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98화.
유은영이 떠났다.
“아델라이트 님이 설마 유은영 씨를 데리고 갈까 했는데.”
“정말 그렇게 됐군요.”
하태균이 가하성의 말을 잇고는 지화자에게 물었다.
“괜찮습니까?”
“당연하지.”
괜찮지 않을 이유따위 없었다.
“언니가 아델라이트랑 영영 같이 있을 것도 아니잖아?”
유은영이 돌아올 곳은 바로 이곳, 대한민국이다.
정확히 말하면 센터의 0팀.
“자, 그러니까 다들 유은영 씨 그만 신경쓰고 업무에 집중해.”
하지만 집중하지 못하고 있는 사람이 한 명 있었으니.
“끄흐흐흡.”
바로, 유승민이었다.
“우리 은영이가 떠나버리다니, 이 오빠한테 말도 안 하고 떠나버리다니.”
“말은 했잖아.”
“맞아, 말하고 갔잖아요.”
리아와 라이의 말에, 유승민은.
“말하기는 했지요! 당일에!”
버럭 소리 질렀다.
“떠나는 당일에 말하고 가버리면 어떻게 합니까! 우리 은영이, 어릴 적에는 이러지 않았는데!”
그러면서 그는 두 눈을 부릅 뜨고 지화자를 노려봤다.
“왜 그렇게 보는 거죠?”
“이게 다 지화자 팀장님 때문입니다!”
지화자가 헛웃음을 흘렸다.
“제가 뭐했다고?”
“우리 은영이한테 안 좋은 거 다 가르쳐주지 않았습니까!”
안 좋은 거라니.
“구체적으로 제가 뭘 가르쳐줬죠? 잘 모르겠는데.”
싱긋 웃으며 묻는 말에 유승민이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하지만 그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지화자가 유은영에게 가르쳐준 것들이란, 모두 이 험난한 세상을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것들 뿐이었으니.
‘망할!’
그렇지만 마음에 들지 않았다.
당한 만큼 몇 배로 갚아줘야 한다는 거나, 신경을 거스르게 하는 사람은 안 보이게 만드는 게 좋다는 거나 등등.
‘그 모든 것들을 내가 가르쳐주고 싶었는데!’
아니, 가르쳐줄 일도 없이 온실 속의 화초처럼 자라게 하고 싶었는데.
“은영아!”
유승민이 책상에 엎드렸다.
지화자가 중증 시스콤의 모습에 설레설레 고개를 저었다.
“저, 지화자 팀장님.”
우종문의 비서가 찾아온 건 그때였다.
“국장님께서 부르십니다.”
“전화로 하면 될 것을…….”
왜 사람을 보낸 건지 모르겠다.
우종문의 비서는 지화자의 불만 어린 목소리에 헤실거렸다.
“지화자 팀장님이라면 자신의 전화를 무시할 확률이 크다고 저를 보내셨습니다.”
망할 국장 같으니라고.
‘나를 너무 잘 안다니까.’
프랑스의 귀빈들이 돌아간 게 바로 어제다.
정확히 8일만이었다.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그 시간 동안 지화자는 두 눈에 불을 켜고 그들의 안전을 지켰다.
아델라이트야, 유은영이 있다고 해도.
‘결국에는 내가 굴려야지.’
유은영은 S급 힐러.
암만 게이트 공략이 풍부하다고 해도 자신에 비할 바는 못됐다.
어쨌든.
“국장님께서 도 무슨 일을 시키려고 부른답니까?”
“그게, 그것까지는 잘 모르겠어요. 죄송해요.”
“죄송할 필요는 없고요.”
지화자가 한숨을 푹 내쉰 후 얼굴을 찌푸렸다.
도대체 또 어떤 귀찮은 일로 자신을 부른 걸까?
그렇게 우종문을 만난 그녀는.
“제주도로 가게.”
갑작스러운 명령을 받게 됐다.
***
“제주도에는 갑자기 왜…….”
“S급 게이트 열 개.”
지화자는 귀를 의심했다.
B급도 A급도 아닌, S급 게이트 열 개라니?
“세 개는 시나리오, 일곱은 타임 브레이커 유형이라네.”
“잠시만요.”
지화자가 황급히 물었다.
“설마, 그 열 개의 게이트가 같이 일어나는 겁니까?”
“물론, 아니네. 다행히도.”
정말 다행이었다.
“하지만, 1~2주 간격으로 계속 연달아 일어날 예정이라는군.”
“그래서 저를 보내는 거군요.”
“지화자 팀장, 자네 뿐만이 아니라 0팀 모두를 보내는 거지.”
“어쨌든요.”
지화자가 귀찮아 죽겠다는 듯이 앞머리를 쓸어 올리고는 물었다.
“저희 팀만 가는 겁니까?”
“그래.”
우종문이 고개를 끄덕였다.
“다른 팀은 도시를 복구하는데 힘을 쏟아야하거든. 그리고.”
그가 자리에서 일어나서는 지화자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유은영을 마음대로 아레이타에게 붙여 보내지 않았나?”
지화자가 우종문을 흘긋거리고는 말했다.
“유은영 씨께서 원하시던 일이었습니다.”
“그렇다고 해도 막았어야지.”
우종문이 한숨을 내쉬었다.
“지화자 팀장, 유은영은 대한민국의 유일한 S급 힐러라네.”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자네는.”
“보냈죠.”
지화자가 우종문의 말을 끊고는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
“국장님께서 말씀하셨듯, 대한민국의 유일한 S급 힐러의 목숨이 위태로워지면 안 되니까요.”
“아무래도 성녀에게 들은 것이 있나 보군.”
“그래서 보내준 겁니다.”
지화자가 어깨를 으쓱거리고는 말했다.
