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F급 힐러가 랭킹 1위가 되어 버렸다-173화 (173/200)

제173화

“…씨, 수현 씨!”

다급하게 부르는 목소리에 조수현이 눈을 떴다.

“유화?”

조수현이 놀란 얼굴을 보였다. 그에게 어깨를 내주고 있던 여자가 걱정스레 물었다.

“응, 나야. 괜찮아? 자다가 끙끙 앓아서 놀랐어.”

뭐지?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지?

조수현이 이마를 짚으며 멍하니 중얼거렸다.

“꿈을 꿔서 그래.”

“꿈? 악몽이라도 꿨나 보네?”

악몽?

그가 살포시 미간을 좁히던 그 순간.

“유, 유화야, 이건 도대체.”

“놀랍지? 조금만 더 있으면 ‘개벽(開闢)’이 실현될 거야.”

“개벽이라니?”

“말 그대로 새로운 세상 말이야, 수현 씨.”

떠올리면 안 되는 듯한 대화가 머릿속을 울렸다.

“수현 씨, 괜찮아?”

“응? 아, 응.”

조수현이 걱정하지 말라는 듯 싱긋 웃었다.

“괜찮아.”

“그렇다면 다행이고.”

지유화 역시 그를 마주보며 활짝 웃어줬다.

현관문이 열린 건 그때였다.

“왔니, 내 동생?”

“…언니.”

“인사해, 언니 남자친구.”

조수현이 아이를 향해 인사했다.

“안녕? 네가 화자구나? 네 언니한테 이야기 많이 들었어. 나는 조수현이라고 해.”

아이가 우물쭈물 입술을 달싹거리다가 고개를 꾸벅 숙이고는 잰걸음으로 자리를 떠나버렸다.

쿵, 닫히는 문에 조수현이 어색하게 웃었다.

“내가 마음에 안 드나봐.”

“아니야, 수현 씨.”

지유화가 그의 어깨를 감싸며 눈웃음을 지었다.

“내 동생이 낯을 많이 가리거든. 너무 신경쓰지마.”

“그렇다면 다행이고.”

조수현이 헤실거리며 웃고는 물었다.

“어머님과 아버님은 언제 오셔?”

“오늘은 들어오지 않을 거야. 두 분 다 여행 가셔서.”

“그래?”

“응, 말하고나니 나도 수현 씨랑 여행 가고 싶다. 해외로.”

지유화가 조수현의 어깨에 머리를 기대며 애교를 부렸다.

조수현은 그녀의 목소리에 웃으면서도 단호하게 대답했다.

“안 돼.”

“왜?”

“랭킹 1위님께서 이 나라를 떠나려고 하면 큰일 날 겁니다.”

그것도 아주 큰일이 말이다.

짓궂게 놀리듯 말하는 제 연인의 목소리에 지유화가 툴툴거렸다.

“완전히 떠나는 게 아니라 잠깐 여행 좀 다녀오고 싶다는 건데!”

지유화가 입술을 삐죽거리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안 되겠다. 우울해졌어.”

“응?”

“수현 씨와 맛난 저녁을 먹으러 가야 기분이 풀릴 것 같아.”

그녀는 그대로 제 연인의 손을 잡아끌었다. 조수현이 순순히 자리에서 일어나며 웃었다.

“그래.”

맛있는 것을 먹여 사랑하는 연인의 기분이 풀릴 수야 있다면 뭐든 사줄 수 있었다.

그렇게 현관을 나가려고 할 때.

“화자는?”

조수현이 닫힌 방문을 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언급된 이름에 지유화가 차갑게 목소리를 내었다.

“내버려둬.”

“응?”

조수현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왜인지 모르게 날선 목소리가 제 연인의 입에서 튀어나온 것 같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착각이었나 보다.

“낯을 많이 가린다고 했잖아.”

지유화가 싱긋 웃었다.

“억지로 데리고 가면 체할거야. 알아서 잘 챙겨 먹을 테니 신경 쓰지마.”

동생을 걱정하는 듯 다정한 말에 조수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집을 나왔지만.

“수현 씨, 잠시만. 나 휴대폰 두고 나왔어.”

“칠칠맞기는. 어서 들고 와.”

“응!”

지유화가 순식간에 사라졌다.

