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4화 〉 한유정 (3)
* * *
이지아의 저택 지하실에는 훈련장이 있다.
S급 헌터인 이지아가 본인의 훈련을위해 설치한만큼, 훈련도구들은 하나같이 대단한 것들 뿐이었다.
막상 이지아는 마음의 평화 훈련때 외에는 잘 안 내려오지만.
덕분에 최첨단 훈련장은 나 혼자 전세낸 상황이었다.
헌터를 포기하고 매니저로 노선을 틀었지만, 1년간의 습관은 그대로다.
미련이라기 보다는 굼벵이마냥 나아지는 기록에서 의미를 찾는 것이다. 모처럼 건강 관리도 하고.
오늘도 한 바탕 뛰었더니 입술이 바싹바싹 마른다. 생수병의 뚜겅을 열어 목구멍에 쏟아부었다. 남은 건 대충 머리에다가 뿌리고. 청량감이 밀려오며 다리에 힘이 쭉 빠진다.
힘들어 죽겠네, 진짜.
젖은 티셔츠를 벗고 물기를 쫙쫙 짜내고 있는데 입구에서 인기척이 느껴진다.
“지아 씨?”
“나. 넌 뭐만하면 이지아니?”
“지아 씨네 집에서 지아 씨 찾는게 왜.”
“말을 말자.”
한예림이다.
이지아인줄 알고 옷을 입으려다가 편하게 자리에 앉았다.
한예림이 훈련장을 두리번 거리며 다가온다. 훈련 기구들에 정신 팔린 모습이다.
“여기 개인 훈련장 맞아? 어지간한 길드에서도 이정도까지는 안해놓는데. 무슨 가정집에 수억짜리 훈련 장비가 득실득실하게 있어?”
“S급 헌터잖아.”
대체 땀을 얼마나 흘린거야? 아직도 물이 후두둑 떨어진다. 팔에 힘을 줘 옷을 비틀었다. 찢어지지않게 조심해야지.
“야, 내가 길드에서 얼굴 마주친 S급 헌터가 몇명인데. S급 헌터라고 다 이렇게 구비해놓는줄 알아? 보나마나 길드 훈련장에서 사람들하고 부대끼기 싫어서 그런걸걸? 누가 집순이 아니랄까봐.”
한예림이 바닥에 나뒹구는 무게 조절 아령을 툭툭 건드렸다. 그녀가 감탄사를 터트렸다.
“이거 R&G사 제품이잖아? 최대 무게가 톤단위로 늘어나는건데.”
“방금 써봤는데 좋더라.”
“몇키로까지 들었는데?”
“5세트 기준 150KG.”
“진짜? 그동안 놀지는 않고 있었구나?”
서글서글하게 웃으며 다가오던 한예림의 발걸음이 우뚝 멈춰섰다. 내가 의아하게 쳐다봤다.
“왜 말을 하다 말아?”
“어, 응?”
시선을 마주친 한예림이 답지않게 말을 더듬는다. 셔츠를 어깨에 걸치며 한예림에게 다가갔다. 얼굴이 지척까지 가까워진다.
“갑자기 말을 하다 마냐고.”
한예림이 눈동자를 잘게 떨며 입을 벙긋거린다. 얼빠진 얼굴을 하던 그녀가 손등으로 입을 가리며 눈길을 슬그머니 피했다.
“…운동 열심히 했구나?”
“1년동안 죽을둥 살둥했지. 나 옛날에 권투배웠던거 기억해?”
“관장이 세 달만에 전액 환불해줬었지? 어디가서 맞으면 자기한테 배웠다고 하지 말라고.”
“전투 센스가 워낙 없어서 트레이너도 몸만 죽어라 단련시키더라.”
“그런 거 같네….”
한예림이 눈썹을 파르르 떨며 침을 꼴깍꼴깍 삼킨다. 갈곳 잃은 눈동자가 위아래로 흔들린다. 그녀의 눈길이 내 목선을타고 쇄골쪽으로 내려갔다가 황급히 얼굴쪽으로 다시 올라온다.
