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화 〉 이지아 (6)
* * *
식사가 끝난 뒤.
이지아는 소파에 엎드려 핸드폰을 만지작거렸다.
“흐응, 흥~”
콧노래까지 부르며 발을 휘휘 젓길래 뭔가 싶어 쳐다보니 기사에 실린 악플을 정독하고 있었다.
“……괜찮으세요?”
“그럼요! 끄떡없어요!”
이지아가 자신만만하게 웃었다. 그녀는 아직도 자신의 상태가 신기한지 틈만 나면 핸드폰을 들여다봤다.
“이건 스샷으로 찍어 놓고 나중에 한 번 더 봐야지.”
그 와중에 인상 깊은 악플을 발견했는지 손가락을 꼬물거리며 스크린샷까지 찍고 있었다.
그 마음이 이해 가면서도 퍽 안쓰러웠다.
사람이 얼마나 악플에 시달렸으면 저렇나 싶기도 하고.
그건 그렇고.
“지아 씨.”
“네?”
“여기 욕실이 어디죠?”
어제 많은 일이 한꺼번에 벌어져서일까. 쓰러지듯 잠들어서 미처 목욕하지 못했다.
“이쪽으로 쭉 내려가서──”
이지아가 친절히 설명해줬다. 더럽게 멀고 복잡하네. 집이 워낙 크고 넓다 보니 어쩔 수 없나 보다. 안내해주겠다는 그녀를 말리고 혼자 욕실로 향했다.
욕실에 들어가자마자 옷을 훌러덩 벗고 샤워기를 틀었다.
끼익!
쏴아아아아아──!
찬물을 뒤집어쓰니 복잡한 생각들이 정리된다.
앞으로 해야 할 일이 많았다.
일단 이지아의 청문회 건.
청문회에서 공격당할만한 논란거리를 미리 파악해놓고 반박 자료들을 준비해야 한다.
이지아에게 길드라는 방파제가 사라진 이상, 앞으로 만나는 모든 조직과 인간들이 적이라고 생각해야 한다.
멘탈 약하고 소심한 이지아에게는 인맥이라고 할 만한 게 있을 것 같진 않으니까.
너무 차별적인 시선인가?
게다가 눈앞에 닥친 일이 그뿐만인 건 아니었다.
내가 가장 신경 쓰는 건 이지아의 우울증과 강박증세였다.
이지아의 반응을 떠올려보면, 그녀는 지금 우울증에 시달릴 때로 돌아가는 걸 지극히 두려워하고 있었다.
그리고 우울증을 잊을 수 있는 손쉽고 강력한 처방전이 바로 나였다.
그래서일까, 이지아가 나를 속박하려 든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이거에 대해선…….
솔직히 감이 잡히는 해결방법이 없었다. 같이 지내다 보면 이지아의 상태도 많이 나아지지 않을까 하는 기대뿐이다.
“후.”
세상만사 참 간단한 일이 없네.
물줄기를 맞으며 느긋한 한숨을 내쉴 때였다
갑작스레 와장창 가구가 박살 나는 소리가 들렸다.
히이이익!
여자의 날카로운 비명.
무슨 소리지?
샤워기의 손잡이를 잡고 돌렸다. 물줄기가 그쳤다. 문 쪽에 다가가 귀를 기울였다.
꺄아악──!!
귀에 익은 목소리.
분명 이지아의 목소리였다.
이 집에 나 아니면 이지아밖에 없는데 당연하겠지.
그건 그렇고 갑자기 왜 비명을 지르지? 영화나 소설도 아니고 설마 바퀴벌레라도 본 거로 난장 피우는 건 아니겠지?
쿵쿵쿵!
바닥을 찍는 발도장 소리가 들렸다.
S급 헌터한테 무슨 일이 있겠냐마는…….
괜히 걱정되는 것도 사실이라 큰 소리로 물었다.
“지아 씨? 무슨 일 있어요!?”
쿵쿵쿵!!
발도장 소리가 화장실 쪽으로 가까워진다. 발바닥에 진동이 느껴질 정도다.
콰직!
욕실 문이 박살 나며 이지아가 처들어왔다. 그녀가 나에게 달려들었다.
“지아 씨!?”
