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F급 힐러가 랭킹 1위가 되어 버렸다-175화 (175/200)

제175화

유은영이 얼굴을 찌푸렸다.

동생의 목숨을 걸고 내기라니. 그것도 지화자는 지유화의 친동생인데 말이다.

사람이 어떻게 저럴 수 있을까?

하지만 유은영은 곧 의문을 지웠다. 옛말에 미친놈은 이해하려고 들면 안 된다고 했다.

그 생각을 어떻게 알았는지 지유화가 물었다.

“유은영 씨, 제가 미쳤다고 생각하고 계시죠?”

유은영이 움찔거리고는 말했다.

“그래.”

여자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내가 아닌 다른 누구라도 네가 미쳤다고 생각할걸?”

“과연 그럴까요?”

지유화가 웃음기 섞인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제 이야기를 아는 사람들은 모두 저를 이해해줄 것 같은데 말이에요.”

“물론, 그럴 수도 있겠지.”

하지만.

“그럴 사람들도 모두 당신과 똑같은 사람일 거야.”

즉, 미친 사람들일 거라는 뜻.

지유화가 표정을 굳히고는 손을 들었다.

‘맞는다!’

유은영이 두 눈을 질끈 감았다.

지유화가 가하는 폭력이 무서운 건 아니지만 아프기는 더럽게 아팠다.

몇 번이고 정신을 잃을 정도로 말이다.

하지만 이상하게 고통이 느끼지 않았다.

유은영이 슬그머니 눈을 떴다.

지유화가 자신을 보며 비딱하게 웃고 있는 게 보였다. 유은영이 자신을 보고 있는 얼굴에 입매를 비틀었다.

지유화에게 꼴사나운 모습을 보인 것 같아 기분이 더러웠다.

하지만 그녀는 내색하지 않았다.

안타까운 건, 지유화는 그 모든 걸 꿰뚫어보고 있었다는 거다.

지유화가 웃음을 터트렸다.

“좋아요.”

뭐가 좋다는 걸까?

유은영이 눈가를 찌푸렸다. 그런 그녀를 향해 지유화가 말했다.

“유은영 씨께 들려드릴게요. 제 이야기.”

“듣고 싶지 않은데.”

“사랑해마지 않는 내 동생. 우리 지화자와 관련된 이야기인데요?”

지유화의 입에서 처음으로 지화자의 이름 석 자가 거론됐다.

유은영이 표정을 굳히고는 지유화를 쳐다봤다. 그 시선에 지유화가 눈웃음을 지었다.

“궁금하죠?”

유은영이 입술을 잘근 깨물었다.

궁금하기는 했다.

도대체 두 사람 사이에서 무슨 일이 있었기에 저런 관계가 되어 버렸는지 말이다.

하지만 유은영은 대답했다.

“아니, 안 궁금해.”

유은영이 그 대답에 키득거렸다.

“그래도 들어주세요.”

성큼, 그녀의 앞에 다가온 지유화가 입꼬리를 올렸다.

“궁금한 거 아니까.”

그러면서 지유화는 이야기를 시작했다.

명백한 ‘가해자’의 입장에서.

* * *

지유화(池有花).

아이의 이름은 친조부가 지어준 것이었다.

자신을 보자마자 꽃이 태어났다면서 함박웃음을 터트렸다고 하던가?

그 덕분에 지유화는 많은 사랑을 받고 자랐다.

애초에 친조부가 격변의 날에 많은 활약을 했다는 각성자였다.

자신의 부모 역시 마찬가지.

지유화는 자신을 향해 쏟아지는 많은 사랑 앞에서 깨달았다.

이 세상은, 저를 중심으로 돌고 있다는 것을.

지유화는 그 사실이 깨지지 않을 진리라고 믿었다. 하지만 진리라 믿었던 것이 오래지 않아 깨졌다.

“유화야, 인사하렴. 앞으로 네가 돌봐줘야 할 동생이야.”

아이의 세상에 이물질이 끼었다.

친조부가 보자마자 모두의 중심에서 이야기를 쏟아낼 녀석이라며 ‘화자(話者)’라고 이름을 지어줬다 하던가?

“예쁘지?”

예쁘지 않았다.

