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5화 〉 한유정 (4)
* * *
한유정이 헌터를 하겠다고 선언했다.
케이크를 바리바리 싸 들고 뜯어 말려봤지만 고집불통이었다.
한예림이야 좋아죽으려 하고.
그녀가 자꾸만 말아 올라가는 입꼬리를 꾹꾹 누르며 말했다.
“한달 뒤에 헌터 자격증 시험 있으니까 때마침 잘됐네. 현우가 유정이 데리고 각성자 등록하고 와.”
이미 한유정은 천살성으로 능력을 판정받았었지만 협회의 데이터베이스에는 기록이 남아있지 않았다.
협회장이 암살자로 써먹기 위해 기록을 전부 삭제한 것이다. 덕분에 한유정이 새출발하기에는 용이해졌지만 목적을 생각해보면 썩 달갑지만은 않았다. 협회장 십새끼.
한유정과 함께 각성자 등록 센터로 향했다. 혹시라도 접수원이 그녀의 얼굴을 기억하지 않을까 싶어 지방까지 차를 몰고 내려왔다.
문 앞에 선 내가 작게 심호흡을 했다. 이거 긴장되네. 손에 쥔 목걸이가 햇빛을 받아 번쩍인다. 이지아에게 빌려온 아티팩트였다.
“유정아, 먼저 착용하고 들어가자.”
한유정이 얌전히 목덜미를 내밀었다. 삐끗, 바늘에 실 넣는 것처럼 자꾸만 걸쇠가 빗나간다. 잘 잠기지 않는다. 한유정이 지루한 목소리로 칭얼거린다.
“아저씨, 멀었어요?”
“이거 왜 이렇게 잘 안돼? 비싼 게 꼭 좋은 건 아니네. 잠깐 기다려봐.”
목걸이는 이지아가 평소 착용하던 아티팩트였다. 간파 능력은 제법 흔한 편이다. 당장에 각성자 등록 센터에서 점검하는 것도 간파 각성자들이 하는 거고. 스카우터들의 경우에는 필수로 가지고 있으니까.
그래서 어느 정도 경력이 찬 헌터들은 인식 방해 아티팩트를 하나씩 준비하는 편이다. 본인의 세세한 능력이 드러나는 것을 숨기기 위함이다.
이지아의 아티팩트는 간파 종류의 능력들을 차단해주고 잘못된 정보를 알려준다.
딸칵!
5분간의 씨름 끝에 목걸이의 걸쇠가 겨우 들어갔다. 이지아는 안 보고도 차분하게 끼고 빼던데. 그거 대단한 거였구나.
한유정을 데리고 건물에 들어갔다. 접수원이 밝은 목소리로 묻는다.
“센터에 방문하신 걸 환영합니다!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각성자 등록하려고 왔는데요.”
“선생님이 등록하시는 건가요?”
“아뇨, 얘요.”
한유정을 접수원 앞으로 내밀었다. 접수원이 친절한 영업용 미소를 짓는다.
“성함이 어떻게 되세요?”
“한유정이요.”
“생년월일 불러주시겠어요?”
접수원이 신원 조회를 한다.
“넵! 한유정 님, 이쪽으로 따라오시겠어요?”
접수원이 한유정을 데리고 위층으로 올라갔다.
기다리는 동안 팔짱을 끼고 초조하게 센터 로비를 이리저리 서성거렸다. 턱을 괴고 고민에 빠졌다.
설마 갑자기 상주 중인 헌터들이 칼 빼들고 들이닥치는 건 아니겠지?
왜, 영화 같은 거 보면 그런 거 있잖아. 정말 우연에 우연이 겹쳐서 각성 검사 때 목걸이가 벗겨지고 천살성이…….
뭐가 그렇게 부정적이야? 천살성 보유자들이 어떤 취급을 받는지 뉴스를 통해 봐서 계속 걱정된다. 적당히 하자. 그런데 자꾸 걱정되네. 어떡하지?
터벅터벅.
계단에서 인기척이 느껴진다.
