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F급 힐러가 랭킹 1위가 되어 버렸다-177화 (177/200)

제177화

타앗!

두 사람이 다시 맞부딪쳤다.

날붙이가 서로를 튕겨내면서 돌풍을 일으켰다.

“큭!”

그 힘에 밀려난 지화자가 얼굴을 찌푸렸다.

‘빌어먹을.’

암만 같은 S급이라고 하더라도 지유화는 독보적이었다.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사실이 그랬다.

애초에 지유화가 말한대로, 그녀가 서서히 죽어가고 있지 않았더라면 지화자는 결코 제 언니를 죽일 수 없었을 거다.

‘아, 그래.’

지화자가 눈을 반짝였다.

“지유화.”

그녀가 자신의 언니를 다정하게 부르며 물었다.

“네 병, 다 나았어?”

지유화가 살포시 미간을 좁혔다.

“왜 갑자기 그런 걸 묻는걸까?”

“궁금해서.”

지화자가 싱긋 웃었다.

“하나뿐인 동생이 언니의 안부를 묻는 게 이상한가?”

“이상하지.”

지유화가 눈웃음을 지었다.

“하나뿐인 동생이 너란 사실에서 충분히 이상한 것 같은데. 우리 동생은 그걸 모르는 걸까?”

너스레를 떠는 목소리에 지화자는 유쾌하게 웃음을 터트렸다.

“너, 여전히 그 병을 안고 있나 보구나?”

지유화의 표정이 굳었다.

그것만으로 대답은 충분했다.

지화자가 픽 웃고는 말했다.

“그래, 네가 완전히 새로 부활한 게 아닌 이상 그대로겠지.”

지유화의 일그러진 얼굴을 보며 지화자가 재잘거렸다.

“이상하기는 했어. 너라면 금방 나를 잡을 수 있을 텐데 왜 자꾸 질질 끄는 걸까?”

쓸데없는 사족을 덧붙이면서.

“내 성질을 긁으려고 그러는 줄 알았는데…….”

지화자가 비스듬히 고개를 기울이면서 입매를 비틀었다.

“아무래도 아니었나 보네?”

안 그래도 일그러져있던 지유화의 표정이 완전히 구겨졌다.

“유은영 씨한테 자꾸 추근대던 것도 그 병 때문이었구나?”

개벽이니 뭐니 그런 건 다 핑계였을 뿐.

“너, 유은영 씨가 네 병을 치료해줄 수 있을까봐 그랬지?”

그래서 계속 유은영에게 추근거렸던 거다.

키메라를 인간으로 되돌릴 수 있는 그 힘이라면, 자신의 불치병 역시 치료해줄 수 있을 거라 믿었기에.

“바보같아라.”

지화자가 싱긋 웃었다.

“닥쳐!”

지유화가 고함을 터트렸다. 곧장 땅을 박찬 그녀는 순식간에 지화자의 앞에 도달해서는 검을 휘둘렀다.

지화자가 가까스로 그것을 피하며 웃음을 터트렸다.

“정답이었나 보네?”

지유화의 얼굴이 험악하게 구겨졌다.

“우리 동생.”

그러면서도 그녀는 다정하게 말했다.

“내가 꼭 죽여줄게.”

네가 나를 죽였던 것처럼.

나지막하게 덧붙이는 목소리에 지화자가 웃었다.

“어디 한 번 해봐.”

그러기 전에 내가 죽여줄 테니.

지화자 역시 웃음기 섞이 목소리로 말을 덧붙이고선 땅을 박찼다.

* * *

쿠구궁!

대지가 크게 흔들렸다.

콰과강!

귓청이 떨어져나갈 정도로 큰 굉음 역시 들려왔다.

유은영은 그 속에서 가쁘게 숨을 내쉬고는 환하게 웃었다.

“됐네요!”

손목을 채우고 있던 수갑을 결국 풀었다.

서이안은 얼굴을 찌푸렸다.

“괜찮냐?”

“네!”

“전혀 그렇게 안 보이는데.”

그가 머쓱하게 뺨을 긁적였다.

힘을 조절하는데 실패해서 그녀의 손목에 상처를 입히고 말았다.

단순한 상처라고 해도 미안한데, 서이안이 사용한 건 독이었다.