“하아… 길드 관련해서 할 말 있어가지고.”
무슨 이유로 훈련장까지 찾아오나 했더니 일 이야기였나보다.
한예림을 쳐다보며 다음 말을 재촉했다. 멍하니 달뜬 숨을 내뱉던 그녀가 고개를 세차게 젓는다.
“현우야, 물 있어?”
“여기.”
물통의 뚜껑을 따서 건냈다. 한예림이 물을 벌컥 들이마신다. 그녀가 입가에 흐르는 물을 손등으로 슥 닦는다.
그녀가 조금 진정된 기색으로 한숨을 내쉰다.
“이지아는 혼자 던전을 못 들어가잖아. 들어가더라도 너가 필요하고.”
“그렇지.”
사실 이지아는 정상적으로 헌터를 할만한 상황이 아니었다. 날 계약으로 묶고 싶어하는 욕심 때문에 무리하는 거지.
내가 지금 걱정하는 것보다도, 이지아 본인이 던전에 들어가기 더 싫어하고있을 것이다.
헌터를 하자고 설득할때.
그 소심하던 이지아가 단칼에 하기 싫다고 처냈을 정도니까.
던전은 언제 무슨 상황이 벌어질지 모르는 위험한 장소다.
풍화 길드 입단 테스트때 이블아이의 등장으로 이지아가 순식간에 패닉상태에 빠진 것처럼.
같은 일이 벌이지지 말란 법이 없다.
“너까지 이지아하고 던전에 보내기에는 너무 위험해.”
체급이 맞지 않는다. 이지아가 나까지 완벽하게 보호하면서 싸우려면 던전의 난이도를 기하급수적으로 낮춰야한다. 닭잡는데 소잡는 칼 쓰는 것도 정도가 있지 그 정도면 인건비도 나오지 않는다.
“그래서 이지아는 던전 안돌리고 가만히 놔두려고.”
내가 지금 잘못들었나?
“S급 헌터를 가만히 놀려둔다고?”
한예림이 고개를 끄덕인다.
얘가 왜 이렇지?
당연하지만, 이지아 정도의 헌터를 굴리지 않고 놔두는건 그것 자체로 손해다.
원래 한예림 성격이라면 이지아를 2조 2교대로 돌리면서 어떻게든 뽕을 뽑으려고 할텐데.
그러다가 이지아가 계약금을 받지 않는, 공동 창업자의 위치란 생각이 퍼뜩 떠올랐다.
“너 설마 길드 커질때까지 지아 씨한테 돈 안줘도 된다고 배짱놓는건 아니지?”
“…….”
한예림이 머쓱하게 머리카락을 베베 꼰다. 눈에 힘을 주고 노려보자 어색하게 웃으며 변명한다.
“그런 거 아니야. 현실을 보자는 거지. 현실을. 가서 너 다치기라도 하면 이지아 성격에 가만히 있겠어? 자책할거 아니야.”
그렇긴 하지.
“이지아가 던전 들어가면 이지아만 돈 버냐? 길드 자금도 많아지는데. 진짜 그런 거 아니니까 그렇게 좀 쳐다보지마.”
찡그러진 눈썹을 집게 손가락으로 꾹꾹 눌러 폈다.
“그래, 너 말대로 던전 안 돈다고 치자. 그럼 지아 씨가 길드에 들어가는 의미가 있어?”
내 물음에 한예림이 조목조목 설명한다.
“S급 헌터가 소속된 길드라는 이름값이 따라오잖아. 이지아가 정상적인 생활이 될때까지는 얼굴마담으로만 세울 생각이야.”
“방법은?”
“악플 때문에 우울증에 걸린거라면서?”
맞다. 이지아의 우울증은 악플로부터 비롯됐다. 읽지 않으면 괜찮음에도 부득불 인터넷에 들어가 자길 욕하는 댓글을 전부 찾아본다.
