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F급 힐러가 랭킹 1위가 되어 버렸다-179화 (179/200)

제179화

바닥을 구른 몸이 힘없이 축 늘어졌다.

하지만 지화자는 알았다.

지유화는 아직 죽지 않았다는 것을. 애초에 그녀는 두 눈을 부릅뜨고 자신을 노려보고 있는 중이었다.

‘독해.’

정말이지, 저 인간만큼 독종인 사람은 없을 거다.

하긴, 그러니까 이렇게 살아 돌아온 거겠지. 개벽이니 뭐니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지껄이면서 사람들을 조종한 거겠고.

생각할수록 짜증나는 인간이었다.

지화자가 거칠게 앞머리를 쓸어 올리고는 걸음을 옮겼다. 지유화를 완전히 끝장내기 위해서였다.

“야! 지화자!”

그 손을 서이안이 잡았다.

“말리려고?”

날선 목소리에 서이안이 움찔거렸다.

“말리려면 말려.”

지화자가 붙잡혀 있던 손을 거칠게 뿌리치고는 말했다.

“하지만 이것 하나만큼은 명싱해. 나를 막으려는 순간. 내 손에 죽는 거야.”

서이안이 파르르 입술을 떨다 한 걸음 뒤로 물러났다.

지화자는 그대로 다시 움직였다.

“지화자 씨…….”

부르는 목소리에 다시 멈췄지만 말이다.

지화자가 작게 숨을 내쉬고는 뒤를 돌아보았다.

“언니도 막으려고?”

“설마요.”

유은영이 힘겹게 몸을 일으켰다.

쿨럭, 작게 터트린 기침에 피가 뚝뚝 떨어졌지만 그녀는 아무렇지 않게 힐을 시전했다.

그런 후에야 유은영은 말을 끝맺었다.

“후회없는 일을 하세요.”

제 등을 밀어주는 목소리에 지화자가 작게 웃음을 흘렸다.

후회없는 일이라.

“알겠어.”

지화자가 망설임 없이 다시 걸음을 옮겼다.

그녀가 이번에 멈춰선 건, 머리에서 피를 한바가지로 흘리고 있는 지유화의 앞에서였다.

“…또 죽이려고?”

“그래.”

지화자가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그보다 웃기네. 또 죽인다니.”

지화자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처음 너를 죽였을 때는 내 의지가 아니었어.”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

지유화가 웃는 낯으로 제게 심장을 내주던 것을.

지화자는 어떻게 할 새도 없이 그렇게 지유화를 죽여버리고 랭킹 1위의 자리를 거머쥐게 됐다.

“하지만 이번에는 아니야.”

그녀가 봉을 높이 치켜들고는 입을 열었다.

“이번에 너를 죽이는 건, 순전히 내 의지야.”

지유화가 키득거리며 웃었다.

“내 동생…….”

다정하게 지화자를 부르던 목소리에 이내 살기가 실렸다.

“나를 죽인다고 끝날 것 같아?”

“뭐?”

“물론, 나는 끝나겠지.”

하지만 자신이 저질러놓은 일은 아니었다.

지유화가 키득거리며 웃었다.

“나를 죽이는 순간, 실패작들이 이 세상에 풀러날 거야.”

“도대체 무슨 소리를……!”

“키메라.”

지유화가 지화자의 말을 끊고는 비딱하게 입꼬리를 올렸다.

“키메라들이 이 땅에 모두 풀러나게 될 거야.”

지화자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종잇장처럼 구겨지는 그 표정에 지유화가 재미있다는 듯 웃었다.

“어때? 나를 죽일 수 있겠어?”

지화자가 입술을 꾹 깨물었다.

키메라들이 풀려나는 거야 막으면 되는 일이다.

하지만 그 키메라들이 지금까지 상대했던 것과 같은 개체가 아니란 게 문제였다.

분명 지유화를 쫓다 실패했던 그곳에서 만난 개체와 비슷한 녀석들이 이 땅에 풀려나게 될 텐데.

