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82화
쿵! 쿠궁!
여러 차례 폭발이 일어나며 흰 연기가 도로를 집어삼켰다.
―끼에에에엑!
―키야아아악!
짙은 안개처럼 퍼진 연기 사이로 키메라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꺄아악!”
“으악!”
미처 대피하지 못한 사람들이 비명을 지르며 달아나기 시작했다.
―캬르륵!
키메라가 그들을 눈으로 쫓으며 히죽거렸다.
키메라 역시 인간이었으나 이미 지나간 과거일 뿐. 지금 그것들은 그저 몬스터나 다름없는 괴물일 뿐이었다.
―키에에엑!
눈을 빛내며 사람들을 쫓던 키메라가 그들을 향해 아가리를 쩌억 벌리는 찰나.
퍼억!
누군가 나타나 그 괴물을 발로 걷어찼다.
“지, 지화자다!”
“지화자다! 지화자가 나타났다!”
“우리는 살았어!”
살고 자시고 말할 기운이 있을 때 도망쳐줬으면 좋겠다.
지화자가 그렇게 생각하며 혀를 찼다.
“서이안, 너는 사람들 대피 좀 도와.”
“멋진 건 너혼자 다하려고?”
“불만 있으면 바꿔. 저 괴물들 상대하는 것보다야 사람들 대피시키는 게 훨씬 더 나으니까.”
그 말대로였다.
서이안 역시 그렇게 생각했는지 이내 사람들 쪽으로 몸을 돌렸다.
‘툴툴거릴 때는 언제고.’
지화자가 픽 웃고는 무기를 치켜 들었다.
―크르르르!
지화자에게 발로 걷어차였던 놈이 독기가 잔뜩 든 얼굴로 두 눈을 번뜩였다.
―캬아아악!
“기세 좋네.”
지화자가 자신을 향해 달려드는 키메라를 가볍게 피하며 휘파람을 불었다.
“못해도 A급 몬스터랑 결합이 됐나봐? 아님, S급인가?”
뭐가 됐든 간에.
“나한테는 상대가 안 되지만.”
퍽!
지화자가 무기를 휘둘러 키메라의 관자놀이를 찍어버렸다.
―키악!
단말마와 함께 늑대와 비슷한 형태를 지니고 있던 키메라가 쓰러졌다.
기절한 괴물의 몸에 이윽고 불이 붙었다.
화르륵, 타오르는 것에 키메라는 금방 잿더미가 되어 사라졌다.
“끝났어?”
“아직.”
지화자가 서이안의 말에 심드렁하게 대꾸해주고는 말했다.
“지금부터 시작이니까 시민들 잘 대피시키도록 해.”
지화자의 앞에 수십의 키메라가 붉은 눈을 번뜩였다.
타앗!
지화자가 망설임 없이 그것들을 향해 달려들었다.
―키야아아악!
―끼에에에엑!
키메라들 역시 포효하며 지화자를 향해 움직였다.
네발 달린 짐승처럼, 혹은 날개달린 짐승처럼 움직이는 괴물들을 향해 지화자가 무기를 휘둘렀다.
쿵! 쿠궁!
굉음과 함께 땅이 흔들렸다.
서이안의 안내에 따라 도망치던 사람들이 비틀거리며 넘어졌다.
“으아아앙!”
서이안이 넘어진 아이를 일으켜세워주고는 얼굴을 찌푸렸다.
“지화자! 적당히 좀 해!!”
키메라가 부서뜨리는 건물보다 지화자가 무너뜨리는 건물이 더 많은 것 같았다.
어차피 부서지고 무너진 건물들 모두 센터가 복구시켜야 할 텐데 말이다.
“너는 그만 좀 울고!”
서이안이 아이를 다그치고는 입을 열었다.
“뚝 그치고 어른들 따라 도망가. 엄마랑 아빠 어디 있어?”
“으응.”
아이가 훌쩍였다. 아무래도 부모의 손을 놓친 듯했다.
“어디 있는지 몰라?”
아이가 울상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는 와중에도 지화자는 계속해서 키메라들을 처리하는 중이었다.
쿠구구궁!
커다란 폭발음과 함께 땅이 흔들렸다.
서이안이 아이를 안아 들었다.
부모의 손을 놓친 아이를 혼자 대피시키게 둘 수는 없었다.
