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F급 힐러가 랭킹 1위가 되어 버렸다-188화 (188/200)

제188화

“지화자 씨!”

유은영이 지화자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 그 손을 지화자가 단번에 잡고서는 유은영을 바깥으로 끌어 당겼다.

갑작스럽게 쏟아진 빛 때문에 눈이 부셨다.

‘잠깐.’

눈이 부시다고?

유은영이 멍한 표정으로 하늘을 쳐다봤다.

어느새 해가 떠오르고 있었다.

밤이 끝도 없이 계속될 줄 알았더니.

“언니? 괜찮아?”

아니었다.

이렇게 새로운 아침이 찾아올 줄이야.

유은영이 더없이 환하게 웃음을 터트리며 대답했다.

“네, 괜찮아요.”

“정말? 거짓말하는 거 아니지?”

“제가 지화자 씨께 거짓말을 왜 하겠어요?”

유은영이 배시시 웃으며 말했다.

“저는 정말 괜찮아요. 혹시 제가 S급 힐러인 거, 그새 까먹으신 거예요?”

그러면서 그녀는 장난스럽게 말을 덧붙였다.

“청년 치매인 거 아니죠?”

지화자가 어처구니 없다는 듯이 헛웃음을 흘렸다.

“언니는 그새 겁을 상실한 것 같네?”

유은영이 어색하게 웃었다.

그런 그녀의 모습에 지화자가 픽 웃고는 말했다.

“무사하면 됐어.”

유은영의 말따마나 그녀는 S급 힐러였다.

S급 힐러는 죽은 사람을 다시 살리는 것을 제외하고는 어떤 부상이든 치료가 가능하다고 알려져 있는 각성자였다.

더욱이 아무런 제약 없이 스스로에게 힘을 사용할 수도 있었다.

그야말로 무적.

단번에 유은영의 목숨을 끊지않는 이상, 그녀를 죽일 수 있는 사람은 이 세상에 없으리라.

“좋겠네, 언니.”

“뭐가요?”

“무적이라.”

지화자가 씨익 웃었다.

“잘하면 나보다 강해지겠는데?”

“설마요!”

유은영이 터무니 없는 소리를 들었다는 듯 웃었다.

“제가 지화자 씨보다 강해질 수 있을 거라고요?”

절대로 불가능한 일이었다.

설사, 가능하다고 해도.

“그러지 않을래요.”

유은영은 지화자가 지닌 힘을 얻고 싶지 않았다. 가지고 싶지도 않았다.

“왜?”

묻는 말에 유은영이 대답했다.

“지화자 씨의 몸으로 지내면서 깨달았거든요.”

그녀가 가진 힘은 자신이 쉽게 다룰 수 없는 거다. 더욱이 가져서도 안 되는 것이었다.

“그래서 싫어요.”

유은영이 미소를 그렸다.

“저는 이제, 이렇게 지화자 씨의 곁을 지킬래요.”

S급 힐러로 말이다.

그 말에 지화자가 픽 웃었다.

“나중에 다른 길드로 가버리는 거 아니야? 돈 많이 준다면서.”

“저를 그렇게 못 믿어요?!”

유은영이 억울하다는 듯이 빼액 소리 질렀다.

화가 난듯한 그 모습에 지화자가 유쾌하게 웃음을 터트리고는 입을 열었다.

“아니, 믿어.”

단호하면서도 힘있는 목소리에 유은영의 두 눈에 이채가 서렸다.

생각해 보면, 지화자는 자신을 항상 믿어줬다.

처음 몸이 바뀌었을 때도, F급 힐러인 자신을 믿으며 등을 떠밀어줬었다.

‘지화자’의 힘을 마음껏 사용할 수 있을 거라면서 말이다.

“…고마워요, 지화자 씨.”

“미안하지만 그런 인사는 나중에 해줄래?”

지화자가 장난기 어린 목소리로 이어 말했다.

“대한민국의 유일한 S급 힐러님께서 봐야할 부상자들이 꽤 많이 있거든.”

그러고 보니 곳곳에서 앓는 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근처에 대피하지 못한 사람이 있었나 보더라고. 그렇게 안전한 곳으로 피하라고 고래고래 고함을 질렀었는데 말이야.”

