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화 〉 이지아 (10)
* * *
……타깃은요?
“이름이…… 아, 그래. 김현우군. 정보는 평소의 방법으로 보내주지.”
알겠어요.
뚝.
한유정과의 통화를 끊은 협회장이 마른세수를 했다.
“그걸로 되겠습니까?”
소파에 앉아있던 남자가 심드렁히 물었다. 한때 이지아가 소속돼있던 화신 길드의 길드장이었다.
“지아 양을 잘 알지 않은가.”
“알죠.”
이지아.
S 랭크 헌터. 대한민국 탑랭커. 재능충 유망주.
그리고 개복치.
그녀를 수식하는 많은 별명이 있었지만, 길드장은 이지아에게 개복치만큼 어울리는 단어도 없다고 생각했다.
길드장이 땅콩을 입에 휙 던져넣으며 말했다.
“유리 대포라고 해야 하나. 실력은 탑랭커답게 출중한데 조금이라도 멘탈 나가면…… 케어하느라 고생 많이 했죠.”
실력은 보장돼있다.
그도 그럴 게, 랭커가 딱지치기로 얻은 것도 아니고 그동안의 전공이 있기에 올라간 자리니까.
하지만…….
'응? 이지아, 무슨 일이야?''길드장님, 저 다음 공략 일정은 빠질래요.''뭐어?! 왜?''요즘 악플들 때문에 너무 힘들어요. 이번 분기 할당량은 다 채웠잖아요. 이번 달은 빠질게요.''자, 잠깐만, 지아야. 내가 언론사에 전화해서 기사 내리라고 할게. 다음 공략만 참가하자. 응?'
이런 일은 예삿일이었다.
'길드장님, 전화 왔는데요!''어디?''병원이요. 이지아 헌터 또 자해했대요!''뭐해!? 얼른 언론사에 전화 돌려서 기사 올리지 마라 그래!'
어느 업계나 자신의 분야에 대한 확고한 실력이 중요한 법이다.
인성이나 평판은 둘째치고 결국 실력만 있다면 누구에게나 인정을 받을 수밖에 없으니까.
그래도 정도가 있지, 이지아는 실력을 제외하면 모든 게 자격 미달이었다.
길드장이 부르르 몸서리를 치며 협회장에게 말했다.
“둥기둥기한다고 고생했죠.”
전문 상담사들도 진저리를 치며 떨어져 나갔다.
“김현우라고 했었죠? 그 새끼, 된 놈이에요. 이지아의 매니저를 하다니. 그것도 24시간? 시발. 저였으면 바로 도망쳤어요.”
언제 터질지 모르는 개복치.
S급 헌터라 무시도 못 한다.
“그래서 우리가 이지아에게 놀란 거지.”
“그러니까요. 그렇게 당차게 나올지는 상상도 못 했죠.”
“설마 카페 알바생에게 발을 잡힐 줄이야.”
한 달간 이지아의 행방이 묘연했기에 김현우라는 인물을 최근 들어서야 겨우 알게 됐다.
김현우.
마음의 평화.
심신을 안정시켜주는 보잘것없는 각성자.
그 남자가 개복치를 케어 중이란 것을.
“뭐……. 그 남자만 없어지면 다시 원래대로 되돌아가겠지.”
협회장이 턱을 쓰다듬으며 중얼거렸다.
“결국 개복치는 개복치 아니겠는가.”
*
“이야.”
변호사가 감탄하며 말했다.
“이거 완전 호구로 보이셨나 본데요?”
내가 생각해도 그래.
동영상을 전부 시청한 변호사가 어이가 없다는 듯 팔짱을 낀다.
“협회장이 무슨 생각인 건지…?”
턱을 괴고 고민에 빠져있던 변호사가 한숨을 푹푹 내쉰다.
“이거, 자신이 없네요.”
“네?”
기업 간의 법적 분쟁도 빈번하게 해결한다던 일류 변호사가 앓는 소릴 하자 심장이 철컹 가라앉았다.
변호사가 뻔뻔스레 말했다.
“질 자신이요.”
“아.”
“너무 대놓고 뒤집어 씌우려는 게 보여서 되려 믿음이 가요.”
“무슨 믿음이요?”
“하하. 만약의 가정이지만 이지아 헌터가 정말로 실수한 거고, 거기에 대한 증거를 저쪽에서 준비하면 꼼짝없이 당할 수밖에 없잖습니까.”
의뢰인들이 사건에 대해 사실대로 말하지 않으려는 건 제법 흔하다며, 변호사가 한탄했다.
