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S급들이 내게 집착한다-33화 (33/112)

〈 33화 〉 김현우 (3)

* * *

“혹시, 인터뷰할 유망주 필요하세요?”

“맞는데, 누구세요?”

“매니저 김현웁니다.”

“매니저?”

힐끔, 한유정의 얼굴을 살핀 조 기자가 말한다.

“제가 아이돌은 잘 몰라서….”

“헌터 쪽 맞아요.”

“어디 길드신데요?”

조 기자의 눈동자에 기대감이 차오른다.

그 기대감은, 내 대답과 함께 빠르게 식었다.

“길드는 아직 없습니다. 심사 중이라.”

“아, 그러세요.”

영 시원찮은 대답이다.

“아까 들었는데, 유망주 인터뷰 필요하시다면서요?”

“네네, 필요하죠.”

조 기자가 머리를 거칠게 긁적인다.

“태산 길드 유망주들하고 인터뷰 하기로 했는데, 교통사고 났다고 갑자기 펑크가 나버려서요.”

“어? 이상하다. 제가 방금 대진 일보 쪽에서 인터뷰하다가 나왔는데.”

“네?”

“저 다음이 그분들 순서였거든요.”

“언제였는데요?!”

시계를 확인했다. 4시 10분이다.

“대충 10분, 15분 정도 됐나.”

조 기자의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오른다.

“이, 이, 시발! 상도덕 없는 새끼들! 개좆같은 새끼들!”

다급히 한유정의 귀를 손으로 포갰다.

“아저씨.”

“응?”

“막아도 다 들려요.”

“그래?”

뻘쭘하게 손을 내렸다.

조 기자의 욕은 한참 뒤에야 끝났다.

빈곤한 어휘였지만, 그만큼 화가 났다는 건 알겠다.

“크흠, 죄송합니다. 4명 전부 잡지에 실을 예정이어서. 지금 빈 자리 찾는 게 엄청 곤란해졌거든요.”

“4명 전부요?”

맙소사.

사람이 잘되려니까 돌부리에 걸려 넘어져도 금덩이를 줍나 보다.

“그럼요, 기자님. 만약인데.”

“네.”

“혹시, 다른 유망주가 인터뷰 가능하다고 하면.”

슬그머니 올라가는 입꼬리를 매만지며 물었다.

“4명분의 지면을 전부 할애해주는 건가요?”

조 기자가 얼굴을 쓸어내리며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럼요. 지금 당장 어디 가서 다른 세 명을 구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진짜 이쪽에서 바짓가랑이라도 붙잡고 부탁하고 싶어요.”

“찢어지니까 바짓가랑이는 잡을 필요 없고. 우리 유정이 인터뷰 기사나 잘 내줘요. 좋게좋게.”

“…네? 뭐라고요?”

네 명분의 분량을 한 명으로 메꿔야 한단다.

이번 호 특집이 헌터 시험인 걸 생각하면, 사실상 한유정을 메인으로 책 한 권이 나오는 거다.

내가 밝게 웃으며 한유정을 소개했다.

“한유정이요. 이름은 아시죠?”

“알죠. 모를 수가 없죠. 혹시 그쪽 분이…?”

조 기자가 멍하니 한유정을 쳐다본다.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기자님이 아시는 한유정 맞아요. 인터뷰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아까 말씀드린 대로 4명분 지면 다 할당해주셔야 해요.”

“아….”

“아?”

“아아! 으아아!”

조 기자가 괴성을 내지르며 내 바짓가랑이를 붙잡았다. 그가 울먹이며 외쳤다.

“살려주셔서 감사합니다! 하나님! 부처님! 매니저님!”

그쪽 라인하고 나란히 서는 건 많이 낯간지러운데.

멋쩍게 웃으며 조 기자를 일으켜 세웠다.

*

인터뷰는 편안한 분위기에서 진행됐다.

대진 일보 기자처럼 불편한 질문은 없었다.

오히려 이쪽 눈치 보기 급급했다.

“피곤하시면 조금 쉬었다가 할까요?”

“아뇨, 바쁘실 텐데 계속 진행하시죠.”

한유정이 내 소매를 잡아당겼다.

“아저씨, 배 안 고프세요?”

“밥은 인터뷰 끝나고 먹자.”

“벌써 다섯 신데.”

우리의 대화를 들은 조 기자가 문을 박차고 나가 소리쳤다.

“과자가 이게 뭐야? 비었잖아! ”

“아니, 미리 말씀해주시던가.”

“잔소리 말고 빨리 가져오기나 해, 인마! 이번 호 망하면 네가 책임질 거야?”

