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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급들이 내게 집착한다-12화 (12/112)

〈 12화 〉 이지아 (12)

* * *

­공략대원들이 전부 이지아 헌터의 실수를 꼬집고 있습니다. 이에 대해 할 말이 있으신가요?

“국내 최정예 헌터들이 모였던 어비스 공략대입니다. 일개 개인의 실수가 치명적으로 작용해 무너질 전력이 아니었고, 다대다의 전투에서 개인 한 명에게 포커스를 맞춰 실수를 꼬집는 건 말도 안 되는 짓입니다.”

이지아는 위원들의 질문에 막힘없이 대답했다.

협회장이 원하던 구도는 이미 물 건너간 지 오래였다.

일방적으로 이지아를 때리던 위원들은 속속 드러나는 증거물에 썩어 문드러진 얼굴을 하고 있었다.

큰일이 났다 싶겠지.

인기 끌어보려고, 화제의 중심에 서려고 청문회 나왔을 텐데.

애먼 사람만 집단린치하고 있던 거였으니까.

청문회가 끝나면 이지아에게 호통치던 모습이 인기를 얻긴커녕 웃긴 짤방으로 돌아다니지나 않으면 다행이다.

아마 속으로 협회장한테 욕을 한 사발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어쩌겠어. 전부 자기들 업보지.

한유정이 조그만 손으로 내 양복 소매를 잡아당기며 불렀다.

“아저씨.”

“네?”

“이거요.”

어디서 꺼낸 건지 커다란 서류 봉투를 불쑥 내민다.

“이게 뭐예요?”

“협회장 약점이요.”

약점? 갑자기 입맛이 싹 돋궈지는 이야기다.

“…?”

봉투를 열자 서류 몇 장이 나왔는데 내 얼굴과 인적사항이 적힌 프로필이었다.

근데 좀 이상하다.

눈을 비비고 다시 살펴봤지만 서류에 적힌 내용은 그대로였다.

강간, 살인, 사기 이력 등.

나는 세상에 이런 인간쓰레기가 있을 수 있나 하는 범죄자로 탈바꿈 돼 있었다.

“유정 씨.”

“아저씨, 말 편하게 하셔두 돼요.”

“알겠어요, 유정 씨. 그건 그렇고…….”

한유정이 빤히 쳐다본다. 다급히 말을 고쳤다.

“유정아, 이런 서류는 대체 어디서 나온 거야?”

물어보면서도 난 이걸 누가 준 건지 왜 알 것만 같은 걸까.

내 질문에 한유정이 턱으로 협회장을 가리켰다.

어이구, 그럼 그렇지.

얼굴을 쓸어내리고 있으려니까 한유정이 핸드폰의 녹음기를 재생시켰다.

­이름이…… 아, 그래. 김현우군. 정보는 평소의 방법으로 보내주지.

­……지금 김현우를 죽이면 이지아와 반드시 싸우게 될 수밖에 없어요. 일이 커지길 원하는 건 아니시겠죠?

협회장과 한유정의 목소리.

“사실, 이주 전부터 협회장이 아저씨의 암살을 지시했어요.”

한유정이 내게 진실을 알려줬다.

그녀는 천살성의 살기를 가라앉히기 위해 차선책으로 협회장과 손을 잡았다.

협회장은 한유정에게 범죄자들의 청부살인을 지시해왔다고.

“개소리네.”

프로필에 날림으로 적혀있는 내 범죄 이력만 봐도 한유정이 어떤 인물들을 청부 살인해왔을지 눈에 뻔히 들어왔다.

협회장의 정치적인 적들이었겠지.

범죄의 여부는 중요치 않았다.

나처럼 글자만 적당히 꾸며내서 몇 개 박아놨을 것이다.

“……역시 그렇겠죠?”

한유정이 죄책감이 깃든 얼굴로 대답했다.

스스로도 평소부터 의심하고 있었기에 이런 증거물들을 소각하지 않고 모아왔을 것이다.

뭐라 위로해줄 말이 없었다.

대신 한유정을 위해 다른 건 해줄 수 있을 것 같았다.

“협회장님.”