“유정아, 검사 잘 받았어?”
“네.”
“목걸이 안 벗겨졌지? 목줄 좀 헐어 보이던데.”
한유정이 대답 대신에 머리카락을 틀어 올린다. 목줄이 튼튼하게 고정돼있다. 다가온 안내원이 웃음기 섞인 목소리로 말한다.
“뭐, 천살성 같은 부정적인 능력 아니면 걱정하실 필요 전혀 없어요. 해가 되는 것도 아니니까요.”
천살성이란 말에 나와 한유정의 어깨가 움찔 떨렸다. 검사 결과는 걱정이 무색하게 싱거웠다.
“한유정 님의 능력은 신체 강화 능력입니다. 단순한 만큼 실생활에서 가장 유용하죠. 각성 축하드려요.”
데이터베이스에 한유정의 기록이 새롭게 갱신된다.
천살성이 아닌, 신체 강화 능력자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센터를 나왔다.
햇빛이 쨍쨍하다. 한유정과 시선이 마주쳤다.
“……아이스크림 먹을까?”
한유정이 눈을 빛내며 고개를 마구 끄덕인다. 편의점에서 아이스크림을 하나씩 챙겨 나왔다.
가로수 길.
커다란 나무 옆에 벤치 하나가 덩그러니 놓여 있다. 한유정이 그늘 밑에 앉아 아이크림을 입에 물었다. 나도 옆에 앉았다.
아직 환절기라 뜨거운 햇빛과 다르게 바람은 선선하다. 멍하니 지나가는 사람들을 구경하던 내가 힐끔 한유정의 눈치를 살폈다. 아이스크림 먹는데 정신 팔려 있었다.
헛기침하며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유정아.”
“네?”
한유정의 인생은 기구했다.
평범한 16살 소녀가 1년 만에 S급 각성자가 됐다. 아무리 천살성이라도 너무나도 가파른 성장세였다. 1년간의 암살이 얼마나 지독했을지, 솔직히 상상도 가지 않는다.
그래서, 웬만하면 헌터가 되는 걸 말리고 싶었다. 가끔 내 호위나 하면서 용돈 벌이하고.
그냥, 어린아이가 칼 들고 피 묻히면서 싸운다는 게 썩 내키지 않았다.
그래서 눈길이 자꾸만 간다. 게임하길 좋아하던 한유정이 헌터가 되기로 한 게 혹시 내 탓이 아닐까 싶어서.
“너가 헌터가 되면 앞으로 사는 세상이 많이 달라질 거야.”
한유정은 유망주로 빠르게 이름을 알릴 거다. 순식간에 치고 올라가서 유명 헌터가 되겠지. 대한민국의 역대급 유망주였고, 지금은 최고의 헌터인 이지아처럼 말이다.
하지만 이지아는…… 버티지 못하고 무너졌다. 어쩌면 한유정도 그렇게 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먼저 들었다.
한유정이 당차게 대답한다.
“전 악플이나 여론 신경 안 써요.”
“그건 겪기 전까지는 모르는 일이야.”
“……게임하면 맨날 욕 하는 거 듣는데.”
“그거하고 이거하고 같냐?”
어이가 없어 웃는데 한유정이 토라진 얼굴로 아이스크림을 베어 문다.
“아닌데. 같은데.”
아삭아삭. 다 먹은 한유정이 아쉬운 표정으로 막대기를 입에 물고 쪽쪽 빤다.
“부족하면 이거 먹을래?”
고갤 홱 돌린 한유정이 아쉬운 얼굴로 입술을 꾹 깨문다. 먹고 싶은가 보네. 표정만 봐도 눈에 훤하다. 하지만 속마음과 다른 말을 내게 내뱉는다.
“아저씨 먹을 거 없잖아요.”
“쌍쌍바거든.”
봉투를 뜯어 내용물을 꺼냈다. 막대기 두 개가 꽂힌 아이스크림이다. 막대기를 잡고 온 신경을 집중한다.
어릴 때 내가 또 이거 기술자였지.
탁!
이런.
