힐끔 쳐다보며 웃었다.

“같이 일하는 사람들이 놔줄 거 같지 않은데.”

“미리 침 발라놓는 거죠. 아무튼, 오늘 고생하셨어요. 기사는 더 다듬었다가 올릴게요.”

“옙! 부탁드리겠습니다.”

“아, 그리고….”

조 기자가 갑자기 손을 불쑥 내민다. 집게손가락에는 웬 봉투가 꽂혀 있었다.

“이거 받아 가요.”

“웬 거에요?”

“별건 아니고.”

조 기자가 히죽 웃는다.

“현우 씨 덕분에 대형 신문사에서 헤드 헌팅 들어왔거든요. 감사의 답례. 나중에 애인이나 가족하고 천천히 놀다 오세요.”

감동의 물결이 파도처럼 밀려온다.

그래, 난 이런 걸 원했다.

얼마나 좋아?

기브 앤 테이크. 호의를 호의로 갚아주기.

정글 같은 이 업계에서 조 기자와 박 변호사는 정말 마지막으로 남은 양심 같은 게 아닐까?

사양하지 않고 봉투를 받았다. 앞에서 확인하는 건 예의가 아닌 거 같아 바로 안주머니에 찔러 넣었다.

키보드를 두들기는 조 기자를 뒤로하고 이지아와 함께 주차장으로 향했다. 차가 부드럽게 도로 위를 달렸다.

어두컴컴한 차 안.

한쪽 구석에서 자꾸만 밝은 빛이 아른거린다. 조수석을 힐끔 보니 이지아가 역시나, 핸드폰에 집중하고 있었다.

“지아 씨.”

“네?”

“요즘 뭐 재밌는 거 있으세요?”

“왜요?”

“핸드폰 보면서 맨날 웃고 있어서요.”

흣! 핫!

이지아가 이상한 소리를 내며 핸드폰을 숨긴다.

그리고 어색하게 웃으며 고개를 젓는다.

“그, 친구….”

“네? 친구요?”

이지아한테 친구가 있다고?

깜짝 놀라서 되물어보니까 이지아가 떨떠름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인다.

“SNS 친구요. 가끔 메시지 주고받고 해요.”

이상한 사람은 아니겠지? 걱정부터 들었다. 요즘에는 워낙 이상한 사람이 많다 보니까.

하긴, 이렇게 말하는 나도 인터넷에서 패왕 지아라는 사람하고 메시지를 하고 있었다.

남한테 뭐라 할 처지가 아니지.

하지만, 친구라고 유일하게 연락하는 게…….

빨간 신호에 걸린 사이, 한숨을 푹 내쉬며 운전대에 이마를 기댔다.

“혀, 현우 씨?”

당황한 이지아가 내 어깨를 잡아당긴다. 그런데 목을 뻣뻣하게 세울 기운조차 들지 않는다.

이지아도 그렇고, 한유정도 그렇고, 대체 왜 다들 이렇게 교우관계가 좁은 거지?

한유정이야 처지가 처지다 보니까 백번 이해한다지만 이지아는 무슨 이유로?

그런 한탄을 하던 도중, 문득 조 기자가 건넸던 봉투에 생각이 미쳤다.

“아, 지아 씨!”

“네?”

“정장 외투 좀 봐줄래요?”

이지아가 뒷좌석에 던져놓은 정장 외투를 집었다.

“외투는 갑자기 왜요? 추워요?”

“아뇨, 그게 아니라 거기 안쪽 주머니 한 번 봐줘요.”

이지아가 캄캄한 어둠 속에서 외투를 뒤적인다.

“봉투 하나 있죠?”

“네.”

“조 기자님이 제 덕에 좋은 데로 이직하게 됐다고 선물했거든요. 괜찮으면 지아 씨하고 같이 가려고요.”

“아….”

“봉투 한 번 꺼내 보세요.”

이지아의 멘탈을 관리하는 것도 엄연히 내 일이다. 애초에 처음 계약이 그렇게 이루어졌으니까.

그동안 이지아도 고생 많았다. 나야 매니저니까 얼굴이 밖으로 드러나는 일이 없지만, 그녀는 달랐다.

