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00화.
―국가 넘버, 82.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성산읍 일주원로 5023에 생성된 게이트 공략 완료.
Type: 타임 브레이커.
Lank: S급.
Time Limit: 157분.
Atack Time: 143분 51초.
S급 각성자 ‘지화자’와 A급 각성자 ‘가하성’ … 등급 측정 불가 ‘라이’와 ‘리아’의 이름이 A-Index에 기록되었습니다.―
끝났다.
지화자가 게이트에서 빠져 나오자마자 땀에 젖은 앞머리를 쓸어 올렸다.
“씻고 싶어.”
“저도요.”
가하성이 기지개를 쭉 켰다.
“이번 게이트 공략으로 제주도에서의 일은 끝났죠?”
“그래.”
레드고파스(A급) 군락지였던 S급 게이트를 비롯하여 총 10개.
총 석 달에 걸쳐 10개의 개이트 공략이 모두 끝났다.
“드디어 서울로 돌아갈 수 있겠네요.”
“어서 땅을 밟고 싶습니다.”
하태균이 유쾌하게 웃었다.
“이미 땅을 밟고 있지 않나요?”
지친 낯으로 유승민이 물었다. 그에 하태균이 키득거렸다.
“제가 말하고 있는 건 육지 땅입니다. 제주도는 섬이지 않습니까? 바다 냄새도 그만 맡고 싶으니, 어서 서울로 돌아가고 싶군요.”
처음에야 휴가를 즐기는 기분을 만끽하며 제주도를 여기저기 돌아다녔지만, 그것도 잠시뿐.
주기적으로 생성되는 게이트에 0팀은 금방 지치고 말았다.
하지만, 그럼에도 지치지 않은 사람들이 있었으니.
“더 놀면 안 돼?”
“맞아요! 돌아가면 이렇게 못 놀 것 같은데!”
리아와 라이었다.
아이들의 말에 지화자가 귀찮아 죽겠다는 얼굴로 손을 휘휘 내저었다.
“놀라면 너희끼리 놀아.”
서울로 돌아가기까지 하루 정도 시간이 남아 있었다.
그 시간 동안 지화자는 침대에 몸을 눕히고 푹 쉬고 싶었다. 물론, 그러고 싶다고 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지화자 팀장님.”
“왜?”
“제주 지부장님께서 팀장님을 찾고 계신답니다.”
“왜?”
“그거야 저도 모르죠.”
가하성이 어깨를 으쓱였다.
지화자가 짜증섞인 욕설을 내뱉고는 얼굴을 덮었다.
“귀찮아 죽겠네.”
“어쩌겠습니까? S급 각성자라고 해도 상부에서 까라고 하면 까야 하는 게 공무원인 것을요!”
“하태균, 시끄러.”
지화자가 하태균의 입을 다물게 만들고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보고서 작정 하라고 하면 다 엎어 버릴 거야.”
마지막으로 공략한 게이트의 보고서 작성은 서울로 돌아가서 하는 거로 이야기가 된 상황이었다.
성난 얼굴로 투덜거리는 목소리에 가하성이 부탁했다.
“그건 참아주세요. 뒷감당은 저희가 해야하니까요.”
“그거 좋은데?”
“팀장님.”
가하성이 제발 그러지 말라는 듯 그녀를 불렀다. 지화자는 짓궂은 얼굴로 어깨를 으쓱일 뿐이었다.
그렇게 그녀가 떠난 후.
“하성이 오빠, 태균 오빠. 우리 놀러 가면 안 돼?”
“마지막으로 놀아요! 게이트 공략도 엄청 일찍 끝났잖아요!”
그거야 새벽부터 시작된 공략이었기 때문이었다.
가하성이 시간을 확인했다.
오전 10시 43분.
음식점이든 카페든 가게라면 모두 문을 열었을 시간.
하지만.
‘피곤한데.’
어떻게 하지? 애들끼리 놀다 오라 할까?
가하성이 하태균을 흘긋 쳐다봤다. 그 역시 피곤한 듯 크게 하품하고 있었다.
“오빠아아!”
그 와중에 리아는 칭얼거렸다.
“형님들! 제발요!!”
라이도 어린 아이처럼 떼를 쓰며 빌었다.
“놀고 싶어요!”
“우리 게이트 공략 열심히 했잖아! 사람들도 많이 구하고!”
“그러니까 놀아요!”
안 된다고 하면 몇 날 며칠을 삐질 기세였다.
결국, 가하성이 백기를 들었다.
“좋아.”
리아와 라이의 얼굴이 환해졌다.그런 아이들을 향해 가하성은 말했다.