“…….”

썩은 동태 눈깔로 이지아만 바라보던 협회장이 내게로 시선을 돌렸다.

“정치적으로 위험하시죠? 이번 사건 끝나면 역풍 맞을 거라면서요.”

협회장은 가만히 놔둬도 자멸할 것이다.

바닥까지 고꾸라지겠지. 하지만, 바닥이 마지막은 아니었다.

이지아에 대한 조작 건이 지대공 미사일이라면 한유정 건은 협회장에게 핵폭탄 같은 존재.

저 꼬장꼬장한 노인네가 한유정을 두고 가만히 넘어갈 거라고는 도저히 생각할 수가 없었다.

찌익! 찌이익!

그래서 협회장 앞에서 서류를 갈기갈기 찢었다. 깜짝 놀란 한유정이 외쳤다.

“지금 뭐 하는 거예요!?”

“유정아, 핸드폰.”

“아저씨!”

한참 동안 눈싸움하던 한유정이 내 손에다가 핸드폰을 거칠게 내던졌다.

녹음본을 모두 지우고 협회장에게 보여줬다.

“협회장님, 이지아 건은 저희의 손을 떠났으니까 뭐 어쩔 수 없다만 한유정은 증거물도 뭣도 남지 않았습니다.”

“…….”

“어디 한번 죽어보자고 개싸움을 걸어온다면 어쩔 수 없지만, 굳이 긁어 부스럼 만들지 마십쇼. 아시겠습니까?”

협회장이 미약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한유정이 건넨 서류는 양날의 검이었다. 협회장은 어차피 끝났다. 굳이 위험을 무릅쓸 필요는 없었다.

이지아의 발언이 마무리돼가고 있었다.

“───아무런 증거물도 없는데 어째서 협회장, 길드장, 공략대장까지 전부 제치고 일개 공략대원인 저 혼자서만 책임을 지냐는 겁니다.”

위원들은 더는 이지아를 공격하지 못했다. 청문회는 지지부진하게 진행됐다.

애초에 이지아를 린치하기 위한 청문회다.

위원들은 다른 참고인들에 대한 질문을 제대로 준비하지도 않은 상태였다.

그런 사실이 있었습니까. 왜 그랬습니까.

뻔한 질문과 뻔한 대답들.

청문회는 성공적으로 끝이 났다.

*

한유정에게는 미리 차에 가 있으라 말한 뒤, 단상에서 내려오고 있는 이지아에게 걸어갔다.

아무래도 대중 앞에 서는 게 익숙하지 않아서일까.

이지아는 한눈에 보기에도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다.

“지아 씨!”

이지아가 귀를 쫑긋 세우더니 금방 나를 찾아냈다.

얼굴이 만개한 꽃처럼 순식간에 피어오른다.

“현우 씨!”

이지아가 손을 방방 흔들면서 뛰어왔다.

넘어지지 않으려나 몰라.

달려온 이지아가 흥분한 목소리로 자랑했다.

“봤어요? 저 봤어요?”

“말 잘하시던데요?”

“그쵸?”

“아무래도 제가 했던 응원이…….”

아, 젠장.

능청스레 대답하던 입을 손으로 턱 막았다.

­지아야!

­쫄지말고 힘내! 기죽을 필요 없어!

­응, 고마워! 현우야.

이지아도 그 기억이 떠올랐는지 입을 꾹 다물었다.

침묵 끝에 내가 말했다.

“……가죠.”

“넵.”

냉큼 대답한 이지아와 함께 복도를 걸었다. 훈련으로 서로 못 볼 꼴 다 본 사이여서일까. 암묵적인 약속이 빠르게 이루어졌다. 이 건은 언급하지 말자고.

“이지아 헌터! 인터뷰 부탁드립니다!”

밖으로 나가는 와중에 이지아를 발견한 기자들이 벌떼처럼 몰려들었다.

“현우 씨, 먼저 가 있으세요. 금방 끝내고 갈게요.”

“유종의 미. 아시죠?”

인터뷰 한 번 잘못하면 쏟아지는 기사 무시 못 한다.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누구나 아는 사실이었다.