“최소한 그럴 일은 없을 거 같다는 거죠. 그럼 이런 짓을 할 이유가 없으니까요. 걱정 마세요. 나머진 제가 처리할게요.”
변호사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손을 내밀었다.
“현우 씨하고 이지아 헌터님은 청문회까지 최대한 사고 치지 말고 조심해주세요.”
그 말만 남긴 변호사는 다급한 발걸음으로 뛰어갔다.
2주밖에 남지 않은 만큼 할 일이 많은 거겠지.
자기 일에 전문적인 지식을 가진 변호사의 모습을 보자 문뜩 그가 부럽고 멋있게만 보였다.
사회인으로서의 직함이라고나 해야 하나.
매니저라고 해봤자 제대로 된 업무는 아직 해보지도 못하고 이지아에게 계속 붙잡혀 있었으니까.
청문회도 있고 하니까 이 기회에 양복도 맞추는 게 낫겠지 싶다.
“현우 씨?”
“아, 지아 씨. 변호사 갔어요.”
끼이익.
방문이 열리며 구속복을 입은 이지아가 기어 나왔다. 바닥에서 꼼지락거리는 그녀를 번쩍 들어 올려 안았다.
“으음…….”
이지아가 불편한 신음을 내며 자꾸만 몸을 비틀었다.
“지아 씨, 어디 불편하세요?”
“아니요.”
“그럼 바로 훈련 준비하죠.”
“…….”
능력 훈련 중이었는데 변호사가 갑자기 찾아와서 좋던 흐름이 끊겼다.
이지아를 안은 채 지하의 훈련장으로 향했다.
청문회 당일에는 내가 증언석 옆에 대기하고 있을 수가 없었다. 일분일초가 바빴다. 최대한 능력의 범위를 넓혀놔야만 했다.
그런데 이지아와 함께 실험한 결과 현재의 범위는 가동 범위는 10m.
최초는 막상 9m밖에 되지 않았다.
훈련의 결과로 늘긴 늘었다만 무언가 이상했다.
“현우 씨, 왜 그러세요?”
고민에 빠져있으니까 이지아가 걱정스레 물어온다.
“……막상 측정해보니까 생각했던 것보다 가동범위가 좁아서요.”
“능력이요?”
“네, 원래 집중하면 카페 바스타드의 크기를 감쌀 정도였는데…….”
어째서 10m밖에 안 되는 거지?
그런 의문이 들었다.
평소에 능력 활용 좀 해둘 걸 하는 후회가 든다. 막상 중요할 때 이리저리 헤매는 꼴이라니.
“현우 씨.”
“네?”
“괜찮아요.”
고개를 내리자 이지아가 살포시 웃고 있었다.
“연습할수록 늘어나고 있잖아요. 시간도 2주나 남았구요. 원래 능력이 몇 미터가 되고 가 뭐 중요하겠어요. 계속 나아지고 있는데.”
의외의 위로에 내가 얼떨떨한 얼굴을 했다.
저런 말도 할 줄 아네.
“……그렇긴 하죠. 그럼 바로 시작할까요?”
“괜히 위로해줬네.”
엄살 부리는 이지아를 바닥에 내려놓고 마음의 평화를 껐다. 웃고 있던 이지아의 얼굴이 순식간에 굳어져 간다.
까득!
이지아가 이를 악물며 버텼다. 나는 곧바로 능력을 켜지않고 기다렸다. 지금의 훈련은 내 능력만을 발달시키는 게 아니었다.
“혀, 현우 씨…….”
이지아가 마음의 평화를 갈구했다. 눈에 깃든 건 좌절감과 희망.
반복적으로 능력을 껐다 켰다 하면서 깨달은 사실인데, 이지아는 마음의 평화를 끄면 능력의 반동으로 심리적으로 엄청난 타격을 받았다.
그렇지만, 훈련이 지속될수록 이지아가 버티는 시간도 늘어나만 갔다.
이에 대해 깊게 생각해봤고, 결국 결론을 내렸다.
주인과 오랫동안 붙어있던 애완견들의 경우 분리불안 장애가 있는 경우가 많다.
항상 함께 있던 주인이 사라지면 언제 올지 모르니 불안함을 느끼는 것이다.
그런 애완견들의 분리불안을 치료하는 방법은 간단하다.
반복적으로 집을 들락날락해주면 된다.
처음엔 1분, 그다음은 5분, 그다음은 10분.
처음에는 불안해하던 강아지도 주인이 반복적으로 왔다 갔다 하다 보면 날 버리지 않고 와주는구나, 라는 심적 안정감을 가지게 된다.