하여튼 가진 거라곤 아무것도 없는 인간들이 더럽게 말을 안 듣는다며 지화자가 구시렁거렸다.

“어쨌든, 이런 이유로 언니의 힘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많아.”

괜찮지?

덧붙여 묻는 목소리에 유은영이 환하게 웃음을 터트렸다.

“네, 괜찮아요!”

찾는 사람이라고는 아무도 없던 F급 힐러. 센터에서 정년 퇴직만 기다리던 그 힐러는.

“맡겨만 주세요!”

S급 힐러가 됐다.

***

“더는 못하겠어요.”

유은영이 잔뜩 균열이 간 도로 위에 몸을 눕혔다.

아침부터 지금까지 주구장창 힘을 사용한 탓에 기진맥진이었다.

물론, 스스로에게 힐을 시전해 컨디션을 회복하면 됐지마는.

‘싫어.’

그럼, 또 사람들을 보러 움직여야만 했다.

‘어차피 부상이 심각한 사람들은 모두 치료를 끝냈으니까.’

그렇기에 유은영은 안심하며 잠깐 휴식을 취하려고 했다.

“맡겨만 달라더니, 너무 빨리 지친 거 아니야?”

그 휴식을 지화자가 방해하지만 않았더라면 그랬을 거다.

유은영이 지화자를 올려다보며 입술을 삐죽였다.

“제가 암만 S급이라고 해도 몸은 평범한 일반인이거든요?”

“노력으로 극복해봐.”

말이 쉽지!

유은영이 얼굴을 와락 찌푸렸다. 그 모습이 꽤 볼만했던지라 지화자가 유쾌하게 웃음을 터트렸다.

“지화자 씨는 괜찮으세요?”

유은영이 아침부터 사람들의 상처를 치료했다면, 지화자는 지금까지 계속 도시를 복구하는데 힘을 쏟았다.

유은영의 걱정에 지화자가 심드렁하게 말했다.

“S급 힐러님한테 힐을 받았어서 그런지, 온종일 돌아다녀도 피곤하지가 않네?”

“그건 그냥 지화자 씨의 체력이 강철이라 그런 거 아닐까요?”

그것도 아님, S급 각성자 특유의 강인한 신체 능력 때문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지화자는 말했다.

“그건 아니야. 당장 서이안부터 지금 맛이 간 상태거든.”

“서이안 길드장님이요?”

“응. 마침 저기 오네.”

유은영이 지화자가 가리키는 곳을 쳐다봤다가.

“헉……!”

숨을 들이마셨다.

그녀가 놀란 얼굴로 입을 뻐금거렸다.

“서이안 길드장님 왜 저래요?”

그는 서도운에게 업혀있는 상태였다. 반쯤 넋이 나간 모습으로 말이다.

유은영의 걱정에 지화자가 키득거렸다.

“키메라들이 부수고 간 건물들 잔해를 독으로 계속 녹였거든.”

하나씩 옮기는 것보다는 그러는 편이 훨씬 더 효율이 좋았다.

“그래서 그런지 조금 전부터 저런 상태더라고.”

“제가 봐드리는 게 좋을까요?”

“됐어. 아까운 힘 낭비하지 말고 쉬기나 해.”

지화자가 그렇게 말하면서 씨익 입꼬리를 올렸다.

“랭킹 2위란 놈이, 저런 것도 못 버티겠어?”

못 버틸 것 같은데요?

유은영이 치밀어 오르는 말을 애써 집어삼킨 후 물었다.

“다른 분들은요?”

“누구?”

“하태균 씨랑 가하성 씨, 그리고 리아 씨랑 라이 씨요.”

유승민 역시 걱정됐지만, 그의 안위는 서이안이 진작 확인시켜준 참이었다.

‘서울 외곽의 스콜피언 지부에서 보호 중이라고 했지?’

사태가 마무리되면 그를 찾아가 곧장 치료해줄 작정이었다. 어쨌거나 지화자는 유은영의 질문에 답해줬다.

“다들 도시를 복구하는데 힘을 보태고 있는 중이지.”

대한민국의 인구 절반이 살고 있는 서울이 키메라들에 의해 쑥대밭이 되고 말았다.

하루라도 빨리 복구해야했다.

