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S급들이 내게 집착한다-9화 (9/112)

〈 9화 〉 이지아 (9)

* * *

“지아 씨, 괜찮아요?”

넋 빠진 얼굴로 드러누워 있던 이지아가 대답했다.

“영혼에 큰 타격이 온 거 같아요…….”

그럴 만도 하지. 일주일 동안 능력을 연습한다고 꽤나 고생했으니까.

마음의 평화의 ON/OFF를 완전히 제어하기까지 제법 많은 횟수를 도전해야만 했다.

당연히 이지아의 정신에 크게 부담이 갔을 것이다. 능력을 다시 켠 지금이야 멀쩡한 정신으로 돌아왔지만.

“이제 구속복 좀 풀어주세요.”

이지아가 등을 내게 내밀었다. 구속복을 벗겨주며 달래줬다.

“계속하다 보면 익숙해질 거예요.”

“익숙해진다고요?”

이지아가 눈동자만 돌려 내 쪽을 보며 말했다.

“이 기분은 절대 익숙해지지 않을 거예요. 아마 평생이요.”

평생은 좀 곤란한데.

10년이면 나도 그만둘 거고.

구속복을 벗은 이지아가 수건으로 땀에 젖은 목덜미를 훔칠 때였다.

띠리링.

별안간 협회장한테서 전화가 걸려왔다. 이지아가 전화를 받았다.

­전에 지아 양이 요구했던 정보공개 청구한 건 말인데.

“이제 나왔나요?”

­그래, 지아 양의 이메일로 보내놨다네. 서면은 받았나?

“출석일이 이주 뒤였죠. 날짜 확인했어요.”

­얼추 마무리된 거 같군. 그럼 오늘 이후로 엠바고는 철회하지. 청문회 관련 기사는 바로 올라올걸세.

뚝.

이지아와 내 눈이 허공에서 마주쳤다.

“가죠, 빨리.”

“넵.”

이지아의 방으로 달려간 우리는 그녀의 컴퓨터로 이메일에 로그인했다.

[wldk123]

황당해서 물었다.

“공식 계정 이메일이 지아123이에요?”

“초등학생 때 만든 거라…….”

이지아가 땀에 젖은 머리를 뒤로 슥 넘기며 어색하게 웃었다.

“아, 동영상 다운됐어요. 현우 씨.”

“켜봐요.”

이지아가 긴장된 안색으로 동영상을 클릭했다.

딸칵!

*

이거 뭐야?

동영상을 전부 확인한 내가 황당해했다.

“이런 시…….”

깜짝 놀란 이지아가 눈을 크게 뜨고 나를 쳐다본다. 욕이 나오려는 걸 순간적으로 참아냈다. 이마를 짚으며 이지아에게 손을 내밀었다.

“…?”

“핸드폰 줘봐요.”

이지아가 순순히 핸드폰을 건네줬다. 곧바로 협회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현우 씨?!”

당황해서 말리려 드는 걸 손을 들어 저지했다.

통화음이 이어지는 동안 이지아가 안절부절못했지만 차마 날 말리진 못했다.

그만큼 화나 보이는 거겠지.

­지아 양?

담담한 협회장의 목소리.

전화를 걸 줄 알았다는 듯한 태도였다.

“안녕하세요, 협회장님. 저는 이지아 씨의 전속 매니저인 김현웁니다.”

­매니저?

협회장이 의아해하며 물었다.

­지아 양은 길드를 나온 거로 알고 있는데?

“프리랜서라고 매니저가 필요 없겠습니까. 고용주가 돈만 주면 뭐든 하는 거죠.”

­그래? 당돌하군.

당돌해?

너구리 새끼가.

누가 할 소리를 하고 있어.

“보내신 영상은 잘 봤습니다.”

메마른 입술을 문지르며 질문했다.

“원본, 어딨습니까?”

불편한 침묵이 감돌았다. 수화기 너머에서 협회장이 어이없다는 듯 되물었다.

­무슨 원본 말인가?

“동영상 원본 말입니다.”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군.

시치미를 떼시겠다.

하긴, 순순히 고백할 거였으면 이딴 짓거린 하지도 않았겠지.

“지아 씨의 랭크를 하향시킬 때 해당 동영상이 강력한 증거로 뒷받침된 건 틀림없겠죠?”

­…….

“그런데 왜 동영상 속에서는 지아 씨가 싸우는 장면들이 전부 교묘하게 편집됐냐, 이 말입니다.”

동영상 속에서 벌어지는 치열한 전투.

넘어가는 영상 사이에 이지아의 얼굴이 보이는 장면은 단 하나도 없었다.

“혹시, 증거물을 의도적으로 편집하고 조작하신 겁니까?”

­허… 조작?

협회장이 역정을 냈다.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네만, 자네가 누구한테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는 슬슬 눈치채야 할 거 같군.