반복된 훈련을 통해 학습된 것이다. 지금의 좌절감을 곧바로 충족 시켜줄 수 있다는 경험이.
조금만 참으면 다시 편해질 수 있다는, 그런 생각이 이지아의 머릿속에 깊게 인식된 것이다.
그로 인해 이지아가 내 능력에 의존하지 않아도 버틸 수 있는 시간이 늘어만 났다.
*
청문회 당일날이 되었다.
나는 변호사의 도움을 받아 매니저의 역할에 충실했다.
띵동!
벨 소리에 문을 열자 여자들이 짐을 들고 우르르 안으로 들어왔다.
나이 들어 보이는 여자에게 물었다.
“출장 메이크업분들이시죠?”
“넵! 어제 통화했던 뷰티앤상떼의 최미나 대표입니다.”
최미나 대표와 함께 거실로 들어가며 대화를 나눴다.
“최대한 병약하게 보이도록 해주세요. 그렇다고 초췌해지진 않게 주의해주시고요.”
“아.”
이쪽 업계에서 몇 년을 일 했을 텐데 척하면 척이다. 최미나 대표가 알아들었다는 듯 고개를 주억거린다. 마지막으로 주의를 줬다.
“언론에 비쳤을 때 동정심을 사는 게 중요합니다. 나머진 알아서 해주실 거라 믿겠습니다.”
“네네, 맡겨만 주세요.”
최미나 대표가 짝짝 박수를 치며 방금의 요청사항을 부하 직원들에게 지시했다.
띠리링.
미리 번호를 교환했던 기자로부터 전화가 왔다.
“여보세요?”
매니저님 맞으시죠?
“네, 김현웁니다.”
언제쯤 출발하십니까?
힐끗 거실을 쳐다봤다.
이지아가 혼이 빠진 얼굴로 메이크업을 받고 있었다. 눈이 마주친 그녀에게 시계를 들어 툭툭 두들기는 걸 보여줬다.
이지아가 외쳤다.
“현우 씨, 두시간은 걸린대요!”
메이크업만 두시간이라.
“다섯시간은 걸리겠네요.”
알겠습니다.
통화를 끊자 곧바로 전화기가 울렸다.
변호사의 전화였다.
“여보세요?”
예, 현우 씨! 준비는 잘되고 있죠?
“그럼요.”
변호사가 자신감 있는 목소리로 말한다.
이건 뭐 갑자기 이지아 헌터가 책상 엎으면서 난리 치지만 않으면 무조건 이기는 싸움이니까요. 대본대로만 잘해주세요.
“하하. 지아 씨한테 잘 전달해놓겠습니다.”
네네, 청문회장에서 뵐게요.
전화를 끊고 인터넷에 접속했다.
수백 개의 기사들이 마구잡이로 쏟아져나오고 있었다.
이지아의 청문회 건으로 많은 댓글이 달려 있었다. 역시 대부분이 악플들이었다.
“쯧.”
귀신은 뭐 하나 몰라.
이런 새끼들 안 잡아가고.
짧게 혀를 차고 있으니까 이지아와 쑥덕대던 여직원들이 슬그머니 내게 다가왔다.
“저기, 매니저님…….”
“네?”
“방금 이지아 헌터하고 말씀 나눴는데…….”
직원이 말끝을 흐린다.
고개를 빼꼼히 내밀어 이지아 쪽을 쳐다보자 그녀가 입가를 가리고 쿡쿡대며 장난스러운 미소를 짓고 있었다.
여직원이 말했다.
“매니저님도 카메라 타는 만큼 메이크업을 하는 게 어떻겠냐고 하시더라고요.”
“네에? 누가 매니저까지 신경 쓴다고요?”
“아니요, 매니저님은 사실상 수행원이시잖아요. 보통 겸해서 준비하긴 해요.”
직원이 내 어깨를 힘주어 밀었다. 어어 하는 사이에 나는 이지아의 옆자리에 나란히 앉혀졌다.
거울로 눈을 마주친 이지아가 내 뚱한 얼굴을 보고는 웃음을 터트렸다.
“현우 씨, 표정 좀 풀어요. 그냥 메이크업 받는 건데 뭐 죽으러 가요?”
“두 시간이나 받잖아요. 지금 확인해놔야 할게 얼마나 많은데.”
“에이, 어제 몇 번이나 확인…….”
대화하는 우리에게 여직원들이 단호한 말투로 주의를 줬다.