“…지유화는요?”

들린 이름에 지화자가 조용히 입을 다물었다.

곧, 목소리를 내뱉었지만 말이다.

“아무도 모를 거야.”

그녀에 의해 키메라들이 날뛰며 도시를 이렇게 파괴했다는 그 사실은.

“모두에게 알려지지 않을 거야.”

물론, 정부의 고위 관계자들은 알게 될 거다.

하지만 이번 사태의 배후에 지유화가 있다는 것은 대중에게 알려지지 않으리라.

“알려져봤자 지유화한테만 좋은 일일 거 아니야?”

그런 일은 사양이었다.

“괜찮겠어요?”

이제껏 악당은 지화자였다.

하나뿐인 언니를 제 손으로 죽여 그 자리를 강탈한 냉혈한.

그게 바로 대중이 보는 지화자였다는 거다.

하지만 지화자는 말했다.

“괜찮아.”

지유화에게 좋은 일을 시켜줄 바에야 계속 악당으로 남는 게 좋았다.

더군다나.

“S급 힐러님께서 내 곁에 있어 준다면 나에 대한 관심도 줄어들겠지. 다들 언니를 보느라 정신 없어서 말이야.”

씨익 웃으며 말하는 목소리가 퍽 유쾌했다.

“그렇다면 다행이지만요.”

유은영이 작게 웃음을 흘렸다.

그런 그녀를 보며 지화자가 나지막하게 물었다.

“언니야말로 괜찮아?”

지유화의 악행을 세상에 밝히지 않겠다는 말은, 즉. 키메라와 관련된 모든 것들을 비밀로 부치겠다는 소리나 다름 없었다.

유은영이 걱정 어린 목소리에 씁쓸하게 웃으며 말했다.

“괜찮아요.”

사실은 괜찮지 않았다.

그래도 지유화에게 희생당한 그들을 모두 인간으로서 삶을 마감하게 해줬으니 괜찮았다.

유은영은 그렇게 스스로를 위로했다. 지화자가 말이 없어진 그녀를 빤히 쳐다보다 자리에서 일어났다.

“자.”

유은영이 갑작스럽게 자신의 앞에 내밀어진 손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에 지화자가 멋쩍게 뺨을 긁적이고는 입을 열었다.

“내 손 잡고 일어나라고.”

“아.”

유은영이 놀란 듯 얼빠진 소리를 냈다.

그것이 지화자의 심기를 거슬렸는지, 그녀가 험악하게 얼굴을 찌푸리며 말했다.

“언니는 나랑 같이 지낸 세월이 얼마인데 내가 내민 손을 멀뚱하게 쳐다만 보고 있어?”

함께 지낸 세월이 얼마냐니.

유은영이 웃음을 터트렸다.

“지화자 씨랑 알고 지낸지, 아직 1년도 안 된 거 아시죠?”

“시끄러!”

빼액 지르는 목소리에 유은영이 더 크게 웃고서는 내민 손을 꼭 잡았다.

[각성자 ‘지화자’와 ‘유은영’이 획득한 규격 외의 보상 아이템, ‘불안정한 영혼석(등급 측정 불가)’이 소멸했습니다.]

푸른 시스템 창이 나타난 건 그때였다.

갑작스럽게 눈 앞에 나타난 문구에 지화자도 유은영도 멍하니 표정을 굳혔다가.

“하, 하하!”

두 사람 모두 어처구니 없다는 듯 헛웃음을 터트렸다.

서이안이 서도운에게 업혀있는 상태로 그 모습들을 보고서 중얼거렸다.

“쟤들 미쳤나봐.”

“길드장님 보다는 정상이신 것 같습니다만.”

“너는 도대체 누구 편이야?”

“길드장님 편입니다. 애초에 지금 편을 나누는 게 의미가 있는 일입니까?”

“내가 말을 말지!”

서이안이 불퉁하게 말하고는 입술을 삐죽였다.

“뭐, 보기는 좋네.”

그 말대로였다.

어쨌거나 지화자와 유은영은 서로 멈출 줄 모르고 계속 웃었다.

해가 저물고, 새로운 밤이 찾아왔는데도.

“이게 이렇게 사라지네.”

“그러게 말이에요.”

그들은 계속 키득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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