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S급들이 내게 집착한다-4화 (4/112)

〈 4화 〉 이지아 (4)

* * *

“현우 씨, 잠깐만 실례할게요. 사장님하고 대화 나누고 계세요.”

이지아가 내게 양해를 구하더니 다급히 가게 밖으로 나갔다.

우당탕!

사장과 박지영이 망아지처럼 테이블로 뛰어왔다.

“김현우! 야, 인마! 뭐야 인마!”

“오빠! 방금 이지아 맞죠? 그쵸?”

어미를 쳐다보는 새끼 새들마냥 삐약삐약대는 둘에게 고개를 끄덕여줬다.

“꺅! 방금 보니까 사이가 심상치 않아 보이던데…….”

“그런 거 아니야.”

“우리가 다 들었는데 아니긴 무슨.”

피식.

박지영이 다 알겠다는 듯 배려하는 웃음을 지었다.

“오빠가 그렇다면 그런 거겠죠 뭐.”

박지영의 되지도 않는 마음 씀씀이는 무시했다. 중요한 건 그게 아니니까.

“형, 말씀드릴 게 있는데요.”

“응? 중요한 거냐?”

“예, 뭐 좀…….”

이젠 이지아하고 일하게 됐으니까.

카페 바스타드에는 나오지 못한다. 미리 말해놔야지. 이지아도 그거 때문에 자리를 비워준 거 같고.

“그런 건 나중에 말하고 썰이나 풀어봐.”

“…….”

말을 들을 생각이 없어 보였다. 둘은 계속해서 내게 이지아에 관한 것들을 물어봤다.

“그걸 제가 어떻게 알아요.”

그때마다 난 모른다고 대답했다. 본 지 하루밖에 안됐는데 무슨 게임을 하는지는 내가 어떻게 알아?

그러자 사장과 박지영이 화를 내며 따졌다.

“아니! 그걸 니가 모르면 어떡해?”

“오빠 너무 한 거 아니에요?”

“……?”

옹기종기 모여 떠들고 있으려니 문이 벌컥 열렸다. 이지아가 쇼핑백 하나를 어깨에 걸치고는 위풍당당하게 걸어들어왔다.

“헤헷, 오셨습니까. 이지아 헌터님.”

사장이 비굴하게 손을 비비며 맞이했다. 이지아가 성큼성큼 걸어오더니 내 손목을 탁 붙잡았다.

“현우 씨는 제가 데리고 갈게요.”

이지아가 사장에게 통보했다.

“뎃…? 뭐라고요?”

사장이 어벙한 얼굴로 되물었다.

미친년인 줄 알았던 여자가 사실은 S급 헌터였고, S급 헌터가 사실 자기네 가게의 알바생과 아는 사이였고, 이제는 알바생을 데리고 간다니 당황스럽겠지.

“그게 무슨……?”

사장이 나를 쳐다봤다. 설명을 바라는 눈빛이었다. 어깨를 으쓱여줬다.

“그러니까 아까 말씀드린다고 했잖아요.”

“무, 무슨 말인데?”

“저 지아 씨하고 같이 일하게 됐어요. 카페 그만둬야 할 거 같아요.”

“그걸 당일 날 말하는 게 어딨어, 인마!”

사장이 씩씩거리며 소리쳤다.

맞는 말이었다. 당일 날 갑자기 그만둔다고 하면 아무리 사장이라도 화나겠지.

“현우 씨, 괜찮아요. 이런 건 저한테 맡겨주세요.”

“아뇨, 제 일인데…….”

“말했잖아요. 현우 씨는 그냥 제 옆에 있어 주기만 하시면 돼요.”

지아가 싱긋 웃더니 앞으로 나섰다. 그녀가 쇼핑백을 사장에게 내밀었다.

“이게 뭔데요?”

사장이 퉁명스레 대답했다. 귀중한 인력을 빼가는 이지아는 더이상 손님이 아니란 의미였다.

“한 번 열어보세요.”

의구심을 가지며 쳐다보던 사장이 쇼핑백을 받았다.

“헉!”

사장의 눈알이 빠질 듯 튀어나왔다.

“위로금이에요. 감사의 의미로 성의도 조금 담아봤어요.”

뭐야? 뭔데 저렇게 놀라?

호기심에 나도 내용물을 훔쳐봤다.

“…….”

돈뭉치가 수북이 쌓여있었다.

밖에 나갔다 온다는 게 돈 찾으러 간 거였어?

시선을 느낀 사장이 쇼핑백을 뒤로 홱 숨겼다. 그가 내게 어색한 웃음을 지었다.

“뭐해? 너 아직도 있었어? 빨리 이지아 헌터님 따라 나가야지.”

