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76화
“우리 동생.”
지유화가 키득거리며 웃었다.
“못 본 사이에 많이 컸네?”
“크기는 무슨.”
지화자가 입매를 비틀었다.
“나는 열여섯 살 때부터 이 키였거든?”
“그랬던가?”
“그래.”
지화자가 일그러진 미소를 내보이며 물었다.
“관심 없어서 몰랐지?”
지유화가 싱긋 웃었다.
그걸 질문이냐고 묻는 것처럼 말이다.
그녀가 보여주는 더없이 환한 웃음에 지화자가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너는 선을 너무 많이 넘었어.”
자신의 손에 죽기 전에도.
그 이후에도.
“그냥 조용히 살지 그랬어?”
기껏 살아 돌아왔으면 쥐죽은 듯 살면 될 것을.
“그렇게 동생을 살인자로 만들고 싶어?”
지유화가 흘러내린 머리칼을 뒤로 넘기고는 말했다.
“딱히 그럴 생각은 없는데.”
하지만.
“사랑하는 우리 동생을 살인자로 만드는 법이 내가 오랫동안 기억되는 방법이라면.”
지유화의 손에 검이 들렸다.
“그래야겠지?”
하하!
지화자가 실소를 터트리고는 욕을 내뱉었다.
“미친년.”
지유화가 씨익 웃고는.
타앗!
땅을 박찼다.
“지화자 씨!”
유은영이 다급하게 소리 질렀다.
지화자는 발빠르게 움직여 제 언니의 공격을 막아냈다.
“누구를 노려?”
지유화의 공격은 지화자를 향한 것이 아니었다.
그 뒤, 유은영을 노린 날카로운 검의 끝에 지화자가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지유화는 웃었다.
“우리 동생.”
다정하게 지화자를 부르고는.
“지킬 게 생겼구나?”
재미있다는 듯 키득거렸다.
그녀는 가로막힌 검을 어렵지 않게 휘둘러 지화자를 밀어냈다.
“내가 가르쳐주지 않았니?”
지유화가 검을 고쳐쥐고는 싱긋 웃었다.
“지킬 게 생기면 성가시다고.”
그녀의 힘에 밀려난 지화자가 몸을 일으키고는 으르렁거렸다.
“가르쳐줬지.”
어린 날, 조수현한테서 거미를 선물받은 적이 있었다. 지유화는 아무 말 없이 그 모습을 보기만 했다.
그래서 지화자는 안심했다.
자신의 언니가 저를 그렇게 싫어하는 건 아니라고 말이다.
하지만 아니었다.
“어머, 왔니?”
학교를 끝마치고 돌아온 집.
선물받은 거미는 오체분시가 된 채 죽어있었다.
‘사랑’이라고 이름을 붙여준 거미의 뜯겨진 사체를 손으로 털어내며 지유화는 제게 말했었다
“우리 동생에게는 너무 과분한 선물인 것 같아서.”
그래서 죽였다며 그녀는 웃었다.
그때 지화자는 깨달았다.
자신이 무엇을 손에 쥐든, 제 언니는 그것을 철저하게 망가뜨리고 말 거라고.
그러니 가져서는 안 된다.
자신에게 제 것을 지킬만한 힘이 생기기 전까지는 말이다.
그래, 그랬다.
“지유화.”
지화자가 짓씹듯이 자신의 언니를 부르고는 이를 드러냈다.
화르륵―!
다시 그녀의 주위로 불꽃이 튀기 시작했다. 지화자가 그것을 자유자재로 움직이며 말했다.
“내게는 이제 힘이 있어.”
소중한 것을 지킬 힘이 말이다.
지화자는 나지막하게 말을 끝마치고는 다시 지휴롸를 향해 달려들었다.
지유화가 광소를 터트렸다.
“우리 동생, 네가 나를 이길 수 있을 것 같아?”
그녀가 두 눈을 번뜩였다.
“그때도 나를 이기지 못했잖아! 내가 심장을 찌르라며 몸을 내준 후에야 나를 쓰러뜨렸으면서?!”
“닥쳐!”
챙! 채앵!
자매의 검이 서로 부딪치며 날카로운 소음을 만들어냈다.
지화자는 지유화의 검을 막아내고 튕겨내는 족족 온 몸에 두르고 있는 불꽃을 이용해 그녀를 집어삼키려고 들었다.
“바보같은 우리 동생.”
물론 지유화는 그 공격을 가볍게 피해냈다.
“너는 나를 못 이겨.”
