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F급 힐러가 랭킹 1위가 되어 버렸다-180화 (180/200)

제180화

“쿨럭……!”

유은영이 기침을 토해내며 멈춰섰다.

그에따라 키메라가 나타난 것이 분명한 곳으로 향하던 걸음들이 모두 제자리에 멈췄다.

지화자가 걱정스럽게 물었다.

“언니는 좀 쉬는 게 어때?”

“맞아.”

서이안이 거들었다.

“내 독을 버티는 게 쉽지 않을 텐데?”

“그걸 잘 아는 놈이 언니한테 그런 거야?”

지화자가 날선 목소리를 내뱉었다. 그에 서이안이 불만어린 얼굴로 중얼거렸다.

“나도 싫었다고! 그런데 저 망할 힐러가 부득불 너 구하러 가야겠다잖아!”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애초에 잘 조절도 못하는 힘을 왜 사용한 거야?!”

“내가 말했잖아! 저 망할 힐러가 너 구하러 가야하니까!”

“그만요!”

유은영이 목소리를 높였다.

“애들도 아니고 쓸데없는 거로 싸우지 마세요!”

쓸데없는 거라니!

지화자가 얼굴을 찌푸렸다. 그 화난 표정을 유은영은 못본 척 무시하며 말했다.

“여기에서 쉬는 건 싫어요.”

유은영이 스스로에게 힐을 걸며 말했다.

“키메라들로 인해 다친 사람이 있을 거 아니에요?”

“언니 말고도 힐러는 많아.”

“많은 건 아니죠.”

지화자가 살포시 미간을 좁혔다. 그런 그녀를 향해 유은영이 활짝 웃었다.

“힐러는 언제나 부족하잖아요?”

대한민국뿐만이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귀한 자원이 바로 힐러였으니 말이다.

“그러니까 가요.”

저는 괜찮으니까.

유은영이 단호하게 뒷말을 내뱉고는 몸을 일으켰다.

지화자가 골치 아프다는 듯 한숨을 푹 내쉬었다.

유승민은 나름대로 고집을 꺾는 편이던데 저 망할 언니는 도무지 말을 들을 기미가 안 보인다.

‘어쩔 수 없지.’

지화자가 유은영의 무릎 안쪽에 손을 넣고는.

“꺅!”

그녀를 들어 올렸다.

“무슨 짓이에요?!”

“언니 속도에 맞춰서 가는 것보다는 이게 더 빨라. 내가 싫으면 서이안한테 안길래?”

서이안이 끔찍한 소리 말라는 듯 질색했다.

그건 유은영 역시 마찬가지였다.

서이안에게 안길 바에야 차라리 지화자에게 안겨 있는 게 나았다.

유은영이 닳고 해진 옷을 꼭 끌어 잡았다. 그에 지화자가 키득거리며 웃었다.

“그래. 저 자식한테 안길 바에야 나한테 안기는 게 낫지?”

“이봐, 지화자. 나도 그 망할 힐러 안아 드는 건 죽어도 싫거든?”

서이안이 불멘 목소리로 항변했지만 지화자는 무시하고서 땅을 박찼다.

“야! 같이가!”

서이안이 뒤늦게 그녀를 따랐다.

***

애애앵―!

시끄러운 사이렌 소리가 도시 곳곳에서 들려왔다.

“꺄아악! 괴, 괴물! 괴물이다!!”

“으아악! 도망쳐!!”

사람들이 앞다투어 뛰어나갔다.

“다들 진정하시고 센터의 안내에 따라 대피하십시오!”

그들을 센터의 직원들이 어렵게 안전한 곳으로 유도했다.

―키야아아악!

그런 사람들을 향해 키메라가 입을 벌린 건 그때였다.

“흐아아아악!”

모두가 두 눈을 질끈 감으며 비명을 질렀다. 하지만 고통따위 느껴지지 않았다.

“하, 미친. 이게 갑자기 웬 날벼락이야?”

“그러게 말이야. 이 와중에 지 팀장이랑 수현 형님과는 연락도 안 되고.”

때마침 나타난 영웅호걸이 키메라를 완전히 곤죽으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3팀장님! 4팀장님!”

죽다 살아난 센터의 직원이 두 눈을 빛내며 그들을 반겼다.