그 정도는 아닌데.

비어있던 접시에 양과자가 차곡차곡 이쁘게 담긴다.

하나 집어 입에 넣었다.

맛있네, 이거. 달달해서 한유정이 딱 좋아할 거 같다.

옆을 보니 역시, 만족스러운 얼굴로 과자를 오물거리고 있다.

인터뷰는 한 시간 정도 더 이어졌다. 끝나고 촬영 스튜디오로 향했다. 잡지사라 이쪽이 오히려 메인이라나.

찰칵찰칵!

“한유정 씨! 포즈 취해주세요! 아무거나!”

한유정이 사진 기사의 말에 따라 포즈를 취한다. 눈 뜨고 못 볼 지경이다. 경직된 팔을 뻣뻣하게 휘젓고 있다.

“쓰읍.”

마음에 들지 않는지 사진 기사가 머리를 긁적인다. 슬그머니 팔짱을 끼며 변명했다.

“유정이가 스튜디오 촬영을 처음 해봐서, 익숙하지 않아서 그래요.”

“아, 매니저님. 그게 아니구요.”

사진 기사가 찍은 사진들을 되돌려본다.

“뭔가, 옷이 붕 뜨는 거 같아서요.”

“붕 뜬다구요?”

“네. 따로 전문 코디 없이 옷을 입혀놓은 거 같은, 그런 느낌이라.”

이 양반 족집게네.

인터뷰 가기 전, 그래도 때깔 좋은 거로 백화점에서 한 벌 골라준 건데. 전문가 눈으로 보기에는 다른가 보구나.

근데, 뭐가 이상한 거지?

휴식 중인 한유정을 쳐다봤다.

“…….”

모르겠다.

콩깍지에 씐 건지 그냥 귀엽고 예쁘게만 보인다.

조 기자가 끼어들었다.

“형, 사진 못 쓸 정도야?”

“아니. 원판이 워낙 훌륭해서 그런 건 아닌데. 그냥, 아쉽다 이거지. 이거 인터뷰 매니저님이 도와준 거라면서?”

“아니야, 현우 씨는 날 도와준 게 아니야.”

조 기자가 심각한 얼굴로 말했다.

“지하 구렁텅이에 빠질뻔한 우리 잡지사를 구원해준 거지. 이번 호 특집에 메인 4명이 빵꾸났었거든.”

“그러니까, 대충 찍기 싫어서. 모델도 좋으니까 자꾸 욕심이 생기네.”

고민하던 사진 기사가 시계를 확인했다. 그가 물었다.

“매니저님, 많이 바쁘세요?”

“이 뒤로는 스케줄 없어요.”

“스튜디오라 의상은 많거든요. 몇 벌 갈아입고 찍었으면 하는데. 어떠세요?”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더 좋은 결과물을 만들어주고 싶다는데 두 팔 벌려 환영해야지.

무려 첫 기사다.

평생토록 기억에 남을 게 분명한데 적당히 하고 싶진 않다.

무슨 옷을 입힐까, 남자 세 명이 이마를 맞대고 고민했다.

“유정이를 처음 딱 봤을 때 어떤 이미지가 떠올랐어요?”

내 질문에 막힘없는 대답이 돌아온다.

“젊으니까 싱그럽고 활력 넘치죠.”

“무뚝뚝해서 숫기 없어 보이고.”

“가녀려 보여서 뭔가 지켜주고 싶고.”

“보호 본능을 자극하는?”

사진기사가 불쑥 묻는다.

“한유정 씨가 몇 살이죠? 성인은 아니죠?”

“이제 17살이요.”

“17살이면 고등학교 2학년인가?”

“1학년이죠.”

“흠.”

조 기자와 사진 기사, 두 남자의 시선이 교차한다.

“교복 어때?”

“딱이네. 나이도 맞고, 젊은 천재 이미지에도 수월하게 매칭되고.”

시선이 내게로 쏠린다.

어때요? 라고 묻는 그들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교복, 저도 그게 좋을 거 같습니다.”

“아, 아저씨!”

멀리서 한유정이 다급한 목소리로 날 부른다.

안 들린 척 무시했다.

솔직히 말하면 나도 한번 보고 싶었다.

유정이가 교복 입은 모습.

*

한유정이 스튜디오 문틈 사이로 고개를 빼꼼 내민다. 볼이 불그스름하다. 머뭇거리며 안 들어오길래 물었다.

“뭐해?”

“이, 일단 입긴 했는데요.”

“그런데?”

“아무래도 이건 아닌 거 같아요. 가, 갈아입고 올게요!”