“할아버지께서 아주 자기 어릴 적을 닮았다며 무척 좋아하셨어.”

그럴 만도 했다.

눈앞의 말 못하는 핏덩이는 어린 자기가 봐도 할아버지를 꼭 닮아 있었으니.

하지만 지유화는 속에서 들끓는 분노를 잠재웠다.

“동생이 참 예쁘네요.”

어차피 세상은 자신을 중심으로 돌아갈 거다.

지유화는 이미 깨진 진리를, 모아 다시 붙여보기로 했다.

그것이 불가능한 일이란 건 얼마 지나지 않아 깨달았다.

“유화야, 오늘 화자가 처음으로 말했어! 엄마라고!”

“아니야, 여보. 아빠라고 했어.”

유치원을 다녀오고 나면 언제나 ‘지화자’의 이름이 들렸다.

다른 곳에서도 마찬가지.

“유화야, 이것 보거라! 화자가 걷기 시작했구나!”

꽃이 태어났다면서 자신을 볼 때마다 웃고는 했던 할아버지도 제 동생의 이름만 불러댔다.

‘왜?’

지유화는 진심으로 궁금했다.

‘저 망할 것이 뭐가 예뻐서 다들 저러는 거야?’

추악하게 피어오른 질투심은 끝도 없이 커져갔고, 결국 하나뿐인 동생을 위협하는데 이르렀다.

“아버지, 어머니. 동생이 사고를 쳤네요.”

자신이 저지른 사고를 동생에게 돌렸고.

“두 분 모두 이제 진정하세요. 동생도 반성하고 있는 것 같으니까요. 그렇지?”

은근에게 동생을 위하는 척, 부모의 관심이 다시금 자신을 향하도록 만들었다.

하지만 친조부는 달랐다.

격변의 시대를 해쳐온 그는 모든 걸 꿰뚫어보았다.

“유화, 네 이 녀석! 네가 화자를 마음에 들어 하지 않는다는 건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럼 안 되지! 화자는 네 하나뿐인 동생이야!!”

살날이 얼마 남지 않은 노인이건만, 친조부의 목소리에는 힘이 실려 있었다.

아이는 주먹을 말아 쥐었다.

친조부가 살아있는 한, 세상이 다시 자신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일은 일어나지 않을 거란 걸 알아차렸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유화는.

“미안해요, 할아버지.”

자신의 이름을 직접 지어준 가족을 제 손으로 죽였다. 힘겹게 숨을 내쉬는 노인의 얼굴을 베개로 짓눌러버린 거다.

그녀를 의심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지유화는 그때 깨달았다.

이제, 이 세상은 자신을 중심으로 돌아가게 될 거라고. 그러지 않게 된다고 해도 이번 일처럼 다시 그러게끔 만들면 된다.

더욱이 자신은 성언으로 강력한 힘을 부여 받았으니까.

“이 힘을 이용하면 무엇이든 할 수 있을 줄 알았죠.”

사람을 죽이고 살리는 일도.

그렇게 살린 사람이 자신을 추종하게 만드는 일도.

그 모든 일이 가능할 줄 알았다.

“실제로 그렇게 됐고요.”

하지만 그녀가 간과한 것이 하나 있었으니.

“뭐였을 것 같아요?”

자신의 이야기를 끝낸 지유화가 유은영에게 물었다.

그녀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지유화가 스스로 답을 알려줬다.

“병이요.”

지유화의 얼굴이 험악하게 일그러졌다.

“불치병이라고 하죠? 어떤 약도, 그리고 각성자의 힘도 통하지 않는 병.”

처음, 지유화는 그 사실을 필사적으로 부정했다.

“하지만 제 몸은 죽어가기 시작했죠. 보이지 않는 곳부터 살이 썩어 들어갔어요.”

지유화는 하루하루 느꼈다.

자신의 생명이 꺼져가고 있는 것을 말이다.

“그래서 결심했어요.”

그녀가 부여받은 성언.

[잊혀지지 않는 한 계속해서 존재하리.]

지유화는 이것에 모든 걸 걸어 보기로 했다.

“왜,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고 하잖아요?”

자신이 그동안 쌓은 명성으로는 그러기에 한없이 부족했다.

고민 끝에 나온 건.

“가족의 손에 죽자.”