이지아가 물에 젖은 내 몸을 신경 쓰지 않고 꽉 끌어안았다.
“흐악… 히이익……!”
나를 안은 이지아가 몸을 바들바들 떨었다. 눈을 보니 초점 없이 마구 흔들리고 있었다. 패닉상태에 빠진 모양이었다.
“아, 악플이…….”
“악플이요?”
“나, 나한테 주, 죽으라고…… 모, 몸 팔아서 S급 된 창녀라고…….”
“어떤 개십새…… 아니지, 지아 씨 제 능력 아시죠?”
덜덜 떨던 이지아가 멍하니 중얼거렸다.
“능력… 능력……?”
“마음의 평화잖아요. 왜 갑자기 악플을 신경 쓰게 됐어요?”
“혀, 현우 씨가 요, 욕실 가고 얼마 있다가 갑자기…… 시, 심장이 막 뛰었어요.”
이지아가 횡설수설하며 설명했다. 그녀의 말을 듣던 나는 지금이 무슨 상황인지 깨달았다.
이지아의 저택은 거대했다. 카페 바스타드 매장보다도 더.
마음의 평화는 카페 바스타드를 간신히 감쌀 정도의 영향력을 발휘했다.
그것마저도 내가 집중했을 때의 이야기.
거실에서 욕실까지의 거리를 어림짐작으로 잡아 생각해봤다.
확실히 카페 바스타드보다 더 멀찍이 떨어져 있었지.
미처 생각지도 못한 문제에 스스로를 자책했다.
빌어먹을. 내 실책이었다. 어째서 그런 부분들까지 고려하지 못 한 거지?
희게 웃으며 악플을 구경하던 이지아가 한순간 어떤 아픔을 받았을지, 도저히 상상도 가지 않았다.
“지아 씨, 이제 괜찮아요.”
젖은 손으로 이지아를 마주 안아줬다. 그녀의 떨리는 어깨가 조금씩 사그라들었다.
“…….”
“…….”
1분 정도 지났을까.
슬슬 팔다리가 저렸다.
이상하네, 아직도 진정이 안 됐나? 마음의 평화 약발이 이 정도로 약할 리는 없는데.
슬쩍 팔을 빼려 했다.
당황한 이지아가 다급히 얼굴을 내 품에 파묻었다.
“자, 잠깐만요!”
방금 전과 다르게 이성이 느껴지는 목소리였다.
뭐야, 괜찮아진 거였어?
“지아 씨? 이제 진정되신 거 맞죠?”
걱정스레 묻자 이지아가 품속에서 미약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네.”
이지아가 들릴 듯 말듯 작게 속삭이며 대답한다.
내가 곤란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저, 그럼 나와주셔야…….”
말을 하던 내가 입을 슥 닫았다. 이지아의 머리카락 밖으로 살짝 삐져나온 귀 끝이 벌겋게 달아올라 있었다.
맞다, 나 지금 알몸이었지.
설상가상 샤워하던 도중이었다.
내 몸을 끌어안은 이지아의 잠옷이 물기에 젖어 그녀의 피부에 착 달라붙었다.
침을 삼켰다.
꿀꺽.
목울대가 크게 움직인다.
침 삼키는 소리가 들렸을까?
들리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
어정쩡하게 서로를 끌어안고 있기를 한참.
이지아가 고개를 푹 박은 채로 웅얼거렸다.
“……현우 씨.”
“네?”
“……누, 눈 좀 감아주세요.”
눈을 질끈 감았다.
스윽, 스윽.
이지아가 품에서 떨어져 나가며 잠옷의 천이 내 피부를 스쳤다. 잠시 뒤 이지아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이, 이제 눈 뜨셔도 돼요.”
“완전히 나간 거죠?”
“……네.”
그 말을 듣고 비로소 눈을 떴다. 입구 쪽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머리카락이 삐쭉삐쭉 보이는 걸 보니 박살 난 문 옆에 기대앉아있는 모양이었다.
“……현우 씨.”
이지아가 울먹였다.
“정말, 정말정말 죄송해요…….”
선반에서 수건을 새로 하나 꺼냈다. 수건으로 몸의 물기를 털었다.
이걸 뭐라 말해주지?
