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72화
쿠구구궁!
스콜피언의 건물이 무너질 듯 흔들렸다. 아닌 게 아니라 건물은 이미 반파된 상태였다.
“조수현 팀장님, 그 이상 가까이 다가오시면 공격하겠습니다.”
서도운이 불청객을 향해 검을 들며 경고했다.
“팀장님, 저희 말 안 들리는 것 같은데 그냥 공격하죠?”
“안 돼.”
잘못하면 센터와 척을 지게 될 수 있다.
센터의 영향력이 미미하다면 몰라, 국내에서 센터의 영향력은 무시할 수 없을 정도였다.
“길드장님이 오실 때까지 버틴다.”
“…네, 알겠습니다.”
서도운이 팀장으로 있는 돌격 1팀의 팀원이 침입해온 불청객을 보며 꿀꺽 침을 삼켰다.
센터의 현장 파견 부서, 제1팀의 팀장인 조수현.
안 그래도 상대하기 까다로운 인물이 정신줄까지 놓아버렸다.
잘못하면 사상자가 발생할 수도 있는 사안.
이 와중에 길드장인 서이안은 연락이 없었다.
“길드장님은 곧 오실 거다.”
팀원의 불안을 알아차렸는지, 서도운이 담담하게 말했다.
“조수현 팀장이 침입하자마자 연락을 취했다.”
“정말입니까?”
“그래. 그러니 조수현 팀장에게 최대한 피해가 가지 않게 여기에서 그를 막는다. 알겠나?”
“네!”
팀원이 고개를 끄덕였다.
서도운이 스콜피언에 입단한 시기는 그보다 늦었지만, 길드 내 그 누구도 서도운을 무시하지 않았다.
그만큼 그의 능력이 출중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스콜피언의 모든 길드원은 서도운의 명령에 따라 전투 준비를 취했다.
우웅―!
그에 맞춰 공기가 진동하기 시작했다. 조수현의 양손에 불이 붙은 건 그때였다.
“온다!”
서도운의 고함소리에 동시에 조수현이 움직였다.
타앗!
걸음을 박찬 그가 순식간에 서도운의 앞에 나타났다.
후욱!
서도운이 그가 내지른 주먹을 아슬아슬하게 피하며 혀를 찼다.
‘잘못 맞으면 골로 가겠군.’
눈앞에서 본 조수현은 이성이란 게 존재하지 않는 사람처럼 보였다.
‘누군가에게 조종을 당하고 있는 건가?’
그렇다면 더욱이 상처를 입혀서는 안 됐다.
스스로의 의지로 자신들을 공격하고 있는 것도 아닌데, 다치게 할 수는 없었다.
‘답이 없군.’
서도운이 다시 한번 자신을 향해 오는 주먹을 피하려고 들 때.
“야, 이 답답아!”
누군가 그의 뒷덜미를 낚아채 뒤로 던져버렸다.
우당탕!
꼴사납게 넘어진 그가 황급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자신을 공격하던 조수현이 뒤로 물러난 게 보였다. 다행인 일이었지만 그보다 중요한 게 있었다.
“길드장님!”
“그런 식으로 조수현을 상대할 수 있을 것 같아?!”
서이안이 서도운을 향해 고함을 내지르고는 조수현을 보며 비아냥거렸다.
“조수현 팀장, 괜찮아? 눈이 완전 맛이 갔는데?”
조수현은 말없이 그를 쳐다볼 뿐이었다.
서이안이 짧게 혀를 차고는 서도운에게 물었다.
“서도운, 너는 괜찮냐?”
“괜찮습니다.”
“그래, 그렇게 보이네.”
두 사람의 대화를 끝으로 멍하니 있던 스콜피언의 길드원들이 소리 질렀다.
“길드장님이 오셨다!”
“길드장님!”
“길드장님이시다!”
길드원들의 환대에 서이안이 키득거리며 웃었다.
“오냐, 용케도 조수현을 상대로 지금까지 버티고 있었구나?”
서이안이 주변을 살펴보고는 얼굴을 찌푸렸다.
“비록 건물이 많이 부서졌지만, 이건 센터에 청구하면 되는 일이고.”
따악!
그가 손가락을 맞부딪쳤다.
그 소리와 함께 서이안의 주위로 불꽃이 피어올랐다.