여자의 가녀린 손목은 독에 의해 녹아 흐물해져버리고 말았다.

그럼에도 유은영은 아무렇지 않은 척 활짝 웃었다.

“정말 괜찮아요.”

그녀가 곧장 힐을 사용했다.

“보다시피 이렇게 치료가 가능하니까요!”

“그렇다면 다행이지만.”

아니, 다행이 아니다.

“내 독은 단순한 힐로는 해독이 불가능해.”

유은영의 손목에 상처입힌 독은 곧 그녀의 체내에 스며들 터.

“너, 곧 위험해질거야.”

그러니 지금에라도 이곳을 벗어나는 게 좋을 거라는 말이었다.

하지만 유은영은 고개를 저었다.

“저는 정말 괜찮아요.”

서이안의 독이 체내에 스며들어 자신을 끊임없이 상처입힌다면지지 않고 계속 힐을 사용하면 되는 일이었다.

“그럼, 가볼게요.”

“어디를?”

“당연히 지화자 씨께서 계시는 곳이죠.”

서이안이 얼굴을 찌푸렸다.

“미쳤어?!”

“안 미쳤어요.”

미쳤다면 지화자가 도망치라고 했을 때 부득불 그곳에 계속 남아있었을 거다.

유은영은 담담하게 말했다.

“지화자 씨께서 지유화와 싸우고 계세요.”

“알아!”

지화자가 가진 힘을 사용해 쉽게 끝내지 못하는 상대는 전 세계에서 손에 꼽을 정도로 없었다.

그 상대들 모두 한국이 아닌 다른 나라에 있는 각성자들.

그러니 저곳에서 지화자를 몰아붙이고 있는 사람은 단 한 명뿐일 거다.

지유화.

옛적에 지화자의 손에 죽었다고 알려진 대한민국의 전 랭킹 1위, S급 각성자.

“유은영 씨께서 저곳에 간다고 해도 할 수 있는 건 없어.”

“아니요, 하나 있어요.”

“뭐가 있는데!”

자신의 독에 중독된 상태로 왜 저렇게 고집을 부리는지 모르겠다.

“폐급 힐러인 네가 저기에서 뭘 할 수 있다고!”

“힐(Heal)이요.”

유은영이 담담하게 목소리를 뱉어냈다.

“서이안 씨 말대로 저는 폐급 힐러에요. 아니, 폐급 힐러였죠.”

유은영이 기침을 터트렸다.

울컥, 목구멍 너머로 올라온 피가 그녀의 입가를 타고 흘렀다.

유은영이 스스로에게 힐을 시전하고는 말했다.

“하지만 보다시피 저는 이제 F급 힐러가 아니에요.”

할 줄 아는 것이라고는 끝내주는 안마밖에 없었던 자신이 아니다.

서이안이 얼굴을 찌푸렸다.

“그래. 네가 폐급에서 벗어난 건 진작 들었어.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바닥이잖아!”

유은영은 C급 힐러였다.

B급도 아닌 C급.

힐러가 암만 귀한 인재라고 해도 C급은 써먹을 곳이 별로 없었다.

더욱이 지화자와 지유화가 전투를 벌이고 있는 저곳에서는 아무 도움도 안 될 거다.

하지만 유은영은 말했다.

“바닥, 아니에요.”

쿨럭거리며 다시 피를 토해내며 그녀는 말을 이었다.

“저 이제 B급이에요.”

“뭐?”

서이안이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그게 무슨 소리야?”

“말씀드린 그대로에요.”

유은영이 입가에 묻은 피를 닦아내며 배시시 웃었다.

“저를 상처입히는 것도 아무래도 포함됐었나 봐요.”

유은영의 성언, 상처주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라.

그 말은 스스로에게도 포함되는 말이었던 모양이다.

-Name: 유은영(劉隱映)

-Birth: 20X1. 12. 26

-Local: 82_대한민국

-Rank: B급

-Number: 1982

유은영이 씨익 웃었다.

“서이안 길드장님, 저는 약하지 않습니다.”

더욱이 F급 힐러도 아니다.

“그럼, 가볼게요.”

유은영이 휙 몸을 돌렸다.

서이안이 멍하니 그 뒷모습을 보다 황급히 움직였다.

“흐악!”