그때 아이가 얼굴을 찌푸렸다.
“왜 그래? 울지마. 형이 엄마랑 아빠 찾아줄 테니까.”
물론, 키메라들이 다 처리된 후에 말이다. 아이는 서이안의 말에 입술을 우물거렸다.
“아파요.”
“아파? 어디가?”
“무릎.”
아이가 훌쩍이며 말했다.
“무릎 아파요.”
서이안이 얼굴을 찌푸리고는 아이의 무릎을 살폈다.
조금 전, 넘어지면서 아스팔트 도로에 쓸린 모양인지 피가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서이안이 허겁지겁 옷을 뜯고는 아이의 무릎을 감쌌다.
“아야!”
아이가 울상을 지었다.
“아파도 참아.”
마음 같아서는 아이를 다른 사람에게 맡기고 싶었지만 그러기에는 상황이 여의치 않았다.
그래도 다행인 건, 사람들 대부분이 대피를 완료했다는 것.
‘좋아.’
서이안이 한쪽 팔로 아이를 안아 들고는 지화자를 향해 외쳤다.
“지화자! 시민들 대피 끝났어! 이 꼬맹이만 병원에 데려다주고 금방 돌아올 테니까 버티고 있어!”
지화자가 실소를 흘렸다.
버티고 있을 것도 없이 서이안이 돌아오기도 전에 상황이 끝날 것 같았기 때문이다.
어쨌든 지화자는 말했다.
“마음대로 해.”
그 말에 서이안이 움직였다.
눈 깜짝할 사이에 사라진 그를, 지화자는 구태여 찾지 않았다.
그녀는 그저 자신이 해야할 일을 마저 처리할 뿐이었다.
―크르르륵!
키메라가 아가리를 벌리며 짐승이 울부짖는 듯한 소리를 내었다.
“화났어?”
지화자가 웃는 낯으로 물었다.
“그래, 암만 괴물이 됐다고 해도 한때는 인간이었으니까 그런 감정을 느낄 만도 하지.”
또한, 그들과 결합 된 몬스터만 해도 죽음 앞에서 두렵다는 감정을 느끼는 족속들이었다.
지화자가 그 사실을 떠올리면서 씁쓸하게 중얼거렸다.
“그런 감정은 배제된 채였으면 좋았을 텐데.”
죽음에 대한 공포나 두려움따위 느끼지 않고 오직 파괴 본능만을 지닌 괴물이었다면 좋았을 텐데.
“미안.”
지화자가 키메라를 향해 사과하고는 무기를 치켜들었다.
탁!
이내 땅에 꽂힌 것과 함께 불이 솟구쳐올랐다. 지화자를 중심으로 하여 일어난 불은 곧 키메라들을 집어삼켰다.
―끼에에에엑!
―키야아아악!
키메라들이 고통에 발버 둥치며 비명을 질렀다.
가죽이 타 들어가는 듯한 냄새에 지화자가 얼굴을 찌푸리고는 입을 열었다.
“20XX년, 3월 14일의 결투를 회고한다.”
3월 14일.
친구나 연인 사이에 사탕을 선물하며 좋아하는 마음을 전하는 날이라던 그날.
지화자는 외국에서 온 각성자와 결투를 치렀었다.
그 각성자는 자신에게 가해지는 어떤 고통도 느끼지 못하게끔 저를 조종할 수 있었다.
지화자는 그때의 기억을 되살려 키메라들에게서 고통을 앗아갔다.
불꽃에 휩싸인 키메라들이 붉은 눈을 빛내며 입을 열었다.
―사… 살려…….
그 말을 끝으로 그것들은 재가 되어 사라졌다.
“…….”
지화자가 바람에 날려가는 재를 조용히 응시하며 두 손을 꽉 주먹쥐었다.
마지막에 키메라가 내뱉은 말의 끝이 뭐였을까?
살려달라는 소리였을까? 아님, 이렇게 인간으로 죽게 해서 고맙다는 소리였을까?
뭐가 됐든 간에 중요한 건 한 가지였다.
지유화로 인해 괴물이 된 사람들을 자신의 손으로 끝장냈다는 것.
지화자가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처음 보네.”
그러다 들리는 목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어느새 서이안이 서 있었다.