보랏빛이 감도는 불길한 색에 스콜피언의 길드원들이 슬금슬금 뒤로 물러났다.
서이안이 피어 낸 불꽃의 정체를 알아차렸기 때문이다.
독주, 서이안.
그가 피어낸 불꽃은 독을 담고 있었다. 불꽃에 닿은 상대를 순식간에 녹일 수 있는 맹독을.
“길드장님, 조수현 팀장님께서는 지금 의식이 없는 상태입니다.”
“알아.”
센터의 현장 파견 부서에서 제일 정상인이라고 평가받는 그였다.
그런 그가 멀쩡한 상태로 애꿎은 길드를 침입할 리가 없었다.
“알면서도 조수현 팀장님을 공격하겠다는 겁니까? 센터가 이 일을 알게 되면-”
“상관없어.”
서이안이 서도운의 말을 끊고는 물었다.
“그렇지, 지화자?”
지화자?
서도운이 놀라 뒤를 돌아보았다.
도대체 언제 온 건지, 지화자가 예의 들고 다니는 무기를 손에 쥐고 있었다.
어쨌든 지화자는 서이안의 질문에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상관없어.”
제정신이 아닌 상대를 봐주면서 제압할 필요는 없었다.
“사지에 문제 생기지 않는 정도로만 상대해줘.”
“당연하지.”
타앗!
서이안이 땅을 박찼다. 조수현 역시 그에 맞춰 다시 움직였다.
서로의 주먹이 맞닿았고.
쿠구구궁―!
굉음과 함께 폭발이 일었다.
서이안이 일으킨 독을 품은 불꽃이 그 폭발과 함께 거세게 타오르기 시작했다.
“윽!”
서도운이 팔을 들어 얼굴을 가렸다. 맹독을 품은 연기가 코 끝을 스쳐 지나갔다.
이대로 있다가는 휘말린다.
“다들……!”
현장에서 물러나라고 외치려던 입이 다물어졌다. 폭발이 일어나지 않은 것처럼 주변이 고요했기 때문이다.
왜 그런가 했더니.
“지화자 팀장님!”
지화자가 가볍게 폭발의 영향을 상쇄하고 있었다.
“서도운 씨.”
“네, 팀장님.”
“유승민 씨는 괜찮습니까?”
나지막하게 건넨 질문에 유승민이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가 이내 고개를 끄덕였따.
“괜찮습니다. 회복도 순조롭고 곧 완벽하게 정신을 차릴 겁니다.”
“그렇군요.”
그럼, 그 전에 조수현을 제압해 지유화가 있는 곳을 알아내야겠다.
정신을 차린 유승민이 유은영의 일을 알게 되면 나서겠다고 아주 길길이 날뛸 테니까.
폭발을 막고 있던 그녀가 바닥에 세워 두고 있던 봉을 거두고는 걸음을 옮겼다.
“지화자 팀장님?”
“팀원들 물러나게 하세요.”
멀지 않은 곳에서 서도운이 조수현과 서로 공방을 펼치고 있었다.
두 사람 모두 비슷한 수준이라 그런지, 공방의 끝이 쉽게 나지 않을 것 같았다.
척.
지화자가 자세를 갖추고는 다시 서도운에게 경고했다.
“저는 서도운 씨와 다르게 착한 사람이 아니거든요.”
조수현이 정신을 놓았든 그러지 않았든 인정사정 봐주지 않고 공격할 거란 뜻이었다.
그 뜻을 알아차린 서도운이 다급하게 외쳤다.
“다들 물러나도록!”
서도운의 명령과 함께 스콜피언의 길드원들이 뒤로 물러났다.
지화자는 잘했다는 듯 서도운을 흘긋거리며 쳐다보고는 발 빠르게 움직였다.
“비켜, 서이안.”
지화자가 순식간에 전투의 한복판에 등장했다.
“지화자!”
조수현을 향해 주먹을 내지르던 서이안이 황급히 뒤로 물러났다.
하지만 조수현은 아니었다.
그는 지화자가 나타난 것에 아랑곳하지 않고 주먹을 휘둘렀다.
탁!
그 손을 지화자가 가볍게 막았다.
“조수현.”
지화자가 목소리를 내리깔며 그를 불렀다.
“정신 차려.”
조수현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초점이 맞지 않는 두 눈으로 그녀를 담고 있기만 할 뿐.
지화자가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나 두 번 말 안 해.”