“야야, 뭘 또 갈아입어? 사진 기사님 기다리잖아! 돌아와!”

한유정이 바로 내뺀다.

워낙 발이 빨라서 도망가면 내가 못 따라가는데.

저걸 어떻게 잡지?

주위를 둘러보다가 옆에 있던 의자를 발로 밀어 엎어트렸다.

콰당탕!

그리고 나도 바닥에 쓰러지며 비명을 질렀다.

“아악! 내 발!”

“아저씨! 괜찮으세요? 많이 다쳤어요?”

한유정의 다급한 목소리가 바로 뒤에서 들린다. 지르던 비명을 멈추고 똑바로 섰다.

“왔어?”

한유정이 멍하니 날 쳐다본다. 그리고 앞뒤 상황을 파악했는지, 충격받은 얼굴로 내게 손가락질한다.

“아저씨가, 날 속였어…!”

“내가 널 잡을 방법이 없어서 그래. 미안해.”

웃으며 한유정을 살폈다.

검은색 H 스커트에 흰색 블라우스. 그리고 똑딱이 넥타이도 단정하게 잘 착용했다.

그런데 본인은 많이 어색한가 보다. 쭈뼛대며 치마를 잡고 자꾸만 꼼지락거리는데, 내 눈에는 그 모습이 잘만 어울려 보였다.

“기사님, 유정이 어때요? 옷빨 이 정도면.”

그랬더니 엄지손가락을 척 치켜세우며 웃는다.

“이번 호 나오면 인기 폭발하겠는데요?”

“그쵸?”

*

사진 촬영이 끝나고 주차장으로 향했다. 조 기자가 우릴 마중하겠다며 따라 나왔다. 괜찮다고 했지만, 통 들어먹질 않는다. 고맙다는 말에 이 정도로 진심이 느껴지는 건 정말 오랜만이다.

“기자님은 퇴근 안 하세요?”

“다음 주 화요일에 출간이거든요.”

“이틀이나 남았잖아요?”

“주간지잖아요. 고작 이틀밖에 남지 않은 거죠.”

조 기자가 영혼을 탈곡기에 돌린 것처럼 메마르게 웃는다. 우리의 잡담은 자연히 뒷담으로 이어졌다.

“태산 길드 놈들, 지들 대형 길드라고 이렇게 무시하는 거 보면 열 받아 죽겠어요.”

“더 헌트 정도면 충분히 영향력 있는 잡지사잖아요. 보통은 미디어 매체 쪽 눈치 많이 보지 않아요?”

더 헌트는 헌터 관련 잡지 중에서도 제일 인지도가 높았다. 물론 3대 신문사만큼은 아니지만, 그래도 그렇지 펑크까지 내면서 낼름 다른 인터뷰를 하러 가?

지금도 살벌하게 욕하는 조 기자를 보고 있으면, 나는 절대 그렇게 못 할 거 같은데.

“매일 한 부씩 출간되는 신문사만큼 대중 영향력이 크지 않거든요. 신문과 다르게 가격도 많이 나가서 구독자 수가 비교하기 민망할 정도로 적고. 심지어 회사 규모도 태산 길드 쪽이 훨씬 크니까…. 나중에 제 눈치는 조금 보겠지만, 이렇게 당해도 죽자고 따질 수는 없어요.”

그러면서 한마디 덧붙인다.

“특종이라도 잡아서 빵 터트리는 거 아니면요.”

“특종이요?”

“네. 명백히 그쪽이 잘못한 거 있잖아요? 갑질 논란, 섹스 스캔들, 불법 로비… 그 정도로 큰 사건 한 번 터트리면, 온갖 언론사들이 다 같이 물어뜯거든요.”

불법 로비라.

“이걸 누구한테 주나 했는데. 그거 마음에 드네요.”

“네?”

덜컹!

운전석에 앉아 시동을 걸었다. 블랙박스에 불이 들어왔다.

“현우 씨, 어디 차 긁혔어요?”

“잠깐만요.”

딸칵, 딸칵!

블랙박스에 USB를 꽂고 패드를 조작했다. 동영상 목록이 떴다. 13시~14시에 녹화된 영상을 12배속으로 재생했다.

한참 집중하고 있는데 조 기자가 차 문을 노크한다.

“아까 말씀드린 거처럼 제가 좀 바빠서, 정말 죄송한데 들어갈…….”

“진짜요? 지금 돌아가시면 평생을 후회할 텐데.”

“네? 아니, 이게 그렇게 섭섭할 일입니까?”

“아뇨, 그게 아니고.”

