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5화 〉 김현우 (5)
* * *
“야, 저 사람….”
“맞지?”
시험장으로 걸어가는데 주위에서 수군거린다.
유망주란 게 말이 유망주지, 일반인들은 그렇게 크게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
당장에 현역에서 뛰는 스타들이 기라성처럼 버티고 있으니까. 사람의 기억력에는 한계가 있고, 한 명이 기억되면 한 명은 잊히는 법이다. 대중들의 머릿속에 일개 유망주가 끼어들 틈은 없다.
그래서 한유정은 이슈에 비해 그리 유명하지 않았다.
제2의 이지아야 항상 나오는 말이고, 일반인들에게는 3,000점이든 2,000점이든 그냥 1등 했구나 정도의 인식이었다.
길거리를 돌아다니면 사람들의 눈길이 꽂히긴 했지만, 그건 그냥 예쁘니까 그런거고.
유명한 사람을 볼 때의 ‘신기하다’ 같은 시선은 아니었다.
하지만 이곳에서만큼은 달랐다.
모두가 같은 유망주고, 업계 사람들이다.
1차 시험에서 3,000점을 넘긴 게 얼마나 대단한지 모두가 알고 있다. 마치 길거리에 연예인이라도 등장한 거처럼 온갖 관심이 쏠렸다.
내가 괜히 부담스러울 정도로.
한유정이 걱정스럽게 묻는다.
“물 너무 마시는 거 아니에요?”
“긴장돼서.”
“시험은 제가 치는데 아저씨가 더 긴장한 거 같아요.”
아침잠이 많은 한유정 덕분에 급하게 준비한다고 정신이 없었다.
그래서인지 한유정의 머리카락이 살짝 뻗쳐있었다.
중요한 일을 앞두고 이러면 안 되지.
손에 물을 묻혀서 부스스하게 일어난 머리카락을 눌러줬다.
“야, 네가 내 입장 돼봐라. 걱정이 되나 안되나.”
한유정이 미처 참지 못하고 옅게 웃는다.
얘는 걱정받는 게 좋나보다. 본인 일로 내가 안절부절못하면 아닌 척 하면서 슬쩍 미소짓는다.
그게 괜히 얄미워져서 정리해주던 머리를 다시 헝클어트렸다.
“아, 아저씨… 머리 망가져요.”
“그러니까 왜 얄밉게 웃고 있어?”
“제가요? 웃었다구요?”
“응.”
한유정이 시선을 피한다.
“아뇨, 저 안 웃었어요.”
“웃었어.”
“아닌데.”
“내가 봤는데.”
“아저씨가 잘못 본 건데….”
봐봐. 지금도 웃고 있잖아.
갑자기 바지 주머니 속 핸드폰이 진동한다. 발신인을 확인했다. 조 기자다. 주위를 쓱 둘러보다가 말했다.
“난 전화 받아야 하니까, 거울 보면서 머리 정리하고 있어. 금방 올게.”
“네.”
대기장을 나서며 전화를 받았다.
“조 기자님, 무슨 일이세요?”
현우 씨, 변동사항 없죠?
“네. 미리 말씀드린 대로 하시면 됩니다.”
지나가는 사람들의 눈치를 보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불법 로비 건이었다. 기사를 터트리는 건 팀 배정이 이루어진 뒤로 정했다.
매니저의 뒤를 밟아 이미 물증은 얻었다. 2차 시험 테스트 기간에 대형 길드 매니저가 관리 직원한테 돈을 찌르는데, 이건 세 살짜리 애가 봐도 돈을 주고받은 거다.
다만, 팀 배정이 이루어진 뒤에 터트리려는 이유는 심증까지 굳히기 위해서다.
이거 봐라, 팀 이상하지 않냐? 어째서 대형 길드 유망주들한테만 유리하게 짜여있냐? 1등인 한유정은 왜 팀이 이따위고? 여기 증거물들을 봐라.
그런 식으로 말이다.