오히려 좋았습니다? 이건 좀 변태 같은데. 이지아도 그렇겠지만 이런 말을 하고 나서 멀쩡히 얼굴을 마주 볼 자신이 없다.
솔직히 아직도 머리가 상황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었다. 고민하고 있으니까 내 침묵이 불안했던 걸까, 이지아가 계속해서 사죄했다.
“이 정도일줄은 저도 생각도 못 했어요.”
“죄송해요, 현우 씨…….”
“현우 씨하고 같이 있던 하루 동안에 적응해버린 건지, 갑자기 예전으로 돌아가니까 너무 놀라고 힘들었던 거 있죠.”
“그때 하필 악플을 보고 있어서…….”
“염치없지만 제 사과 받아주실 수 있으세요?”
“앞으로는 이런 일 없도록 각별히 주의할게요.”
“샤워하고 있는데 깜짝 놀라셨죠? 저였어도 정말 놀랐을 거예요. 제가 생각해도 무례한 행동이었으니까요.”
“죄송해요. 정말 죄송해요.”
“다음부터는 노크하고 밖에서 기다리고 있을게요. 제 생각만 하고 너무 경우 없이 무작정 쳐들어간 거 같아요.”
아니 시발.
언제까지 말하고 있을 생각인 거야.
살짝 섬뜩해져서 고개만 빼꼼 문밖으로 내밀어 이지아를 찾았다.
이지아는 바닥에 주저앉은 채로 엄지손톱을 잘근잘근 씹고 있었다.
능력의 영향 덕분인지 전처럼 피가 나올 정도로 심각하진 않았다.
헛기침하며 시선을 끌었다.
“그…….”
이지아가 반색하며 고개를 홱 돌렸다.
“저는 진짜 신경안쓰니까 진정하세요. 많이 놀라셨죠?”
“네, 넷…….”
“옷만 입고 나갈 테니까 잠깐만 기다려주세요.”
“네…….”
부탁한 대로 이지아는 내가 나올 때까지 입 다물고 가만히 기다려줬다. 바닥에 떨어진 나무 파편을 조심히 피하며 나갔다.
“지아 씨. 잠깐 봐봐요.”
웅크리고 앉은 이지아의 소매를 잡아당겼다. 이지아가 당황하며 내 손을 뿌리 치려고 했다.
“욕실… 제 알몸 보셨는데….”
“…!”
어딜 감히.
이지아의 반항은 순식간에 진압했다. 그녀가 조심스레 팔을 내밀었다. 소매를 걷어 손목을 확인했다.
핏줄기가 기다랗게 그어져 있었다.
“자해하셨었네요?”
이지아가 설핏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가 눈을 내리깔며 내 시선을 피했다. 한숨을 내쉬며 이지아의 소매를 잡아 방으로 끌고 갔다.
“어? 어어?”
이지아가 흐느적거리며 끌려왔다. 진정하도록 침대 위에 앉혀놓고 서랍장을 뒤적였다.
“…자해한 건 어떻게 아셨어요?”
뒤에서 이지아가 떨리는 목소리로 묻는다.
“전에 봤어요. 손목에 자상 있는 거. 한 번이 어렵지 두 번은 쉽잖아요.”
“카페에서 보신 거에요?”
“집에서도 볼 기회는 많았죠. 요리할 때 소매 걷었잖아요.”
혹시나 싶어 확인해봤는데 역시나였다. 그 짧은 사이에 자해한 것도 참 능력이다.
“아, 여깄다.”
원하던 걸 찾은 내가 침대 위의 이지아에게 다가갔다. 이지아의 어깨가 움츠러들었다.
“손목 줘봐요.”
아직 여물지 않은 상처에다가 연고를 발라줬다. 이지아가 눈썹을 찡그렸다. 그 모습이 사뭇 신기해서 물었다.
“S급헌터가 이런 거로 아파해요?”
“……아픈 건 똑같이 아파요.”
“아파할 거면 자해는 왜 해서…….”
“시, 시끄러워요.”
이지아가 퉁명스레 반응했다.
철퍽, 철퍽.
골고루 퍼 바른걸 꼼꼼히 확인한 뒤 밴드까지 붙였다.
좋아, 깔끔하군.
“다 됐어요.”
“그, 그럼 저는 방으로 돌아가 볼게요!”
