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70화
24. 강자(强者)
‘진정하자.’
유은영이 심호흡을 하며 마음을 다스렀다.
어차피 이런 상태에서는 지유화에게 한 방 먹이는 건 불가능하다.
그건 지유화 역시 알고 있을 터.
‘일부러 내 화를 돋우고 있는 거겠지.’
자신이 이를 악물고 그녀에게 달려들고자 하는 모습을 보고 싶어서 말이다.
‘악질이야.’
지유화란 인간은 정말이지, 보면 볼수록 최악이었다.
그렇기에 유은영은 말했다.
“지유화 씨.”
그녀에게 주먹으로 한 방 먹이는 건 불가능하니, 말로 한 대 쳐버리고 싶어서.
“어떻게 당신이랑 지화자 씨가 같은 배에서 난 자매죠?”
“저랑 동생이 많이 안 닮기는 했죠? 안 그래도 그것 때문에 어릴 적부터 많이 들었어요.”
정말, 같은 배에서 난 자매가 맞냐고 말이다.
“저 같아도 그렇게 물어봤을 것 같아요.”
그야.
“지화자 씨같은 사람이 당신이랑 같은 핏줄일 리가 없잖아요?”
조롱하듯 묻는 목소리에 지유화가 표정을 굳혔다.
“무슨 뜻이죠?”
“지유화 씨 귀에 어떻게 들렸는데요?”
유은영이 싱긋 웃었다.
“저는 지화자 씨가 당신과는 달리 더 뛰어나고 인정 넘치는 좋은 사람이라는 뜻으로 말한건데, 부디 그렇게 들렸으면 하네요.”
“유은영 씨.”
지유화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저는 정말 유은영 씨와 친구가 되고 싶어요.”
그런데.
“계속 이렇게 저를 도발하면, 좋게 못 나가요.”
하! 웃기시네!
유은영이 실소를 터트렸다.
“오빠를 그꼴로 만들고, 나를 이런 식으로 묶어 놓았으면서 친구가 되고 싶다고?!”
농담도 정도껏 해야한다.
유은영이 험악하게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짓씹듯이 목소리를 내뱉었다.
“개소리하지마.”
지유화가 언제 얼굴을 찌푸렸냐는 듯 미소를 그렸다.
“유승민 씨께서 어디로 사라졌나 했더니만.”
아차!
유은영이 표정을 굳혔다.
그녀와는 다르게 지유화는 여전히 웃는 낯이었다.
“우리 동생이 보호 중이었나 보네요?”
그러지 않고서야 유은영이 유승민의 상태를 알 리가 없으니 말이다.
지유화가 따악, 손가락을 맞부딪쳤다.
“수현 씨.”
나지막한 부름에 조수현이 모습을 드러냈다.
유은영이 넋이 나가있는 듯한 그의 얼굴을 어루만지며 나긋하게 목소리를 내었따.
“유승민 씨께서 어디에 있는지 찾아와줄래?”
조수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찾는 즉시 죽여버려도 좋아.”
이번에도 조수현은 말없이 그녀의 말에 수긍했다.
“지유화!”
아무렇지 않게 사람을, 그것도 제 오빠를 죽이라는 말에 유은영이 분노했다.
“가만두지 않을 거야! 오빠한테 무슨 일 생기면, 내가 너 절대로 가만두지 않을거라고!”
고함을 내지르는 목소리에 지유화가 키득거리며 웃었다.
“얼마든지요.”
자신따위 손쉽게 제압할 수 있다는 듯, 웃는 그 모습에 유은영이 이를 악 물었다.
‘낭패다.’
나름대로 마음을 다스린 줄 알았더니, 바보같이 유승민의 행방에 대해 알려주고 말았다.
‘오빠가 어디에 있는지 정확하게 모르는 것 같지만.’
찾는 건 순식간일 터.
‘어쩌면 좋지?’
지금에라도 비굴하게 지유화의 밑에서 기겠다고 해야하나?
‘싫어.’
유은영이 입술을 꾹 깨물었다.
지유화의 사람이 되는 것만큼은 어떻게든 피하고 싶었다.
‘차라리 죽고 말지.’
어차피 백화점 붕괴 사고 때 한 번 죽었던 목숨이다. 죽는 것따위 무서울 리가 없었다.
하지만 자신이 죽으면 지화자는?
‘…빌어먹을.’
유은영의 얼굴이 구겨졌다.
그것을 어떻게 생각했는지, 지유화가 그녀 앞에 서서는 부드럽게 타일렀다.
