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1화 〉 이미 흘러넘친 술은 다시 주워 담을 수 없다 (3)
* * *
주차된 차를 몰아 스튜디오 입구로 향했다. 핸드폰의 내비게이션을 키며 고민에 빠졌다.
놀이동산 가자고 했는데 어린이 대공원은 조금, 그렇고.
고민하다가 결국 과천으로 결정했다.
띠리링!
검색창에 주소를 입력하는데 전화가 왔다. 한예림이다.
“여보세요?”
지금 어디야?
“프로필 사진 찍고 나오는 중인데. 무슨 일이야?”
바로 다음 스케줄 좀 잡을까 해서.
“뭐?”
오늘 오전에만 벌써 한군데 들렸다. 프로필 사진까지 찍고. 요즘 계속 뺑뺑이 돈다고 잠자는 시간보다 차 안에 있는 시간이 더 길었다.
“맨날 똑같은 레퍼토리인데 무슨 인터뷰를 그렇게 많이 해?”
지금 유망주들 다 나가리되고 유정이뿐이라 어쩔 수 없어! 이 기회에 생색 좀 내야 나중에 나도 부탁하고 하지.
알고는 있지만, 마음에 들지 않아 머리카락을 긁적였다. 확 고용노동청에 미성년자 착취로 신고할까 보다.
“무슨 말인지는 알겠는데, 오늘만 좀 빼줄 수 있어?”
왜?
“인터뷰 있는 줄 모르고 약속한 게 있어서. 요즘 강행군했잖아. 반나절만 쉬게 해주자.”
수화기 너머로 한예림이 한숨을 내쉰다.
알겠어. 아직 약속 잡아놓은 건 아니니까 미뤄놓을게.
다행이다.
이대로 통화를 끊으려다가, 문득 한예림이 길드 심사 건으로 협회를 찾은 게 떠올랐다.
“심사 결과 나왔지? 어떻게 됐어?”
반려.
“뭐? 사유가 뭔데.”
한두 개가 아니라 다 말해주긴 번거롭고. 확인 서류를 요청한 게 있어서 다시 신청해야 할 거 같아.
한예림이 짜증스레 중얼거린다.
한국이 원래 이렇게 빡빡한 나라였나? 미국보다 더 심한데. 잠도 못 자게 생겼어.
“그런 줄도 모르고 내가 번데기 앞에서 주름잡았었네. 고생해.”
너도 고생했어. 2차 시험 언제 시작할지 모르니까, 유정이 쉴 때 푹 쉬게 해 주고.
뚝.
전화를 끊고 내비를 입력했다. 운전대에 턱을 기대며 기다리는데, 스튜디오 입구에서 화사하고 따스한 빛이 난다.
밖으로 나온 한유정이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빠앙─!
창문을 내리고 경적을 울렸다. 날 찾은 한유정이 고개를 꾸벅 숙이며 총총 뛰어왔다.
“늦어서 죄송해요.”
“됐어, 늦어봤자 얼마나 늦게 나왔다고.”
한유정이 안전벨트를 매는 걸 가만히 지켜봤다. 시선을 느낀 건지 날 쳐다보며 눈을 깜빡인다.
“왜 그러세요?”
“유정아.”
“네?”
“화장 안 지웠어?”
“어, 네. 안 지웠어요.”
“왜? 불편하다면서?”
내 질문에 한유정이 한쪽 입꼬리만 어색하게 말아 올린다. 그러고 보니 17살이면 한창 꾸미는 거에 관심 갈 나이기는 하지. 괜한 질문을 했나 보다.
“아저씨, 저희 어디로 가요?”
“과천.”
“아.”
“가서 뭐 특별히 타보고 싶은 거 있어?”
가만히 고민하던 한유정이 입을 뗐다.
“회전목마요.”
&
난간에 팔을 기대고 빙글빙글 돌아가는 회전목마를 구경했다.
옆을 보니 나보다 열 살은 더 많아 보이는 남자들이 한가득하다. 전부 카메라 셔터를 누르느라 정신없다.
그러면서 크게 외치는 말들은 전부 자기 자식들의 이름이다.