유은영이 깜짝 놀라 비명을 질렀다. 갑작스럽게 몸이 들렸기 때문이다.

“놀라기는 뭘 놀라?”

그녀를 안아든 서이안이 짧게 혀를 차고는 말했다.

“꽉 잡아. 지화자한테 눈 깜짝할 사이에 데려다 줄 테니까.”

유은영이 놀란 눈을 보이더니 이내 활짝 웃었다.

“네!”

* * *

풀썩, 피투성이가 된 여자가 바닥에 쓰러졌다. 힘겹게 몸을 일으키려고 했지만 그러지 못했다.

“윽!”

구둣발이 뒤통수를 짓눌렀기 때문이었다.

구둣발에 뒤통수가 눌린 여자가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시선을 들어 올렸다.

“지유화……!”

“그래, 내 동생.”

지화자와 마찬가지로 피투성이가 된 여자가 활짝 웃었다.

“지금까지 잘 버텼어. 역시, 끈기 하나는 대단하다니까.”

지유화가 키득거리며 웃었다.

“생각해보면 내 동생은 항상 그랬지. 어머니랑 아버지가 외면해도 어떻게든 두 분의 눈에 들려고 아등바등.”

웃는 낯으로 동생의 머리를 짓밟던 여자가 성난 목소리를 토해냈다.

“그냥 죽어버렸으면 좋았을 텐데!”

말을 하기도 전에, 아니. 걸음마를 떼기도 전에.

‘아니, 아니야.’

애초에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정말 좋았을 텐데.

지유화가 일그러진 미소를 내보이며 검을 들었다.

“네 목숨, 내가 거둬줄게. 네가 그랬던 것처럼.”

지화자가 실소를 터트렸다.

“무서운 언니네.”

웃음기가 실려있던 목소리가 점점 힘을 잃어갔다.

“너는 내가 그렇게 싫어?”

“응.”

지유화가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나는 네가 싫어.”

자신을 중심으로 돌아가던 세상을 단 한 번에 무너뜨리지 않았던가?

지유화는 단 한 번도 지화자를 제 동생으로 여긴 적 없었다.

“그럼, 잘가렴.”

지유화가 그렇게 높이 치켜든 검을 망설임 없이 휘두르려고 할 때.

“지유화!!”

성난 목소리와 함께 총탄이 날아왔다.

지유화가 얼굴을 찌푸리고는 그것을 가볍게 베어냈다. 하지만 그녀는 곧 지화자한테서 물러났다.

화르륵!

보랏빛을 띤 불꽃이 그녀를 위협했기 때문이었다.

자신을 공격한 것이 무언인지 지유화는 어렵지 않게 알아차렸다.

“서이안?”

그녀가 살포시 미간을 좁히고는 남자의 이름을 불렀다.

“지유화 님.”

안타깝다는 듯 서이안이 그녀를 부르며 안고있떤 여자를 내려줬다.

“지화자 씨!”

유은영이 곧장 지화자에게 달려가서는 힐을 시전했다.

“언니……!”

지화자가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내가 도망치라고 했잖아!”

“그래서 도망쳤잖아요!”

유은영이 목소리를 높였다.

“저는 도망쳤다가 다시 돌아온 것 뿐이라고요!”

어쩜 사람이 이렇게 뻔뻔할 수가 있을까?

지화자가 어처구니 없다는 듯 실소를 터트렸다.

“웃지 말아봐요. 지금 바로 치료해드릴게요.”

유은영이 힐을 시전했다.

지화자가 작게 숨을 내쉬었다.

유은영이 가진 힘이야, 자신이 잘 알고 있었지마는 그녀의 힘으로 제 상처를 모두 치료하는 건 역부족일 거다.

그래, 그래야하는데.

“언니, 뭐야?”

상처가 모두 나았다.

고통 역시 느껴지지 않았다.

지화자의 치료를 끝낸 유은영이 배시시 웃으며 물었다.

“저 그새 많이 성장했죠?”

성장이고 자시고.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다그치듯 그녀가 물었을 때였다.

짝짝.

가볍게 손뼉을 마주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내 동생, 정말 좋겠네.”

서이안과 유은영에게 둘러싸여 있는 지화자의 모습에 지유화가 일그러진 미소를 내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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