‘막을 수 있을까?’

아무 사상자도 내지 않고 무사히 그것들을 처리할 수 있을까?

지화자는 확신할 수 없었다.

“걱정하지 마세요, 지화자 씨!”

그때, 그녀를 일깨우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키메라가 풀려나든 그러지 않든 무슨 상관이에요! 어차피 막으면 되는 일이잖아요!”

지화자가 멍하니 뒤를 보았다.

유은영이 잔뜩 화난 얼굴로 씩씩거리며 서있었다.

“지화자 씨가 못하겠다면 제가 할게요! 그거 이리 줘요!”

자신한테서 무기를 빼앗가려는 듯이 구는 모습에 지화자가 피식 웃음을 흘렸다.

“됐어.”

유은영 덕분에 머리가 맑아졌다.

곧, 지화자가 어떤 감정도 담지 않은 눈으로 제 언니를 쳐다봤다.

“죽일 수 있겠냐고 물었지?”

지화자가 담담하게 대답했다.

“응, 죽일 수 있어.”

곧, 그녀가 높이 치켜들었던 봉을 힘차게 내렸다. 지유화가 움직인 건 그때였다.

“윽!”

움직일 힘이 없을 텐데, 그녀는 제 동생을 밀쳐 넘어 뜨리고는 몸을 움직였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대처하지 못한 지화자가 황급히 소리 질렀다.

“서이안! 막아!”

화르륵!

보랏빛의 불꽃이 지유화를 향해 쇄도했지만 그녀는 멈추지 않고 계속 달렸다.

치익―!

독을 품고 있는 것에 살갗이 녹아 흘러내려도 마찬가지.

지유화는 오직 한 사람을 향해 달렸다.

“언니!”

유은영이 지유화의 기세게 주춤거리며 뒤로 물러났다. 하지만 끝은 절벽이나 다름없는 곳이었고.

“꺅!”

그녀는 결국 지유화에게 잡히고 말았다.

“유은영 씨, 죽기 싫으면 당장 나를 치료해요.”

지유화가 유은영의 목을 조르며 명령했다.

“다… 닥쳐……!”

유은영이 제 목을 조르는 여자의 손을 손톱으로 할퀴며 발버둥쳤다.

“언니!”

지화자가 무기를 휘둘러 지유화를 유은영한테서 떼어내고자 했지마는.

“다가오면 정말 죽여버릴거야. 그 자리에서 조금에라도 움직이면 역시 죽일 거고.”

지유화의 경고성 짙은 말에 멈출 수밖에 없었다. 지유화가 유은영의 목을 조르던 손에서 살짝 힘을 풀며 웃었다.

“착한 내 동생은 이번에는 언니 말을 듣겠지?”

지화자가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지유화는 동생한테서 시선을 돌린 후 유은영에게 다그치듯 다시 말했다.

“자, 어서 저를 치료하세요.”

상냥하게 내뱉는 목소리에 유은영은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유은영 씨.”

지유화가 힘을 풀었던 손을 다시 움직였다.

“컥……!”

목에 가해지는 악력에 유은영이 억눌린 신음을 토해냈다. 그녀의 위에서 지유화는 말했다.

“농담이 아니라 나는 정말 당신을 죽일 수 있어요.”

지랄하네.

유은영이 일그러진 미소를 내보였다.

‘나를 죽일 수 있다고?’

그럴 리가!

지유화가 자신을 살려둔 이유는 오직 죽어가는 몸뚱이를 치료할 수 있는 유일한 희망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죽일 수 있다고?’

유은영이 비웃음을 흘렸다.

그 순간 그녀의 눈에 무언가가 들어왔다.

옆에 굴러 떨어져있는 유리 조각이었다.

‘저거다.’

고작 유리 조각 하나로 S급 몸뚱이에 타격을 입힐 수 있을까 싶지마는 지금은 뭐든 해야했다.

유은영이 반항을 멈추고 유리 조각을 향해 한 손을 움직였다. 동시에 지유화를 향해 힐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유은영 씨는 제 동생과 다르게 말을 참 잘 듣네요.”

