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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급들이 내게 집착한다-13화 (13/112)

〈 13화 〉 한예림 (1)

* * *

집에 도착한 이지아는 문을 쾅 닫고 방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

“아저씨, 제 방은 어디에요?”

한유정은 낯짝이 두껍다고 해야 하나. 보기보다 강심장이라고 해야 하나.

이지아가 반기지 않는 티를 푹푹 풍겨내도 별로 개의치 않아 했다.

“일단 옆방 쓰자.”

능력 범위안에 포함하려면 그게 괜찮아 보였다. 한유정도 불만은 없는지 순순히 고갤 끄덕였다.

“아, 맞다. 집 안내라도 해줄까?”

“됐어요. 저번 주에 충분히 둘러봤어요.”

그러고 보니 얘 암살자였지.

등골이 서늘해지는 대답에 팔뚝을 쓱쓱 문지르며 내 방으로 들어갔다.

문을 닫으려는데 한유정이 작은 목소리로 나를 불렀다.

“아저씨.”

“응?”

“고마워요.”

한유정이 낯간지러운지 볼을 긁적이고 있었다.

“뭐가?”

“아까 협회장 건이요.”

협회장? 뭔 말이지.

내 의문을 알아챘는지 말을 덧붙인다.

“저는 협회장하고 끝장낼 생각만 했었는데, 아저씨는 제가 위험해질까 봐 증거물들 전부 삭제했잖아요.”

“그거? 신경 쓰지 마. 어른이 도와주는 게 당연하지.”

“……그러지 못한 사람도 있더라구요.”

남의 아픔을 이용하려던 협회장과 대비돼서일까.

한유정은 스스로가 미처 생각하지 못한 부분을 내가 신경 써준 게 몹시 고마운 모양이었다.

그녀가 고갤 꾸벅 숙이며 인사했다.

“안녕히 주무세요.”

“응, 너도.”

한유정이 방으로 쏙 들어갔다.

* * *

띠리링

전화벨 소리에 눈이 확 떠진다. 잠에서 깬 내가 핸드폰부터 확인했다.

[창식이형]

카페 바스타드 사장이었다.

아닌 새벽에 무슨 전화야? 그렇게 생각했는데 시간을 보니 아직 저녁 10시였다.

얼굴을 쓸어내리며 전화를 받았다.

“네, 형.”

­야, 김현우 너 인마! 기사 다 봤어 인마!

“무슨 기사요?”

사장이 흥분한 목소리로 마구 외쳤다.

­이지아 헌터 청문회 건! 뉴스 보니까 너도 같이 나오던데?

“아.”

하긴, 지금 가장 떠들썩한 사건이겠지.

­인마! 그런 게 있으면 형한테 말했어야지! 갑자기 기사에 너 얼굴 나와서 깜짝 놀랐잖아!

“뭐라고 그렇게 놀라요.”

­응?

사장이 어벙한 목소리로 되묻는다.

­너 기사 아직 안 봤어?

“어우, 형 말도 말아요. 청문회 준비한다고 근래 잠도 제대로 못 자고 일했어요.”

이지아하고 마음의 평화 훈련하고, 청문회 준비한다고 변호사하고 날밤까고.

아주 난리도 아니었다.

부스스한 머리를 긁적이며 컴퓨터의 전원을 켰다.

사장이 하도 난리 치니까 궁금해지네.

책상의자에 앉아 컴퓨터가 부팅되는 걸 기다렸다.

사장이 쉬지 않고 떠들었다.

­일은 어때?

“일이요? 힘들죠. 죽는 줄 알았어요.”

실제로도 한유정한테 죽을뻔했지.

마음의 평화가 있어서 다행이야. 하지만 바쁘게 지낸 최근 한 달간을 떠올리면 썩 나쁜 기억도 아니었다.

아니, 오히려 기묘한 성취감에 심장 언저리가 간질댔다. 내 손으로 S급 헌터를 도와줬다는 게 너무나 신기해서.

“그래도, 재밌어요.”

­그래? 다행이네.

“월급도 바스타드보다 비교도 안 되게 많구요.”

­이 새끼가.

“아하하.”

웃으며 마우스를 움직였다.

딸칵, 딸칵.

인터넷에 접속해 기사를 쓱 둘러봤다.