지화자의 손에 죽을 당시, 지유화는 죽어가는 몸을 동생에게 내던져줬다.
편하게 죽이라면서 말이다.
그렇게 해서 자신을 죽였던 동생이다.
그런데 자신을 이기겠다고?
그때처럼 죽이겠다고?
“하하!”
지유화가 광소를 터트렸다.
지렁이도 밟으면 꿈틀거린다고 하던가?
지유화의 눈에 지화자는 ‘지렁이’처럼 보였다. 밟히면 꿈틀거리는 것밖에 못하는 존재.
그녀의 눈에 지화자는 같은 피를 나눈 동생이 아니었다.
지렁이.
혹은 지렁이만도 못하는 벌레.
지유화가 가볍게 검을 휘둘러 제 동생을 향해 검기를 날렸다.
“윽……!”
가까스로 그녀의 공격을 막아냈지만 미처 막아내지 못한 것이 뺨을 스치며 상처를 만들어냈다.
“지화자 씨!”
“괜찮아!”
지화자가 뺨을 타고 흐르는 피를 닦아내고는 말했다.
“나는 신경쓰지말고 언니는 여기에서 도망쳐.”
도망치라고?
유은영이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머리로는 안다.
이곳에서 자신은 아무 도움도 안 된다는 것을.
손목에 채워진 수갑으로 인해 힐을 사용해 지화자를 치료해 줄 수도 없었다.
그렇다고 그녀와 함께 지유화를 공격할 힘은 가지고 있지 않았다.
가지고 있었다고 해도 수갑이 채워진 상태에서는 아무것도 하지 못했으리라.
‘망할!’
저란 사람은 왜 이렇게 무력한 걸까?
눈 앞에서 아버지를 잃었을 때로부터 하나도 변하지 않았다.
아니, 그러지 못했다.
“언니, 뭐해!”
지화자가 다급하게 유은영의 정신을 일깨웠다.
“도망치라니까?!”
유은영이 파르르 입술을 떨다 몸을 일으키고는 내달렸다.
“어머…….”
지유화가 입술을 오므렸다.
“유은영 씨라면 우리 동생의 말따위 가볍게 무시할 줄 알았는데.”
“지유화, 유은영 씨에 대해 잘 모르는구나?”
지화자가 웃었다.
“우리 언니는 말이야.”
탁!
그녀가 쥐고 있던 봉을 바닥에 찍듯이 누르고는 말했다.
“바보같고 멍청한 면이 있어도 물러날 때를 알아.”
자기가 가진 힘이 어느정도인지 잘 알고 있거든.
지화자가 나지막하게 뒷말을 덧붙이고는 다시 걸음을 박찼다.
유은영도 이제 자리를 떠났겠다.
주변 눈치볼 것 없이 마음껏 힘을 발휘할 수 있었다.
그 모습을 보며 지유화는 웃음을 터트렸다.
“바보같은 내 동생.”
고운 얼굴에 걸려있던 미소가 곧 일그러졌다.
“몇 번을 해도 너는 나한테 안 된다니까?”
“과연 그럴까?”
지화자가 씨익 입꼬리를 올리며 성언의 힘을 발휘했다.
[20XX년, 12월 31일의 결투를 회고한다.]
한 해의 끝.
그 날에 지화자는 지유화를 죽였었다. 그때의 기억을 불러오며 지화자는 웃었다.
“지유화, 너는 이번에도 내 손에 죽을 거야.”
***
콰과광―!
뒤쪽에서 들려오는 굉음에 유은영이 걸음을 멈췄다.
부상을 입은 몸으로는 부지런히 움직여야했다.
그래, 그걸 알지마는.
“지화자 씨…….”
유은영은 좀처럼 걸음을 뗄 수 없었다.
“나는 신경쓰지말고 언니는 여기에서 도망쳐.”
자신이 입은 상처는 아랑곳하지 않고 저부터 챙기던 지화자의 모습이 자꾸만 눈 앞에 아른거려서.
그래서 유은영은 자리를 뜰 수가 없었다.
‘안 돼.’
그녀가 고개를 격하게 저으며 생각을 털어냈다.
‘도망쳐야해.’
무조건 이곳에서 멀리 벗어나야했다.
지화자가 자신따위 신경쓰지 않고 마음껏 싸울 수 있는 곳까지.
그곳까지 도망친 후 사람을 불러와야했다.
휴대폰이고 뭐고 통신 수단은 모두 지유화에게 빼앗겼지만 거리로 나가면 얻을 수 있을 거다.