지유화가 히죽거리며 유은영의 목을 조르던 손에서 힘을 풀었다.

그 순간에 유은영은 바닥에 있던 유리 조각을 잡았다.

뾰족한 끝이 살갗을 파고들었지만 그녀는 아랑곳하지 않고 유리 조각을 세게 쥐었다.

그러고는.

“……!”

지유화의 눈 한쪽에 그것을 냅다 찔러 넣었다.

암만 S급 몸뚱이라고 해도 눈은 일반인과 다름 없을 테니까.

그리고 그 생각은 정확히 맞아 떨어졌다.

“으… 으아아악……!”

지유화가 비명을 지르며 고개를 뒤로 젖혔다. 유은영이 그 틈을 놓치지 않고 그녀를 발로 걷어차고는.

“지화자 씨!”

당황해하고 있던 지화자를 크게 불렀다.

그 목소리에 지화자가 재빠르게 몸을 움직였다.

이번에는 지유화에게 건네는 말따위 없었다. 지화자는 그저 손에 쥐고 있던 봉을 움직였다.

지유화의 눈 한쪽에 박혀있던 유리 조각에 지화자의 모습이 비춰졌다.

지유화가 빠른 속도로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동생에게 입을 뻐금거렸다.

지화자가 그에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무기를 휘둘렀다.

퍼억!

살갗이 터지는 소리와 함께 지유화의 목이 완전히 꺾였다. 이내 풀썩 쓰러진 몸에 지화자가 불을 붙였다.

화르륵―!

불꽃과 함께 지유화의 몸이 타들어가기 시작했다.

“지화자! 그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잖아!”

“있어.”

지화자가 서이안을 향해 말했다.

“한 번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 인간이야. 다시 그러지 않으리란 법은 없잖아?”

그러니 지유화가 되살아날 가능성은 조금에라도 줄이는 게 좋았다.

죽은 시체를 불태우는 한이 있더라도 말이다.

“정 불만이면 네가 편안히 보내주지 그랬어?”

서이안이 입술을 달싹거리다 고개를 푹 숙였다.

자신이 이 자리에서 한 일이라고는 아무것도 없다는 걸 잘 알았기 때문이다.

지화자는 그를 지나쳐 유은영에게 다가갔다.

“언니, 괜찮아?”

“네, 괜찮아요.”

유은영이 배시시 웃었다.

“그보다 끝났네요.”

“끝난 건 아니야.”

지유화는 말했다.

자신이 죽는 즉시 키메라들이 이 땅에 풀려날 거라고.

“움직일 수 있겠어?”

“네.”

유은영이 타들어가고 있는 시체를 흘긋 쳐다보고는 말했다.

“움직여야죠.”

지유화가 바라던 세상을 막으려면 억지로라도 움직여야했다.

“좋아.”

지화자가 유은영을 부축하고는 서이안에게 물었다.

“계속 그러고 있을 거야?”

서이안이 고개를 들었다.

“아니.”

이번에는 움직여야한다.

동경과 이상이었던 상대가 암만 불에 타 완전히 재가 되었다고 해도 슬퍼하면 안 된다.

애초에 애도를 보낼 대상이 아니었다.

“가자.”

때마침 멀지 않은 곳에서 연기가 자욱하게 피어 오르기 시작했다.

지유화가 만들어낸 키메라들이 활동하기 시작한 거다.

“지유화는 어쩌죠?”

“저대로 내버려둬.”

불에 타고 남은 재가 바람에 날려 사라질 때까지.

“애초에 지유화가 살아 돌아왔었다는 걸 아무도 모르게.”

그렇게 그 죽음이 잊혀지도록.

“저대로 둬.”

지화자의 말에 유은영이 고개를 끄덕였다.

대한민국을 비롯한 전 세계의 많은 사람에게 사랑을 받던 각성자는 그렇게 다시 죽었다.

이번에는 그 누구에게도 기억되지 않는 죽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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