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F급 힐러가 랭킹 1위가 되어 버렸다-187화 (187/200)

제187화

“언니는 괜찮을 테니까.”

지화자가 자신을 굳게 믿고 있다는 것을 유은영이 알아차릴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적어도 이 공간에서는 그랬다.

하지만 그녀는 알았다.

지화자라면, 자신이 무사히 이곳에서 벗어나 돌아올 거라고 생각 중이란 것을 말이다.

수도 없이 그녀와 몸이 바뀌었기 때문에 알 수 있는 사실이었다. 그 때문에 유은영은 지유화의 앞에서도 전혀 기죽지 않았다.

겁을 먹지도 않았다.

지유화는 어둠의 한 가운데에서 지금까지 만난 영혼들과는 다르게 뚜렷한 형체를 지니고 있었다.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말이다.

그렇기에 유은영은 물었다.

“죽으신 줄 알았는데요?”

왜 이곳에 있느냐고 말이다.

그 질문에 지유화가 유쾌하게 웃음을 터트렸다.

“걱정하지 말아요. 저, 죽은 거 맞으니까요. 물론, 겉으로 보기에는 살아있는 것처럼 보일 테지만요.”

그녀의 말대로였다.

지유화는 분명하게 살아있는 인간처럼 보였다. 그것이 유은영을 불쾌하게 만들었다.

수없이 많은 사람을 키메라의 재료로 사용해 고통 받게 만들었으면서 자신만 저렇게 멀쩡한 모습이라니.

그 분노를 알아차린 듯, 지유화가 웃음기 섞인 목소리로 물었다.

“화나요?”

유은영이 놀란 눈을 보였다.

그것이 꼭 마치, 어떻게 알아차렸냐고 묻는 것 같아, 지유화는 웃는 낯으로 말했다.

“유은영 씨가 지금 어떤 감정을 느끼고 있는지 표정에 모두 드러나고 있어서요.”

그러면서 그녀는 웃었다.

“표정을 능숙하게 숨기는 방법에 대해 배우지 않았나 봐요?”

“그럴 필요가 없어서요.”

유은영이 담담하게 말했다.

“지화자 씨는 제가 어떤 감정을 밖으로 표출하든 크게 신경 쓰지 않거든요.”

사실은 신경 썼다.

자신이 분노하면 분노하는 대로, 슬퍼하면 슬퍼하는 대로 그녀는 무슨 반응이든 보였으니.

‘하지만 굳이 이 사실을 지유화한테 말해줄 필요는 없겠지.’

말해봤자 바보 같은 동생이라면서 지화자를 욕할 게 뻔했다.

그런 모습은 보고 싶지 않았다.

지화자를 칭찬하는 자신을 보고 얼굴을 일그러뜨리는 모습이라면 몰라도.

그 때문에 유은영은 말했다.

“지화자 씨께서는 타인의 시선을 신경 쓰는 것보다 앞을 향해 전진하는 걸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분이거든요.”

지유화가 표정을 굳혔다.

“마치, 저는 앞을 향해 전진하는 법을 모르는 사람이라고 놀리는 것 같네요.”

“맞아요.”

유은영이 활짝 웃었다.

“그러니까 이렇게 된 거 아니겠어요?”

앞을 향해 나아가는데 집중했던 지화자는 대한민국의 랭킹 1위로 살아있고, 타인의 시선을 신경 쓰는 데 집중했던 지유화는 죽었다.

정확히는, 남의 기억에 각인되기 바라던 그녀는 죽어 사라져버리고 말았다.

“지유화 씨, 당신을 기억하는 사람은 이제 없을 거예요. 제가 그렇게 만들 거고.”

또한.

“지화자 씨께서도 그렇게 만들 테니까요.”

“그게 쉬울 줄 아세요?”

지유화가 비딱하게 웃었다.

“저는 영웅이에요.”

“당신이 스스로 만든 영웅이죠.”

무수히 많은 사건과 사고를 일으킨 후, 아무것도 모르는 척 그것들을 수습하여 만들어진 영웅.

과연 그 행위를 영웅이라 부를 수 있을까?

‘아니.’

유은영이 그렇게 생각하며 나지막하게 가라앉은 목소리를 지유화를 향해 내뱉었다.