아마 지금도 방에서 컴퓨터로 인터넷을 뒤지고 있겠지. 자길 욕하는 댓글이 있는지, 칭찬해주는 댓글이 있는지.
청문회 사건으로 인터넷 여론이 순식간에 반전됐지만, 역시나 시간이 지나면서 다시 팬들과 안티팬들이 서로 맞불을 놓는 상황이었다.
결국, 이지아는 처음 만났을때와 달라진 게 단 하나도 없었다.
“그럼 길드 차원에서 악플 관리해야지.”
“어떻게?”
“이미지 바꾸는 방법이 뭐 있나. SNS 계정으로 팬들하고 소통하고. 기자들 데리고 양로원 가서 봉사도 하고. 방송에서 인간적인 모습도 보여주고. 그렇다보면 여론도 우호적으로 바뀌는거지.“
대부분의 유명 헌터들은 필수적으로 하는 것들이다. 헌터도 이미지로 먹고 사는 사업이다. 같은 실력이라면 대중에게 먹히는 헌터가 더 높은 가치를 지닌다. 마스크만 된다면 눈에 띄기도 쉽다.
정작 이지아는 SNS 계정조차 만들지 않고 집에 틀어박혀 있었지만.
한 가지 의문이 들어 물었다.
“미국에서 일했으면서, 한국 쪽에 인맥이 있어? 기자나 방송, 협회 쪽하고 아무런 연관도 없잖아.”
한예림이 자신만만한 얼굴로 자기 가슴을 텅텅 친다.
“내가 아무런 대책도 없이 독립한줄 알아? 에이스 길드에서 일하다가 먼저 독립한 선배들 있지롱.”
“그걸로 돼?”
“미국물 먹다가 한국 돌아온 사람들이 어디 평범하냐? 한국에서도 다들 한끗발 날리고 있으니까 걱정마. 이런 때를위해 길드에서 얼마를 먹여놨었는데. 그리고 원래 인맥은 건너건너 만나는 거야.”
자기 얼굴에 금칠하는거봐.
저렇게 자신만만하니까 나도 믿음이 간다.
그래도 아직 한가지 중요한 문제가 남아 있었다.
“지아 씨가 하려고 할까…?”
이지아의 성격을 잘 알고있는 내가 걱정스레 물었다. 화신의 길드 마스터라고 한예림이 제안한 방법을 생각하지 못했을까.
한 달동안 밖에 나간거라고는 장 볼때뿐인 저 소심한 집순이를, 방송에 출현시키고 기자들 앞에 세우라고? SNS로 소통하면서? 그것도 대중들한테 호감적인 모습만 나오도록?
“그래서 너 찾아 온거잖아.”
“뭐?”
“너가 설득 좀 해봐.”
“내가? 어떻게?”
“……그냥, 가서 애교라도 한 번 부려봐. 같이 일하자고. 던전 들어가기 너무 무서워서 요즘 잠도 안온다고.”
팔짱을 낀 한예림이 아니꼽게 땅만 툭툭 찬다. 어이가 없어 헛웃음을 터트렸다.
“아무렴 그런걸로 되겠어?”
“될걸?”
한예림의 진지한 농담에 웃으며 셔츠를 쥐어짰다. 전완근에 힘을 주자 주르륵, 바닥에 땀이 흘러내린다. 이제 좀 입을만 하겠네. 허공에다가 셔츠를 탈탈 터는데,
벌컥벌컥!
한예림이 고개를 꺾고 시원하게 물을 들이킨다.
“너가 운동했냐? 뭔 물을 그렇게 마셔?”
한예림이 파닥파닥 손부채질을 하며 묻는다.
“하아…… 여기 너무 덥지 않아?”
“땀 좀 흘릴려고 냉방시설 전부 껐거든.”
“그렇구나! 어쩐지… 나도 자꾸 땀나네.”
“땀나면 수건 쓸래?”
