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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급 힐러가 랭킹 1위가 되어 버렸다-195화 (195/200)

제195화

유은영이 지화자를 위해 준비한 디저트는 다행히도 그녀가 모두 먹어버렸다.

“지화자 씨가 이렇게 잘 먹는 줄 몰랐어요.”

“나 원래 잘 먹어.”

사람들 눈치 때문에 잘 먹지 않은 게 습관이 됐었을 뿐.

“한 달 가까이 도시 복구하느라 뛰어다녀서 그런가? 잘 먹어야겠더라고. 언니한테 힐 받으면서 컨디션 유지하는 것도 적당히 해야지.”

“적당히 안 하셔도 되는데.”

“쓰읍.”

괜한 소리 하지 말라는 듯, 지화자가 날선 목소리로 말했다.

“언니, S급 힐러라고 해도 그 힘이 무한인 건 아니야. 더욱이 언니는 인간이지.”

암만 분에 넘치는 힘을 얻었다고 해도 결국은 인간이었다.

“지금에야 괜찮지만 무리하면 결국 쓰러지게 될 걸?”

그렇게 되면 과연 누가 유은영을 치료할 수 있을까?

“안 그래도 언니, 지금까지 몇 번이고 스스로한테 힐을 시전하며 컨디션을 유지해왔잖아?”

더욱이 상처입은 몸도 치료했다.

“힐도 자주 받으면 내성 생기는 거 알지?”

“알아요.”

유은영이 불퉁하게 말했다.

“그렇지만 제가 알아서 잘 조절할 수 있는데.”

“그게 안 되는 것 같아서 하는 소리야.”

지화자가 아이를 달래듯 어르는 투로 말을 이었다.

“같은 S급 각성자로 하는 당부이기도 하고.”

유은영이 쓰러지게 된다면, 그녀를 치료할 수 있는 사람은 프랑스의 성녀일 뿐일 거다.

“뭐, 이번에 아델라이트가 내한할 때 자세히 물어봐.”

“뭐를요?”

“뭐기는 뭐야.”

지화자가 씨익 입꼬리를 올렸다.

“아델라이트가 지금까지 어떻게 자신의 힘을 갈고 닦아왔는지에 대해 물어보라는 거지.”

유은영이 구시렁거렸다.

“저 혼자서도 알 수 있는데.”

“퍽이나.”

설사, 그렇다고 해도 십 수년간 갈고 닦아온 것을 유은영이 순식간에 채득할 수는 없을 거다.

‘이번 기회에 좀 배우라지.’

마음에 들지 않지만, 아델라이트는 유은영의 선배 격이나 다름 없으니 말이다.

분명, 아델라이트에게서 많은 걸 배울 수 있을 터였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 보름 후.

“프랑스의 귀인 분들을 이렇게 모시게 되어 영광입니다.”

아델라이트를 중심으로 프랑스의 귀빈들이 내한했다.

* * *

으아아악, 긴장돼!

유은영이 초조한 듯 연신 마른 입술을 축였다.

그녀가 도대체 왜 그러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얼굴로 지화자가 물었다.

“왜 그래?”

“곧 프랑스의 성녀, 아델라이트 님을 만나게 되잖아요!”

“그래서?”

그래서는 무슨 그래서야!

유은영이 기가 차다는 듯한 얼굴로 물었다.

“지화자 씨는 긴장 안 돼요?”

“응, 안 돼.”

정말로 그런 모양인지, 지화자가 하품을 참으며 말했다.

“아델라이트랑은 몇 번 만나본 적도 있으니까.”

더욱이 프랑스의 귀빈들의 한국 안내를 맡는 것도 이번이 처음은 아니었다.

“그보다, 언니도 예전에 귀한 손님 맞이한 적 있잖아.”

“제가요? 언제요?”

“내 몸으로.”

“아.”

유은영이 얼빠진 목소리를 내며 고개를 끄덕였다.

뒤늦게 윌던 기업의 망나니.

로렌치니 윌던을 떠올렸기 때문이었다.

‘그러고보니 윌던 기업도 전 세계에 영향력이 꽤 큰 곳이었지.’