황급히 떠나려는 이지아의 손목을 꾹 잡아당겼다. 힘으로 빼내려면 손쉽게 빠져나갔겠지만 이지아는 얌전히 있었다.
“지아 씨.”
“네?”
“앞으로 아무리 힘들더라도 자해는 하지 마세요. 자살도 생각하지 마시고요.”
진짜.
매일마다 이럴 거라 생각하면 심장에 무리 온다.
다음 날 이지아가 목이라도 매달고 있으면 거품 물고 쓰러질지도 모른다.
이지아가 작게 뇌까렸다.
“……네.”
“약속해주세요.”
“약속할게요.”
대답을 듣고 나서야 손목을 놔줬다. 이지아가 할 말이 있는 듯 서성대다가 밖으로 후다닥 뛰쳐나갔다.
그녀가 문을 닫기 전에 고개만 빼꼼 내밀며 외쳤다.
밝은 목소리로.
“현우 씨! 그거 아세요?”
“네?”
“역시 저한텐 현우 씨가 필요한 거 같아요!”
“그거야, 저 같은 인재는 당연…….”
히죽 웃으며 능청스레 반응하려던 내 뺨이 움찔 굳었다. 이지아와 눈이 마주쳤기 때문이다.
이지아의 눈동자가 나를 지그시 쳐다보고 있었다. 퀭한 눈동자에는 열망이 깃들어 있었다.
다시는 방금과 같은 일을 겪고 싶지 않다는, 그런 결의와 처절함이 집착에 가까운 감정으로 변해 나를 옭아맸다.
이지아가 다짐하듯 혼잣말을 작게 속닥였다.
“역시, 저한테는 필요한 거 같아요.”
끼익.
문이 닫혔다.
이지아가 옆방에 들어갈 때까지.
나는 숨도 쉬지 못하고 굳어있었다.
* * *
똑똑!
“혀, 현우 씨? 주무세요?”
한밤중에 이지아가 떨리는 목소리로 나를 불렀다.
아닌 밤중에 홍두깨도 한두 번이지.
이게 뭐 하는 짓인지 모르겠네.
뻗친 머리를 벅벅 긁으며 문을 열었다.
이지아가 얼굴을 붉히며 다리를 배배 꼬고 있었다.
“네, 지아 씨. 무슨 일이세요?”
발을 동동 구르던 이지아가 우물거리며 입을 열었다.
“저, 화장실…….”
그럴 거 같더라.
고개를 끄덕이며 문을 닫고 나갔다. 우리는 함께 화장실로 이동했다.
“어디 가시면 안 돼요.”
이지아가 신신당부하며 화장실에 들어갔다.
[바람을 타고 날아오르는 새들은 걱정 없이.]
이지아가 화장실 안에서 노래를 틀었다. 소리가 나는 게 부끄러운지 볼일 볼 때마다 이런다.
욕실 사건으로부터 일주일.
지금은 이지아가 화장실 갈 때도 같이 따라다녀줘야 했다. 반대로 내가 화장실을 가고 싶어도 이지아를 데리고 가야 했다.
숙소만 같이 쓰면 될 줄 알았는데, 집안에서도 무조건 함께 움직여야 하는 죽마고우 신세라니.
초갈인가 무슨.
현우 씨, 계세요?
불안에 떠는 목소리. 하품을 멈추고 바로 대답해준다.
“네, 있어요.”
…….
이러면 한동안 잠잠해진다. 그럼 또 묻는다.
현ㅇ…….
“있어요.”
쏴아아아아!
물 내려가는 소리가 들린다.
끼익.
화장실에서 나온 이지아가 연신 헛기침을 하며 내 눈치를 살핀다.
“호, 혹시 사자성어 좋아하세요?”
“네?”
또 뭔 뜬금없는 소리야?
“불가항력이라고 자연재해나 천재지변 같은 인간의 힘으로 어쩔 수 없는──”
귓등으로 흘려들으며 내 방으로 걸어갔다. 이지아가 떨어질세라 따라왔다. 방문을 닫고 들어가려는데 이지아가 수줍게 인사를 건넸다.
“……자는데 깨워서 죄송해요. 주무세요.”
나도 마주 인사하며 고개를 꾸벅였다.
아무래도 해결책이 필요해 보였다.
*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