내 허리까지는 올까 싶은 어린아이들이 웃으면서 카메라를 향해 손을 흔든다.
한유정이 왜 이걸 타고 싶다고 한 건지, 어떤 마음으로 내게 말한 건지 순식간에 이해가 가서 얼굴을 쓸어내렸다.
“아, 진짜….”
회전목마 속에서 한유정을 찾았다. 혼자 뻘쭘하게 호박 마차를 탄 소녀가 눈에 들어왔다.
아무래도 어색한 걸까? 가시방석에라도 앉아있는 거처럼 눈치를 살피고 있다. 같이 타줄 걸 그랬네.
딱, 딱.
혀로 입안을 때리며 주저하다가, 눈 한 번 딱 감고 외쳤다.
“유정아! 한유정!”
한유정이 번뜩 든 고개를 내게로 향한다.
“사진 찍게 웃어봐!”
한유정은 한참을 머뭇거리다가 서툰 웃음을 지었다. 저놈의 카메라 울렁증은 언제 고치려는지. 셔터를 누르며 사진을 찍었다.
마차가 한 바퀴를 돌 때마다 의기소침하던 어깨도 눈에 띄게 풀어진다.
그때, 등 뒤에서 남자들의 목소리가 들렸다.
“와씨, 봤어?”
“뭘?”
“저기 마차에 탄 애. 아이돌인가? 진짜 이쁘다.”
남자가 감탄사를 뱉는다.
“일반인은 아닌 거 같은데. 누구지?”
“SNS에 사진 찍어서 물어보자.”
핸드폰을 꺼내려 하길래 헛기침을 하며 다가갔다.
“저기요.”
“네?”
“한유정이라고 혹시 모르세요?”
“한유정이요? 처음 듣는데요. 그건 왜…?”
모른다고?
그럼 찍지 마, 시발.
“제가 저 애 보호자라서…….”
보호자라는 말에 남자들이 어색하게 웃으며 핸드폰을 감춘다. 팔꿈치로 서로의 옆구리를 툭툭 찌르며 ‘일반인이잖아’, ‘몰라, 인마!’ 같은 말을 작게 속삭인다.
“자, 잘 모르겠는데요.”
“진짜요?”
“네! 저흰 바빠서 이만!”
남자들이 도망치듯 떠났다.
머리를 긁적이며 한숨을 쉬었다. 아직인가 보다. 그렇게 인터뷰를 하고 언론에 노출도 많이 됐다고 생각했는데.
아직 한유정의 이름은 업계 사람들에게만 유명했다.
하긴. 생각해보면 나도 매니저 활동을 하면서 유망주들의 얼굴과 이름을 외우기 시작했지, 헌터를 지망할 때는 눈길도 주지 않았다.
이지아와 함께 단단히 버티고 있는 S랭크 헌터들이야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워낙 유명하지만.
당장 그 밑의 A랭크들 조차도 캐릭터가 특색있거나 배우를 겸업하는 등, 다른 헌터들과는 차별점이 있는 게 아니면 모르기 일쑤였다.
대체 누가 그걸 다 기억하겠냐고. 얼굴 유명한 거야 방송에 노출되는 연예인들이 더 유명하지.
1년에 두 번씩이나 쏟아지는 유망주들 틈에서 한유정의 얼굴만을 기억해주길 바라는 건, 제법 염치없는 바람이었다.
그래도 인터넷에서는 나름 화제가 돼서 알아보는 사람들도 있지 않을까 했는데.
아직 갈 길이 멀었나보다.
“아저씨, 뭐 하세요?”
어느새 다가온 한유정이 날 부른다.
웃으며 핸드폰을 보여줬다.
“사진 찍은 거 정리하고 있었어.”
한유정이 고갤 들이밀며 확인한다. 옅은 샴푸 향이 코끝을 간질댔다. 재채기가 나올 거만 같은 풋풋함을 참으며 물었다.
“다음으로 가고 싶은데 있어?”
“네.”
“어디?”
“솜사탕이랑 츄러스요.”
“뭐?”
솜사탕이랑 츄러스가 뭐 하는 놀이기구였지?
