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S급들이 내게 집착한다-36화 (36/112)

〈 36화 〉 김현우 (6)

* * *

한유정을 지정석에 보내고, 나는 강당 한구석에 위치한 대기석으로 향했다.

의자는 딱 한자리 남아 있었다.

그런데 방금 싸운 매니저의 옆자리다.

지랄한다, 진짜.

여기 멀뚱멀뚱 서 있으면 괜히 의식하는 거처럼 보이겠지? 이놈의 자존심이 뭔지, 나는 일단 의자에 앉고 봤다.

[2차 시험의 팀 배정은 랜덤입니다. 앞서 설명해 드린 게임 규칙대로, 먼저 팀을 배정하고 난 뒤……]

옆자리의 매니저가 불쑥 말을 걸어온다.

“김현우 씨죠?”

“네. 송민철 실장님이셨죠?”

퉁명스레 대답했다.

일부러 택시 뒷좌석에 앉았는데도 기사가 자꾸만 말을 거는, 그런 반갑지 못한 기분이다.

“아까 보니까 한유정하고 많이 친해 보이시던데.”

“친하죠.”

매니저를 바라보며 툭 내뱉었다.

“좀 많이.”

“뭐라고요?”

“좀 많이 친하다구요.”

매니저가 인상을 찡그리며 노려본다. 나는 모르는 척 뻔뻔한 얼굴로 시선을 받아넘겼다.

“현우 씨, 그거 아세요?”

“뭘요?”

“가끔, 유망주들의 발목을 잡는 매니저들이 있어요.”

이거 진짜 뭐 하는 새끼지?

초면부터 마음에 드는 꼴이 없다. 저놈도 마찬가지인 거 같지만, 나는 어디까지나 피해자다.

사람 면전에다 대체 무슨 말을 지껄이는 거야?

“그러니까, 실장님 말씀은 제가 유정이 발목을 잡고 있다고요?”

매니저가 피식거린다.

“눈치는 빠르시네. 사적으로 많이 친하다 했죠? 그럼, 한유정 놔주세요.”

“왜요?”

“댁들이 품기에는 너무 아까우니까.”

“그러는 당신은 품을 수 있고?”

“당연히 가능하지.”

주위를 의식한 매니저가 낮은 목소리로 말한다.

“대형 길드에 들어온 유망주들이 괜히 뒷심 있다고 하는 줄 알아? 지원의 규모가 달라. 헌터로 데뷔한다 쳐도, 너희가 한유정을 던전에나 출입시킬 수 있을 거 같으냐고.”

“그건 모르는 일이죠.”

“그래, 모르는 일이지. 이런 대답에서부터 길드와 매니저의 역량이 드러나는 거야. 나였으면 이렇게 대답했어. 걱정할 걸 걱정하라고.”

나는 손목시계를 확인했다. 얼마 남지 않았다.

“김현우, 당신이 정말 한유정을 생각한다면 오히려 지금 놔줘야 해. 테스트야 공정한 조건에서 하니까 지금 당장은 실력으로 커버친다 해도, 그 뒤부터는 달라. 헌터의 실력보다는 매니지먼트가 더 중요하게 작용하거든.”

알고 있다.

아무리 재능이 있더라도 던전에 들어가지 못하면 경력을 쌓지 못한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고 결국 중고 신입이 된다.

그 뒤는 뻔하다. 매해 시험이 끝나고 쏟아져 나오는 헌터들.

성장 가능성이 높은 유망주들을 놔두고 중고 신입에게 기회가 돌아갈 일은 없다.

결국 떠오를 가능성은 시간이 지날수록 줄어만 간다.

가수나 배우는 작품하나 잘 골라서 뻥 터지는 일도 있지만. 헌터들에게는 어림도 없는 일이다.

실력과 경력이 중요한 업계다.

재능이 있어도 그걸 바쳐줄 길드가 없다면 헤쳐나가는 길은 막막하기 짝이 없다.

어쩌면, 매니저의 말대로 하는 게 한유정의 미래를 위해서 나을지도 모르겠다. 천살성이야 일요일만 같이 있어 주면 되는 거니까.

꼭 내가 매니저로서 한유정을 돌봐줄 필요는 없었다.

하지만, 나도 사람이고 욕망이 있다.

욕망에는 여러 가지 종류가 있겠지만.

지금 매니저가 자꾸만 건드리고 있는 내 감정은 바로, 소유욕이었다.