조수현이 픽 웃으며 그녀가 다시 나오기를 기다리는데.

“저기요, 오빠.”

“화자?”

지화자가 그를 불렀다.

조수현이 두 눈을 크게 뜨고는 물었다.

“너 도대체 언제 나온 거야?”

지화자는 답하지 않았다.

대신 물었다.

“오빠는 지유화를 믿어요?”

“당연히…….”

믿는다고 해야하는데, 그 말이 튀어나오지가 않았다.

‘왜?’

조수현이 얼굴을 찌푸렸다.

그렇게 다시 그가 입을 열려고 할 때였다.

“유화야, 너. 달라졌구나.”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수현 씨? 내가 달라졌다니!”

꿈을 꾸고 일어났을 때와 똑같은 일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머리를 어지럽히는 목소리들에 조수현이 얼굴을 찌푸렸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나는 원래 이랬어.”

조수현은 표정을 굳히며 고개를 들었다.

지화자는 사라져있었다.

“수현 씨, 왜 그래?”

그녀 대신 지유화가 보였다.

조수현이 떨리는 눈으로 지유화를 쳐다봤다.

사랑스럽기 그지 없는, 미래를 약속한 제 연인을.

“수현 씨?”

조수현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유화야, 너.”

그는 힘겹게 목소리를 쥐어짜내 물었다.

“내게 무슨 짓을 한거니?”

지유화가 고개를 갸웃거렸다가 이내 입꼬리를 끌어 올렸다.

***

“으… 윽…….”

고통어린 신음에 서이안이 미간을 좁히며 말했다.

“야, 지화자. 저거 저대로 둬도 돼? 죽을 것 같은데?”

“안 죽어. 너희 쪽 힐러도 말했잖아. 목숨에는 지장 없다고.”

“그렇기는 하지만.”

“정 걱정되면 깨워 보던가.”

“그건 싫어.”

깨웠다가 또 미친 사람처럼 굴면 어떻게 하라고.

서이안은 여기에서 길드 건물이 더 부서지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그보다 유승민 씨는?”

“안전한 곳에 모셔났으니까 걱정마셔.”

걱정을 안 할 수가 없었다.

조수현이 스콜피언을 침입한 건, 분명 유승민을 노린 것일 테니.

“서도운 붙여놓은 거 확실하지?”

“아, 확실하다니까! 도대체 몇 번을 묻는 거야?! 그렇게 걱정되면 네가 그 자식 지키면 되잖아!”

“그러면 지유화한테 찾아갈 수가 없잖아.”

조수현한테 그에 대한 정보를 얻어 들어야하는데 말이다.

서이안이 거칠게 자신의 머리를 헝클어뜨렸다.

“아오, 짜증나! 내가 왜 너와 함께 움직이게 되어서는!”

“싫으면 지금이라도 이 일에서 손 떼.”

“그럴 수 있을 것 같냐?!”

그럴 수 있었다면 진작 지유화의 일에서 물러났을 거다.

애초에 유승민과 그 가족을 지켜달라는 의뢰 역시 받지 않았을 거고.

“그럼, 어쩔 수 없네.”

서이안의 대답에 지화자가 씨익 입꼬리를 올렸다.

“앞으로 계속 잘 부탁해.”

서이안이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망할. 센터에 이번 일에 대한 청구 똑똑히 할 테니까 그렇게 알아!”

지화자가 어깨를 으쓱였다.

“마음대로 해. 어차피 내 돈 아니야. 국민들 세금이지.”

서이안의 얼굴이 아예 종잇장처럼 구겨졌다.

“그런 식으로 말하면 내가 청구를 할 수 없잖아.”

“그런가? 왜지?”

지화자가 정말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릴 때.

“허억!”

조수현이 깨어났다.

금방에라도 다시 기절할 듯, 희게 질린 얼굴로.

“이봐, 조수현 팀장.”

그런 그를 서이안이 불렀다.

“나 누구인지 알아보겠어?”

조수현이 떨리는 숨을 내뱉으며 그를 쳐다보다 물었다.

“서이안 길드장님 아니십니까?”

“오, 정답.”

서이안이 활짝 웃었다.

“정신 돌아왔네?”

“그게 무슨…….”

소리냐고 물으려던 찰나, 조수현은 놀라 서이안에게 다시 물었다.