“움직이시면 안 돼요.”
“넵.”
칼같이 대답한 이지아가 눈동자만 힐끔 움직여 내 표정을 살펴봤다. 그러곤 또 설핏 미소를 짓는다.
“……뭐가요?
“아하하. 표정 진짜 웃기다. 대표님, 이거 사진 찍어주실 수 있어요?”
“그럼요.”
찰칵.
사진을 찍은 대표가 핸드폰을 그녀에게 내밀었다. 이지아가 내 어깨를 요란스레 잡아당겼다.
“사진 봐요, 현우 씨.”
“메이크업 끝나면 지워요.”
“싫어요.”
“지워달라니까요?”
“싫다니까요?”
뒤에서 여직원들의 맑은 웃음소리가 들려온다.
쑥덕쑥덕.
자기들끼리 웃으면서 뭐라 대화하는데, 워낙 조용히 속삭여서 잘 들리지는 않는다.
그런데 이지아는 그게 잘 들렸던 건지 갑자기 말수가 적어졌다.
뭔데 그래?
괜히 궁금해져서 계속 물어봤다.
“직원들이 뭐라 했어요?”
“…….”
“뭐라 했냐니깐요?”
“…….”
침묵하던 이지아가 작게 뇌까렸다.
“……시끄러워요. 입 좀 다물고 있어요.”
* * *
자동차 문의 손잡이를 잡고 물었다.
“지아 씨, 준비됐어요?”
이지아가 가슴에 손을 얹고 습하, 숨을 고른다. 그녀가 떨리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네. 가요, 현우 씨.”
문을 비틀어 열었다.
찰칵찰칵찰칵!
기자들이 연신 카메라 셔터를 누르며 플래쉬를 터트렸다.
“어비스 공략을 실패한 뒤 잠적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화신 길드장과의 불화로 길드에서 나갔다는 소식이 사실입니까!”
“공략 실패 후 잠적한 유례없는 도피 행위 때문에 헌터로서 무책임하다는 의견이 국민들에게서 나오고 있습니다! 국민 여러분께 하실 말씀은 없으십니까!”
불라불라불라.
무작정 마이크부터 들이미는 기자들을 밀치며 지나갔다.
이지아는 생각했던 것보다 담담하게 반응했다.
“기자분들께서 질문하신 것들에 대해서는 청문회에서 대답 드리겠습니다.”
우리들은 청문회장까지 막힘없이 걸어갔다.
“지아 씨, 대본 기억하시죠?”
“어제 밤새도록 읽었어요.”
“당황하지 않고 연습한 대로만 하면 돼요.”
“저보다 현우 씨가 더 긴장한 거 같은데요?”
긴장? 내가?
당연히 긴장되지. 지금도 심장이 미치도록 벌렁벌렁 뛴다.
이곳 청문회장은 한 달 전까지 직업도 없던 26살짜리가 올라갈 만한 무대가 아니었다.
그게 고작 보조하는 역할일지라도.
그런데도 내가 긴장한 티를 내지 않으려는 건…….
“긴장은 무슨. 제가 어디 가서 이런 걸로 긴장할 성격처럼 보여요?”
“음, 아니요.”
무대의 주인공으로 올라가는 이지아 역시 26살밖에 되지 않은 동갑내기였으니까.
더 커다란 무대로 올라가는 주인공 앞에서 엄살을 부릴 수는 없었다.
“지아 씨.”
“네?”
목에 걸린 단어를 집어삼켰다.
상상만 해도 부끄러워져서.
“……아니다. 빨리 참고인석으로 가세요.”
“네에?”
이지아가 눈을 크게 뜨고 쳐다본다.
“하던 말은 마무리해야죠. 그게 뭐예요?”
“아니, 아니에요. 슬슬 시작하는데 빨리 자리 가서 준비하세요.”
“뭔데요?”
궁금해하며 재촉하던 이지아가 결국 포기하고 참고인 석으로 떠나려 했다.
에라이, 시발.
그냥 하고 쪽팔려서 죽자.
머리를 긁적이던 내가 그녀의 등 뒤에 대고 외쳤다.
“지아야!”
“…?”
“쫄지말고 힘내! 기죽을 필요 없어!”
멍하니 있던 이지아가 뒤늦게 슬쩍 웃었다.
“응, 고마워! 현우야.”
이지아가 본인의 명패가 위치한 자리로 걸어갔다.
청문회 위원들과 참고인, 증인 모두가 자리에 섰다.
“청문회를 시작하겠습니다.”
드디어 청문회가 시작됐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