아, 먹을 거구나.
“아까 식당에서 밥 먹었잖아. 많이 배고파?”
“아뇨, 배고픈 건 아닌데….”
한유정이 뜸을 들이다가 말했다.
“놀이공원에 오면 항상 먹었어요.”
“……그래? 그럼 먹어야지.”
한유정과 함께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이놈의 부스는 막상 찾을 때는 보이질 않는다. 그렇게 길을 걷는데, 문득 시선이 우르르 꽂히는 게 느껴졌다.
고등학생이 될법한 여자애의 손을 잡고 걸어서 그러는 건지, 한유정이 워낙 눈에 띄는 외모를 가지고 있어서 그러는 건지.
어쩌면 둘 다일 수도 있겠다.
가장 먼저 한유정에게 머물던 시선이 곧 내 얼굴로 향했고, 흐뭇하던 눈길이 쌍심지로 바뀌었으니까.
사회적 시선이란 게 그랬다.
생판 모르는 남들이 보자면, 나는 머리에 피도 안 마른 아이를 속여 먹으려는 늑대 새끼였다.
일한다고 정장까지 입고 나와서 내 원래 나이보다 좀 더 들어 보인 것도 있을 테고.
“유정아, 손 놔야겠다. 이러다가 사람들한테 한 대 맞겠어.”
짧게 혀를 차며 잡은 손을 놓는데, 한유정이 팔을 쭉 뻗어 내 소매를 다시 붙잡았다.
어?
한유정이 더듬더듬 입술을 떼며 변명한다.
“길… 아저씨 손 놓으면, 길 잃을 거 같아서요.”
“그래?”
“네, 사람들 엄청 많잖아요.”
확실히, 주말이라 놀이공원은 인파로 바글댔다.
퍼석퍼석하게 메마른 목구멍을 침으로 진정시키며 다시 걸었다. 한유정도 말없이 내 뒤를 따랐다.
한참을 걷고 나서야 우리는 판매 부스를 발견했다.
“솜사탕하고 츄러스 두 개 주세요.”
주문하고 잠깐 기다리는데, 남자 직원이 계속 한유정을 힐끔거린다. 고개를 갸우뚱하면서.
조금 묘한 시선이었다. 여태까지 지나치던 사람들이 ‘우와 예쁘네’하고 넘긴 눈빛과는 조금 달랐다.
솜사탕을 만드는 와중에도 관심을 꾸준히 보낸다.
뭐지? 이 사람 설마…….
남자 직원이 모자를 고쳐 쓰며 솜사탕을 내밀었다. 한유정이 앞으로 나서며 받았다. 그대로 물러나려는데, 직원이 한유정을 불러 세운다.
“어, 저기 혹시요….”
스멀스멀 피어오르는 불쾌감에 몸이 먼저 움직인다. 한유정의 앞을 막아서며 물었다.
“무슨 일이세요?”
“방금 솜사탕 받은 학생분이요.”
그 뒤는 잘 생각하고 말하는 게 좋을 거야.
지금 내가 주먹을 아주 꽉 쥐고 있거든.
직원이 주위의 눈치를 살피며 귀엣말로 내게 속삭였다.
“한유정, 맞죠?”
“네?”
“한유정이요. 이번 헌터 시험에서 가장 기대받는 유망주.”
“……아, 네?”
“가까이서 보니까 더 예쁘네. 기사 봤어요. 소녀 가장이라면서요?”
잠깐, 그럼 계속 쳐다보던 게….
그런 거였어?
직원이 활짝 웃는다.
“드릴 건 없고 솜사탕 좀 크게 만들어드렸어요. 돌아갈 때까지 다 못 먹을걸요.”
밝은 미소를 마주한 내 썩은 눈이 쿡쿡 쑤신다.
입술을 매만지다가 물었다.
“……같이 사진 찍어드릴까요?”
“어? 정말 그래도 돼요?”
직원이 쌓인 손님들을 보고는 아쉬워한다.
“제가 지금 근무 중이라……. 얼굴 본 거로 만족할게요. 2차 시험 힘내세요.”