그래, 그러니까 움직여야하는데.
유은영이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지화자 씨가 그때까지 버틸 수 있을까?’
유은영은 보았다.
지화자가 이곳에 도착하는 순간부터 피를 흘리고 있는 것을 말이다.
분명 지유화가 풀어놓았던 키메라에 의해 그렇게 된 거겠지.
‘힐만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었더라면.’
그랬다면 지화자의 상처를 금방 치료해줬을 텐데.
유은영이 손목에 채워진 수갑을 분한 얼굴로 쳐다보고 있을 때.
“야! 폐급 힐러!”
반가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유은영이 화들짝 놀라 고개를 들었다.
“너 괜찮아?! 지화자는!!”
“서이안 길드장님…….”
유은영이 멍하니 입술을 달싹거리다가 황급히 그를 붙잡았다.
“저 좀 도와주세요!”
“뭐?”
“이것 좀 풀어달라고요!”
서이안에게 손목에 채워진 수갑을 보여주며 유은영이 다급하게 말했다.
“서이안 씨가 가진 힘이라면 분명 풀 수 있을 거예요!”
“나보고 뭐 어떻게 하라고?”
“독으로 녹이면 되잖아요!”
유은영이 빼액 소리 질렀다.
“저는 신경쓰지 마시고 이것 좀 녹여서 없애주세요!”
“너 미쳤어?”
서이안이 다그치듯 물었다.
“잘못하면 네 손목까지 녹을 거라고!”
“상관 없어요!”
그렇게 된다고 해도 힐을 사용해 치료하면 되는 일.
유은영이 간절하게 부탁했다.
“제발요, 서이안 씨! 지화자 씨께서 다친 몸으로 지유화랑 싸우고 계시다고요!”
“뭐? 어디에서!”
묻는 목소리에 유은영이 대답해주려고 하는 순간.
콰과과광!
시끄러운 폭발음이 그들 뒤에서 들려왔다. 폐건물이 불에 활활 타오르기 시작했다.
“미친…….”
서이안이 당황하여 입을 뻐금거릴 때, 유은영이 다급하게 그를 붙잡고는 말했다.
“어서요!”
간절하게 비는 목소리에 서이안이 험악하게 얼굴을 구겼다.
“빌어먹을.”
분명 지화자는 부상을 입었다.
그것도 바보같이 키메라를 상대하다 방심해서 말이다.
그녀가 상대하고 있는 지유화는 대한민국을 넘어 세계에서도 손에 꼽히던 강자.
암만 지화자라고 해도 부상을 입은 몸으로 그녀를 상대하기란 쉽지 않을 터.
“너, 나 원망하지 마라?”
서이안이 결국 자신이 가지고 있는 힘을 이용해 유은영의 손목에 채워진 수갑을 녹이기 시작했다.
치이익―!
무언가 타들어가는 소리에 유은영이 꿀꺽 침을 삼켰다. 부디, 저 독이 자신의 살을 녹이지 않기를 바라며 말이다.
* * *
“쿨럭……!”
지화자가 기침을 토해내고는 부들부들 떨리는 몸을 힘겹게 일으켜 세웠다.
그 앞에서 지유화가 웃었다.
“내 동생, 아직도 일어날 힘이 있니?”
“당연하지.”
지화자가 입가를 타고 흐르는 피를 닦아내고는 말했다.
“너를 죽이기 전까지는 절대로 안 쓰러질 거거든.”
“그래? 이것, 참. 곤란하네.”
지유화가 안타깝다는 듯 동생을 보며 입을 열었다.
“네가 나를 죽일 수 있을 리가 없는데 말이야.”
“닥쳐.”
지화자가 두 눈을 번뜩였다.
“무슨 일이 있어도 너는 이곳에서 죽을 거야.”
다름아닌, 자신의 손에 말이다.
“내가 죽는 한이 있더라도 너는 그렇게 될 거라고!”
분노어린 목소리에 지유화가 씨익 웃었다.
“그럼, 우리 내기 하나 할까?”
지유화가 피가 뚝뚝 떨어지고 있는 검을 가볍게 휘둘러 묻은 것을 털어내고는 말했다.
“유은영 씨께서는 거절했거든.”
“언니가 거절할만도 하지.”
지화자가 웃었다.
“너라면 분명, 내 목숨을 가지고 장난질을 쳤을 테니까.”
지유화가 지화자와 똑같은 표정으로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