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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급들이 내게 집착한다-7화 (7/112)

〈 7화 〉 이지아 (7)

* * *

이른 아침, 침대에 기대앉아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무게감 있는 목소리.

일주일 전 나에게 재능이 없으니 그만두라던 트레이너였다.

“강훈 씨? 저 김현웁니다.”

­예, 현우 씨! 오랜만이에요. 일주일만이네요.

“통화되세요?”

­되죠, 되죠. 무슨 일 있으세요?

트레이너가 흔쾌히 대답했다. 이젠 수강생이 아니라고 불편해하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괜한 기우였나 보다.

아무리 그래도 1년간 얼굴 마주한 정이 있는데 내가 세상을 너무 각박하게 본 모양이었다.

“각성 능력에 대해 물어볼게 있어서요.”

­아…….

갑자기 안타까운 한숨을 내뱉는다.

아니, 내가 뭔 이야길 꺼냈다고?

­그, 현우 씨. 전에도 말했지만 헌터는 포기하시는 게 좋아요. 사람마다 재능이란 게…….

하하. 트레이너의 착각에 마른 웃음을 지었다.

이 사람이, 가슴 아픈 곳을 후벼파네.

“깔끔하게 포기했어요. 지금은 다른데 취업했고요.”

­와, 축하드려요. 근데 각성 능력은 왜……?

“취직한 곳에서 쓸 일이 있어서요.”

이지아가 욕실에서 공황 상태에 빠졌던 이후. 그녀의 강박증세가 더 심각해졌다.

본인은 아닌 척하고 있지마는, 집안에서 내가 조금이라도 움직일라치면 어떻게든 이유를 만들어서 따라붙었다.

‘현우 씨, 어디 가세요?’

‘주방이요.’

‘아, 저도 마침 목마른데…….’

‘제가 떠올까요?’

‘에이, 매니저가 무슨 노예 계약한 것도 아니고 어떻게 현우 씨한테 그런 잡일을 시켜요. 같이 가요.’

화장실까지 함께 가는데 한차례 크게 데였던 욕실은 말할 것도 없었다.

불편하지만 어느 정도는 감안했다.

월급을 그 정도로 받는데 밤에 한두 번 깨우는 것쯤이야.

하지만 다른 문제가 있었다. 인간의 생활반경이 항상 집에 국한되는 게 아니다.

지금은 이지아에 대한 소문이 잠잠해질 때까지 집에 틀어박혀 있는 다지만 다시 밖에 나가는 때가 오게 돼 있다.

그때 가서 과연 정상적인 생활이 가능할까?

밖에서도 집안에서의 일이 계속 반복될 것이다. 강아지 마냥 내 뒤꽁무니만 졸졸 따라다니겠지. 반대로 나도 이지아가 언제 발작할지 걱정하면서

쫓아다녀야 하고.

나는 마음의 평화를 개발시킬 필요성을 느꼈다.

­하긴, 1년 동안 전투술만 죽어라 훈련했었죠.

“그래서 각성 능력 개발에 대해 조언 좀 구하려구요.”

­…….

수화기 너머에서 트레이가 고민하는 기색이 느껴졌다.

­현우 씨, 각성 능력이 패시브였죠? 사람 마음 진정시켜주는.

“네.”

­보통 능력 쓰는 걸 근육이나 젓가락질로 표현 많이 해요. 쓰면 슬수록 익숙해지고 정교해지죠.

“그러니까요, 그래서 문제네요.”

마음의 평화.

사람의 마음을 진정시켜주는 이 능력은 자동 패시브였다.

내가 어떻게 뭘 건들고 말고 할 건더기가 하나도 없었다.

­아뇨, 현우 씨가 착각하시나 보네요.

하지만 트레이너는 그런 내 생각을 부정했다.

­액티브, 패시브는 헌터들이 구분하기 쉽게 하려고 만들어놓은 거지 사실 크게 의미 없어요.

“네?”

­어……. 저한테 잘 전화하셨네요. 저도 패시브 계열이거든요. 현직자들도 아는 사람만 아는 사실인데. 전에 제가 실례한 것도 있으니까, 특별히 알려드리는 겁니다?

“하하.”