“형, 카페는…….”

“걱정 말고 좀 가라고! 가!”

다시 돌려달라고 할까 봐 무서운지 사장이 다급히 재촉했다.

승낙은 떨어졌다.

이지아가 볼 것도 없다는 듯 몸을 돌렸다. 그녀가 내 팔목을 잡고 당겼다.

“가요, 현우 씨.”

“네? 네넵!”

밖으로 나온 이지아가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이지아! 너 대체 전화를 왜 안 받아!! 밖에 무슨 난리 난 줄 알아!? 지금 어딨어!?

“저 길드 탈퇴할게요.”

­…뭐?

“길드 탈퇴한다고요. 위약금은 바로 보내드릴게요.”

­그게 대체 무슨 의미야? 지금 폭발하려는 인터넷 여론 간신히 틀어막고 있는 게 누구 덕분 인줄 알아?

전화 속 남자가 으름장을 놓았다. 이지아가 코웃음 쳤다. 그녀는 더이상 여론에 집착하지 않았다.

“이젠 그런 거 필요 없어요. 더 좋은 방법을 찾아냈거든요.”

­이지아!!

“어비스 공략대에 무리하게 집어넣은 건 길드장님이었잖아요. 알아서 하세요.”

뚝!

이지아는 자기 할 말만 하고 전화를 끊어버렸다. 그녀가 다시 스마트폰을 귀에 가져다 댔다.

어이구, 바쁘다 바빠.

“협회장님?”

이번엔 협회장이야?

­……지아 양? 자네 지금 어딘가?

“중요한 건 그게 아니죠. 협회장님. 개인적으로 찾아봤어요. 어비스 공략대 중 랭크 하향 조정된 랭커는 저뿐이더라구요.”

­그건…….

“변명은 됐어요. 당시 현장 카메라 정보 공개 청구 요청할 테니까 보내주세요. 청문회 일정 다시 잡아주시고요.”

­자네 청문회 만큼은 나서기 싫다고 하지 않았나?

“그랬었는데…….”

말을 삼킨 이지아가 힐끔 내 얼굴을 쳐다봤다.

“이젠 별로 상관없어요.”

수화기 너머로 피곤한 한숨 소리가 나왔다.

­……갑자기 사람이 바뀌었군. 정말 지아 양 맞나?

“협회장님 번호 아는 사람이 몇 명이나 있겠어요.”

­알겠네. 청문회 일정은 조율해보도록 하지.

뚝!

연락이 끊겼다. 이지아가 스마트폰을 손에 쥐고 몸을 덜덜 떨었다.

“괜찮으세요?”

걱정스레 물어봤다.

또 우울증인가? 내가 근처에 있는데도?

그런 걱정으로 이지아에게 다가가니 갑자기 이지아가 속이 후련한 얼굴로 기지개를 쭈욱 폈다.

“끄으으읏!!”

그녀는 들뜬 기색을 참지 못하고 환하게 웃었다.

“현우 씨, 현우 씨! 방금 봤어요?”

“넹…?”

“제가 카페 사장님하고 거래하고, 길드장하고 협회장한테 따박따박 할 말 다 하는 거! 봤냐구요!”

“봐, 봤죠.”

뭐지? 그게 그렇게 좋아할 일인가?

자신의 권리를 요구하고 이행하는 게 특별한 일은 아니었다.

그런데, 이지아에게는 그렇지 않은 모양이었다.

그녀는 정말로 뛸 듯이 기뻐했다.

자신이 당당하게 제 할 말을 전부 전한 것만으로도.

그녀의 눈꼬리에 살짝 이슬이 맺혔다. 기쁨과 흥분 탓이었다.

“그렇게 좋으세요?”

“그럼요! 전부 현우 씨 덕분이에요!”

“제가 한 게 뭐가 있다고요.”

진짜 한 게 아무것도 없었다.

전부 이지아 혼자 북 치고 장구 치고 다했다.

그런데도 이지아는 진심으로 내게 고마워했다.

민망하네.

이지아가 차키를 검지로 빙글빙글 돌리며 말했다.

“이제 시승식이나 할까요?”

* * *

고급 외제차가 도로 위를 달렸다.

운전석에 앉아 있던 나는 아직도 이게 꿈인지 생신지 구분이 안 갈 지경이었다.

맙소사.

이런 외제차도 몰아보다니 참 오래 살고 볼 일이다.

하긴, 국내탑랭커가 뭐가 부족하다고 싸구려 차를 타고 다니겠어.

당연하다면 당연하다만 이지아의 다음 말은 조금 의외였다.