“이즘에서 욕심 그만 부리고 한유정한테 말해. 길드를 옮기는 게…….”

“그래서, 더 헌트 까버리고 대진 일보에 쫄래쫄래 기어들어 가 인터뷰한 게, 당신이 말하는 대형 길드의 비즈니스 방식입니까?”

“뭐?”

매니저가 어리둥절한 얼굴을 한다.

“그걸 당신이 어떻게 알았어?”

내게 묻는 매니저의 말을 귓등으로 넘겨들으며 시선을 멀찍이 돌렸다.

단상 위의 심사위원이 스크린으로 팀원들을 배정해주고 있었다.

[팀 배치는 위와 같습니다. 본인의 팀이 어딘지 먼저 확인하시고 이후 통제에 따라…….]

시계를 확인했다.

11시 20분.

조 기자가 미리 약속한 기사를 터트릴 시간이 됐다.

입가를 문지르며 매니저에게 말했다.

“어디 한 번 봅시다.”

“뭐?”

“결과가 전부 말해주겠죠. 유정이한테 진짜 필요한 사람이 누군지.”

*

그 말과 동시였다.

우우웅! 우웅!

사방에서 진동이 울렸다. 당황한 매니저들이 주머니를 뒤적였다. 어두운 강당에 핸드폰 불이 하나둘씩 켜졌다.

그건 김현우의 옆자리에 앉은 태산 길드 매니저도 다르지 않았다.

그가 발신인을 확인했다. 홍보팀장이었다. 전화를 받은 매니저가 입술을 떨며 물었다.

“……여보세요? 팀장님, 무슨 일이세요?”

가끔, 그럴 때가 있다.

불안한 미래를 감지하고 머릿속의 경보가 마구 울리는 현상.

인생에서 한 번쯤은 겪는 신기한 경험 말이다.

지금 매니저가 그랬다.

­실장씩이나 되는 새끼가 일을 대체 어떻게 처리한 거야?!

머릿속의 경보기가 미칠 듯이 왱왱 울렸다.

“팀장님,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말로 하면 길어지니까 지금 당장 인터넷 기사 확인해. 전화 끊지 말고.

매니저는 인터넷에 접속했다. 잠깐의 로딩 시간. 그 사이에 주위를 둘러봤다. 모두 똑같았다. 매니저들이 고개를 처박고 핸드폰을 확인하고 있었다.

그가 침을 꿀꺽 삼키며 시선을 내렸다.

단독 기사가 사이트 메인에 걸려있었다.

[헌터 2차 시험은 대형 길드의 유망주들을 위한 판인가?]

그리고 내용을 확인한 그의 눈동자가 커졌다.

기사 상단에 첨부된 모자이크 사진.

돈 봉투를 건네는 그 사진 속 주인공의 윤곽이, 눈에 익었다.

“어?”

­사진 찍힌 사람, 너 맞지?

“아니, 이게 왜? 대체 언제…?”

혼란스러워하는 매니저에게 팀장이 윽박질렀다.

­얼타지 마, 새끼야! 너 지금 어디야?

“시, 시험장이요. 애들 팀 배치받는 거 확인하고 있었습니다.”

­마무리되면 최대한 빨리 애들 데리고 길드로 돌아와. 어차피 2차 시험 엎어졌어. 협회나 언론 쪽에서 뭐 물어보면 아무 말도 대답하지 마. 알았어? 우리도 당장 후속 조치 취할 거야.

“네, 네 알겠습니다.”

더듬거리던 매니저가 통화를 끊었다. 대기석이 순식간에 소란스러워졌다. 욕설이 여기저기서 튀어나왔다.

대형 길드 매니저들은 급박하게 돌아가는 상황에. 소형 길드 매니저들은 더러운 업계 비리에.

서로 다른 이유의 욕이었지만, 하나는 명확했다.

이번 2차 시험은 엎어졌다.

사건이 정리될 때까지 일정은 모두 멈출 것이다. 설령 재개되더라도, 이전처럼 대형 길드들의 입맛대로 움직이는 건 불가능했다.

“왜요?”

사근사근한 목소리가 기분 나쁘게 목덜미를 스친다.

김현우가 팔짱을 끼고 느긋하게 구경하고 있었다.

“실장님도 혹시 불법 로비 엮이셨어요?”

입술을 달싹거리던 매니저가, 겨우 내뱉었다.