어비스 공략대는 S랭크 헌터 이지아를 포함한 대한민국 최정예 공략대였다.

최소 A랭크로 이루어진 이 공략대는 각기 다른 길드에서 에이스들을 차출해 만들어진 한국의 드림팀이었다.

어비스 던전의 난이도가 그만큼 높기 때문이다.

그래서 살짝 의심이 들었다. 어쩌면 이지아가 실수했기에 그녀 혼자만 랭크가 하향된 걸 수도 있다고.

그런 거라면, 그냥 이지아에게 랭크 하향을 달게 받으라고 설득하려 했다.

실수한 대가를 치르는 것은 당연한 이치다.

안되는걸 되게 하는 마법 같은 건 부릴 자신도, 능력도 없었다.

그런데 노골적으로 진실을 감춘 동영상을 보고 마음이 뒤바뀌었다.

장난도 정도껏 쳐놔야지.

너무 노골적이라, 오히려 이지아가 결백해 보일 정도였다.

“길드장들끼리 담합해서 지아 씨 한 명으로 퉁치려 한 겁니까?”

­…….

협회장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는다.

어찌 됐건 간에, 결국 어비스 던전의 공략은 실패했다.

대중들의 눈과 귀가 책임의 소재를 찾고 있었다.

그들의 눈길이 어디로 향할지는 명확했다.

바로 협회장과 길드장.

위에 선자는 그만큼 책임이 막중한 법이다.

흥분된 머릿속이 빙글빙글 돌아간다.

입 밖으로 정제되지 않는 말들이 쏟아져 나왔다.

“공략 실패에 대한 책임을 한 명에게 몰아넣으려고 했군요. 마침 공략대 중에 가장 유명한 지아를 미끼로 골라서요?”

이지아는 빈말로도 주도적인 성격이라 말해줄 수 없었다.

그렇기에 그녀를 쏙 골라내서 내팽개친 거겠지.

반항하지 않을 것이란 걸 알고.

손쉬운 사냥감이었을 것이다.

남들은 이제 막 사회에 발을 디딜 나이의 풋풋한 26살짜리 풋내기.소심한 성격과 편집증적 증상을 보이는 정신병자.

S급 헌터라는 직함과 환상이 벗겨지면, 거기에는 노회한 괴물들이 요리하기 편한 먹잇감밖에 남지 않는다.

사실, 그들의 의도는 제법 적중했다.

나만 아니었다면.

“이딴 말도 안 되는 동영상이나 보내서 어물쩍 넘어가려 하시고…… 저희가 지금 빙다리 핫바지로 보이십니까, 협회장님?”

­……입이 험하군.

“배운 게 이런 거밖에 없어서요.”

­한 마디도 지려고 하질 않아.

“져주게 생겼습니까, 지금?”

만약 이지아가 나와 만나지 못했다면.

협회장과 길드장들의 수작질에 놀아난 이지아는 악플을 견디지 못하고 자살했을 것이다.

단순한 가정이 아닌 사실이었다.

직전까지 이지아는 자살을 생각하고 있었으니까.

그런 만약의 가정이, 협회장이란 거물을 상대로 대가리를 들이밀게 만들었다.

“2주 뒤에 청문회였죠.”

­…….

“이딴 동영상을 보여주면 국민들이 뭐라 할지 심히 궁금하군요. 준비한 건 이게 전부입니까?”

­당시 공략대원들의 증언이…….

“하!”

작게 코웃음을 치며 비웃어줬다.

“청문회 가서 어디 한 번 실컷 떠들어 보십쇼. 공략의 실패를 공략대장이 아닌 일개 대원이 지는 게 맞는 건지. 그런데... 저딴 병신같은 동영상으로 증명이 가능하겠습니까?”

가능할 리가 없지.

“건투를 빌겠습니다, 협회장님.”

­너 이 새…….”

협회장의 말을 끝까지 듣지 않고 전화기를 꺼버렸다.

이러면 더 화나겠지, 십새끼.

돌아올 말이야 뻔한데 뭐하러 귀 기울여 듣고 있어?

어디 너도 한 번 빡쳐봐라.

씩씩거리며 흥분으로 달아오른 머리를 식히고 있으려니까 이지아가 내 어깰 톡톡 두드렸다.

“현우 씨. 현우 씨.”

고개를 돌리니 이지아가 히죽이는 웃음을 자꾸만 참으려 애쓰고 있었다.

그 표정이 얄미워 괜히 퉁명스러운 말투가 나왔다.

“……왜요?”

“아니요, 그냥요.”

뜸을 들이던 이지아가 물었다.

“왜 현우 씨가 저보다 더 화나 있어요?”

“화나잖아요. 지아 씨는 화 안 나요? 자기 일인데.”

옆에서 보기만 해도 속에서 이렇게나 열불이 나는데.