‘일단 업무 지원차 드리는 건데, 본인 거라 생각하고 개인적인 용무로 쓰셔도 돼요. 유류비 수리비 다 나오니까 걱정 마시고요.’

평생을 함께하겠습니다, 사장님…!

“아, 맞다. 지아 씨, 저희 지금 어디 가는 거예요?”

이지아가 찍어준 내비게이션대로 가고 있긴 했는데 뭐 때문에 가는지는 못 들었다.

조수석에 앉아 스마트폰을 보던 이지아가 한 박자 늦게 대답했다.

“앞으로 살 게 될 숙소요.”

“아.”

그러고 보니 숙소까지 지원해준다고 했었지?

받는 돈이 받는 돈인 만큼 굳이 숙소까지 필요하나 싶기도 했다.

“따로 제가 방 구해도 괜찮──”

“안 돼요.”

이지아가 정색하며 말을 끊었다.

처음 들어보는 그녀의 칼 같은 말투에 심장이 바짝 쪼그라들었다.

역시 S급은 S급이구나.

순둥이처럼 행동한다고 착각하면 안 되겠다.

사장과 부하의 갑을관계기도 하고.

업무적으로 필요해서 그런 거겠지.

“……그러고 보니 아까부터 뭐 보고 계세요?”

운전 중이라 눈동자만 굴려서 이지아의 스마트폰을 힐끔 쳐다봤다.

이지아가 스마트폰을 보여줬다.

“이거요? 인터넷 기사에 달린 제 악플이요. 복귀하니까 별별 댓글들이 다 달리네요. 평소보다 욕 심한 것 좀 봐보세요.”

운전 중이라 악플들을 읽진 못했다. 그런데 새끼, 좆, 창녀 같은 단어는 눈에 잘 들어왔다.

“어어? 그런 거 봐도 괜찮겠어요?”

걱정스레 물었다.

악플 때문에 자살까지 생각한 양반이 무슨 생각으로 악플을 보고 있는 건지 모르겠다.

또 집착증세가 도진 건가?

이지아가 실실 웃었다. 양 볼의 보조개가 깊게 파였다.

“네. 괜찮아요. 괜찮아서 보는 거에요.”

“…?”

“혼자 있을 때는 제 흉을 조금만 보더라도 잠도 못 자겠고 분해서 눈물까지 나왔었는데…….”

이지아가 백미러 속의 내 눈과 시선을 마주쳤다.

“현우 씨가 옆에 있으니까 전보다 더 심한 악플을 받는데도 아무렇지도 않아요. 그게 너무 신기해서 보고 있었어요.”

“……좀 이상하게 들리네요.”

“그런가?”

이지아의 신뢰가 느껴졌다. 괜스레 낯간지러워져서 코끝을 긁적였다.

“……저는 악플이 전보다 더 심해져서 속상하네요. 남 괴롭히는 게 뭐가 그렇게 즐겁다고.”

진짜였다. 원색적인 비난이 주를 이뤘다. 인터넷의 여론은 이미 이지아의 안티팬들에게 대세가 기운 상황.

기사에 달린 베스트 댓글들 대부분이 그녀의 욕이었다.

“예전이면 많이 힘들었겠죠. 그런데 지금은 전혀 상관없어요. 이제 극복할 수 있으니까요.”

“…….”

그래.

이런 능력이라도 필요로 하는 사람을 만난 게 어디겠어.

그것도 S급 헌터가 나를 필요로하고 있잖아.

어중간한 헌터 생활보다 훨씬 나을지도 모르겠다.

나는 미약한 고양감을 느꼈다.

앞으로의 인생이 뒤바뀔 거 같다는, 그런 기분이 들어서.

­목적지에 도착했습니다. 내비게이션을 종료합니다.

“도착했네요! 여기 잠깐 세워주세요!”

이지아가 안전벨트를 풀며 내렸다. 나도 사이드 브레이크를 확인하고 내렸다.

“오.”

나도 모르게 감탄사가 나왔다. 커다란 저택들이 띄엄띄엄 위치해있었다.

여기 부자 동네 아니야?

“숙소 간다고 하지 않았어요?”

“네.”

“이태원에 숙소가 있어요?”

“그럼요.”

와.

이태원에 숙소가 있다고?

도대체 돈이 얼마나 많길래 일개 직원한테 이렇게까지 투자해주는 거지?

나는 순수하게 감탄했다.

“여기가 숙소예요.”

이지아가 주변에서도 가장 큰 집에 나를 끌고 갔다. 나는 이상함을 느꼈다.

“……지아 씨.”

“네?”

“여기 정말 숙소 맞아요?”

“네.”

나는 벽에 걸린 집 명패를 봤다.