[이지아 헌터가 누명을 쓴 이유는?]

[화신 길드와 이지아 헌터의 불화설! 길드장은 어째서 이지아를 내쳤는가.]

새로 고침을 누를 때마다 쏟아져나오는 기사들.

대부분이 이지아의 청문회에 대한 것들이었다. 상단에 노출된 조회수가 가장 많은 기사에 들어갔다. 스크롤을 쭉 내려 댓글창을 확인하자 역시나 전쟁터가 펼쳐지고 있었다.

[마장동김사장: 이지아한테만 잣대 엄격하긴 했음 사람 죽어야 끝난다니까]

[wldk123: 내가 이럴줄알았다ㅋㅋㅋ 악플 달던 놈들 다 어디 갔냐? 아무 말도 못 하죠? 흔적도 없이 사라졌죠?ㅋㅋㅋㅋㅋㅋ]

[방배동라이더: 난 처음부터 이지아 헌터 믿었다! 댓글 목록 봐라! 비추누르고 욕하던 녀석들, 내가 분명 말했지?]

좋은 반응이 많았다.

사건 자체가 이지아가 피해자로서 구성돼있기에 당연했다.

이지아에 대한 동정 여론으로 그녀를 옹호하는 의견들이 베스트댓글로 올라가 있었다.

다시 스크롤을 내렸다.

[김치에싸먹어보세요: 그래봤자 어비스 던전 공략 실패한 거는 변하지 않는다. 이지아는 국내 탑랭커지 월드 클래스가 아니다.]

[떡볶이냠냠: 아니, 근데 공략 실패하고 잠수 탄 건 팩트 아니야? 혼자 독박쓴 거든 뭐든 간에 책임감 없는 건 맞잖아.]

부정적인 의견도 없는 건 아니었다. 악의란 근거를 가지고 쌓이지 않았다.

이미 그들에게 밉보인 이지아는 피해자가 됐음에도 적으로서 존재했다.

싹 다 비추천을 눌러주고 기사를 나왔다.

­기사 봤냐?

사장이 은근하게 기대하는 투로 물었다.

“네, 뭐…… 그냥 예상했던 대로네요.”

­예상했다고?

“청문회 이길 때부터 댓글 반응 좋을 거라 생각했어요.”

­아니, 그거 말고…… 인마, 너 인터넷에다가 이지아 매니저 쳐봐.

“네?”

사장의 말에 키보드를 두들겼다.

[이지아 헌터와 친밀해 보이는 이 남자의 정체는?]

시사 뉴스가 아니라 연예 뉴스에 있었다.

뭐지?

궁금함을 참지 못하고 클릭했다.

동영상이 재생됐다.

[지아 씨!]

영상 속의 내가 이지아를 불렀다. 날 발견한 이지아가 활짝 웃으며 달려왔다.

[현우 씨! 봤어요? 저 봤어요?]

[말 잘하시던데요?]

[그쵸?]

[아무래도 제가 했던 응원이…….]

내 눈동자가 좌우로 마구 요동쳤다.

저 때 카메라 꺼진 거 아니었어?

영상 속에서 나와 이지아가 친밀하게 대화하고 있었다.

헌터와 매니저의 사무적인 관계라고는 볼 수 없을 정도로 서로 착 달라붙어서.

평소엔 몰랐는데 이지아와 거리감이 이 정도로 좁았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아니, 이게 뭔…….”

난 일반인인데 이렇게 막 올려도 돼?

뉴스니까 되겠구나. 더러운 언론 녀석들.

속으로 기자들을 마구 욕하는데, 영상 속의 음성을 들은 건지 수화기 너머로 사장이 웃는다.

­능력 있네, 새끼.

띠리링.

사장과 통화 중에 다른 전화가 왔다. 카페 알바 박지영이다.

“형, 지영이 오늘 쉬어요?”

­어.

“지영이한테 전화 왔네요. 나중에 제가 다시 전화할게요.”

­알겠다. 말만 하지 말고 진짜 전화 좀 해, 인마.

“네네.”

전화를 받았다. 박지영이 소리를 질렀다.

­오빠오빠! 진짜 이지아 헌터하고 사귀는 거 거예요??!!

“아니, 좀…… 안 사귄다고!”