하지만 그들은 가볍게 손을 흔들어주고는 자리를 떠나버렸다.

“티, 팀장님들?!”

당황한 그를 향해 영웅호걸이 웃는 낯으로 말했다.

“미안해요, 여기보다 급한 곳이 많이 있어서.”

“너무 걱정하지는 마. 다른 녀석들이 여기 맡기로 했으니까!”

그렇게 그들은 사라졌다.

“마… 망했다……!”

도대체 어떤 사람이 이곳의 안전을 맡아줄 지는 모르겠으나, 영웅호걸에 비할 바가 못될 터.

“저, 저기요. 우리 안전한 거 맞죠? 아이가 있어서요. 여기, 위험한 것 같으면 아이라도 안전한 곳으로 대피시켜주시면 안 될까요?”

부부가 눈물 범벅이 된 얼굴로 자신의 아이를 내밀었다.

센터의 직원이 꿀꺽 침을 삼키고는 말했다.

“괜찮습니다. 이곳은 안전합니다. 제가 여러분을 지켜드리겠습니다.”

가지고 있는 거라고는 대 몬스터용 총 하나뿐이었지만 센터의 직원은 그렇게 말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이곳을 지키자. 적어도 사람들이 대피할 시간만큼은 버는 거야.’

센터의 직원이 그렇게 꿀꺽 침을 삼키며 긴장감 어린 얼굴로 주변을 살필 때였다.

―끼에에에엑!

―키야아아악!

수십 마리는 족히 되는 키메라들이 그가 지키고 있는 곳으로 달려오기 시작했다.

‘갑자기 왜!’

센터의 직원이 희게 질린 얼굴로 총을 꺼내 들었다.

“꺄악! 도, 도망쳐!”

“흐아아악!”

겨우 진정이 됐던 사람들이 혼비백산하여 도망치기 시작했다.

“다들 침착하십시오! 침착하고, 윽!”

누군가 밀친 탓에 센터의 직원이 바닥을 구르고 말았다.

“아야야…….”

그가 아픈 머리를 붙잡고 몸을 일으켰을 때에는.

“딸꾹.”

키메라 중 하나가 두 눈을 데굴 굴리며 그를 보고 있었다.

센터의 직원이 희게 질린 얼굴로 숨을 참았지만.

“딸꾹!”

한 번 시작된 딸꾹질은 멈출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그를 먹잇감으로 점찍은 키메라 히죽 입꼬리를 올리는 찰나.

“흐아아압!”

누군가 기합을 터트리며 키메라의 머리에 주먹을 꽂아 버렸다.

퍼억!

풍선 터지듯, 키메라가 살점을 튀며 남자의 주먹에 짓이겨졌다.

센터의 직원은 그만 힘이 풀려 털썩 주저앉고 말았다.

‘사, 살았다……!’

그런 안도감도 잠시, 그는 자신을 구해준 사람에게 황급히 인사했다.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이 은혜는 결코 잊지 않겠습니다!”

“그럴 필요 없습니다!”

남자가 호탕하게 웃었다.

“태균 형님, 멋대로 튀어나가지 말라니까요.”

남자의 뒤로 그보다 왜소한 체구의 청년이 모습을 드러냈다.

“하성아, 애들은?”

“몰라요. 자기네들 멋대로 튀어나가버렸어요. 친구를 찾았다나 뭐라나.”

“걔들한테 친구가 있었나?”

“몬스터 말하는 거겠죠. 아니면 키메라나요.”

타앙!

왜소한 체구의 청년이 센터의 직원을 향해 방아쇠를 당겼다. 그의 귀 밑을 지나간 탄알은 곧장 키메라의 미간을 맞혀버렸다.

―끼히……!

키메라가 단말마와 함께 쓰러졌다. 그것에게 쥐도새도 모르게 먹힐 뻔 했던 센터의 직원은 꿀꺽 침을 삼켰다.

도망치던 사람들은 모두 제자리에 우뚝 멈춘 상태였다.

뒤늦게 그들을 발견한 청년이 입을 열었다.

“현장 관리 부서 0팀의 가하성입니다. 지금부터 이곳은 저희가 지켜드릴 테니, 모두 안심하시고 직원의 안내에 따라 움직여주시기를 바랍니다.”