“아뇨, 잘 모르겠네요. 공정한 시험에 불법 로비를… 누군지 참.”

“이상하다.”

“네?”

김현우가 핸드폰 속 기사의 사진을 매니저와 비교했다.

“이렇게 생긴 게 비슷한데.”

“무슨!”

매니저가 기겁하며 김현우의 팔을 쳐냈다.

“당신, 이게 얼마나 민감한 사건인데 말을 그렇게 함부로…!”

“뭘 그렇게 당황하세요. 아니면 아닌 거지.”

“다른 사람들이 오해하면 댁이 책임질 거야?!”

“실장님, 그렇게 소리 지르면 주위 사람들이 쳐다봐요.”

어느 순간부터 시선이 따가웠다. 의심의 눈초리가 쌓인다. 가시방석이라는 말로도 부족할 정도로, 매니저는 이곳에 있기 불편해졌다.

“씨발.”

그는 거친 욕설 내뱉으며 팔짱을 꼈다.

아직 자리를 비울 수는 없었다. 단상 위의 감독관들도 분주해졌다. 곧 있으면 2차 시험 일정을 미루든, 취소하든 간에 결과가 나올 거다.

그 전에 막무가내로 돌아갈 수는 없었다. 너무 티 날 테니까. 다른 대형 길드 매니저들도 엉덩이를 들썩거리며 참고 있었다.

매니저는 불편한 기색을 감추며 기다렸다.

*

이제야 좀 조용해졌네.

벙어리 고기를 먹인 덕분인지, 옆자리 매니저가 드디어 입을 다물었다.

커다란 스크린에는 아직도 2차 시험 인원들의 팀이 띄워져 있었다.

[4조 6팀]

[한유정]

[박정현]

[서지민]

[윤지후]

남는 시간 동안 나머지 유망주들의 이름을 찾아봤다. 그리고 헛웃음을 터트렸다.

새끼들. 그럼 그렇지.

모두 1차 시험에서 간신히 낙제점만을 면했다. 능력들도 2차 시험에는 썩 어울리지 않는다. 서로 간의 상성도 엉망진창이었다.

한유정이 저 팀을 데리고 이기는 그림이 도저히 그려지지 않았다. 그대로 시험을 진행했으면 분명 탈락하거나 최하위권으로 통과했을 것이다.

그래서 2차 시험에 핵폭탄을 떨어트렸다.

지금과 같은 결과를 만들기 위해서.

단상의 감독관이 식은땀을 흘리며 말했다.

[현재 2차 시험에 관련돼서 불미스러운 사건이 터졌습니다]

로비 처먹던 거 걸렸다.

[협회는 앞뒤 사실관계를 파악하고 사건에 얽힌 주동자를 찾기로 했으며, 수사에 성실히 임할 것입니다]

우리는 꼬리를 자르고 빠져나가겠다.

[위와 같은 문제로 현재 2차 시험은 잠정적으로 연기되며, 추후 일정은 홈페이지 공고를 통해 알려드리겠습니다]

일단 눈치 보이니까 사건 잠잠해질 때까지만 기다려라. 나중에 부르겠다.

[시험 도중 물의를 일으켜 대단히 죄송합니다]

걸려서 좆같네. 거 미안하게 됐수다.

감독관이 고개를 꾸벅 숙이고 퇴장했다.

협회가 미꾸라지처럼 빠져나가는 건 별 상관없다. 사회의 악을 처벌하려고 터트린 게 아니었으니까.

로비를 받고 말고는 전혀 중요하지 않았다.

어쩌면, 나도 했을지도 모른다.

다만 한유정의 미래를 저울질해보고 내린 결정이었다. 이런 사소한 일들까지 로비를 먹이면서 올라가다 보면 언젠가 발목을 턱 잡힐 테니까. 편하게 올라가려던 과거에 말이다.

“아저씨. 끝났어요.”

어느 사이에 다가온 건지 한유정이 뒤에서 날 부른다. 이상하다. 분명 같은 지붕 아래에 살면서 똑같은 샴푸, 똑같은 바디워시를 쓰는데. 한유정이 근처에 있을 때는 솜사탕처럼 달달하고 푹신푹신한 냄새가 난다.

혀끝에 스며드는 그 달짝지근한 맛에 나도 모르게 미소가 피어올랐다.

“유정아.”

“네?”

“점심인데 배 안 고파?”

눈치 보던 한유정이 어색하게 웃었다.

“고파요.”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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