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S급들이 내게 집착한다-39화 (39/112)

〈 39화 〉 이미 흘러넘친 술은 다시 주워 담을 수 없다 (1)

* * *

최근 이지아의 공식 계정을 운영하고 있다. 역할은 많다. 앞으로 출범하게 될 우리 길드의 홍보 창구가 돼줄 거고, 이지아의 멘탈 관리 역할까지 해줄 거다.

유망주로 시작해서 S급 헌터가 되기까지.

이지아는 특유의 성격 탓에 대중과 제법 거리를 두고 생활했다.

매체를 통해서 보이는 모습은 인간미가 없어 보인다고 해야 할까.

오해를 사기 딱 좋은 타입이다.

직접 만나서 대화를 나누기 전까지는, 나도 이지아한테 감히 범접하지 못할 초인 같은 이미지를 가지고 있었으니까.

그래서 SNS로 거리감을 해소할 계획이다. 평범한 일상도 보여주고, 취미 생활로 공감대도 형성하고.

물론, 반응이 좋지는 않았다. 인터넷이란 부정적인 반응이 훨씬 빠른 법이다. 하지만 천릿길도 한 걸음부터. 언젠가 적대적인 반응도 나아지지 않을까 싶다.

키보드를 두들기며 SNS에 접속했다.

[ID: wldk123]

[password: ******]

타닥타닥!

이지아의 사진과 함께 일상 글을 적당히 꾸며 올렸다. 곧바로 댓글이 달렸다.

[떡볶이냠냠: 얘는 뭐 사진 찍을 때마다 계속 이쁜척하네]

이 새끼 봐라?

눈에 익은 계정이었다. 이지아를 쫓아다니며 괴롭히는 악플러다. 대체 이지아한테 무슨 원수를 진 건지 모르겠는데 SNS까지 쫓아와서 이 지랄을 한다.

로그아웃을 누르고 키보드를 두들겼다.

[ID: gusdn999]

[password: ******]

방금 올린 게시글을 찾았다. 그 사이에 댓글이 여러 개 달렸다. 공식 계정 맞냐고 묻는 사람도 있고, 누나언니동생 등 환호해주는 팬들의 인사도 있었다.

전부 지나쳤다.

어딨지?

눈에 불을 켜며 악플러의 댓글부터 찾았다.

[떡볶이냠냠: 촬영 구도 신경 쓴거봐 예쁜 척좀 그만하셈ㅋㅋㅋ]

여깄었구나, 쥐새끼 같은 녀석.

어릴 때, 한창 유행하던 RTS 게임판에서 10년을 놀았었다.

검열 없는 초창기 인터넷의 대화창은 마치 전쟁터와 같았고, 그곳에서 살아남은 성인 남성들은 모두 과거의 그림자 속에 괴물 한 마리씩을 묶어두고 있는 법이다.

괴물은 너무나 무자비해서, 게이머들은 그걸 함부로 풀어주지 않는다. 양심의 가책, 도덕적 책임, 사회적 제재 등의 이유로. 하지만, 아주 가끔 억제기가 무너지고 괴물이 풀려나는 때가 있다.

나한테는 그게 바로 오늘이다.

넌 뒤졌다, 진짜.

키보드를 치려던 순간이었다.

[떡볶이냠냠: 얘는 뭐 사진 찍을 때마다 계속 이쁜척하네]

[ㄴkdlw999: 예쁜척 하는게 아니라 예쁜거임 호박년아]

답글이 달렸다. 난 아닌데. 뭐지? 쓰던 욕 들을 전부 지우고 새로 고침을 눌렀다.

[ㄴ떡볶이냠냠: 누구보고 호박이래? 본인 얼굴이나 프로필에 박아두고 그런 말 하던가]

[ㄴkdlw999: 문어 얼굴을 박아도 니 보다는 괜찮을듯ㅋㅋㅋㅋㅋㅋㅋㅋ]

[ㄴ떡볶이냠냠: 누군데 갑자기 시비임?]

그 뒤로 답글들이 쭉 이어졌다.