[이지아]

숙소에다가 본인 이름의 명패를 박아 넣는다고?

내가 손가락으로 명패를 가리켰다.

“여기 지아 씨 명패가 있는데요?”

“네.”

“지아 씨네 집 아니에요?”

“네, 맞아요.”

말이 자꾸 헛도네.

크흠.

“그러니까 지아 씨, 저한테 숙소 소개해준다고 했죠?”

“네.”

“그래서 지금 숙소로 이동한거구요.”

“네.”

“그런데 여긴 지아 씨네 집 아니에요?”

“저희 집 맞아요.”

까악─! 까악─!

머릿속에서 까마귀가 우는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내가 머리를 마구 헝클어트리며 요약했다.

“그러니까 지아 씨네 집이 어떻게 제가 사는 숙소가 되냐구요!?”

이지아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나를 쳐다봤다.

“그야 현우 씨가 살게 될 숙소가 저희 집이니까 그렇죠.”

“…?”

“……?”

머리가 따라가지 못했다. 이지아도 무슨 소리를 하냐는 듯 쳐다봤다.

그녀가 물었다.

“현우 씨 능력 범위가 얼마나 돼요?”

“본격적으로 실험해 본 적은 없지만, 의식해서 쓰려고 하면 바스타드 카페 매장 정도의 크기요.”

“그쵸? 첫 만남 때부터 저한테 바로 능력이 적용 안된 거 보면 범위가 그리 넓지 않을 거라 생각했어요.”

이지아가 하나하나 조목조목 따졌다.

“주간에야 일할 때 만나니까 상관없다 치더라도 야간에는요?”

“네…?”

“퇴근하고 나서요. 옆집만 되더라도 능력 적용 범위 밖인데, 현우 씨가 멀리 떨어진 숙소로 가고 나면 저는요?”

“네…?”

“야간마다 그리고 주말마다 또다시 현우 씨가 없던 시절로 돌아가야 하잖아요.”

“네…?”

이지아가 빙글빙글 웃었다.

눈은 전혀 웃고 있지 않았다.

심연처럼 깊은 눈동자가 내 눈동자를 들여다보고 있었다.

내 안의 무언가를 관찰하려는 듯.

“가뜩이나 이렇게나 일 저질러놨는데 현우 씨가 없는 상태로 반나절을 지내라구요?”

방금 전 이지아와 나눴던 대화가 퍼뜩 스쳐 지나갔다.

'그러니까, 지아 씨는 원래 자살을 하려 했던 거네요?'

‘혼자 있을 때는 제 흉을 조금만 보더라도 잠도 못 자겠고 분해서 눈물까지 나왔었는데…….’

‘……악플이 전보다 더 심해져서 속상하네요.’

‘이거요? 인터넷 기사에 달린 제 악플이요. 복귀하니까 별별 댓글들이 다 달리네요. 평소보다 욕 심한 것 좀 봐보세요.’

맞다.

이지아는 평소와 다르게 자신의 방어막이 되어줄 길드도 쳐냈다. 협회장과는 대립각을 세웠다.

그게 언론에서 어떻게 자신을 공격할지 뻔히 알면서도.

악플을 두려워하고 집착하던 이지아가 어째서 그런 무리수를 두었을까?

무엇 때문에?

하나밖에 없다.

나였다.

내가 옆에 있으면 이지아는 우울증과 집착 따위 안 하고 살 수 있으니까.

얼음물에 머리를 처박은 듯 정신이 퍼뜩 들었다.

그녀와 내가 생각하던 근로의 기준이 달랐다.

나는 당연히 일과 사생활을 분리시켜 생각했다.

하지만 이지아는 달랐다.

그녀는 내 인생을 산 거였다.

드디어 그 정신 나간 월급이 이해 갔다.

‘월급은 이 정도고 숙소하고 차량도 지원해드려요. 아무래도 연차는 불가능하겠지만 일은 편하실──’

연차가 불가능하다는 그 말.

단서는 곳곳에 있었다.

내가 찾지 못했을 뿐.

등줄기가 서늘해졌다.

“지, 지아 씨 저희 계약에 대해 다시 한번…….”

갑자기 이지아가 내 품속으로 뛰어들었다. 그녀가 내 귓가에다가 작게 속삭였다.

“……이제 와서 도망칠 생각 하시면 안돼요.”

누가 보면 연인이 아닐까 착각할법한 달콤한 행동. 하지만 그런 분위기와는 전혀 다른 기세가 그녀의 말에서 느껴졌다.

“저, S급 헌터니까요.”

빙긋 웃은 이지아가 위압스레 말했다.

눈은 여전히 전혀 웃고 있지 않았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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