“너무 그렇게 분해하지 마세요. 아직 늦지 않았으니까요.”
지유화가 싱긋 웃었다.
“제 손발이 되어주겠다고 고개만 끄덕여주세요. 그럼, 유승민 씨는 놓아드릴게요.”
“그러고 나중에 협박하려고?”
자신이 말을 듣지 않을 때마다 말이다.
유은영이 비딱하게 웃었다.
“내가 센터에서 일하면서 너같은 족속들 많이 만나봤거든?”
정확히는, 지화자의 몸으로 움직일 때 말이다.
“사람은 안 변하더라?”
특히 범죄자들.
“그러니까 나는 너 안 믿어. 너를 믿을 바에야.”
유은영이 고개를 치켜들며 활짝 웃었다.
“지화자 씨를 믿고 말지.”
지유화의 얼굴이 험악하게 구겨졌다.
곧, 그녀가 손을 들고서.
쫘악!
유은영의 뺨을 내리쳤다.
얼마나 강하게 힘을 실었는지, 그녀의 고개가 옆으로 살짝 돌아갈 정도였다.
입술이 터지며 피가 흘렸다. 볼 안 쪽도 터졌는지 입 안에 피가 고였다.
퉤.
유은영이 고인 피를 내뱉었다.
“식상하네.”
그녀가 화가 잔뜩 난 여자를 향해 조롱했다.
“지화자 씨였다면 발을 들어 배를 까거나 그랬을 텐데, 손찌검이라니.”
유은영이 씨익 입꼬리를 올리며 물었다.
“정말 랭킹 1위였던 사람맞아? 암만 봐도 아니었던 것 같은데?”
“닥쳐.”
지유화가 험악하게 말했다.
“지화자, 지화자, 지화자!”
끝으로 갈수록 목소리가 높아져갔다.
그녀가 히스테릭을 일으키는 사람처럼 굴고는 고함을 내질렀다.
“그 망할 이름 좀 그만 불러!”
“내가 왜?”
유은영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뭔가 착각하고 있는 모양인데.”
그녀가 눈웃음을 지었다.
“나는 당신한테 잡혀있을 뿐이지, 당신 사람이 아니야.”
그러니까.
“당신 명령따위 절대로 듣지 않을 거야.”
유은영의 웃는 낯과는 다르게 지유화의 얼굴은 더없이 일그러졌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하, 하하! 아하하하!”
그녀가 유쾌하다는 듯 크게 웃음을 터트리고는 검을 들었다.
“유은영 씨가 그랬지? 내 동생이었다면 발로 배를 까거나 그랬을 거라고.”
유은영이 굳은 표정으로 지유화를 노려봤다. 그 시선에 지유화가 싱긋 웃었다.
“유은영 씨께서는 내가 손찌검을 했던 걸 고맙게 여겨야할 거야.”
지금부터는 손이 아니라 검.
“이제 빌어도 소용 없어.”
지유화가 검을 치켜들었다.
* * *
끼이이익―!
정지 신호 앞에서 서이안의 차가 거칠게 멈춰섰다.
“야! 서이안!”
“신호는 지켜야할 거 아니야! 나는 내일 신문 1면에 랭킹 2위가 신호 위반 했다는 식으로 등장하고 싶지 않다고!”
서이안이 변명하듯 소리 질렀다.
지화자가 짧게 혀를 차는 순간, 그녀의 휴대폰이 울렸다.
―팀장님, 찾았어요.
가하성이었다.
―유은영 씨께서 마지막으로 목격된 장소이기는 한데…….
“위치 말해.”
―네, 바로 보내드릴게요.
뚝, 전화가 끊겼다.
“너무 매정한 거 아니야?”
“누가? 내가?”
“그래. 폐급 힐러 걱정되는 거 알지만, 가하성도 죽다 살아났잖아.”
지화자가 입술을 씰룩였다.
가하성이 죽다 살아난 경험보다 자신이 죽다 살아난 경험이 훨씬 더 많기 때문이다.
더욱이 그와 함께 사라진 아이들을 쫓을 때는 더욱 더 그랬다.
‘아니, 그보다.’
지화자가 불만 가득한 얼굴로 쏘아 붙였다.
“서이안, 너 왜 자꾸 유은영 씨를 폐급 힐러라고 부르는 거야?”
“폐급 힐러니까.”
“이제 F급 아니라니까?”
“어쨌든 폐급이었잖아.”
말이 안 통한다.
지화자가 그와 대화를 나누는 걸 포기하고 말했다.