전화를 끊고 침대 위로 집어던졌다.

우우웅. 우웅.

문자를 대체 얼마나 보내는 건지 핸드폰이 미친 듯이 진동했다.

무시하고 인터넷을 계속 뒤적였다.

사실 청문회만큼 궁금한 게 한 가지 더 있었다.

[이지아 헌터에게 책임을 떠넘긴 협회, 이대로 괜찮은가?]

[협회장 인사 부적격? 2주 뒤 청문회를…….]

협회장을 검색하자 관련 기사들이 주르륵 떠오른다.

벌써부터 여론의 역풍을 뒤집어 맞는듯했다.

초췌해진 협회장의 사진들을 보니까 속이 뻥 뚫리는 기분이다.

타자기를 두드렸다.

[gusdn999: 꼬시다 십새끼. 국민들이 호구로 보였냐? 남은 명예나마 지키려면 자진사퇴해라.]

이런 기분으로 악플 다나? 흡족하게 웃으며 인터넷을 뒤적였다. 청문회에 나오는 기사들을 보며 시간을 보낼 때였다.

째깍째깍째깍.

어느덧 시간은 밤 12시.

사고는 갑작스레 일어났다.

“꺄아아아아악!”

“히이익!”

이지아와 한유정의 째진 비명.

“뭐, 뭐야?”

다급히 자리에서 일어나 이지아에게 가려던 순간이었다.

벌컥!

이지아와 한유정이 문을 열며 방안으로 허겁지겁 뛰어 들어왔다. 그녀들이 빠르게 주변을 훑었다. 어둠 속에서 번뜩이는 눈동자가 나를 포착해냈다.

“현우 씨!”

“아저씨!”

이지아와 한유정이 내게 달려들었다. 공황에 빠진 그녀들이 날 꽉 끌어안았다.

“이게 무슨…… 둘 다 괜찮아요?”

어깨를 어루만져주니 조금은 진정한건지 헐떡이던 숨이 안정됐다.

품에 안긴 이지아와 한유정이 턱을 들어 올린다.둘 다 눈물을 뚝뚝 흘리고 있다.

이지아가 떨리는 목소리로 묻는다.

“혀, 현우 씨… 방금 능력 껐어요?”

“네? 능력이요?”

“마음의 평화, 끄셨냐구요.”

뭔 상황인지 이해가 안 가 입을 다물고 있는데, 이지아가 투정 부리듯 이마로 내 가슴을 톡톡 두들긴다.

“청문회 끝나고 나서 삐진 거 때문에 심술부리는 거예요?”

“…….”

“근데, 현우 씨도 제 입장에서도 생각해보세요. 그럴 만도 했잖아요.”

“……?”

지금의 대화가 도저히 이해 가지 않아 물었다.

“마음의 평화를 끄다뇨? 전 끈 적 없는데요.”

이지아가 당황한 표정을 짓는다.

심술? 내가 이지아한테 심술부릴게 뭐 있어?

그리고 이지아의 말대로 심술이 났다고 해도, 마음의 평화를 끄면 얼마나 힘들어할지 뻔히 아는데 고작 그런 이유로 끌 생각은 전혀 없었다.

“그럼 왜지…?”

영문을 모른 채 이지아와 고민하던 중이었다.

“아.”

갑자기 한유정이 깨달았다는 듯 탄성을 내뱉는다.

그녀가 멋쩍게 손을 들었다.

“그거, 저 때문인 거 같아요.”

“뭐?”

“사실, 아저씨네가 마음의 평화 훈련할 때 저도 근처에 있었는데…….”

“그런데?”

“갑자기 마음의 평화 범위가 계속 들쭉날쭉하다고 한탄하시던 거 들었거든요. 아마 능력으로 커버하는 사람이 늘어나면 범위가 줄어드는 모양이나 봐요.”

납득이 가는 가설이다.

마음의 평화가 이지아뿐만 아니라 한유정의 천살성까지 억제하면서 능력의 범위가 줄어들었다.

그렇게 생각하면 훈련 때 계속 들쭉날쭉하던 범위가 이해 갔다.

하지만 한 가지가 이상한데.

한유정의 말처럼 마음의 평화가 훈련 동안 들쭉날쭉한 건 사실이지만, 지금처럼 극적으로 변한 건 처음이었다.