네, 그럼 시간 맞춰서 인터넷에 올리겠습니다. 친한 기자들한테도 전화 돌려놨으니까, 단독 기사 나가고 나면 바로 복사해서 쭈르륵 퍼질 거에요.
“부탁드릴게요.”
조 기자가 호탕하게 웃는다.
제가 다 고맙죠. 잡지 기자로 활동하면서 이만한 특종 터트려볼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어요.
“그렇게 고마우시면 나중에 게임기 패드 하나만 보내주세요. 컴퓨터하고도 연동되는 거로.”
잠깐 대화가 끊겼다. 기자가 말을 더듬으며 되묻는다.
패, 패드요?
“네.”
아니, 밥 한 끼 사라는 것도 아니고, 무슨 패드입니까?
“유정이하고 게임 같이 해주기로 했는데, 패드가 집에 하나뿐이라서…….”
수화기 너머로 웃음소리가 들렸다.
두 분 보면 헌터, 매니저 관계가 아니라 무슨 나이 차이 적게 나는 아빠와 딸 같아요. 알고 보면 같이 사시는 거 아니에요?
“에, 에헤이 무, 무슨 애 혼삿길 망치는 소리를…….”
답지 않게 뭘 그렇게 당황하세요? 농담이죠, 농담!
하하하.
호탕하게 웃는 기자를 따라 나도 어색한 웃음을 터트렸다.
그거 농담 아니야, 이 자식아.
*
“쟤 한유정 맞죠?”
“3,000점 넘긴 유망주가 저런 어린 애였어?”
“아닌 거 같은데. 너무 어리지 않아요?”
“17살이래잖아요.”
쑥덕대는 와중에 누군가 핸드폰을 보며 말했다.
“방금 더 헌트 찾아봤는데, 한유정 맞네. 얼굴 똑같아요.”
어느 매니저의 말에 매니저들이 우두커니 서서 한유정을 쳐다봤다. 그들의 눈빛에 어떤 감정이 깃들었다.
1차 시험의 순위가 꼭 2차, 3차까지 이어지는 건 아니다.
각 스테이지마다 지향하는 목적이 다른 만큼, 시험이 진행될수록 순위가 변동하는 게 일반적이었다.
하지만 설령 그렇더라도.
1차 시험의 3,000점은 그 의미가 남달랐다. 마의 벽으로 불렸었고, 그걸 넘었다는 건 그 이지아와 잠깐이라도 나란히 섰다는 걸 의미하니까.
그것만으로도, 2차 시험에서 제 역할을 다할 것은 충분히 예측 갔다.
그래서 쭈구리처럼 숙이고 있던 소형 길드 매니저들은 한유정을 경계하면서도, 같은 팀이 되길 간곡히 빌었다.
하지만 대형 길드의 매니저들은 달랐다. 2차 시험만큼은 외부적인 요인이 충분히 개입 가능했다.
이미 윗선에서 서로 붙어먹은 만큼 그들이 담당하는 유망주들 또한 높은 등수로 통과할 게 분명했다.
이번 2차 시험에서 한유정이 족쇄를 차고 시험을 칠 거라는 것까지도.
지금 그들에게 한유정은 위협적인 경쟁상대가 아니었다. 밑을 깔아주는 먹잇감이었다.
그래서 대형 길드 매니저들은 한유정을 경계하지 않았다. 같은 팀이 되길 빌지도 않았다.
눈에 깃든 건 경계도, 애원도 아닌 탐욕.
누군가 작게 중얼거렸다.
“한유정, 분명 길드 없었지.”
그게 그들의 머릿속을 가득 채운 생각이었다. 손에 꼽히는 유망주 중에 길드에 소속되지 않은 건, 현재 한유정이 유일했다. 사실 길드에 소속돼있더라도 크게 문제 될 건 없었다.
이 업계에서 인력 빼가는 거야 본인의 동의만 있다면 별일도 아니었다. 위약금이야 던져주면 되는 거니까.
“여보세요? 조 기자님, 무슨 일이세요?”