“저는 지금까지 몇 번이고 옛 기억을 봤어요.”

더 완즈 인 더 서울.

자신의 수년을 앗아가고, 제 가족을 앗아간 그 백화점과 관련된 기억을 끝도 없이 봤었다.

악몽이나 다름없는 기억을 계속 마주하면서 유은영이 깨닫게 된 것은 하나.

“지유화 씨, 더 완즈 인 더 서울을 무너뜨린 것. 바로 당신이죠?”

그건 바로 백화점의 중심부에서 웃고 있던 그녀의 모습이었다.

하루에도 수백 명이 찾던 곳에서 지유화를 알아보는 건 어려웠다.

그녀가 맨 얼굴을 드러낸 상태라면 몰라도, 모자를 푹 눌러쓴 상태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계속해서 보게 된 기억 속에서 유은영은 기어코 그녀의 존재를 알아차리게 됐다.

“달려!”

아버지의 목소리를 따라 달리며, 무너지는 건물을 뒤로 하던 그 와중에도.

“괜찮아, 은영아!”

아버지가 자신을 진정시키고 있는 와중에도.

“안으로 들어가!”

기억의 마지막, 자신의 아버지가 저를 화장실 안쪽으로 밀어 넣던 그 순간에도.

지유화는 건물의 중심부에서 웃고 있었다.

무너지고 있는 건물의 파편은 모두 그녀를 피해가고 있었다. 마치, 그 주위로만 결계가 쳐져있는 듯이 말이다.

“왜 잊고 있었을까?”

유은영이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아니, 왜 몰랐을까?”

인위적인 힘이 작용되지 않은 한, 백화점이 그렇게 무너질 리가 없다는 것을 말이다.

“당신 때문에 수도 없이 많은 사람이 죽었어.”

그 사람 중에는 유은영의 아버지도 있었다.

“수도 없이 많은 사람이 가족을 잃었고.”

역시, 유은영의 가족에게도 해당 되는 이야기였다.

“아직도 그 날의 상처를 지니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아.”

당장 지화자만 봐도 그랬다.

자신이 더 완즈 인 더 서울의 피해자인 것을 알았을 때, 그녀는 죄인처럼 희게 질린 낯을 보였었으니 말이다.

‘바보.’

지화자는 분명 알았을 거다.

자신의 언니인 지유화가 그 일을 저지른 장본인이란 것을.

‘그래서 그런 거겠지.’

자신이 저지른 일도 아니면서, 가해자처럼 굴 게 뭐야?

유은영이 그런 생각을 하면서 날선 목소리를 뱉어냈다.

“사람들은 더는 당신을 영웅으로 기억하지 않을 거예요.”

이제 지유화의 이름과 함께 딸려오는 기억은 끔찍한 사건과 사고들뿐일 거다.

“그래도 당신은 좋아하겠네요.”

어쨌든 결국 사람들은 ‘지유화’를 기억하게 될 테니 말이다.

“안 그래요?”

묻는 말에 지유화는 아무 대답이 없었다.

그저 석고상처럼 굳은 표정으로 유은영을 노려볼 뿐.

그 시선이 무섭지도 않은지 유은영은 계속해서 말했다.

“그래서 당신에 대해 아무것도 알려주지 않으려고요.”

“뭐?”

“당신이 벌인 그 추악한 짓.”

그리고.

“엽기적인 영웅 행위.”

그 모든 것들을.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자연스레 잊혀지게 두려고요.”

“그게 가능할 것 같아?!”

지유화가 사납게 일갈했다.

“당장, 지화자. 그 년만 봐도 다들 나를 떠올릴 거야. 그런데 사람들이 나를 잊게 두겠다고?”

하!

지유화가 실소를 터트렸다.

“너무 순진한 거 아니야?!”

“아닌데요?”

유은영이 심드렁하게 말했다.

“그거 알아요? 위인은 그보다 더 대단한 위인에게 잊혀지기 마련이라는 것을.”

“뭐?”

“저는 S급 힐러에요.”

대한민국에서는 최초인 S급 힐러.

“더욱이 전 세계적으로도 몇 명 없죠.”