갑자기 붙은 싸움에 여기저기서 팝콘을 튀기며 찾아왔고, 나도 감자알 하나를 입에 넣으며 구경했다.

와, 이 사람 잘 싸우네.

결국 악플러는 도망치듯 떠났다. 극성팬은 한참 동안 시체 위에서 춤추는 것 마냥 조롱을 퍼부었다.

함곡관에서의 여포가 이런 모습이었을까? 일군을 호령하는 대장군의 기세가 화면 너머로 느껴진다.

싸움은 그대로 끝나는 줄 알았다. 아니었다. 극성팬은 악플이 보이는 족족 두들겨 팼다. 이지아의 게시글 곳곳에서 산발적인 게릴라 전투가 벌어졌다.

그걸 보고 조금, 감동했다.

이렇게나 이지아를 좋아해 주는 사람이 있었구나. SNS를 시작한 지 얼마 안 됐지만, 가시적인 성과가 보인다.

하긴, 지금 팔로워만 수십만 명인데 어떻게 안티팬들만 있겠어? 그만큼 극성팬도 있는 거지.

알려주면 이지아도 기뻐하겠지?

방문을 열고 거실로 나갔다. 소파에 누운 이지아가 핸드폰을 보며 웃음을 참고 있었다. 뭐지? 엄청 집중하고 있다. 내가 바로 옆까지 다가가는데 전혀 모르는 눈치다. 조심스레 이름을 불렀다.

“지아 씨?”

“…….”

“지아 씨!!”

“…?!”

화들짝 놀란 이지아가 펄쩍 뛰었다. 손에서 놓친 핸드폰이 천장까지 높게 날았다가 다시 소파 위로 떨어졌다.

“뭘 하길래 그렇게 집중하고 있어요? 근처에 오는 것도 모르고.”

핸드폰을 주워주려고 하는데, 이지아의 손이 번개처럼 빠르게 움직였다. 이지아가 시선을 피하며 휘파람을 휘휘 분다.

“지아 씨?”

수상쩍게 쳐다보니까 이지아가 변명한다.

“개인적인 취미 생활이라…….”

“취미 생활이요?”

인상을 팍 찌푸리며 손을 뻗었다.

“또 악플 보고 있었죠?”

“아뇨, 안 봤어요!”

손이 애꿎은 허공만 지나쳤다. 이지아가 뒤로 슬금슬금 몸을 내뺐다. 내가 그 말을 믿을 거 같아?

“그러면 핸드폰 보여줘요.”

“싫어요.”

“왜요?”

“사생활 침해잖아요!”

“우리 사이가 그거밖에 안 됐어요?”

“아닌데, 안 돼요!”

소파를 사이에 두고 한참 동안 추격전을 벌였다. 당연하지만 내 손이 이지아에게 닿을 리가 없었다.

젠장, 진짜 빠르네.

숨을 헐떡이며 소파에 철푸덕 주저앉았다. 아침부터 괜히 기운 뺐다. 경계하던 이지아가 슬쩍 엉덩이를 붙이고 앉았다.

“현우 씨, 무슨 일이에요?”

“……좋은 소식이 있어서요.”

나중에는 꼭 잡고 만다. 그런 다짐을 하며 내 핸드폰을 꺼냈다. 이지아의 아이디로 SNS에 접속했다.

“저희 최근에 SNS 계정 만든 거 봤어요?”

“…네.”

“댓글들을 봤는데, 지아 씨 극성팬 한 분이 계시더라구요. 악플러들하고 대신 싸워주고 있어요.”

“진짜요?”

“한 번 봐보세요.”

이지아가 SNS에 달린 댓글들을 쭉 읽었다. 흐뭇하게 웃으며 구경했다. 어떤 반응을 보일지 궁금해서.

그런데, 눈썹을 찡그린 이지아가 내게 물었다.

“현우 씨, 극성팬이 어딨어요?”

응? 그게 안 보여?

“거기 있잖아요. 댓글 한두 개 쓴 게 아니라서 바로 보일 텐데.”

“잘 안 보여서 그런데 짚어줄래요?”

“바로 보이는데. 거기 있잖아요.”

“어디요?”

“답답하네, 여기요!”