“유은영 씨를 아레이타와 함께 출국시킨 것 때문에 여론이 많이 나쁜 건 아닙니다.”
“꽤, 상당히 나쁘다네.”
“그건 제 알 바가 아니고요.”
지화자가 어깨를 으쓱거리고는 말했다.
“하여튼,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계속 그 여론을 대신 얻어 맞아달라는 거군.”
“그럴 생각으로 저를 제주도에 보내는 거 아닙니까?”
우종문이 픽 웃었다.
“지화자 팀장, 자네는 정말 못 당하겠군. 나이를 먹을수록 능글맞아지는 것 같단 말이지.”
“좋지 않습니까?”
“날이 잔뜩 섰을 때보다야 지금 모습이 더 좋기는 하지.”
우종문이 흐뭇하게 웃고는 입을 열었다.
“그럼, 지화자 팀장. 제주 지부 쪽에는 내가 말해놓을 테니 팀원들과 함께 이동하도록 하게.”
“언제 출발하면 되겠습니까?”
“지금.”
우종문이 지화자에게 제주도행 티켓을 건네주고는 말했다.
“당장 떠나도록 하게.”
이 망할 국장이?
지화자가 이를 까드득 갈며 우종문이 건넨 티켓을 받아들었다.
슬프게도 자신은 여전히 까라면 까야하는 입장이었으니.
***
“여보세요? 하태균? 지금 당장 애들한테 짐 싸라고 말해. 제주도 가야해. 이유는 가서 알려줄 테니까 어서 짐이나 싸!”
버럭, 지르는 목소리를 뒤로하며 문이 닫혔다. 그러기 무섭게 우종문이 유쾌하게 웃음을 터트렸다.
사실, 제주도에 게이트가 나타나기까지는 아직 시간이 남아 있었지마는.
‘쉬는 것도 좋지.’
그동안 고생한 0팀에게 휴식을 선물해주고 싶었다.
“유은영이 아쉽군.”
그녀는 지금쯤 아레이타와 함께 프랑스에 도착했을 터. 듣기로는 이후, 함께 분쟁 지역으로 가게 될 거라고 했다.
‘그렇게 위험한 곳을 왜 가려고 하는지 모르겠지만.’
지화자가 허락한 일이니 자신이 토를 달 수는 없었다.
유은영에게 하등 도움도 안 될 일이었자면 지화자가 허락해 줬을 리가 없으니.
똑똑, 노크 소리가 들려온 건 그때였다.
“저, 국장님. 지화자 팀장님께서 돌아가셨습니다.”
“그렇군.”
우종문이 고개를 끄덕인 후 웃는 낯으로 물었다.
“소감이 어떤가?”
“네?”
“자네, 지화자 팀장을 오래 전부터 보고 싶어하지 않았던가?”
“마, 맞습니다!”
비서가 고개를 크게 끄덕인 후 말했다.
“지화자 팀장님께서는 제 생명의 은인이시거든요! 가까이에서 꼭 뵙고 싶었는데, 그랬는데!”
비서의 얼굴이 서글프게 일그러졌다.
“감사 인사를 전하지 못했어요!”
바보같이 긴장해서 우종문의 말만 전해주고 말았다.
“어떻게 하죠?”
올망졸망 두 눈을 끔뻑이며 묻는 소리에 우종문이 유쾌하게 웃음을 터트리고는 말했다.
“그거야 나중에 지화자 팀장이 돌아온 후에 전해주면 되지.”
“그래도 될까요?”
“그럼.”
우종문이 고개를 끄덕였다.
“지화자 팀장한테 꼭 그 인사를 전해주게나.”
그녀는 남들에게 제대로 된 감사 인사를 받은 적이 전무하다시피 없었으니 말이다.
우종문이 창 밖을 내다보며 지화자와 처음 만난 날을 떠올렸다.
그녀가 지유화를 죽이고 모두로부터 손가락질을 받던 나날. 그때 우종문은 지화자를 찾아갔었다.
“할 말 있으면 하세요, 아저씨.”
처음 만난 그녀는 날이 잔뜩 선 새끼 고양이같았다.
‘고양이는 무슨.’
지화자는 한 마리의 짐승이었다.
자신을 해치려고 들면 당장 그 목을 물어뜯을 것처럼 구는 짐승.
여러모로 지유화와는 많은 부분이 다른 아이였다. 그런 아이에게 우종문은 손을 건넸다.
“센터에 입사하지 않겠느냐?”
“센터에요?”
“그래.”
지화자는 재미있는 소리를 한다면서 웃었고.
“좋아요.”
자신의 손을 잡았다.
그러면서 아이가 내민 조건은 하나뿐이었다.
“지유화를 왜 죽였냐면서 나를 찾아오는 인간들 좀 막아줘요.”
“음?”
“암살자들 말이에요. 그 망할 새끼들 좀 막아달라고요. 처리하기 귀찮으니까.”
스무 살도 되지 않았던 지화자는, 제 언니에 의해 살인귀가 되고 말았다.
“…님? 국장님!”
“음?”
우종문이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에 상념에서 깨어났다.
그를 찾아온 비서가 여전히 뺨을 붉힌 채로 알려줬다.
“조금 전, 0팀이 공항으로 떠났다고 합니다.”
“그렇군.”
우종문이 미소를 그렸다.
“그거 아나?”
“네?”
“지화자 팀장이 사실 착하다는 것을.”
“네! 알죠!”
예상치 못한 대답에 우종문이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이내 그가 유쾌하게 웃음을 터트렸다.
“나만 알고 있던 사실이었는데, 그게 아니었군.”
우종문이 그렇게 웃고 있을 때, 지화자는.
“아오, 망할 국장 새끼! 이렇게 엿을 먹여버리네!”
잔뜩 성난 얼굴로 온갖 욕을 내뱉고 있는 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