조수현한테서 돌아오는 대답은 이번에도 없었다.
계속해서 그에게 말을 걸고있는 지화자의 모습이 답답한지, 서이안이 목소리를 높였다.
“지화자! 그 자식 정신 놓은 지 오래야.”
“알아.”
그렇지만 혹시라도 자신의 부름에 정신을 차릴까 싶어 불러본 거다.
‘아무래도 소용없었던 것 같지마는.’
지화자는 결국 무력으로 조수현을 제압하기로 했다.
화르륵!
그녀를 중심으로 주변이 불타오르기 시작했다.
“야! 우리 건물 태우지 마!”
서이안의 비명을 무시하며 지화자가 조수현의 손을 꽉 쥐었다. 그가 지화자에게 잡힌 손을 빼내려고 했지만 쉽지가 않았다.
“조수현, 나는 분명히 말했어.”
두 번 말하지 않는다고.
지화자가 그대로 조수현을 멀리 내던졌다.
쿠구구궁!
조수현이 벽에 처박히며 천둥이 울리는듯한 소리가 났다.
안 그래도 반쯤 반파됐던 건물이 당장에라도 무너질 듯 크게 흔들렸다.
“이러다 우리 건물 다 무너지겠다! 나가서 싸우면 안 돼?!”
“안 돼. 민간인들 휘말리면 골치 아파져.”
휘말려도 같은 각성자들이 휘말리는 게 나았다. 지화자가 벽에 처박혀 미동이 없는 남자를 향해 다가갔다.
“조수현.”
정신을 잃은 듯 그는 축 늘어져 있었다.
‘고작 이 정도에?’
지화자가 고개를 갸웃거리는 순간.
“……!”
발목이 잡혔다.
“큭!”
그대로 넘어진 그녀를 향해 주먹이 쇄도했다. 가까스로 그것을 피한 지화자가 무기를 들어 공격을 막았다.
“야, 지화자. 도와줄까?”
“닥쳐.”
서이안의 도움 따위 필요 없었다.
그녀가 이를 악물며 남자를 노려봤다.
‘그래, 고작 그 정도에 기절할 리가 없지.’
정신을 놓은 상태라고 해도 상대를 방심시킬 전략을 짤 줄 아는 모양이다.
‘성가시네.’
정말로 성가셨다.
하지만 그뿐.
지화자가 남자를 밀쳐내고는 무기를 휘둘렀다.
화르륵!
피어오른 불꽃이 조수현을 향해 빠른 속도로 날아갔다.
펑! 퍼벙!
바닥에 부딪힌 것들이 그을음을 만들어냈다.
“저거 어떻게 치우라고!”
“제발 좀 닥쳐. 집중 안 되잖아.”
지화자가 서이안에게 날선 목소리를 뱉어내고는 땅을 박찼다.
불꽃은 시선을 분산시키는 용도일 뿐, 조수현에게 직접적으로 위해를 가할 생각은 없었다.
‘애초에 공격이 먹히지도 않을 거고.’
그럴 작정이라면 건물과 함께 그를 불기둥 속에 가둬버려야 했다.
하지만 그렇게 된다면 주변의 피해가 어마무시할 터.
‘이런 걸 생각하면 게이트가 낫단 말이야.’
암만 세상을 무너뜨려도 바깥에 어떤 영향도 주지 않으니.
어쨌거나 빠른 속도로 조수현의 앞에 도달한 그녀는 곧장 무기를 휘둘렀다.
조수현이 그것을 가볍게 막았다. 하지만 그가 간과한 사실이 하나 있었으니.
“조수현.”
지화자의 무기는 그것 하나만 있는 게 아니라는 것.
그녀가 주먹을 꽉 쥐며 말했다.
“이 악 물어라.”
쿠구궁!
지화자의 주먹에 나가떨어진 그가 다시 벽에 부딪혔다. 이번에 조수현은 일어나지 못했다.
완전히 정신을 잃은 그를 향해 지화자가 다가갔다.
“멍청이.”
그러게, 정신 좀 차리라니까.
지화자가 주먹에 묻은 피를 털어내고는 서이안에게 말했다.
“뭐해? 포박하지 않고.”
“…진짜 무자비한 녀석.”
어떻게 같은 동료를 저 꼴로 만들 수 있지?
서이안이 혀를 내두르며 조수현을 포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