손가락으로 극성팬의 댓글을 가리켰다.

[이지아는 A랭크 헌터: 이지아는 잠수탄 사건을,,, 어서 해명하라,,,]

[ㄴkdlw999: 틀니 3일 압수]

[ㄴ이지아는 A랭크 헌터: 반박 못하니까,,, 비난하는 거,,, 보기 안좋다,,,]

[ㄴkdlw999: 멀쩡한 거 보니까 임플란트였네ㅋㅋㅋ]

한참 뒤에야 이지아가 이마를 짚으며 탄성을 내뱉었다.

“……아.”

“아?”

아, 뭐?

눈을 마주친 이지아가 어색하게 웃는다.

“뭐야, 반응이 왜 그래요?”

“…제가요? 뭐가요?”

“이상하잖아요.”

“그, 뭐냐, 기뻐서요.”

전혀 기쁜 표정이 아닌데.

식은땀도 줄줄 흐른다.

생각보다 미적지근한 반응에 내가 실망스러운 기색을 드러냈다.

“에이, 좋아할 줄 알고 보여준 건데.”

이지아가 다급하게 외친다.

“당연히 기쁘죠. 기쁜데….”

“기쁜데?”

“기, 기쁜데…!”

말을 하던 이지아가 고개를 푹 떨궜다. 닫힌 입은 열리지 않았다.

&

전에 일하던 카페 바스타드에 들렸다. 알바 박지영이 반가워하며 맞이했다.

“손님 커피 뽑아드리고 갈 테니까 아무 데나 앉아있어요.”

“형은?”

“사장님은 금방 오실 거에요.”

창가 쪽 비어있는 자리에 앉았다. 가방에서 잡지 하나를 꺼냈다. 그리고 한유정의 기사를 샅샅이 찾았다.

2차 시험이 불법 로비로 한 차례 엎어지면서 여유시간이 생겼다. 한유정에게 인터뷰 요청이 쇄도했다.

뻔한 일이었다.

대형 길드 유망주들은 현재 불법 로비 건에 얽혀있었다. 어떤 후속 기사가 나올 줄 모른다. 안전하다고 볼 수 있는 건 상위권에서 오직 한유정뿐.

길드도 없고, 당시 짜인 팀도 불법 로비의 결과물이라고는 도저히 봐줄 수 없을 정도였다. 거기에 ‘제2의 이지아’라는 타이틀까지 붙어있다.

한동안 정말 바쁘게 움직였다. 집보다 상암동에 머문 시간이 더 길었지.

덕분에 내 컬렉션도 늘어났다.

가위로 조심스레 한유정의 사진을 오리는 중이었다.

“오빠.”

박지영이 양손에 커피 한 잔씩을 쥐고 등 뒤에 서 있었다.

“깜짝이야, 기척 좀 내.”

“뭐 하세요?”

“취미생활 중.”

박지영이 묘한 눈빛으로 나하고 잡지를 번갈아 쳐다본다.

“설마 그동안 여자친구가 없던 게….”

“응?”

한유정의 사진을 보고 무슨 생각을 한 건지, 박지영이 떨떠름한 얼굴을 한다.

식겁하며 변명했다.

“친한 동생이야, 동생!”

“친한 동생 사진을 누가 앨범에다가 보관까지 해요? 혹시 제 사진도 그렇게 모아요?”

“그게 아니라, 얘는 딸 같아서…….”

이런 시발.

변명할수록 어째 꼴이 이상해진다.

잠깐 머리를 식혔다가 다시 말했다.

“내가 담당하는 헌터야. 이상한 상상 하지 마.”

“네?”

박지영이 커피를 건네며 묻는다.

“오빠 이지아 매니저 아니었어요?”

“지아 씨도 담당은 하는데….”

이지아까지 같이 담당하기에는 현재 한유정의 일이 여유롭지 않았다.

바쁘면 바쁜 대로 번갈아 가며 담당하겠지만, 현재까지는 그랬다.

“지금은 유정이 담당하고 있어.”

“쓰읍, 눈에 익은데. 누구지?”

“한유정 몰라?”

“네.”

“진짜?”