그런 내 의문을 눈치챈 건지 한유정이 어색하게 웃었다.

“그, 저도 처음이라 미리 말씀 못 드린 건데…….”

“…….”

“일주일 주기로 찾아오는 살인 충동을 안 풀면 다음으로 넘어갈 때마다 충동질이 급격하게 강해지나 봐요.”

“…….”

“갑자기 머릿속이 하얘지더라구요. 이 정도로 살의가 강해진 건 처음이었어요.”

“…….”

“아하하…….”

뒷머리를 긁적이는 한유정을 보고 있자니 눈앞이 깜깜해져 나도 모르게 이마를 짚었다.

즉, 한유정의 살의는 일주일을 간격으로 리부트된다.

1일 차 때는 미약하지만 2일, 3일 차로 갈 때마다 살의가 강해지며 마지막 7일 차 때는 억누르지 못할 정도로 폭발한다.

기존에는 이걸 협회장의 청부 살인으로 초기화시켰다.

그런데 나와 있으면서 청부살인을 할 필요가 없게 됐고, 한유정은 천살성을 초기화시키지 않고 넘겼다.

그 반동으로 다음 7일 차의 살의가 급격하게 강해진 것이다.

마음의 평화는 강화된 한유정의 살의까지 억누르려다 보니 범위가 극적으로 좁아진 것이고.

“일단, 상황은 알겠으니까 두 분 다 좀 떨어져…….”

몇 걸음 뒤로 물러나려니까 이지아와 한유정이 기겁하며 달라붙었다.

“혀, 현우 씨. 떨어지면 안 될 거 같아요.”

“아저씨, 이대로 있으면 안 될까요?”

“아니, 잠은 어떻게 자려고요?”

내 질문에 그녀들의 시선이 어깨너머로 향했다.

시선을 따라 고갤 돌리니 내가 쓰는 작은 침대가 떡하니 놓여 있었다.

* * *

이게 대체 무슨 상황이지.

천장을 보며 누워있는데 현실감이 너무 없어 꿈인가 싶다.

한쪽에는 이지아가. 반대쪽에는 한유정이.

가운데에 나를 두고서 침대에 몸을 부대끼며 누워있었다.

이지아가 떨리는 목소리로 날 부른다.

“……현우 씨.”

“네?”

“침대가 너무 좁아서 그런데… 옆으로 누워서 자면 안 될까요?”

그녀의 요구에 그럴 수 있겠구나 싶었다.

일인용 침대에 세 명이 몸을 꾸겨 넣은 상태라 아주 비좁았다.

그런데 남자인 내가 평평하게 누워있으니까 이지아와 한유정이 많이 불편할 수밖에.

“그럼…….”

옆으로 돌아눕던 나는 멈칫했다.

새근새근 잠든 한유정의 얼굴이 내 쪽으로 향해있었다.

고등학생은 좀 위험하지.

급하게 몸을 뒤집었다.

베개에 머리를 뉘는데 내 쪽을 바라보고 있는 이지아와 시선이 마주쳤다.

“…….”

“…….”

이지아가 긴 속눈썹을 깜빡이며 나를 쳐다본다.

코끝이 닿을랑 말랑한 거리. 살결 냄새가 오감에 스며든다.

이지아의 눈동자 속에 비친 내 얼굴이 쑥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다.

사실, 이지아 얼굴도 나와 별반 다를 건 없다.

“……지아 씨, 잠 안 자요?”

“네.”

“왜 안 자요?”

“잠이 안 와서요.”

잠이 안 오면 어쩔 수 없지.

눈을 감고 자려는데 계속 이지아의 시선이 느껴진다.

“현우 씨.”

“……네?”

“자요?”

“안 자요.”

“왜 안 자요?”

“잠이 안 와서요.”

내 대답에 이지아가 장난스럽게 웃는다. 그럴 때마다 계속 숨결이 닿는다. 참다못한 내가 말했다.

“지아 씨, 몸 좀 돌려주면 안 될까요?”

“돌리면 더 창피해져요. 그냥 참아요.”

혹시 닿으려나?

아, 닿겠구나.

이지아의 말대로 입 다물고 있기로 했다.

“으음…….”

