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3화 〉 이미 흘러넘친 술은 다시 주워 담을 수 없다 (5)
* * *
“그냥, 예림이 언니하고 같이 자면 안 돼요?”
“…뭐?”
이지아가 눈썹을 찌푸린다.
“예림 씨가 여기서 갑자기 왜 나와?”
곰곰이 말을 주워 담던 한유정이 침대를 가리킨다.
“…1인용 침대잖아요.”
이지아가 팔짱을 낀다.
“근데?”
“세 명이 눕기에는 좁아요.”
“좁다고?”
“아저씨도 덩치가 작은 편이 아닌데, 일인용 침대에 세 명이 껴안고 누우니까 너무 불편해요.”
“아, 그래?”
이지아가 긴 생머리를 긁적이더니 시원스레 말했다.
“그럼 내 침대 쓰지. 그동안 미안해서 내 방으로 가자고 말 못 했었는데… 현우 씨 괜찮죠?”
“네?”
한유정이 최초 문제를 제기했다.
내 방의 침대는 1인용이다. 거기에 세 명이 누우니까 당연히 좁을 수 밖에 없었다.
그래서 이지아보고 한예림한테 가란다. 좁고 불편하니까.
아주 타당하고 합리적인 의견이다.
여기에 이지아가 다른 대체안을 내놓았다.
그렇다면 큰 침대에서 자면 되는 거 아닌가.
역시, 흠잡을 데 없이 타당한 반론이다.
가시죠, 단 한마디.
그 한 마디로 한유정이 말한 문제가 해결되는데….
한유정과 시선을 마주쳤다. 불안으로 떨리는 눈동자가, 내 입만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그러면….”
말을 하려는데 한유정이 불쑥 끼어들었다.
“침대가 넓어도, 셋이서 껴안고 자야 하잖아요.”
“뭐?”
“자는 공간이 넓어져도 똑같아요. 셋이 붙어서 자면 계속 불편할 수밖에 없어요.”
“그래서, 어떡하자고?”
“말씀드렸잖아요. 아줌마가 예림이 언니한테 가면 전부 해결돼요. 능력 범위야 저 때문에 줄어든 거니까 예림이 언니하고 두 분이 껴안고 잘 일도 없구요.”
“왜 내가….”
한유정이 차분한 목소리로 단호히 끊었다.
“그게 맞으니까요. 제가 갈 수는 없어요. 아시잖아요.”
발끈한 이지아가 무언가 말하려다가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못마땅하다는 듯 혀를 찬다. 반박할 거리가 없을 거다.
이지아가 한예림에게 가는 건 괜찮다. 하지만 한유정은 불가능하다.
복제 능력은 마이너 카피에 불과한데, 한유정은 원본 능력자인 나도 전부 억제하지 못해서 착 달라붙어 있어야만 했다.
한유정이 꺼내는 말들은 모두 이치에 맞았다. 불편한 문제가 있기에 해결법까지 함께 제시했고, 그 과정이 전부 언제나처럼 논리적이다.
그런데 이상했다.
저 차분한 말투에서 보이는 건 분명 이성적인 모습인데…….
한편으로는 어딘가 불안해하고, 억지 부리는 거처럼 느껴졌다.
마치 부모한테 떼를 쓰는 아이 같은.
그런 기분이다.
시계를 확인했다. 아직 시간이 조금 남았다.
“지아 씨, 잠깐….”
한유정을 침대에 앉히고 이지아와 함께 밖으로 나갔다.
할 말을 찾느라 침묵이 조금 길어졌다.
뒤통수만 긁적이다가 냅다 말을 꺼냈다.
“일단 유정이 말대로 하죠.”
“…네?”
*
한유정과 등을 맞대고 누웠다. 이지아가 빠진 덕에 침대는 그나마 숨 틀 공간이 생겨났다.
그래도 좁은 건 여전히 변함없지만, 전처럼 앞뒤로 살을 부대끼지 않아도 되니까 몸은 제법 편하다.
근데 뭐지.
마음속에 무거운 돌덩이를 올려놓은 거 같은, 이 기분은.
이지아는 전화를 받고 달려온 한예림에게 끌려갔다. 떠나간 이지아가 자꾸만 눈앞에서 아른거린다.
어찌나 멍한 얼굴이던지.
겁나 찝찝하네. 꼭 내가 이지아의 뒤통수를 세게 때리고 배신한 것만 같다.
일요일마다 얼굴을 맞대느라 긴장돼서 잠을 잘 못 잤는데, 지금은 다른 의미로 눈이 말똥말똥하다.