이지아는 자기 일이 아닌 것처럼 자꾸만 생글생글 웃으며 대답했다.

“그러게요. 신기하네요. 현우 씨 능력 때문일까요?”

멋쩍어진 내가 시선을 피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따라 일어나려는 이지아를 말리며 말했다.

“저는 변호사하고 통화해볼게요.”

“변호사요?”

“동영상도 도착했겠다. 누가 적인지도 알았겠다. 이젠 제대로 준비해서 되갚아줘야죠.”

*

한유정이 남자의 심장에 칼을 찔러넣었다.

“컥!”

핏물을 토한 남자가 바닥에 쓰러진다. 한유정의 눈에 실린 살기가 서서히 사라지며 정상으로 돌아왔다.

“아, 아아……!”

한유정이 피투성이가 된 손을 내려다보며 죄책감에 몸을 떨었다.

한유정.

S랭크 각성자.

하지만 협회에는 집계되지 않는다.

어디까지나 비공식 랭크였으니까.

한유정이 각성한 첫날이었다.

협회에 검사받으러 간 그녀에게 안내원이 경악한 얼굴을 했다.

‘헉!’

‘왜요?’

‘자,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어딘가로 다급하게 전화 거는 안내원.

그리고 그녀를 포위한 헌터들.

한유정은 순식간에 포박됐다. 그런 그녀에게 협회장이 다가와 설명했다.

‘자네가 각성한 능력이 뭔지 아나?’

‘사, 살려주세요!’

‘천살성이라네.’

그때 한유정은 그게 무슨 의미인지 몰랐다. 그런 그녀에게 협회장이 손을 내밀었다.

‘앞으로 평범한 삶을 살지 못하겠지. 살의가 들끓어 주변인들을 해치고 싶어지게 될 게야. 그땐 날 찾아오게. 해결방법을 알려줄 테니.’

협회장은 순순히 한유정을 풀어줬다. 그녀는 집으로 돌아와 안도했다. 그리고 협회장을 다시 찾기까지 일주일밖에 걸리지 않았다.

‘도와준다고 했죠?’

‘그래.’

‘어떻게 도와줄 거죠?’

‘죽여도 되는 자들을 골라주지. 모두 죽어 마땅한 범죄자들이야.’

천살성.

이 능력을 각성한 각성자들은 하나같이 모두 비범한 잠재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예외 없이 대학살극을 벌이는 최악의 범죄자가 되었다.

천살성을 가진 각성자들은 들끓는 살의를 참지 못했다. 살의를 가라앉히기 위해서 인간을 죽이고, 또 죽였다.자신이 죽어가는 순간까지도.

그리고 그건 당연히 한유정도 마찬가지였다.

일주일 간격으로 찾아오는 강력한 살의. 순간을 넘기면 의식은 사라지고 손에 피를 묻힌 자신이 있었다.

협회장의 제안을 한유정은 받아들였다.

띠리링.

한유정이 퀭한 눈으로 핸드폰을 내려다봤다.

[개새끼]

그녀가 전화를 받았다.

­유정 양.

협회장의 목소리.

한유정이 퉁명스레 대답했다.

“일 끝났어요.”

­그건 알고 있네. 누가하는 일인데 의심하려고.

“그럼 무슨 일로 전화했어요?”

협회장이 넌지시 말했다.

­다음 임무를 내릴까 해서 말인데…….

“이번 주 할당량은 끝났잖아요.”

한유정이 날카롭게 쏘아붙였다. 능력을 악용하는 헌터들을 처리한다는 명목으로 암살자 노릇을 하고 있었지만, 그녀가 살인을 즐기는 건 아니었다.

­잘 알지. 유정 양이 이런 걸 싫어한다는 것도.

“아시면서 그런 이야길 꺼내는 이유가 뭐예요?”

­평소에 유정 양을 많이 돕고 있지 않은가. 이번 한 번만 도와주게.

협회장의 압박에 한유정이 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그녀가 내키지 않는 목소리로 물었다.

“……타깃은요?”

­이름이…… 아, 그래. 김현우군. 정보는 평소의 방법으로 보내주지.

“알겠어요.”

통화를 마친 한유정이 자리에 주저앉았다.

“싫어…….”

눈물이 볼을 타고 바닥으로 뚝뚝 떨어졌다. 그녀가 자신의 어깨를 부여잡고 흐느꼈다.

“이젠 싫어…….”

이런 능력 따위는 필요 없었다.

자신이 어쩔 수 없는 일이건만 지난 과거가 지독하게 원망스러워졌다.

주기적으로 사람을 죽이지 않으면 안 된다. 참고 참은 살의는 폭발했을 때 무차별적으로 쏟아지기 때문이었다.

살의를 막는 방법은 단 하나뿐.

죽음으로만 안식을 갖는다.

17살 소녀에게는 여러모로 힘든 선택뿐이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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