곳곳에서 안도하는 숨이 터져나왔다.

그건 센터의 직원 역시 마찬가지였다.

“괜찮으세요?”

가하성이 그에게 물었다.

센터의 직원은 금방에라도 울 것 같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네, 괜찮습니다!”

정말이지, 죽는 줄 알았다.

갑작스럽게 도시 곳곳에서 터진 사고에 밤늦게 호출된 것도 억울한데 지원은 안 오지.

“0팀 덕분에 살았습니다!”

센터의 직원이 코를 훌쩍였다.

그에게 0팀은 절대로 얽히지 않고 싶은 팀이었지만 이번만큼은 달랐다.

가하성은 자신을 격렬하게 환영해주는 센터의 직원에게 당황한 낯을 보였다.

그런 그를 하태균이 불렀다.

“하성아, 너는 쉬지 그랬어.”

“어떻게 그래요?”

가하성이 몸을 풀며 말했다.

“저 다 나았어요.”

“그래도 지후가 걱정될 텐데.”

“병원은 방어 계열 최상위 각성자들이 지키는 거 알잖아요.”

사실은 조카가 걱정돼서 죽을 것 같았지만 가하성은 아무렇지 않은 척 말했다.

“저것들이나 어서 처리하죠.”

가하성이 가리키는 곳에는 수십, 수백에 이르는 키메라들이 아가리를 드러내고 있었다.

“도대체 어디에 숨어있다 나타난 걸까?”

“그거야 모르죠.”

가하성이 나지막하게 가라앉은 대꾸하고는 총을 들었다.

“지금은 저것들 처리하는데 집중하도록 하죠.”

“그래.”

하태균이 그와 함께 땅을 박차며 키메라들을 향해 달려들었다.

***

콰과광!

멀지 않은 곳에서 굉음이 들려왔다. 곳곳에서 불꽃이 타오르며 연기를 뿜어내고 있기도 했다.

“엉망이네.”

서이안이 탄식하듯 중얼거렸다.

지화자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걸음을 옮겼다.

“어디 가려고?”

“우선은 병원.”

품에 안겨 있는 유은영이 완전히 정신을 잃고 말았다.

“네 독을 해독하게 해야지.”

서이안이 뺨을 긁적였다.

“병원에 내 독을 해독시킬 수 있는 힐러가 있을지 모르겠네.”

“있어야 해.”

지화자가 뾰족하게 말했다.

“없으면 네가 데리고 와야하고.”

“아니, 나는!”

“시끄러.”

그녀가 차갑게 일갈하고는 유은영을 곧장 병원으로 데리고 갔다.

안타깝게도 병원은 이미 환자들로 꽉 채워져있는 상황이었다.

“이거 글렀는데? 그냥 우리 길드로 가지? 우리 힐러 붙여줄게.”

“안 돼.”

병원으로 오는 동안 유은영의 상태가 더 나빠졌다.

이 정도면 몸이 바뀌어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인데, 왜인지 몸은 바뀌지 않고 있었다.

지화자가 얼굴을 구겼다.

응급실을 꽉 채우고 있는 환자들을 향해 비키라며 소리 지를까 잠시 고민하던 순간.

“지화자 팀장님?!”

반가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지화자가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자신을 부른 여자를 쳐다봤다.

바로 간호 관리 부서의 이혜나 팀장이었다.

“지화자 팀장님께서 이곳은 무슨 일이세요? 어머! 서이안 길드장님도 계시네? 그리고…….”

이혜나가 지화자의 품에 안겨있는 여자를 보고는 경악했다.

“유은영 씨잖아!”

“네, 유은영 씨입니다.”

지화자가 담담하게 대답하고는 그녀에게 유은영을 억지로 안겼다.

“지, 지화자 팀장님?”

“유은영 씨 좀 부탁할게요. 서이안 길드장님의 독에 당한 상태입니다.”

“네?!”

이혜나가 놀라 서이안을 쳐다봤다. 이렇게 급박한 상황에서 설마 팀킬이라도 한건가?!

그녀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다 알겠다는 듯 서이안이 말했다.

“그런 거 아닙니다.”

이혜나가 어색하게 웃는 찰나.

“그럼, 부탁하겠습니다.”

지화자가 몸을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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