그런데, 그동안이 비정상이긴 했다.
우리가 사귀는 것도 아니고, 다 큰 성인 남녀 둘이 껴안고 자는 상황 자체가 조금 많이 이상했지.
대안이 있으면 쓰는 게 옳았다.
이불을 뒤척이는데 등 뒤 닿은 작은 체구도 함께 꼼지락거린다.
“아저씨, 안 주무세요?”
“아, 미안. 자꾸 움직이니까 신경 쓰이지?”
“아뇨, 저도 잠이 안 와서요.”
아까 많이 졸린다 하지 않았나.
한유정이 조심스레 묻는다.
“아저씨, 제가 잘못한 걸까요?”
“뭘?”
“아줌마… 예림이 언니한테 보낸 거요.”
여기서 괜한 짓을 한 거라고 말하면.
나는 이지아와 껴안고 자고 싶어서 애 탓을 하는 불연소 쓰레기가 되겠지.
“아니, 나도 잘 때 많이 불편했어. 잘했어.”
“진짜요?”
혹시라도 내가 지금 상황을 불편하게 생각하고 있을 거라 착각했던 걸까, 한유정의 목소리가 한결 밝아졌다.
“아저씨, 있잖아요.”
“응.”
“아저씨는 왜 저를 그렇게 신경 써주시는 거예요?”
“내가? 특별히 신경 썼었나?”
한유정이 웃음기 가득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네, 되게요.”
“예를 들면?”
그렇다는데, 기왕이면 날 어떻게 평가하는지 들어보고 싶다.
한유정이 칭찬 거리를 하나씩 짚는다.
“옷 맨날 사주시잖아요. 용돈도 주고.”
역시 돈이 먼저인가.
“그거 다 지아 씨 돈이야.”
“아저씨가 정당하게 일하고 받은 돈이잖아요. 그럼 아저씨 돈이죠.”
“그리고, 또?”
“기사 안 나가게 기자하고 싸우고, 헌터 시험 불리할까 봐 엎고…….”
그래도 내 고생을 알아주고 있었구나.
잘 되면 내 탓이고 못하면 전부 매니저 탓이다, 같은 말을 나중에 들으면 어쩌나 싶었는데.
참, 잘해주는 보람이 있는 아이다.
하나하나 짚어가던 게 드디어 오늘의 일로 마무리됐다.
“오늘 놀이공원도 데려다주셨구요.”
한유정이 머뭇거리며 다시 이야기를 꺼낸다.
“아저씨, 그래서 말인데요. 다시 말씀드리는 건데…….”
“응.”
“저한테 왜 그렇게 잘해주시는 거예요?”
이유야 뭐, 여러 가지가 있다.
17살짜리 애가 처한 환경이 안쓰러운 것도 있고, 집에서 게임만 하는 걸 보자니까 걱정되기도 하고, 내 성격이 잔정에 약한 것도 있고, 어린 나이에 부모를 잃은 것도 옛날 생각이 나서 안쓰러웠다.
여러 가지 이유를 핑계처럼 길게 늘어트려 놓지만, 결국 전부 하나로 설명할 수 있다.
그냥, 처지가 공감되고 꼭 가족처럼 느껴져서 그랬다. 이걸 그대로 말하기에는 너무 쑥스러우니까 표현을 안 할 뿐이지.
혀를 입안에서 데굴데굴 굴리다가, 매일같이 꺼내는 서툰 변명을 다시 꺼냈다.
“매니저니까.”
“매니저요?”
“담당 매니저가 헌터 신경 안 써주면 누가 신경 써주겠냐?”
한유정이 숨을 크게 들이킨다. 그리고 한참 뒤에 다시 길게 내쉰다.
목덜미에 닿는 숨결이 거칠고 서늘하다. 닭살이 돋을 만큼.
“유정아?”
대답이 없어 부르는데, 한유정이 내 소매를 움켜잡았다. 꽉 쥔 주먹이 새하얗게 질려 있었다.
“그럼요.”
“응.”
“만약, 아저씨가 제 매니저가 아니게 되면요. 어떻게 되는 거예요?”
“응?”
“……지금처럼 안 대해줄 거에요?”
뭐?
*
짹─! 짹짹──!
퀭한 눈을 주무르며 일어났다. 몸이 무겁다. 뭐지? 내려다보니까 한유정이 매미처럼 대롱대롱 매달려 있었다.
“유정아, 일어나봐.”
한유정이 볼을 비비적대며 투정 부린다.
“엄마….”
엄마 아닌데.