항상 사건의 중심에 있었고, 그 성격상 영향을 안 받았을 리가 없다.

이제 와서 새삼스럽지만, 어디 좋은 데라도 놀러 가서 기분 좀 풀어줘야겠다.

이지아가 주섬주섬 봉투를 뒤적인다.

“어…?”

기대감에 가득 찬 이지아의 얼굴이, 붉게 타오른다.

콕 찌르면 흘러내릴 홍시처럼.

“지아 씨? 갈 거예요, 말 거에요?”

뭐야? 왜 말이 없어졌어? 가기 싫은 건가? 선물이라고 준 게 설마 오케스트라 연주회 티켓 같은 건 아니겠지? 그런 거면 끔찍한데.

전방의 신호등만 하염없이 쳐다보던 이지아가 침을 꼴깍꼴깍 삼킨다.

그녀가 떨리는 입술을 열었다.

“혀, 현우 씨.”

“네?”

“이거요.”

“네.”

“저하고 같이 가자는 거, 맞죠?”

“네, 둘이요.”

이지아가 더운 숨을 내뱉는다.

“이거, 호텔 숙박 티켓인데….”

“…네?”

“호, 호텔 숙박 티켓이요.”

“아뇨, 들었어요. 잠깐만요.”

얼굴을 쓸어내리며 생각했다.

그러고 보니 조 기자가 애인이나 가족하고 갔다 오라고 했었지.

이런 거였나. 시발.

공기가 무겁다.

이지아와 있으면서 이렇게 침묵이 어색하던 적이 있던가? 없던 거 같다. 어색하다. 처음 만났을 때조차 이 정도는 아니었다.

우리는 서로 눈을 마주친 채로 한참 동안 뻣뻣하게 굳어 있었다.

정적을 깨운 건 뒷차의 경적이었다.

빠아앙──!!

어느새 신호가 바뀌어 있었다. 다급히 운전대를 잡으며 악셀을 밟았다.

좌회전하세요, 우회전하세요, 오백 미터 직진하세요. 길을 잘못 들었습니다, 유턴하세요.

내비게이션 말만 들으며 운전하는데, 창가에 턱을 괴고 있던 이지아가 불쑥 말을 꺼냈다.

“……은데.”

뭐?

“전에 일 때문에 잠깐 묵었었는데, 바닷가 쪽이라 전망도 되게 좋더라구요.”

이지아가 시뻘게진 귀로 중얼거렸다.

“그냥, 그렇다구요.”

&

다음날, 조 기자가 녹음 파일과 함께 단독 기사를 터트렸다.

인터넷에서 이지아가 착각한 거다, 협회가 장난질 친 게 맞다, 서로 멱살 잡고 싸우던 사람들이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다 함께 칼을 뽑아 들었다. 칼끝이 향한 곳은 협회였다.

역풍이 불었다.

입장문으로 이미 한차례 이지아의 주장을 부정했는데, 본부장이라는 사람의 입에서 의도적으로 앞길을 막겠다는 말이 나온 것이다.

단순히 의혹을 받는 것과 그게 확정적으로 결과가 나오는 건 전혀 다른 이야기였다.

이지아가 SNS에 성토를 할 때와 비교도 되지 않는 규모로 눈덩이가 굴러갔다.

[넉 달 전, 이지아에게 누명을 뒤집어씌웠던 헌터 협회가 다시 논란에 휩싸였습니다. 이번에는 보복 행정을 했다는 소식입니다.]

뉴스를 귀로 흘려들으며 댓글들을 쭉 훑었다.

[마약핫도그: 아니 그럼 대체 처음 입장문은 뭐냐?]

[ㄴ방배동라이더: 뭐겠음 일 커지기 전에 덮으려다가 빼도 박도 못하게 된 거지]

[wldk123: 협회 이번에도 아무것도 못 하죠? 부들부들 떨리죠? 열 받아서 이지아 죽여버리고 싶죠?ㅋㅋㅋㅋㅋㅋㅋ]

[아방스트랏슈: 진짜 이제는 신뢰가 안 가네 불법 로비까지 벌써 몇 번째임? 입장문도 구라였고]

이지아는 명실상부 대한민국 최고의 헌터였다.