­제 각성 능력인 마력에 대한 감응력을 올려주는 패시브로 예를 들어봅시다. 현우 씨와 똑같은 패시브 계열이죠?

“그쵸.”

­각성자가 마력을 다루다 보면 이 감응력을 조절 가능해지거든요. 낮추거나 강화하거나. 끄고 켜고. 결국 상시발동이긴 하지만, 조절이 가능하단 이야기죠.

그래서 어쩌라고.

­잘 모르시겠죠?

“네.”

­그냥 간단하게 해답만 말해드릴게요.

­능력의 바리에이션을 넓히면 돼요. 그럼 근육 붙는 것처럼 차근차근 강화되거든요. 현우 씨의 경우 능력이 워낙 특수하다 보니 강도를 조절하는 건 의미 없을 거 같고…….

고민하던 트레이너가 말한다.

­능력을 의식적으로 껐다가 켜면 되겠네요.

“어, 네? 끄라고요?”

­네, 능력을 계속 껐다가 켜보시라고요. 전자제품 전원 버튼 누르듯이, 반복적으로. 그럼 자연히 능력의 범위도 넓어질 거예요.

“숙달되는데 얼마나 걸릴까요?”

­하하, 그렇게 오래 걸리지는 않을 거예요. 하루면 감을 잡을걸요?

수화기 너머로 알람 소리가 들린다.

­응? 아, 저 PT 시간이 돼서……. 나중에 다시 전화주세요. 저희 언제 밥 한번 먹어요.

트레이너가 다급히 전화를 끝냈다.

“…….”

능력의 범위를 넓히고 싶으면 껐다 켜라니.

훈련 중에 이지아가 괜찮을지 모르겠다. 마음의 평화가 없으면 힘들어하는 건 내가 아니라 이지아니까.

계속 고민해봤지만 별다른 방법은 없어 보인다.

일단, 이지아한테 한번 말해보자.

*

거실 소파 위에 누워있던 이지아가 질색하며 대답했다.

“싫어요.”

이럴 줄 알았다.

훈련법을 설명해주자마자 인상을 있는 대로 찡그리더니 거절했다.

“지아 씨, 잘 생각해보세요.”

“뭐가요?”

“저희가 집에만 있는 건 아니잖아요.”

하다못해 영화를 보고 싶어 영화관을 가더라도. 사고 싶은 게 있어서 백화점을 가는 것마저도.

항상 혼자가 아니라 둘이 움직여야 한다.

“지금처럼 계속 버티면 어디 갈 때마다 착 달라붙어 있어야 하잖아요.”

“그럼 그냥 계속 착 달라붙어 있으면 되잖아요!”

홧김에 내지른 이지아가 아차 싶은 얼굴을 했다. 그녀가 붉어진 얼굴을 베개로 슬그머니 가렸다.

골머리가 아파져 오네.

“밖에 나가면 파파라치들 얼마나 많은지 알잖아요. 걔네 사진 찍어서 또 올릴 텐데 괜찮아요?”

“상관없어요. 악플 봐도 아무렇지도 않으니까요.”

“여자 전용 공간은요? 목욕탕이든, 화장실이든…….”

“참을래요.”

“청문회… 청문회는요? 저는 증인석까지 대동 못 해요.”

“그럴 거면 차라리 그냥 A 랭크할래요.”

이지아가 베개에 파묻혀 뭉개지는 발음으로 대답했다. 생떼 부리는듯한 태도에 나도 모르게 언성이 높아졌다.

“지아 씨! 이게 고집부린다고 되는 게 아니에요!”

이지아가 베개를 바닥에 확 집어 던지더니 마주 소리쳤다.

“고집은 현우 씨가 부리고 있잖아요! 이걸 제가 왜 해야 하는 건데요! 계약에도 없던 건데! 왜! 절대 안 해요!”

참자 현우야.

싸우면 내가 진다.

잠깐, 계약?

“그러고 보니 저희…….”

“네?”

“아직 계약서 작성 안 했는데…….”

“네에!?”

이지아가 어어, 하더니 이마를 탁 짚었다.

좋아, 이걸로 협상을 할 수 있겠다.

말싸움에서 이겼다는, 소소한 성취감을 느낄 때였다.