우리의 대화가 시끄러웠는지 한유정이 몸을 뒤척였다. 이지아가 한유정을 의식하며 작게 속삭였다.

“현우 씨.”

“네?”

“고마워요.”

한쪽 눈만 슬그머니 떴다. 역시나, 이지아가 날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었다.

“뭐가요?”

“다들 제가 잘못한 거라고, 손가락질하며 비난하는 게 너무 힘들었는데…… 현우 씨가 옆에 있어 주면서 모든 문제가 간단하게 풀렸잖아요.”

“……그건 지아 씨 잘못이 아니니까 그런 거죠.”

잘못한걸 잘한 걸로 바꿀 수는 없었다.

애초에 이지아가 지은 죄가 없기 때문에 간단하게 누명을 벗은 것이다.

“그래도, 힘들 때 옆에 있어 주고 도와준 게 얼마나 힘이 되고 고마운데요.”

“…….”

“자살하려던 것도 막아주고, 청문회로 누명도 벗고. 아까 제가 뉴스 기사를 봤는데 그거 아세요? 저한테 악플 달던 사람들 싹 사라진 거.”

얼굴에 금칠하는 것도 유분수지. 부끄러워서 아무 대답 않고 듣기만 했다.

“현우 씨하고 만나기 전에는 다음날이 무서워서 잠도 잘 안 왔는데, 요즘은 잘 때마다 다음날이 기대돼요.”

말뿐만이 아니라 이지아는 정말로 행복해 보이는 얼굴이었다.

이때다 싶어 이야기를 꺼냈다.

“……지아 씨, 그럼 말인데요. 제 부탁 하나만 들어줄 수 있어요?”

이지아의 눈이 화등잔만 하게 떠졌다. 그녀가 떨리는 미소를 지으며 고갤 끄덕였다.

“……부탁이 뭔데요?”

“청문회 사건도 마무리됐으니까, 우리도 슬슬 헌터다운 일을…….”

“싫어요.”

조금 전의 훈훈한 분위기는 어디 갔어? 이지아가 제 할 말만 쏙 하고는 눈을 감아버렸다.

“지아 씨? 지아 씨?”

“…….”

이지아는 아무런 대답도 없었다.

이번 청문회 사건 때문일까.

활력적으로 이지아의 매니저 역할을 수행하고 싶어 하는 나와 다르게, 이지아는 세상에 질려버린 기색을 자주 드러냈다.

분위기가 좋길래 물어봤는데 아직 준비가 안 된 모양이다.

띠리링.

품속에서 울리는 전화벨 소리.

잠든 한유정이 깰까 봐 다급히 받았다.

“여보세요?”

­현우야, 나 예림이.

“어어? 너 한국 언제 들어왔어?”

­오늘 왔지!

“왜 말 안 했어? 마중 나갔을 텐데.”

­너 깜짝 놀래 주려고!

수화기 너머 한예림의 목소리가 돌연 음울해진다.

­그런데, 뉴스 보니까 너 얼굴 나오더라?

“봤어?”

­……우리 내일 볼 수 있지?

“그래. 볼 수 있지.”

­그럼 내일 보자.

뚝.

전화가 끊겼다. 우웅, 우웅. 핸드폰 진동이 울리며 메시지가 몇 개 도착했다.

[한예림: 현우야, 피곤할 텐데 오늘 푹 자고 내일 봐!]

[한예림: /(^3^)/]

핸드폰을 끄는데 갑자기 목 뒤쪽이 따끔따끔하게 서늘해진다.

뭐야, 에어컨 틀었나? 아닌데. 환절기라 밤이 많이 춥나 보다.

돋아나는 닭살을 슥슥 어루만지며 창문을 닫으려던 때였다.

무언가 내 옷깃을 잡고 늘어졌다.

“응? 지아 씨, 잠깐 손 좀 놔주…….”

갑자기 말문이 턱 막혔다.

이지아가 굳은 얼굴로 내 옷깃을 손이 으스러질 것처럼 쥐고 있었다.

한참 동안 날 노려보던 그녀가 무거운 입술을 겨우 뗐다.

“방금 누구예요?”

싸늘한 목소리.

나도 모르게 말을 더듬었다.

“예, 네?”

“방금 통화한 사람, 대체 누구냐구요.”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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