때마침 한유정의 매니저가 전화를 받으며 사라졌다. 가장 발 빠르게 움직인 건 태산 길드 매니저였다.
“한유정 씨?”
거울을 보며 머리를 매만지던 한유정이 뒤를 돌아봤다. 매니저가 얼굴에 미소를 띠며 사근사근하게 다가갔다.
“안녕하세요, 저희 구면이죠? 대진 일보 인터뷰 때 얼굴 마주쳤는데. 기억하세요?”
“네.”
한유정이 고개를 끄덕였다. 김현우와 대화하고 있을 때는 잘 몰랐는데, 혼자 있으니까 어딘가 냉정하고 싸늘한 인상이었다.
매니저가 명함을 꺼내 건넸다.
“태산 길드 송민철 실장입니다. 그때는 제가 한유정 씨 얼굴을 몰라서, 인사가 많이 늦었네요.”
한유정이 멀뚱멀뚱 건넨 명함을 쳐다봤다. 매니저가 어색하게 웃으며 말했다.
“그, 명함 좀 받아주시겠어요?”
“필요 없어요.”
“네?”
한유정이 거울 쪽으로 몸을 틀어버렸다. 그리고 헝클어진 머리를 다듬는다. 뻘쭘해진 매니저가 목덜미를 긁적였다.
“한유정 씨, 잠깐 대화 좀….”
“스카우트하려는 거 아니에요?”
한유정이 거울 속의 매니저를 흘려본다. 매니저가 고개를 끄덕였다.
“맞습니다. 지금 소속된 길드 없으시죠? 아직 심사 중이라는 인터뷰 봤습니다.”
매니저가 혀를 입술로 적셨다.
“단도직입적으로 말씀드리죠. 태산 길드로 오시면, 전폭적인 지원을 약속드리겠습니다. 이미 계약을 하셨다면 위약금 전부 내드리구요. 자세한 계약 사항은 팀장님과 먼저 말씀을 나눠봐야 하지만…….”
매니저가 주절주절 떠들었다.
아직 길드가 만들어지지도 않았댄다.
대형 길드와 저울대에 올리고 비교하면 어느 쪽으로 쏠릴지는 명확했다.
백이면 백, 태산 길드 쪽으로 넘어올 것이다.
하지만 한유정의 반응은 밋밋했다.
“관심 없어서.”
여러 군데 명함을 돌리고 스카우트도 해봐서 알고 있다.
한유정의 저 심드렁한 태도는, 계약에서 우선권을 잡기 위한 기 싸움이 아니라 정말 관심이 없는 것이었다.
“한유정 씨, 아까 같이 있던 매니저하고 많이 친해 보이시던데. 실력만 있다고 전부 되는 바닥이 아니에요. 이쪽이.”
나이가 어리면 간혹 그럴 때가 있다.
정 때문에 길드를 떠나지 못하고 버티는 경우가.
“처음 만나셨을 때 기억하시죠? 인터뷰 중에 나와달라는데 그쪽 매니저분이 한 마디도 못 하고 나가는 거.”
머리를 정리하던 한유정의 손이 멈췄다.
“이 바닥이 그래요. 매니저만 길드에 업혀서 호가호위 하는 게 아니에요. 더 좋은 던전, 더 좋은 공략 대원들, 더 좋은 언론 노출도. 지금 당장은 한유정 씨가 기록만으로 제2의 이지아다 뭐다 하지만요. 그거 아세요?”
매니저가 작게 속삭였다.
“제2의 이지아라는 타이틀이요. 매해, 매 시험마다 주목받는 유망주들한테 붙어요. 그중에 아직까지 타이틀 유지하는 사람이 있을 거 같아요? 없어요. 없으니까 한유정 씨한테 또 붙은 거지.”
매니저가 한유정의 손목으로 팔을 뻗었다.
“내가 장담하는데 당신 그쪽 길드에 계속 남아있으면 일 년도 안 지나서 우리 막내들하고 위치 뒤바뀌어. 그때 가서 후회하지 말고…….”