그렇게 되면, 자신을 죽인 그 가족을 보며 저를 자연스럽게 떠올리게 될 테니까.

“결과는 보다시피.”

지유화가 두 팔을 활짝 벌리고는 웃었다.

“성공이었죠.”

유은영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당신은 정말 최악이야.”

“이해해줄 줄 알았는데요.”

“이해?”

유은영이 코웃음을 쳤다.

“당신이 미친 인간이란 건 아주 잘 이해했어.”

“그래요?”

지유화가 미소를 그렸다.

“그거 아쉽네요.”

그러고는 따악! 손가락을 맞부딪쳤다.

“헉……!”

유은영의 몸이 위로 들렸다.

웬 줄에 의하여 목이 졸려진 상태로.

유은영이 목을 붙잡고는 컥컥 숨을 토해내며 버둥거렸다. 지유화가 그 모습을 구경하며 말했다.

“아무래도 유은영 씨와 파트너가 되기 위해서는 그 목숨을 일단 한 번 끊어놓는 게 좋을 것 같네요.”

지유화가 키득거리며 웃었다.

“이렇게 대화를 나누지는 못 하게 되겠지만, 유은영 씨의 힘은 멀쩡하게 사용할 수 있을 테니까요.”

그러면서 그녀는 말했다.

“아, 참고로 완전히 유은영 씨의 목숨을 끊겠다는 소리는 아니에요. 기절이라고 할까요? 아니다. 가사 상태요!”

지유화가 가볍게 손뼉을 쳤다.

“한 번 경험해봐서 알죠?”

그러니 쉬울 거라면서 지유화는 유쾌하게 웃음을 터트렸다.

유은영은 흐려지는 의식 속에서 지유화를 향해 열심히 욕을 퍼부어줬다.

누구라도 좋으니, 제발 저 망할 인간을 지옥으로 데리고 가달라고 간절하게 빌기까지 했다.

하지만 숨은 자꾸만 막혀갔고.

‘아…….’

유은영은 한계에 다다랐다.

‘큰일났다.’

이 대로면 지유화의 말대로 다시 잠들게 될 거다. 언제 깰지 모르는 아주 오래된 잠을 말이다.

‘엄마, 아빠. 오빠.’

유은영이 주마등처럼 지나가는 가족의 얼굴을 그렸다. 이내 목을 붙잡고 있던 손이 힘없이 아래로 떨어지려고 할 때.

촤악―!

누군가가 그녀를 붙잡고 있던 것을 베어냈다.

갑작스럽게 나타난 여자가 마른 기침을 토해내는 유은영의 몸을 붙잡고 착지했다.

지유화가 픽 웃었다.

“생각보다 더 빠르게 도착했네? 아쉬워라. 조금만 더 늦게 오지.”

“닥쳐.”

유은영을 구한 여자가 날선 목소리를 내뱉었다.

“당장에라도 그 입 찢어버리고 싶은 거 근근이 참고 있는 중이니까.”

“어머, 무서워라.”

지유화가 키득거렸다.

“못 본 사이에 입이 참 많이 험해졌단 말이야?”

“누구 덕분이지.”

여자가 몸을 일으켰다.

“지유화.”

그녀가 봉(棒)을 제 언니를 향해 치켜들었다.

“이번에야말로 철저하게 짓밟아 죽여줄게.”

아주 살아난 걸 후회할 정도로 말이다.

지유화가 활짝 웃었다.

“그럴 수 있겠니?”

콰광!

지유화의 주위로 벼락이 내리쳤다. 그것이 무섭지도 않은지 그녀가 웃는 낯으로 재잘거렸다.

“내 동생은 약하잖아.”

“맞아, 약하지.”

놀리는 게 분명한 목소리였는데도 여자는 담담하게 대꾸했다.

“그런데 너보다는 강해.”

지유화의 얼굴이 험악하게 일그러졌다.

그녀와 다르게 여자는 웃었다.

“지화자 씨…….”

유은영이 다 죽어가는 목소리로 여자를 불렀다.

“걱정 마, 언니.”

지화자가 웃었다.

“한 번 죽인 놈, 두 번은 더 쉽게 죽일 수 있으니까.”

화르륵―!

지화자를 중심으로 불꽃이 타오르기 시작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