깨울까 말까 하다가 등에 엎은 채로 움직였다. 어제 새벽 늦게까지 한참 동안 떠들어서 그런지, 둘 다 점심까지 깨지도 않고 퍼질러 잤다.
아직도 한유정이 왜 그런 말을 한 건지 모르겠다. 본인은 말실수한 거라고 얼버무리는데, 조금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한유정이 날 가족처럼 보는 건 알고 있다. 나도 마찬가지였고. 그런데 간혹, 얘가 좀 불안해한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
가족을 잃게 된 경위 때문인지, 나이가 어려서인지, 그것도 아니면 원래 성격이 그런 건지…….
꼭 부모의 사랑을 독차지 하고 싶어 하는 첫째 같은 느낌이다. 왜, 둘째가 생기면 관심이 분산되니까 괜히 불안해하는, 그런 거 말이다.
식탁에는 이미 이지아가 먼저 식사를 하고 있었다.
한유정과 함께 자리에 앉는데 그녀가 짧게 혀를 차며 일어난다.
“지아 씨, 벌써 다 먹었어요?”
“네. 다 먹으면 현우 씨가 설거지만 해주세요.”
“그럼요.”
이지아가 식기를 정리하고 떠났다.
뭐지.
이지아의 목소리가 살짝 싸늘하게 느껴지는 건.
핸드폰을 꺼내 토스트 사진을 찍었다. 고개를 꾸벅이던 한유정이 묻는다.
“아저씨, 뭐하세요?”
“지아 씨 SNS에 올리려고.”
찰칵!
방으로 돌아온 나는 컴퓨터를 켰다.
한유정은 품속에서 얌전히 게임기를 만지고 있었다.
방금 찍은 토스트 사진을 올리고 댓글을 기다렸다. 새로 고침과 동시에 수십 개가 달린다.
[지아짱짱: 언니!! 얼굴도 같이 올려줘요!!]
[ㄴkdlw999: ㅎㅎ… ㅋㅋ!!]
[떡볶이냠냠: 점심에 토스트는 무슨… SNS에 사진 올리려고 꼴값을 떤다 진짜]
[ㄴkdlw999: 걍 니는 포켓몬 빵이나 처먹으셈ㅋㅋ 스티커는 가져오고]
[ㄴ떡볶이냠냠: ?]
[ㄴkdlw999: 어딜 갈고리를 띄우고 있어 팍 씨 처맞으려고]
또 시작이다.
악플러와 극성팬의 싸움이 벌어졌다. 콜로세움에 곧바로 관중들이 우르르 몰려들었고, 극성팬은 처형식을 진행하듯 악플러를 말 그대로 썰어버렸다.
이 사람은 일상이 없나?
나야 이지아의 SNS 계정을 관리하는 게 일이라지만, 극성팬은 정말 상주한다는 말이 어울릴 정도였다.
이지아를 칭찬하는 댓글에는 좋아요를, 욕하는 댓글에는 단두대를 선물한다.
팔로워가 수십만 명이라 달리는 댓글이 한두 개도 아닌데 전부 확인하는 거 같다.
이 정도면 진짜 누가 관리자인 줄 모르겠네.
그래도 솔직히 말하자면 고마운 마음이 컸다. 누군가 대신 나서서 싸워준다는 건 호감이 갈 수밖에 없으니까.
호기심이 생겨 극성팬의 SNS를 확인했다.
프로필 사진을 박아두지 않아 전투용 깡통 계정인 줄 알았는데, 그래도 게시글을 몇 개 올린 흔적이 남아있었다.
가장 최근에 올린 글은 오늘 새벽이었다.
[제목: 아 나도 다시 태어나던가 해야지]
[남자들은 다 어린 여자 좋아하나? 짜증 나네 진짜….]
누군가에게 보여주려 한다기보다는, 일기장처럼 그때그때 자신의 감정을 솔직하게 적은 듯하다. 팔로잉도 이지아 한 명뿐이고.
쭉 훑어봤지만 이상한 사람은 아닌 거 같다.
누군지 되게 궁금하네. 호기심이 부쩍 생긴다.
메시지 한 번 보내볼까?
원래 쓰던 아이디를 로그아웃하고 다른 계정으로 접속했다.
워낙 극성팬의 인상이 강렬하기도 했고, 내가 쓰는 계정으로 접촉했을 때 혹시 나중에 문제 생기지 않을까 싶었기 때문이다.
키보드를 두들겼다.
[국밥요정: 안녕하세요? 혹시 이지아 팬이신가요?]
보낼 글을 작성하고 마우스를 클릭했다.
딸칵!
[kdlw999님께 메시지를 보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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