품에 안고 있던 아이는 무사히 병원에 데려다준 모양이었다.
지화자는 무덤덤하게 물었다.
“뭐가?”
“네가 그렇게 감정적으로 구는 거 말이야.”
지화자는 누가 봐도 후회로 점철되어있는 모습이었다.
“어차피 키메라들이잖아.”
“그래. 어차피 키메라들이지.”
한때는 인간이었던 괴물들.
지화자가 나지막하게 말을 덧붙이고는 물었다.
“아이는?”
서이안이 놀란 눈을 보였다.
“내가 꼬맹이 안고 있는 거 다 봤어?”
“그럼, 봤지.”
장님이 아니고서야 보지 못했을 리가 없었다.
“와우.”
서이안이 입술을 오므렸다.
“봤다고 해도 그 꼬맹이를 신경 쓰다니.”
그가 감탄했다.
“지화자, 정말 많이 달라졌구나.”
“뭐라는 거야.”
지화자가 불쾌하다는 듯 얼굴을 찌푸리고는 물었다.
“오는 길에 센터 쪽 사람들 못 만났어?”
“응, 못 만났어.”
만났다면 현재 상황이 어떻고 피해는 또 어떤지 이것저것 캐물어 봤을 거라면서 서이안이 말했다.
“그래도 여기는 대충 정리된 것 같은데.”
그렇지 않아?
덧붙여 묻는 목소리에 지화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정리된 거 맞아.”
사람들을 위협하던 키메라들은 모두 불타 재가 되어버렸다.
키메라들의 위협을 받던 사람들은 서이안의 안내에 따라 모두 안전한 곳으로 대피했고.
“다른 곳으로 이동하자.”
키메라에 의해 어려움을 겪고 있는 곳은 많이 있으니까 말이다.
“너희 애들이랑은 연락했어?”
“진작했지.”
서이안이 비딱하게 입꼬리를 끌어 올렸다.
“우리 애들, 내가 명령한 것도 없는데 알아서 잘하고 있더라고. 참고로 유승민 씨는 안전한 곳에 대피시켜 놓은 상태야.”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도 맑다고 하더니.”
지화자가 픽 웃었다.
“윗물이 썩었는데 아랫물이 맑을 수도 있구나?”
“지금 싸우자는 거지?”
지화자가 어깨를 으쓱였다.
“상황 정리된 후에 실컷 싸워 줄 테니 다른 곳으로 움직이기나 하자.”
때마침 조금 떨어진 곳에서 굉음이 들려왔다.
서이안이 그에 어떻게 반응할 새도 없이 지화자가 먼저 움직였다.
하지만.
푸욱!
그녀는 걸음을 채 내딛기도 전에 쓰러지고 말았다.
“지화자!”
가슴 아래쪽을 꿰뚫고 나왔던 것이 스르륵 빠져나갔다. 지화자가 쿨럭, 피를 토해내며 자리에 주저앉았다.
“야, 지화자! 괜찮냐?!”
서이안이 다급하게 물었다.
지화자는 가슴 부근을 쥐고서 고개를 돌렸다.
―끼… 끼히……!
사람의 형태를 지니고 있지만, 절대 인간이라고 부를 수 없는 괴물이 히죽거리며 웃고 있었다.
“시발, 저 괴물은 뭐야?”
“보면 몰라?”
지화자가 입가를 타고 흐르는 피를 닦아내고는 말했다.
“키메라잖아.”
지유화의 의해 희생당한 여러 사람이 머리만 남겨둔 채 한 몸이 되어 웃고 있었다.
서이안이 희게 질린 얼굴로 입을 열었다.
“저런 키메라 따위 본 적 없어.”
“그렇다고 해도 여기에서 막아야 해.”
지화자가 꿰뚫린 부근을 지져버렸다. 살이 타 들어가는 고통에 그녀가 입술을 꾹 깨물었다.
한참 후에야 지화자는 가쁜 숨을 토해내며 말했다.
“여기에서 막지 못하면 아무도 막을 수 없을 거야.”
S급 각성자인 자신이 알아차리기 전에 급습했다.
평범한 키메라가 아니란 뜻.
대한민국의 랭킹 1위와 랭킹 2위가 막지 못한다면 누가 막을 수 있을까?
‘없을 거야.’
지화자가 한쪽 눈가를 살짝 찡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