“여기 왜 이럽니까? 게이트라도 터졌습니까?”

“설마.”

서이안이 어깨를 으쓱거렸다.

“우리 길드, 조수현 팀장이 부순 거잖아.”

“네? 제가 왜요!”

“몰라서 물어?”

뾰족하게 묻는 목소리 뒤로 지화자가 말을 덧붙였다.

“몰라서 물은 거일 걸.”

그녀가 조수현에게 다가가서는 입을 열었다.

“아직 기억이 온전치 않은 상태일 테니까.”

“…지화자 팀장님.”

“안녕, 조 팀장. 내 일을 그렇게 방해하더니 꼴이 참 볼만하네.”

자신한테 얻어 터져서 뺨이 부은 건 둘째치고, 정갈하게 갖춰입은 옷이 엉망이 되어 있었다.

더욱이.

“조수현 팀장, 당신 지금 붙잡혀 있는 상태라는 건 알고 있습니까?”

조수현은 온 몸이 꽁꽁 묶여있는 상태였다.

그 말에 그는 뒤늦게 깨달았다.

“제가 왜 묶여있는 겁니까?”

“그야, 이곳에서 난동을 부렸으니까요.”

다름아닌 지유화에 의해.

나지막하게 덧붙인 목소리에 조수현이 떨리는 목소리를 내뱉으며 물었다.

“유화가, 왜.”

“정말 모르겠습니까?”

지화자가 비딱하게 입꼬리를 끌어 올렸다.

“당신, 지유화와 함께 사라졌었잖아.”

쿵, 쿵!

심장이 거세게 뛰기 시작했다.

곧, 조수현이 고개를 숙이며 가쁜 숨을 내뱉어댔다.

“유, 유화야, 이건 도대체.”

“놀랍지? 조금만 더 있으면 ‘개벽(開闢)’이 실현될 거야.”

잊고 있던 기억이 슬금슬금 올라와선 자신을 지배하기 시작했다.

그래, 자신은 지화자의 말대로 죽은 줄 알았던 제 연인과 함께 달아났었다.

―키에엑! 키에!

―사… 살려…….

―이힛! 히히힛!

끔찍하게 변해버린 ‘인간’이었던 것들이 있는 곳으로.

조수현이 두 눈을 질끈 감았다. 그렇게 도망치고 싶었지만, 기억은 저를 옭아매버렸다.

“유화야, 너. 달라졌구나.”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수현 씨? 내가 달라졌다니!”

지유화가, 제 연인이.

한때 미래를 약속했던 그녀가.

“나는 원래 이랬어.”

자신을 조종했다.

“이봐, 조수현.”

어깨를 잡는 손에 조수현이 놀란 눈을 떴다. 그의 앞에 지화자가 험악한 얼굴로 서있었다.

“다 떠올렸으면 말해.”

“무, 무엇을.”

“유은영.”

그녀가 날선 목소리를 내뱉으며.

“언니, 지금 어디 있어?”

유은영의 행방을 물었다.

조수현이 금붕어처럼 입을 뻐금거렸다.

그러고보니 유은영을 봤던 것 같다. 보기만 했을까?

자신이 직접 그녀를…….

“아.”

조수현이 탄식했다.

“아아……!”

성언에 의해 부여받은 이 힘을, 남을 해치는데 사용하고 말았다.

다름아닌 제 연인에 의해.

괴롭게 목소리를 내뱉는 그를, 지화자는 무심하게 쳐다봤다.

“조수현 팀장, 유은영 씨를 그렇게 만든 건 당신 잘못 아니야. 뭐, 계속 그런 식으로 자책하고 있으면 당신 잘못이 될 수도 있지.”

조수현이 무슨 소리냐는 듯 고개를 들어 지화자를 바라보았다.

이번에도 지화자는 담담하게 말을 내뱉었다.

“조수현 팀장이 그렇게 시간을 끌고 있을수록 유은영 씨가 위험해질 테니까.”

조수현이 놀란 얼굴을 보였다.

뒤늦게 유은영이 지유화와 함께 있다는 사실을 인지한 모양이었다.

“그러니까 조수현 팀장.”

지화자가 그와 시선을 맞췄다.

“말해.”

우리 언니 어디있는지.

나지막하게 내리깔은 목소리에 조수현이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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