“모른다니까요.”

TV하고 담쌓은 녀석이 아닌데 이런 걸 보면 아직도 갈 길이 멀구나 싶다.

“너도 잡지나 신문 좀 챙겨봐. 유정이가 인터뷰 몇 개를 했는데 몰라?”

“얼씨구.”

“잡지 많은데 하나 줘?”

“일없어요!”

다시 가위를 들고 사진에 집중했다. 흰 선 하나 남기지 않고 사각사각 자르는데, 헛기침 소리가 내 시선을 끈다.

“그, 두 사람하고 같이 일하는 거잖아요.”

“응.”

박지영이 음침하게 웃으며 묻는다.

“둘 중 누가 더 마음에 들어요?”

“너 미쳤냐?”

인상을 왈칵 찌푸리며 묻자 박지영이 손사래를 친다.

“아니, 그게 아니라 인간적으로! 일적으로 누가 더 좋냐 이거죠!”

그런 웃음이 아니었는데.

미심쩍게 쳐다보니까 머리를 긁적인다.

나는 짧게 혀를 차며 대답했다.

“둘 다 좋지. 유정이는 말 잘 들어주고, 지아 씨는 S급 헌터면서도 뻗대지 않고.”

“조금의 차이도 없이?”

“그거야 뭐….”

“사진 줘봐요.”

박지영이 한유정의 사진을 빼앗아 갔다. 그리고 내 핸드폰을 다다다 두들기더니 이지아의 사진을 띄운다.

“뭐해?”

“둘 다 좋은 게 어딨어요? 약지 물때하고 검지 물때하고 통증이 같나?”

그렇게 말한 박지영이 한유정과 이지아의 사진을 내 앞에 떡하니 내밀었다.

“짚어봐요. 어디 가서 말 안 할 테니까.”

잔뜩 기대하는 눈빛을 보니까 이거에 확 꽂혔나 보다.

마른 세수를 하며 고민에 빠졌다.

한유정을 선택하면 두고두고 놀리겠지?

그냥 적당히 상대해줘야겠다. 나는 망설임 없이 핸드폰의 이지아 쪽으로 손을 뻗었다.

“다음에 이런 거 또 하면 진짜 얼굴 안 볼 거…….”

그리고 손이 닿기 직전,

우우웅! 우웅!

핸드폰이 진동으로 마구 떨렸다.

화면을 확인했다. 익숙한 번호와 함께 한유정의 사진이 떠올라 있었다.

“와씨, 타이밍 봐. 어디서 지켜보는 거 아니에요? 빨리 받아봐요.”

박지영이 팔뚝을 슥슥 문지르며 재촉한다.

제 발 저리니까 괜히 망설여지네.

핸드폰을 든 채로 한참 동안 뜸 들이다가, 결국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유정아, 무슨 일이야?”

달칵달칵, 키보드를 누르는 소리와 함께 한유정이 묻는다.

­어어, 아저씨! 지금 어디세요?

“응? 오늘 아는 사람 만난다고 했었잖아.”

­어, 언제 들어오세요?

“글쎄, 저녁은 먹고 들어갈까 하는데. 왜?”

­아저씨, 그거 아세요? 요즘에 돼지 열병이 유행해서 고깃집은 조심해야 한데요!

“그래?”

­그래서 식사하실 거면 튀긴 음식이 좋을 거 같아요. 맛이 조금 이상하다 싶으면 바로 뱉으시고요. 그리고 아까 게임 하다가 제가 활약해서 이겼거든요. 방금 한 판 더 돌리고 있었는데──

횡설수설 이어가던 한유정의 말을 끊었다.

“어, 유정아. 알겠는데 내가 지금 사람을 만나고 있어서. 하고 싶은 말이…….”

­다 말씀드렸어요. 게임 중이어서 그만 끊을게요!

뚝!

박지영과 눈을 마주쳤다. 우리는 얼빠진 얼굴로 핸드폰을 쳐다봤다.

“오빠, 한유정인가 하는 애요.”

“응.”

“원래 성격 독특해요?”

“조, 조금?”

박지영이 피식거린다.

“조금은 무슨.”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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