블랙박스를 기자에게 내밀었다.

그 안에는, 골목길에서 매니저와 유망주들이 떠벌리던 이야기가 선명하게 들어가 있었다.

“이거 때문에요.”

­대형 길드들은 벌써 로비 들어갔어. 로비 못하면 족쇄 차고 싸우는 거고, 시작도 전부터 끝난 거지 뭐.

­걱정할걸 해라. 우리가 어떤 길드인데. 이미 판 다 짜놨지. 돈만 먹이면 되니까, 너넨 그냥 떠먹여주는 거 받아먹기만 해.

전부 들은 조 기자가 얼빠진 소리를 냈다.

“어…?”

*

조 기자가 나를 와락 끌어안았다.

“현우 씨! 매니저님! 아니, 형님!!”

“저보다 나이가 열 살은 더 많아 보이시는데 형님은 무슨…….”

“이렇게 1등짜리 당첨 로또만 가져오는데 제가 뭐라 부르겠습니까! 예? 형님!”

조 기자는 넘겨준 USB를 주머니에 찔러넣었다. 블랙박스의 복사본이 담겨 있는 화약고였다.

“이, 이, 개자식! 이를 갈았는데 하늘이 날 돕는구나!”

어째 특종보다는, 잿밥에 관심이 더 많은 거 같다.

정신을 차린 조 기자가 내게 물었다.

“현우 씨, 이걸 저한테 주신 건 원하는 게 있어서죠?”

흥분으로 들뜬 와중에도 눈동자는 침착하게 가라앉아 있다. 솔직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와는 좋은 친구가 될 거 같아서.

“네, 서로 상부상조할까 해서요.”

“상부상조요.”

“기자님이야 특종 잡은 거고. 저는 기자님한테 은혜를 하나 입힌 거고.”

“하나요?”

조 기자가 손가락 두 개를 쫙 핀다.

“인터뷰 건까지 두 개죠. 언제든지 필요하면 말씀하세요. 잠입 취재, 파파라치, 사내 비밀 정보 공유까지 전부 해드릴 테니까.”

기대하던 결과고, 만족스러운 대답이다.

“그런데 기자님, 그거 하나로 터트리는 건 힘들 거예요.”

증거가 너무 빈약하다.

일개 매니저가 사석에서 대충 내뱉은 말.

그것도 제3자가 녹화했다.

법적 증거로도, 언론을 불태울 장작이 되는 것도 불가능하다.

“이 바닥에서 몇 년인데, 당연히 알죠. 그래도 취재 단서를 잡은 거니까요. 당분간 파파라치 짓 한다고 고생 꽤나 하겠지만 작업대는 금방 준비될 겁니다.”

악수를 나누고 운전석에 앉았다. 한유정에게 안전벨트를 채워주는데 문득 조 기자가 묻는다.

“아, 현우 씨. 가기 전에 하나만 물을게요. 이 건은 언제쯤 터트릴 생각이세요? 거기 맞춰서 취재 방식도 달라질 예정이라.”

2차 테스트는 팀전이다.

랜덤으로 4명이 한팀에 배정받으며, 사방에서 몰려드는 몬스터 웨이브를 막아내야 한다.

쉽게 말하면 디펜스 게임 같은 거다. 몬스터를 중앙에 적게 통과시킬수록 고득점인.

개인이 아무리 강하더라도, 물리적으로 가능한 게 있고 불가능한 게 있다.

한손으로 열손은 감당할 수 있지만.

한 명이 열 명과 동시에 팔씨름을 하는 건 불가능하다.

한유정을 제외한 3명이 모두 낙제점이라면, 그 피해는 온전히 한유정이 받는다.

운이 어느정도 작용하는 스테이지다.

그리고 대형 길드들은 로비로 운을 구매했다. 본인들은 강하거나 상성이 좋은 유망주들로 팀을 이룰 게 분명하다.

반대로 로비하지 못한 경쟁 상대에게는 족쇄에 가까운 멤버들만 주겠지.

그래야 밀어주는 유망주가 더 위로 올라갈 테니까.

여기서 한유정에게 문제가 생겼다.

적들은 이미 우리가 이길 수 없는 판을 짜놨다.

이 난관을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여러 가지 방법이 머릿속에서 떠올랐다가 사라졌다.

그리고 나는 최선의 해결책에 도달했다.

“2차 테스트가 시작하기 전.”

이미 짜여진 판이 문제라면,

그들이 짜놓은 판을 엎어버리겠다.

“그때가 좋겠네요.”

완전히 망해버리도록.

* *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