말이 끝나자마자 홱! 내 손에 들린 수건을 낚아채간다. 한예림이 얼굴에 수건을 마구 비비적 거린다.
“하아…….”
당황한 내가 조심스레 말했다.
“가방에 새 수건 있는데.”
“됐어! 금방 갈거야!”
“그래?”
셔츠를 입고는 바닥에 널부러진 기구들을 정리했다. 뒤에서 시선이 느껴진다. 한예림이 수건으로 얼굴을 문지르며 날 지켜보고 있었다.
“먼저가. 난 여기 정리하고 올라갈게.”
“……현우야, 한유정 있잖아.”
“응?”
한유정이 왜?
입술을 달싹 거리던 한예림이 겨우 말한다.
“한유정, S급 각성자잖아. 길드에 어떻게 가입…….”
“안돼.”
한예림의 말을 단호하게 끊었다.
“지아 씨가 있는데 왜 유정이까지 욕심부려?”
더 욕심 부리지 말라고 딱 끊어 자르자 한예림이 짜증스레 머리를 헝그러트린다.
“한유정은 왜 안되는건데?”
“걔 17살이야. 우리 17살때 뭐했는지 생각해봐. 오락실가서 게임 한 거 밖에 더 있어?”
“입단 테스트때는 던전에 데리고 갔잖아.”
“똑같은 총 쓴다고 군인하고 사설 업체 용병이 같냐? 몬스터 썰러 간 거 아니야. 나 지켜주려고 간거지.”
한예림이 입술을 질끈 깨문다.
“이지아는 던전에 못들어가.”
“방금까지 말하던 거잖아.”
“이지아가 간판 헌터가 되겠지만 결국 얼굴마담일뿐이야. 이지아한테 문제 있는 거, 이제는 모든 헌터와 길드가 알고있어. 소문 다 퍼졌다고.”
“…….”
“이지아 이름값 빼면 아무것도 없는 길드에 어떤 헌터가 들어와? 한유정, 헌터 시험보면 유망주로 바로 시선끌수있어.”
“…….”
”S급 각성자잖아. 그럼 다른 헌터들이 길드 자체에 뭔가 있다고 생각할거라고. 랭커뿐만 아니라 역대급 유망주가 선택한 길드로…….”
“안돼."
"김현우!"
“유정이 꼬드길 생각 하지마.”
한예림의 어깨를 툭 밀치고 지나갔다.
가뜩이나 상처 많은 아이인데.
나중에 본인이 원하면 모를까, 굳이 피보는 현장에 집어넣고 싶지 않았다.
진짜… 꼬드기기만 해봐라.
* * *
식사 후 얌전히 디저트를 먹던 한유정이 폭탄발언을 했다.
“아저씨, 저 헌터 할게요.”
탁!
거칠게 숟가락을 내려놓으며 한예림을 쳐다봤다.
“야! 한예림!”
한예림이 손사레를 치며 고개를 젓는다.
“유정이한테 아무말도 안했어!”
한예림도 당황한 기색이다. 그녀가 한유정을 다급히 쳐다봤다. 도움을 바라는 눈길이었다.
“지나가다가 아저씨하고 대화하던 거 들었어요.”
그걸 지나가다가 들어?
어안이 벙벙하다. 한유정의 선언에 골이 땡겨온다. 내가 말했다.
“……그게 너가 헌터가 될 이유는 안돼. 잘 생각해봐.”
한유정이 포크로 깨작깨작 쉬폰 케이크를 끄적인다. 골똘이 생각에 잠긴 모습. 잠깐의 침묵 뒤에 그녀가 서툰 웃음을 지었다.
“디저트 가게에서 도와드린다고 했던거 기억하세요?”
“…응.”
“필요하잖아요. 제가 도와드릴게요.”
고개를 푹 숙인 한유정이 쉬폰 케이크를 입에 넣었다.
우물거리는 입술에는 수줍은 미소가 걸려있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