그런 곳의 회장과 그 후계자를 자신이 직접 안내했었다.

경호도 맡았었고.

‘결투도 했었지.’

로렌치니 윌던.

지금 생각해도 화가 나는 성질머리를 가지고 있는 그를 아주 철저하게 밟아버렸었다.

‘물론, 마지막에는 지화자 씨가 처리하기는 했지만.’

어쨌든 그녀의 말대로 유은영 역시 귀빈을 모신 전적이 있었다.

“그러니까 너무 긴장하지마.”

지화자가 유은영의 어깨를 두드려주고는 웃었다.

프랑스의 귀빈들이 우종문과의 이야기를 끝낸 후, 그들이 있는 곳으로 몸을 움직인 건 그때였다.

‘온다!’

지화자가 그녀의 긴장을 풀어준 보람도 없이 유은영이 경직됐다.

마치, 석상처럼 말이다.

유은영은 누가봐도 그녀가 긴장한 것을 알 수 있을 정도로 티를 냈다.

하지만 아무래도 유은영은 그 사실을 모르는 모양이었다.

당장 그녀는 자신이 표정을 능숙하게 감추고 있다고 생각하는 중이었다.

‘언니……!’

지화자는 속이 타들어갔다.

지금에라도 옆구리를 쿡 찔러 상황을 알려줘야하나 고민하는데.

“유은영 씨?”

프랑스의 성녀, 아델라이트가 그녀에게 말을 걸었다.

“네, 넵!”

정말 긴장했던 모양인지, 삑사리가 나고 말았다.

아델라이트와 함께 온 프랑스의 귀빈들이 숨죽여 웃었다.

지화자의 날선 눈초리에 곧장 웃지않은 척 목소리를 가다듬었지만 말이다.

지화자.

그녀는 한국뿐만 아니라 타국에서도 여러모로 유명했다.

마음만 먹으면 세계 랭킹 1위를 거머쥘 수 있다느니, 언제든 한국을 배신할 수 있다느니 등등.

그런 무성한 소문들 중에서 모두가 한 마음 한 뜻으로 고개를 끄덕이는 말은 하나였다.

지화자는 건드리면 안 된다.

그렇기에 아델라이트를 제외한 프랑스의 귀빈들은 괜히 그녀의 심기를 거스르게 될까봐 행동거지를 조심했다.

유은영은 아델라이트와 이야기를 나누느라 정신이 없었다.

“만나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저야말로 한국의 첫 번째 S급 힐러를 만나게 되어 영광이에요.”

곱슬기가 도는 블론드 머리칼을 가슴 아래로 내리고 있는 여자가 그린듯한 미소를 보였다.

“더욱이 S급 힐러는 그 수가 무척 적으니까요.”

한 손, 아니.

두 손에 꼽을 정도로 적은 숫자였다.

그들 중에서 아델라이트가 ‘성녀’라고 불리는 이유는 단 하나.

“많이 긴장하신 것 같은데 부디 저를 편하게 대해주시기를 바랄게요. 저는 유은영 씨와 이번에 좋은 친구가 됐으면 하거든요.”

특유의 유려한 말솜씨와 더불어 상대방을 편안하게 만들어주는 분위기 때문이었다.

어쨌거나 유은영은 아델라이트의 말에 크게 감명을 받은 듯 고개를 끄덕였다.

“감사합니다!”

여전히 긴장한 채였지만 말이다.

아델라이트는 그 모습이 귀엽다는 듯 작게 웃음을 흘린 후 입을 열었다.

“그럼, 지화자 씨. 유은영 씨 좀 잠시 빌릴게요.”

“유은영 씨께서는 물건이 아닙니다, 아델라이트.”

“당연히 알고 있죠.”

아델라이트가 미소를 그렸다.

“오랜만에 봤는데, 지화자 씨는 제가 반갑지 않은 모양이네요.”

“반갑습니다.”

지화자가 어깨를 으쓱였다.

“도시의 복구가 모두 끝난 뒤에 찾아와줬으면 더 반가웠겠죠.”

도대체 얼마나 급한 일이 있어 이렇게 혼란스러운 상황에 내한한 거냐는 핍박이었다.