“신호 떨어졌어. 밟아.”
“내가 아주 네 부하인 줄 알지?”
“응.”
서이안이 기가 차다는 듯 지화자를 쳐다봤지만 그녀는 그 시선을 가볍게 무시했다.
대신 말했다.
“여기에서 오른쪽으로 꺾어. 그 다음 직진. 그러다 좌회전.”
“네비게이션에 가하성이 보내준 위치를 그냥 등록해!”
서이안이 빼액 소리 질렀다.
어쨌든 그들은 유은영이 마지막으로 목격된 장소에 도착했다.
“여기 맞아?”
“맞아.”
지유화를 만날 당시, 그녀의 몸을 차지하고 있던 게 바로 자신이었다.
“이곳에서 지유화를 만났어.”
난데없이 들린 이름에 서이안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지유화 님 이름이 여기에서 왜 나와?”
“너는 몰라도 되는 그런 게 있어.”
지화자가 태연하게 대꾸하고는 말했다.
“유은영 씨는 이 근처에서 사라졌어. 다름아닌 지유화에 의해.”
“그러니까!”
지유화의 이름이 왜 자꾸 나오는 거냐고 물으려던 서이안이 입을 다물었다.
유은영의 실종에 지유화가 있는 건 분명한 사실.
지화자도 그걸 알고 제 언니의 이름을 계속 거론하는 걸 테다.
“지유화 님 흔적을 쫓으면 되지? 유은영 씨가 그분이랑 같이 사라졌다면.”
“지유화의 흔적이 남겨져 있는 곳으로 이동했을 테니까.”
“그걸 찾아야되겠네.”
지화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나한테 맡겨.”
“안 그래도 그럴 생각이었어.”
지유화의 열렬한 팬이었던 서이안이라면 그녀의 흔적을 찾는 것도 금방일 거다.
“최대한 빠르게 움직여. 유은영 씨께서 그 인간한테 무슨 일을 당하고 있을지 모르니까.”
“설마, 지유화 님이 그 폐급 힐러를 죽이기라도 할까봐?”
“설마가 사람잡는다는 말 몰라?”
날선 목소리에 서이안이 입술을 삐죽이고는 지유화의 흔적을 쫓기 시작했다.
지화자는 답답하다는 듯 찌푸린 얼굴로 앞머리를 쓸어 올렸다.
지유화가 유은영에게 해코지를 하고 있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랬다면 진작 몸이 바뀌었을 거다.
하지만 지화자는 불안했다.
자신이 나화진의 독에 쓰러졌을 때도 바뀌지 않은 몸이다.
‘불완전한 영혼석.’
자신과 유은영의 몸을 바뀌게 만든 그 아이템이 혹시 사라진 건 아닐까?
그런 의문이 계속 들었다.
‘아니야.’
정말 그랬다면 진작 A-Index에 관련해서 무언가가 표시가 됐을 거다.
그러니까 아직 불완적한 영혼석은 자신과 유은영의 몸에 남아있을 터.
‘기다리자.’
불완전한 영혼석이 효과를 발휘할 때까지.
“야! 지화자!”
갑작스러운 부름에 지화자가 놀라 서이안을 쳐다봤다.
“큰일났어!”
“뭐가.”
“조수현 팀장이 우리 길드에 처들어왔다는데?”
“뭐?”
지화자가 놀라 물었다.
“그 인간이 스콜피언은 왜 처들어왔대?”
“내가 어떻게 알아!”
서이안이 골치 아파 죽겠다는 듯 머리를 헝클어뜨리고는 말했다.
“서도운이 지금 막고 있는 중이라는데, 역부족일 것 같아. 어떻게 하지?”
지화자가 짧게 혀를 찼다.
하필이면 중요한 때에 조수현이 미쳐 날뛰다니.
‘아니, 잠깐만.’
그러고보니 조수현은 지유화와 함께 있었다.
아주 넋이 나간 상태로 말이다.
짧은 시간에 여러 일이 일어나 잠깐 잊고 있었다.
“서이안. 지금 당장 스콜피언으로 가자.”
“폐급 힐러는? 버리려고?”
“버리기는 뭘 버려?”
지화자가 때리려는 시늉을 한 번 한 뒤에 비딱하게 웃었다.
“되찾으려고 이러는 거지.”
기다려라, 지유화.
네가 내 소중한 사람을 가지고 장난질을 친다면.
‘이쪽도 그렇게 갈 수밖에.’
지화자가 입술을 짓씹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