“근처에 유명한 카페가 있다는데 거기 갈까?”
“아니!”
“싫어요!”
아이들이 고개를 젓고는 말했다.
“익스트림 스포츠 하고 싶어!”
“번지 점프요!”
“짚와이어도 타고 싶어!”
가하성이 한숨을 삼켰다.
하나같이 육체 노동을 필요로 하는 것들 뿐이라니.
“리아, 라이. 다른 건.”
“싫어!”
“싫어요!”
그래, 싫겠지.
가하성이 사이좋게 외치는 아이들의 목소리에 어깨를 축 늘어뜨릴 때.
“왜 그러세요, 가하성 씨?”
반가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
“네?”
“아무래도 다음 주에 돌아가야할 것 같다고…….”
센터의 제주 지부장이 지화자의 눈치를 보며 말을 끝마쳤다.
“그게, 태풍 때문에.”
“태풍이요?”
지화자가 비스듬히 고개를 기울이고는 물었다.
“날이 저렇게 화창한데요?”
“폭풍전야라고, 태풍이 오기 전에 고요하다는, 뭐. 그런 말이 있지 않은가?”
지부장이 어색하게 웃고는 지화자에게 컴퓨터 화면을 보여줬다.
“이거 보게나.”
제주 지부장의 말은 사실이었다.
한반도를 향해 대형 태풍이 올라오고 있는 중이니, 각별한 대비를 부탁한다는 기사가 여러 개 포털 사이트에 게재되어 있었다.
지화자가 미간을 좁혔다.
“그럼, 오늘 올라가겠습니다.”
“비행기 표가 다 매진이라.”
이런, 시발.
지화자가 튀어나오려는 욕설을 삼킨 후 물었다.
“그럼, 태풍이 끝난 후 올라가겠습니다.”
“그 이후로도 매진이라.”
지금 나랑 장난하자는 건가?
지화자가 험악하게 얼굴을 일그러뜨리고는 제주 지부장을 두 눈 부릅뜨고 노려봤다.
‘히익!’
지부장이 꿀꺽 침을 삼키켜 필사적으로 지화자의 시선을 피했다.
“미, 미안하네. 그래도 최대한 빨리 잡은 비행기 편이야!”
“그게 다음 주라고요?”
제주 지부장이 맞다고 하면서 황급히 고개를 끄덕였다.
“숙소는 연장시켜 줄 테니 편하게 쓰게.”
“당연히 그래야죠.”
지화자가 짜증 가득한 얼굴로 답하고는 몸을 돌렸다.
“알려주셔서 가 봅니다. 팀원들한테도 이 사실을 알려줘야 하니 이만 가 보도록 하지요.”
“자, 잠깐! 지화자 팀장!”
제주 지부장이 떠나려는 그녀를 급히 잡았다.
“또 무슨 일이죠?”
지화자가 성가셔 죽겠다는 얼굴로 물었다. 제주 지부장이 그에 눈치를 보며 우물쭈물 말했다.
“저기, 그게, 보고서는…….”
보고서?
지화자가 실소를 터트렸다.
“아, 하긴. 다음 주에 서울로 올라가면 보고서 작성이 많이 늦어지겠군요.”
“그래, 그러니까.”
“이왕 이렇게 된 거 천천히 진행하도록 하겠습니다.”
“으응?”
제주 지부장이 당황하여 물었다.
“그러니까, 지금. 보고서 작성을 미루겠다는 건가?”
“미루겠다는 말이 아니라, 어쩔 수 없는 상황에 천천히 작업을 진행하겠다는 겁니다.”
지화자가 싱긋 웃었다.
“괜히 태풍이 몰아치는 날에 작업을 시작했다가 정전이라도 되면 어떻게 합니까?”
그럼, 처음부터 보고서를 작성해야 했다.
“지부장님께서는 제게 그런 일이 닥치면 어떨 것 같습니까?”
제주도에 무시무시한 일이 벌어지고 말 거다.
S급 각성자가 분노하면 도시 하나 정도는 가볍게 지도상에서 지워버릴 수 있으니까.
그러니까.
“보고서 작성, 천천히 진행해도 되겠지요?”
“그, 그게.”
제주 지부장이 떨떠름한 얼굴로 지화자를 쳐다보다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자네 마음대로 하게.”
“배려에 감사드립니다.”
지화자가 활짝 웃고는 지부장의 사무실을 나섰다.
그러기 무섭게 그녀는 앞머리를 쓸어올리며 욕을 내뱉었다.