각성하니까 옛날처럼 힘 조절이 세밀하게 안 되네.
“…….”
내가 ‘ㄱ’자 모양의 큰 부분을 한유정에게 건넸다. 고민하던 한유정이 꾸벅 고개를 숙이며 받는다. 그녀의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걸린다.
“……유정아.”
“네?”
“아까 말한 거처럼 헌터를 하다 보면 많이 힘들 수 있어. 일이 너가 생각한 거 하고 달라서 고될 수도 있고. 유망주가 악플이나 기대감에 무너지는 건 어느 업계에서나 흔한 일이거든."
"......."
“너무 힘들면…… 그럼, 중간에 포기해도 괜찮아. 언제든지 편하게 말해줘.”
“…….”
“그런 거로 너한테 절대 실망하지 않을 거야. 약속할게.”
어째 대답이 없다.
나도 괜히 멋쩍어져 애꿏은 바닥만 쳐다봤다.
한참 뒤에서야 소녀가 겨우 내게 대답해준다. 촉촉한 목소리로.
“……네.”
아삭. 한유정이 아이스크림을 깨물었다.
* * *
시간이 흘러 헌터 자격시험 당일날이 되었다.
스물여섯의 매니저라고 무시 받지 않게 일부러 나이 들어 보이게 꾸몄다. 도수 없는 안경도 코에 걸치고 머리도 쫙 넘겨서 왁스로 단단하게 고정하고.
이 정도면 괜찮네. 20대 후반처럼 보인다. 눈썰미가 안 좋은 사람이라면 분위기만으로 30대까지 착각해줄 거 같다.
똑똑. 한유정의 방문을 두드렸다. 반응이 없다. 아직도 자고 있어?
“한유정, 너…… 들어간다.”
한숨을 내쉬며 문을 벌컥 열고 들어갔다. 한유정이베개를 꽉 끌어안고 새우처럼 몸을 웅크리고 있었다. 불을 켜며 그녀를 깨웠다.
“유정아. 일어나야지.”
“조금만 더 잘래요…….”
“야, 시간 없어. 이제 일어나. 졸다가 시간 놓치면 그거만큼 웃긴 거도 없다.”
자리에 앉은 한유정이 고개를 꾸벅꾸벅 떨어트린다. 얘 정신 못 차리네. 전에도 그렇더니 아침잠이 뭐가 이리 많아?
깰 때까지 기다릴 시간이 없어 안아 들고 화장실로 향했다.
거울 앞의 한유정이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처럼 휘청인다. 어깨를 콱 붙들어 잡고 자리에 고정했다. 칫솔에 치약을 짜며 말했다.
“유정아, 아 해. 아.”
“아.”
한유정이 입을 살짝 벌린다. 재빨리 칫솔을 입에 넣어줬다. 비몽사몽간에 한유정이 게슴츠레 눈을 뜨고 양치질한다.
스윽, 슥.
그사이에 나는 빗질을 하며 엉킨 머리를 풀어줬다. 엉성하게 손질을 해주는데 거울을 통해 이지아가 날 쳐다보고 있었다.
“현우 씨. 저도 준비 다 끝났…….”
“야, 김현우! 이지아 어딨어?”
한껏 치장한 한예림이 문을 밀치고 들어왔다.
와글와글.
좁은 화장실에 네 명이나 들어가 있으니까 많이 부대낀다. 내가 둘의 등을 밀며 화장실 밖으로 내쫓았다.
“좀, 둘 다 나가요! 한예림, 너 오늘 길드 설립 때문에 협회 가야 한다며?”
“응. 그래서 온 거잖아.”
“왜?”
“이지아 헌터 데려가려고.”
한예림이 나하고 이마를 맞대었다. 그녀가 이지아의 팔목을 콱 틀어쥐었다.
“됐다. 가죠.”
“네? 제가 왜요? 길드 만드는 건 예림 씨 혼자 가도 문제없잖아요.”
한예림이 인상을 찌푸린다.
“헌터 자격시험에 이지아 헌터가 가겠다구요? 시험장 팬 사인회로 만들 일 있어요?”