더 말을 거는 것도 방해인 거 같아 한유정과 함께 옆으로 빠졌다.
한유정이 내게 물었다.
“무슨 일이세요?”
“너 알아보더라.”
“저를요?”
“응.”
한유정이 오묘한 얼굴을 하며 뒤를 따라온다. 나도 아마 비슷한 얼굴 일 거 같다.
한유정을 알아본 사람이 먼저 말을 걸어오는 게 엄청 신기했다. 업계 사람도 아닌, 놀이공원 직원이다.
기사가 나가지 못하도록 협박하고, 2차 시험을 터트리고, 매니저와 멱살 잡고 싸우고, 잡지사에서 사진을 찍었던 모든 것들이.
조금씩 열매를 맺고 피어오른다.
내가 아직 몰랐을 뿐, 한유정의 현재는 느리지만 천천히 바뀌어 가고 있었다.
그게 너무나 신기했다.
“아저씨, 무슨 생각 하세요?”
“응? 왜?”
“얼굴이 엄청 좋아 보여서요.”
한유정의 물음에 솔직하게 말했다.
“그냥….”
“그냥요?”
“너 매니저 하길 잘했다는 생각했어.”
이지아의 청문회 때부터 느꼈던 감정이지만, 나로 인해 누군가의 인생이 긍정적으로 변해간다는 건….
정말 가슴 벅차고, 기쁜 일이었다.
*
실컷 돌아다닌 거 같다.
퍼레이드도 구경하고, 기념품으로 커다란 오소리 인형도 사고, 판다도 만져보고.
놀이기구야 사람이 워낙 많아 몇 개 타보지는 못했지만, 한유정은 만족스러운 얼굴로 조수석에 앉았다.
차 열쇠를 꽂고 시동을 거는데, 한유정이 불쑥 묻는다.
“아저씨.”
“응?”
“필요한 거 없으세요?”
“뭐? 왜 갑자기?”
“오늘 제가 너무 받기만 한 거 같아서요.”
“어이구, 너 돈 있어?”
한유정이 의기소침해진다.
“…없어요.”
“너 기분 풀어주려고 나온 거야. 내가 아무렴 사채를 쓰면 썼지, 애한테 돈을 뺏으려고. 됐으니까 나중에 많이 벌면 갚아.”
한유정이 오소리 인형을 꽉 끌어안으며 다짐한다.
“제가 나중에 아저씨 꼭 부양해드릴게요!”
“응? 이게 그 정도까지는 아닌데….”
“그래도 항상 받기만 하면 미안하잖아요.”
골똘히 생각하던 한유정이 그림자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그리고 내게 척 내민다. 검은색 권총이었다.
응? 권총?
“야, 야! 너 지금 뭘…!”
기겁하며 주위를 살폈다. 누가 보고 있지는 않았다. 한유정이 권총을 내 손에 억지로 쥐여준다.
“선물은 받는 사람이 필요로 하는 걸 주는 게 제일 좋대요.”
“어? 그, 그렇지.”
근데 권총을 왜…?
“전에 아저씨가 맞는 거 보고 생각했어요. 호신 도구 하나 있으면 좋겠다구요.”
“누가 호신 도구로 권총을 들고 다녀!”
모델 건이나 가스총 같은 게 아니었다.
마감 퀄리티가 전혀 다르다. 한유정이 그런 걸 들고 다닐 거 같지도 않다. 쟤한테 가스총이 뭐가 필요하다고?
그런데 한유정이 고개를 젓는다.
“실탄도 쓰긴 하는데, 진압용 가스탄도 있어요. 그리고, 특수 제작이라 제 그림자처럼 몸속에 숨길 수도 있구요.”
“으, 응? 진압용? 숨길 수 있다고?”
“네.”
한유정이 단호히 말했다.
“나중에 어디 가서 또 맞을 거 같으면, 먼저 확 쏴버리세요. 죽는 건 아니고 기절해요.”
음지에서 양지로, 암살자에서 헌터로.
한유정의 현재는 느리지만, 천천히 바뀌어 가고 있었다.
“뒤처리는… 제가 알아서 해드릴게요.”
분명히.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