“시발, 태풍이 올라올 게 뭐야? 우리 나라에는 왜 기후를 멋대로 조절할 수 있는 각성자가 없는 거야? 외국에서 한 명 영입해오자고 해야하나?”
그렇게 불만 어린 목소리를 내뱉으며 걷고 있던 지화자가 돌연 걸음을 멈췄다.
폭풍전야라고 했던가?
구름 한 점 없이 맑은 하늘에 그녀도 모르게 시선이 빼앗겨버렸기 때문이다.
저렇게 푸른 하늘을 태어나서 처음 본 것도 아닌데, 왜 이렇게 눈이 가는지 모르겠다.
“나도, 참.”
많이 감성적이게 됐다.
지화자가 자신의 색다른 변화에 키득거리며 웃고는 다시 걸음을 옮겼다.
“애들은 어쩌고 있으려나?”
제주도에서 10개의 게이트를 공략하고 또 그와 관련된 보고서를 작성하며 많이 부대끼게 됐다.
원해서 그렇게 된 건 아니었다.
보고서 작성을 끝내면 게이트를 공략하러 나가고, 게이트 공략이 끝나면 보고서를 작성하고…….
끝없이 계속되는 지루한 작업에 어쩔 수 없이 가까워지게 됐을 뿐이다.
‘예전에도 이랬다면.’
지금과 같은 관계를 가질 수 있었을까?
문득 드는 의문에 지화자는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그때에 자신은 지금과 같은 일을 겪는다고 해서 팀원들과 가까워지려고 하지 않았을 거다.
오히려 귀찮다며 혼자서 모든 일을 처리하려고 했겠지.
“사람이 너무 변하면 죽을 때가 다 된 거라고 하던데.”
지화자가 나지막하게 중얼거릴 때였다.
“누가 그래요?”
장난기 어린 목소리가 돌연 그녀에게 물었다. 지화자가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뒤를 돌아보았다.
폐급이었던 힐러가.
자신의 몸으로 랭킹 1위로 온갖 고생을 했던 유은영이.
“저 돌아왔어요.”
해맑게 웃으며 서있었다.
지화자가 멍하니 두 눈을 끔뻑거리다가 이내 환하게 웃음을 터트리며 그녀를 반겼다.
“잘 돌아왔어, 언니.”
우리 센터의 0팀에.
지화자의 인사에 유은영이 헤실거렸다.
“저 보고 싶었어요?”
보고 싶었냐고?
지화자가 픽 웃고는 말했다.
“그래.”
그녀는 진심을 다해.
“보고 싶었어.”
유은영에게 인사를 건넸다.
오랜만에 만난 그녀한테서 F급의 모습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프랑스의 성녀, 아레이타보다 더 뛰어난 S급 힐러가 서있을 뿐.
지화자는 그것이 새삼스러워 저도 모르게 웃음을 터트렸다.
처음 만난 날, 바퀴벌레 한 마리에 겁을 먹은 채 펄쩍 뛰어대던 폐급의 모습이 감쪽같이 사라진 게 너무나도 신기해서.
그녀는 그래서 유쾌하게 웃음을 터트렸다.
“제가 돌아온 게 그렇게 기뻐요? 계속 웃으시네?”
“응.”
지화자가 웃음을 멈추고는 화사하게 미소를 그렸다.
“너무 좋네.”
진심이 담긴 그 말에 유은영 역시 지화자와 똑같이 웃었다.
두 여자는, 그렇게.
“지화자야! 유은영 돌아왔는데 봤어?!”
“은영 누님 오셨어요!”
“팀장님, 유은영 씨께서 돌아오셨는데!”
“유은영 씨께서 선물을 한아름 들고 오셨습니다!”
“지화자 팀장님! 우리 은영이한테서 당장 비키십시오!”
0팀의 모두가 찾아올 때까지 서로 눈을 맞추며 웃어댔다.
지화자가 복도 끝에서 달려오고 있는 팀원들을 보고는 혀를 찼다.
“왜 저렇게 시끄러운지 몰라.”
“뭐 어때요?”
유은영이 지화자를 보고는 싱긋 웃었다.
“좋잖아요?”
그 말에 지화자가 픽 웃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좋았다.
이 시끌벅적한 분위기도, 그 속에 있는 자신도. 제 옆에 있는 0팀의 귀하기 귀한 S급 전담 어시스트 힐러도.
모든 것을, 다 품에 끌어안고 싶을 정도로.
“가요, 지화자 씨.”
“그래.”
정말로 좋았다.
-『F급 힐러가 랭킹 1위가 되어버렸습니다』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