협회와 이지아의 갈등.

대중들을 위한 오락성으로도 충분했다.

테이블 맞은편에 앉은 한예림이 부스스한 머리를 쓸어넘기며 말했다.

“전화위복이라는 게 참, 이럴 때를 두고 말하는 게 아닌가 싶어.”

“뭐가?”

핸드폰을 내려놓으며 물었다. 한예림이 설핏 웃는다.

“이지아가 길드 만든다는 거. 입소문으로만 퍼질 거라고 생각했는데, 뉴스 타면서 모두가 알게 됐잖아.”

“뭐?”

“지금 공중파에 나오는 뉴스들. 저게 다 얼마짜리인 줄 알아? 뉴스 하나 나올 때마다 홍보 비용 수백만 원씩 절감해주는 거야. 우린 피해자니까 안 좋은 쪽으로 나오는 것도 아니고. 이게 전화위복이 아니면 뭐야?”

듣고 보니 그랬다.

아침부터 저녁 뉴스까지, 헤드 라인 띄워놓고 온종일 떠드는데 홍보가 안되려야 안 될 수가 없다.

그렇게까지는 생각 못 해봤는데.

작게 감탄하며 말했다.

“다르긴 하네.”

“뭐가?”

“경력이 있으니까 생각하는 게 다르다고. 난 그냥 협회 엿먹였으니까 만족하고 있었거든.”

한예림이 어이없다는 듯 쳐다본다.

“글쎄, 너한테 그런 말을 들으니까 뭔가….”

“뭔가?”

“이상하게 들리네.”

“왜?”

“글쎄다, 미국에 있을 때는 내가 치고 올라가는 입장이었는데…….”

한예림이 한숨을 쉬며 서류 봉투를 내밀었다.

“뭐야?”

“본부장하고 심사건 관련해서 협의 끝났어. 지금 바로 통과시키면 속보이니까 잠잠해지는 대로 해주겠대.”

하루.

단 하루 만에 끝났을 일이었다.

그걸 그저, 이지아를 엿먹이기 위해 한 달을 넘게 질질 끌어왔다는 사실이 어이없었다.

서류 봉투의 머리를 뜯으며 물었다.

“아, 길드 이름은 뭐로 했어?”

“소드.”

“소드? 멋있네.”

그런데 괜찮으려나?

원래 그런 있어 보일 법한 이름들은 다른 길드에서 선점해놓는 법인데.

한예림이 심드렁히 대답했다.

“일단 지르는 거지 뭐. 맞으면 맞는 대로 나오고, 아니면 아닌 대로 수정해주겠지. 그것도 마음에 안 들면 재신청하면 되고.”

대표가 괜찮다면 괜찮은 거지.

협회에서 보낸 문서를 훑었다.

그리고 나도 모르게 헛웃음을 터트렸다.

[신청 길드 이름: 소드]

[소드­> 바스타드 소드로 수정]

[사유: 중복]

이상하게 쳐다보던 한예림이 내가 들고 있던 서류를 빼앗아갔다. 그리고 그녀도 실소를 지었다.

“바스타드 소드? 장난해? 누가 이걸 곧이곧대로 불러줘? 바스타드라고 부를 게 뻔하잖아!”

재밌네.

자꾸만 웃음이 나온다.

꼭 우리들 보고 개자식(bastard)이라고 욕하는 거 같다.

이걸 적어넣었을 협회 놈들의 얼굴이 떠올라서, 유쾌한 기분이 가시지 않는다.

아마 수정 요청을 다시 보낼 거라 생각했겠지.

발악 끝에 내지른 소심한 펀치였을 것이다.

손가락으로 서류를 가리키며 말했다.

“이걸로 하자.”

“뭐?”

“괜찮지 않아?”

“이게 마음에 든다고? 제정신이야?”

언제나 그렇지만.

게임을 이기고 나서 적에게 듣는 욕은, 기분 좋기 마련이다.

“바스타드 소드. 이걸로 가자.”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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