“……그래서요?”

이지아의 눈동자에 불빛이 은은하게 서렸다. 기세가 폭발하듯 터져 나왔다.

“지금 그만두시겠단 거에요?”

포식자를 앞에 둔 초식동물처럼.

몸을 꼼짝도 할 수가 없었다.

갑자기 변한 이지아의 분위기에 긴장으로 온몸이 굳어졌다.

무슨 생각을 하는 건지 모르겠는데 눈초리가 심각하게 위험해 보였다.

순간 꿈에서 봤던 광경이 퍼뜩 떠올랐다.

시야 하나 보이지 않는 지하실.

꿈속에서 내게 속삭였던 이지아의 말.

‘현우 씨가 없으면 어차피 저는 죽는걸요.’

‘이곳에서 저하고 같이 살면 되는 거예요.’

‘영원히.’

시발, 아무리 이지아가 정신적으로 몰려 있어도 그 정도까진 안가겠지.

……안가겠지?

다급히 입을 열었다.

“지아 씨가──”

“……?”

“방금 말한 훈련만 협조해주시면 지금 당장 계약서 작성해줄 수 있는데…….”

협상안을 제시하자 이지아의 기세가 순식간에 사그라들었다. 혼이 빠진 얼굴로 긴 속눈썹만 마구 깜빡이길래 툭 던지듯 물었다.

“계약서, 안 써요?”

“아….”

내 말의 의미를 깨달은 그녀가 다급히 외친다.

“자, 잠깐만요!”

이지아가 어딘가로 날듯이 뛰어간다.

우당탕!

물건을 뒤지는 소리.

쨍그랑!

유리창이 깨지는 소리.

“어딨어? 어딨어? 펜 어딨어?”

이지아의 혼잣말까지.

소파에 앉아 기다리고 있으니까 이지아가 헐레벌떡 돌아왔다.

“혀, 현우 씨! 많이 기다리셨죠?”

방금 전 이지아가 기세로 날 짓누르던 게 떠올라 괜히 괘씸하게 느껴졌다.

직장 동료… 사실 부하긴 하지만.

어쨌든, 같이 일하는 사람을 그렇게 겁박하려 하다니?

손톱을 다듬으며 심드렁하게 대답했다.

“아뇨, 뭐…… 좀 지루하긴 했는데 그게 계약에 크게 영향을 줄지는…….”

“자, 잠깐만 기다려주세요. 계약서 바로 쓸게요.”

“천천히 하세요. 천천히. 어디 안 가니까.”

‘어디 안 가니까.’에 가득 힘을 실어 말했다. 움찔한 이지아가 바닥에 엎드려 종이 위에다가 펜을 필사적으로 움직였다.

“다 썼어요!”

“줘보세요.”

계약서는 꼼꼼히 읽어야지.

그것도 수기계약서인데.

마구 휘갈겨 쓰던 것치고는 깔끔한 글씨체로 정갈하게 적어놨다.

월급 맞고, 복지 맞고, 근무 조건 맞고.

그 짧은 사이에 이걸 다 고려해서 적었네. 감탄하면서 지나가려던 때 거슬리는 문장이 눈에 들어왔다.

[계약 기간: 2021­03­27~ 2121­03­26]

100년? 엘프인가.

어이가 없어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물었다.

“지아 씨. 계약서에 이상한 부분이 있는데요.”

“예, 네? 이상하네요. 그런 게 있을 리가 없는데에…….”

이지아의 눈동자가 불안하게 좌우로 흔들린다.

“지아 씨, 이게 무슨 나라나 기업 간의 계약서도 아니고…… 근로계약서에 백 년이 말이 돼요?”

아하하. 어색하게 웃은 이지아가 숫자 부분을 손끝으로 문질렀다. 잉크가 가볍게 지워지는 걸보고 다짐했다.

원본은 내가 가지고 있어야지.

[계약 기간: 2021­03­27~ 2031­03­26]

“이거지.”

10년.

이지아의 우울증이 낫기에는 충분한 시간이 아닐까?

그런 기대를 품어본다.

서명란에 사인을 했다.

“너무 짧은데……나중에 늘리지 뭐.”

이지아의 혼잣말은 무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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