손에 꼽을 정도인 자신이 세상에 모습을 완전히 드러내면 어떻게 나올까?

“당신 같은 건 금방 잊혀질 걸요?”

애초에 죽은 지 5년도 넘은 인물이니까.

“지화자 씨를 볼 때마다 당신을 떠올릴 거라고요?”

유은영이 픽 웃었다.

“지화자 씨 옆에는 이제 제가 있을 거예요.”

그러니 지화자를 볼 때마다 떠올리는 건, 이제 죽어버린 전 랭킹 1위가 아니라.

“제가 되겠죠.”

S급 힐러인 자신이 될 거다.

유은영의 말에 지유화의 두 눈이 세차게 흔들렸다.

“거짓말 하지 마.”

“현실을 보지 그래요?”

유은영이 나지막하게 목소리를 내었다.

“당신도 그걸 알아서 여기에 있는 거잖아요.”

지유화가 이곳에 있는 이유야 보지 않아도 뻔했다.

자신이 지화자에게 패배할 것을 염두해서, 제 신체의 일부를 키메라와 결합시킨 거다.

‘그런 게 어떻게 가능할까 궁금하지마는.’

굳이 알고 싶지는 않았다.

“지유화 씨, 이제 그만 이 세상에서 영영 사라져주세요.”

더는 그녀에 의해 지화자가 고통 받지 않도록.

지화자뿐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 역시 그녀 때문에 고통 받는 일이 없도록.

“이만하면 됐잖아요.”

성큼, 지유화에게 다가선 유은영이 손을 들었다.

그녀의 손가락 끝에서 뿜어져 나오는 빛에 지유화가 주춤거리며 물러났다.

“이만하면 됐다고?”

아니었다.

아직 부족했다.

더욱이 눈앞의 여자가 말하지 않았던가?

자신이란 존재를 기억하는 사람은 더 이상 아무도 없을 거라고.

“안 돼.”

그런 일은 절대로 일어나서는 안 됐다.

자신이 지금까지 무엇을 위해 그 많은 일을 저지르고 수습했는데!

도대체, 왜!

“왜 내가 죽어야하는데!”

지유화가 목소리를 높였다.

죽으려면 지화자가 죽어야했다. 불치병에 걸리는 것도 자신이 아닌 지화자여만 했다.

사랑을 받는 것도, 애정을 받는 것도, 관심을 받는 것도.

그 모든 행위가 모두 자신의 것이어야 했다.

그런데, 왜!

“도대체 왜!”

지유화가 분노를 터트렸다.

“지유화 씨.”

그런 지유화를 유은영이 애처롭다는 듯이 불렀다.

“당신은 정말 구제불능이에요.”

그 말과 함께 환한 빛이 지유화를 집어 삼켰다.

“싫어……!”

그 빛이 수그러든 후에 맞이할 끝이 어떨지, 지유화는 너무나도 쉽게 알아차렸다.

“싫어! 싫다고!”

지유화가 어떻게든 자신을 감싼 빛에서 벗어나고자 발버둥 쳤다. 동시에 자신과 연결된 키메라를 움직이고자 노력했다.

하지만 키메라는 아무런 움직임도 보이지 않았다.

애초에 진작 목숨이 끊어졌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안녕히 가세요, 지유화 씨.”

희미하게 사라지는 형체를 향해 유은영이 인사했다.

“두 번 다시 만나지 마요.”

지유화에게 자신의 힘을 한 번 더 사용하고 싶지는 않았으니까.

오래지 않아 지유화가 사라졌다.

흔적조차 찾을 수 없도록, 아주 완전히 말이다.

그러기 무섭게 어둠뿐이었던 공간에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다.

“아…….”

유은영이 얼빠진 소리를 내고는 고개를 들었다.

균열 사이로 빛이 보였다.

“끝이네.”

드디어 모두를 구원했고, 밖으로 나오게 됐다. 지유화에게 있어서는 구원이 아니었을지 모르나.

‘괜찮아.’

자신을 비롯한 지화자에게 있어서는 구원이었을 테니 아무 상관없었다.

그렇기에 유은영은.

“언니!”

바깥에서 자신을 찾는 목소리에 더없이 환하게 웃어보였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