“걱정 마세요.”

이지아가 희게 웃으며 손을 털었다. 사양 않고 먼저 차 안에 들어갔다. 조수석에 앉은 한유정이 냉큼 물었다.

“볼 일은 끝났어요?”

“응.”

“허락은 전부 받은 거죠?”

아, 맞다.

그러고 보니 이지아한테 한유정에 대한 말을 안 꺼냈네.

한유정도 천살성 때문에 이지아의 집에서 거주하길 원했다.

평소에도 살심을 컨트롤하는 게 힘든 모양이었다.

“오면 말하지 뭐.”

목에 칼이 들어와서 어쩔 수 없었다고 하면 이지아 성격에 뭐라 하겠어.

가까이서 들리는 가벼운 발걸음 소리.

흥에 겨운지 콧노래까지 들린다.

인터뷰를 끝낸 이지아였다.

“현우 씨, 저희 청문회도 잘 마무리됐는데 집 들리기 전에 영화 보고 레스토랑이라도…….”

이지아가 미소를 지으며 조수석의 문을 활짝 열어젖혔다. 그녀가 웃는 낯 그대로 굳었다. 한유정이 손을 들어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대답은 들려오지 않았다.

이지아가 조수석에 앉아있는 한유정을 보고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뭐지…?”

혼자 작게 중얼거린 이지아가 내게 시선을 돌렸다.

“현우 씨?”

“네?”

“이분은 누구세요…?”

아이씨, 오늘 왜 이렇게 더워? 갑자기 땀이 뚝뚝 흐른다.

“어, 음… 사실은…….”

손짓, 발짓 섞어가며 횡설수설 이지아에게 설명했다. 이지아의 얼굴이 실시간으로 싸늘해져 가는 게 보였다.

“이 애가 천살성이고….”

“그렇죠.”

“협회장이 현우 씨를 죽이려고 암살을 보냈고…….”

“네네.”

“현우 씨를 살려주는 대가로 옆에 붙어있는다구요?”

고개를 마구 끄덕였다. 이지아가 손가락으로 머리카락을 귀 쪽으로 쓸어넘겼다. 그녀가 어색하게 입꼬리만 말아 올리며 말했다.

“사정은 알겠는데…… 꼬마야, 일단 뒷좌석으로 자리 좀 옮겨줄래? 현우 씨하고 일 관련해서 대화할 게 있어서.”

꼬마라는 말에 한유정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싫어요, 아줌마.”

한유정이 핸드폰에 시선을 고정한 채 심드렁히 대답했다. 이지아의 말아 올라간 입꼬리가 경직됐다.

“아줌마…?”

“26 아니에요?”

“……맞아.”

“아줌마네 뭐.”

이지아의 표정이 심상치 않았다. 다급하게 외쳤다.

“지, 지아 씨!”

“…….”

“저도 26이잖아요! 유정이가 저도 아저씨라고 부르더라고요. 그냥 나이 차 많이 나니까 그런 거예요. 삼촌, 이모, 군인 아저씨. 아시죠?”

이지아가 삐걱대는 고개를 겨우 끄덕였다.

쾅!!!!!

이지아가 조수석의 문을 거칠게 닫고는 뒷좌석에 앉았다. 그러더니 팔짱을 끼고는 고개를 돌려 창문 밖 풍경만 쳐다보고 있다.

“큼. 이, 일단 집으로 갈까요.”

시동을 걸자 경고음이 울렸다.

­안전벨트를 착용해주세요.

­안전벨트를 착용해주세요.

“지아 씨?”

“…….”

대답이 없다.

연신 헛기침을 하며 조심스레 말했다.

“그, 안전벨트 좀…….”

쯧, 이지아가 짧게 혀를 찼다.

“……저 S급 헌터거든요.”

하긴 차가 터지면 터졌지 이지아가 다치진 않겠지.

“유정아?”

“헌터는 아닌데 저도 S급이에요.”

그렇구나.

나만 위험한 거구나.

안전벨트를 단단하게 고정하고는 액셀을 밟았다.

“추, 출발합니다. 하핫…….”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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