지화자의 말 속에 숨겨져있는 그 뜻을 알아차린 유은영이 경악했다.

‘으아악! 지화자 씨!!’

그녀가 프랑스의 이번 내한을 못마땅하게 여기고 있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저렇게 대놓고 꼽을 주면 어떻게 하냔 말이다!

하지만 아델라이트는 익숙한지, 아무 생각이 없어 보였다. 그저 웃어 넘길 뿐.

그들을 반긴 우종문 역시 마찬가지였다.

우종문은 날이 잔뜩 선 분위기가 느껴지지 않는 지 싱글벙글 웃는 낯이었다.

‘웃고 있는 건 아델라이트 님 역시 마찬가지지만…….’

그때였다.

“자, 이제 이동하도록 하지요.”

우종문이 프랑스의 내한 일정의 시작을 알렸다.

***

프랑스의 귀빈들이 가장 먼저 방문한 곳은 병원이었다.

유은영이 버선발로 뛰어다니며 많은 부상자를 치료하기는 했지만, 아직 그 수가 많았다.

아델라이트는 손수 그들을 찾아가 기적을 행세했다.

“와아아아!”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성녀님, 만세!”

사람들의 화답에 아델라이트는 싱긋 웃으며 손을 흔들어줬다.

그 모양새가 꽤 익숙해보였다.

그녀는 기적을 행사하는 걸 한 번으로 그치지 않았다.

두 번, 세 번…….

그렇게 다섯 번째가 되고 나서야 아델라이트는 힐을 그만뒀다.

“괜찮으세요?”

“네, 괜찮아요.”

아델라이트가 창백하게 질린 낯으로 웃었다.

“여기에서 더 넘어가면 위험해질 것 같지만요.”

그럴 만도 했다.

그녀의 힘으로 구한 사람만 족히 수백, 아니. 수 천 명은 더 넘을 테니 말이다.

“그보다, 생각보다 많이 심각하네요. 그럭저럭 도시의 기능이 많이 복구됐다고 해서 부상자들의 치료도 끝났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말이에요.”

“아, 그게…….”

유은영이 머쓱하게 뺨읅 긁었다.

그에 아델라이트가 변명하듯 말을 덧붙였다.

“유은영 씨의 힘이 부족해서 그런 거라는 식으로 말하려던 의도는 아니었어요. 저는 단지 한국의 힐러가 많이 부족한 것 같아서요. 예전보다는 수가 늘어났다고 들었거든요.”

그래서 그런 거라며 아델라이트가 사과했다. 유은영은 괜찮다고 인사하며 입을 열었다.

“예전보다 힐러의 수가 늘어난 건 맞아요.”

하지만 그뿐이었다.

암만 늘어났다고 해도 힐러의 수는 백 명이 채 되지 않았다.

암만 대한민국이 좁은 땅이라고 해도 그렇지, 인구 수 대비해서 그리 많지 않은 숫자였다.

“그러다 보니 힐러들의 힘으로는 한계가 있더라고요.”

자신이야, 뭐. 그 한계가 없는 것처럼 굴었지만 다른 힐러들은 아니었다.

그들은 정해진 능력을 초과하면 곧장 앓아누웠다.

아예 정신을 잃어버린 거다.

“그것, 참. 문제네요.”

아델라이트가 짧게 혀를 찼다.

“이 나라는 도대체 왜 이렇게 힐러의 숫자가 부족한 건지, 원.”

“그러게 말이에요.”

유은영이 어색하게 웃으며 아델라이트의 말에 맞장구를 칠 때.

“혼자서 감당하기에는 많은 짐을 안고 계실 것 같은데, 저와 함께 나누는 건 어떠세요?”

아델라이트가 물었다.

“네?”

유은영이 당황하여 되물었다. 그에 아델라이트는 미소를 그렸다.

“유은영 씨, 제가 무슨 의도로 저런 말을 한건지 모르시겠나요?”

너무 잘 알아서 문제였다.

그러니까, 지금.

아델라이트는 자신과 함게 프랑스로 귀화하지 않겠냐고 제안을 한 거다.

‘진심인가?’

유은영은 당황해하며 그렇게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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