이지아가 미련이 남은 눈으로 날 쳐다본다. 그런데, 한예림의 말이 맞았다. 유망주들 사이에 이지아가 오면…… 난리 나겠지. 굳이 데리고 갈 필요는 없었다.
결국 이지아는 한예림에게 끌려갔다. 이제 좀 조용해졌다. 어느새 세수까지 마친 한유정이 수건으로 얼굴을 문지르고 있었다.
“……어째 조용할 날이 없네. 다들 너 반만 닮았으면 좋겠다.”
내 투정에 한유정이 어색하게 웃는다.
* * *
헌터는 인류 최전선의 방패.
아무리 능력이 있더라도 준비되지 않는 자를 몬스터 아가리 속으로 떠밀지는 않는다.
위압감에 위축돼 제 능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건 제법 흔한 이야기다.
강한 능력만큼이나 동반되는 필수 자격은 지식과 의지.
그렇기에, 국가에서는 반년에 한 번 헌터 자격증을 발급해주는 시험을 진행한다.
자격증은 헌터 활동을 위한 최저한의 자격 요건이다.
긴장감에 물을 벌컥벌컥 들이켰다. 손등으로 입가를 닦으며 감탄했다.
“바글바글하네.”
여기에 있는 검은 머리들이 전부 헌터 지망생이고. 저기 있는 단정한 양복쟁이들은 스카우터들이다. 검은 머리와 양복쟁이가 함께 있는 건 유망주와 매니저겠지.
길드에서 이미 침 발라놓은 미래가 창창한 헌터 지망생들. 긴장한 수험생들과 다르게 얼굴 때깔부터 다르다.
자신감이 덕지덕지 붙은 게, 내 인생의 주인공은 나요! 외치는 것만 같다.
젠장, 부럽다.
다시 물을 벌컥 들이켰다.
이번엔 긴장된 게 아니라 속이 쓰려서.
“유정아.”
“네?”
벤치에 앉아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던 한유정이 고개를 번쩍 든다.
“잠깐 여깄을래?”
“어디 가세요?”
“편의점 들려서 먹을 거 좀 사올게.”
*
군것질거리들을 골랐다.
봉투에 이것저것 쑤셔 넣는데, 커피 한 잔씩 손에 든 양복쟁이들의 대화가 들린다.
“저번에 내가 찜 해놓은 유망주 기억해? 하루종일 자랑했었잖아. 이거 무조건 될 새끼라고.”
“배승현?”
“어.”
“걔가 왜?”
“시발, 다른 길드에서 낚아채 가더라.”
남자가 속 탄 가슴을 진정시키려는지 얼음을 와작와작 씹는다.
“상도덕 없긴. 그걸 안 따졌어?”
“어떻게 따지냐? 상대가 대형 길드인데. 뺏긴 나만 병신이지.”
“아.”
“중소 길드는 뒤지란 건지. 인재들 대형 길드에서 다 빼가면 우린 뭐 하란 거야? 이러니까 길드 간에 격차만 더 벌어지잖아.”
남자의 대형 길드 욕은 내가 편의점을 떠날 때까지 계속됐다.
중소 길드의 현실을 들은 나도 괜히 심장이 쿡쿡 찔린다.
앞으로 내가 겪게 될 이야기들이었으니까.
나도 반년 뒤에는 저 남자처럼 불평불만하고 있겠지?
속이 쓰려온다.
아침부터 괜한 이야길 들어서.
어우, 벌써부터 나중 걱정은 하지 말자. 미리 걱정한다고 해결되는 것도 아니니까.
빵빵한 봉투를 양손에 들고 한유정을 찾았다. 고개를 두리번거리는데, 웬 소녀와 멀끔한 양복쟁이가 한유정에게 말을 걸고 있었다.
방금 편의점에서 남자들이 나누던 대화가 퍼뜩 떠오른다.
미리 점 찍어놓은 유망주를 대형 길드에서 빼간다는…….
“유, 유정아!”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