그가 한유정의 손에 명함을 쥐여주려는 순간이었다.
와락!
누군가 매니저의 팔목을 거칠게 잡아당겼다. 그의 시선이 손을 따라갔다. 한 손에 핸드폰을 쥔 김현우가, 험악한 얼굴로 노려보고 있었다.
“우리 애한테 지금 뭐 하는 짓이야?”
*
내 얼굴을 알아봤는지, 매니저가 짧게 혀를 찬다.
“비즈니스 이야기하고 있었습니다. 왜요?”
“비즈니스?”
매니저의 변명에 헛웃음이 나온다.
비즈니스를 무슨 시발, 타 길드 헌터하고 직접 이야기 하고 있어? 매니저도 건너뛰고?
비록 이쪽 업계에 뛰어든 지 1년도 되지 않은 신입이지만, 그게 얼마나 비정상적인지는 충분히 알고 있다.
“태산 길드 매니저셨죠?”
“예.”
“그쪽 동네는 다른 길드 헌터 빼가는 걸 비즈니스라 표현합니까? 담당 매니저가 두 눈 시퍼렇게 뜨고 있는데도?”
매니저가 턱을 쓰다듬으며 작게 중얼거린다.
“못할 건 또 뭐야?”
“뭐?”
“그래요. 업계 관행은 둘째치고 다른 길드 헌터 빼가는 거, 욕 처먹을 양아치 짓 맞습니다. 맞아요. 그런데 당신.”
내게 잡혔던 팔을 털어내며 말한다.
“그 길드가 없잖아. 그냥 매니저면서 무슨 헌터를 뺏긴다고 그렇게 엉겨 붙어? 애초에 당신께 아닌데, 이게 뺏는 거에요? 그냥 바닥에 떨어진 보석을 줍는 거지.”
이 개새끼가.
열이 뻗쳐 멱살을 잡으려는데, 한유정이 앞을 가로막고 섰다.
“아저씨, 지금 강당에서 팀 배치한대요.”
흥분으로 들뜬 숨을 가라앉혔다. 좁아진 시야가 돌아오며 안내방송이 들렸다.
[다시 한번 공지해드립니다. 20분 뒤 강당에서 팀 배치를 시작하겠습니다. 수험생분은 모두 지정된 자리로 와주시길 바랍니다]
옷매무시를 가다듬으며 표정 관리를 했다.
“다음부터는 주의해주세요. 유정이하고 이야기할 거 있으면, 매니저인 저 통해주시고.”
“예, 뭐….”
동태 눈깔 뜬 거 보니까 귓등으로 듣는 게 확실하다. 한유정의 팔을 잡아끌고 밖으로 나갔다.
마치 바닥에 떨어진 지폐처럼 바라보는 매니저들의 시선이 역겨워서.
목구멍에 턱 막힌 고구마를 꾹꾹 눌러 삼키며 말했다.
“들어가기 전에 음료라도 마실까? 복도에 자판기 있더라.”
“저는 콜라요.”
“그래, 배는 안 고파?”
고갤 돌려 한유정을 쳐다봤다. 그리고 당황해서 발걸음을 멈춰 세웠다.
“아침 먹어서 괜찮아요. 음료만 마실래요.”
“유정아.”
“네.”
내가 의아스레 물었다.
“너 왜 웃냐?”
“네?”
한유정이 자유로운 한쪽 손을 들어 볼을 만졌다. 흐물흐물 녹아내린 입가를 눈치챘는지 당황한다. 그리고 표정은 다시 빠르게 변했다. 웃음기가 싹 가신 무뚝뚝한 목소리로 말한다.
“안 웃었는데요.”
“웃었어.”
“아닌데.”
“내가 봤다니까?”
“아저씨가 잘못 본 건데.”
“너 설마 내가 당하는 게 기뻤던…….”
“아니요!”
한유정이 다급히 소리쳤다.
“절대 그런 거 아니에요!”
다행이네. 방금 살짝, 아니, 엄청 많이 섭섭할뻔했거든.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