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69화
“시발.”
지화자가 인적 드문 공원을 걸어가며 욕설을 지껄였다.
욕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다 잡았는데, 팔다리 중 하나를 날리기만 하면 끝나는 일이었는데.
까드득, 지화자가 이를 갈았다.
지유화가 가진 힘은, 횟수 제한이 있거나 특별한 조건을 동반하는 것들이었다.
그 중, ‘자신의 흔적이 남아있는 곳으로 이동하는 힘’의 경우 두 가지 모두가 걸려있었다.
‘상처 입은 곳이 없을 것.’
그러니 지유화의 몸에 어떤 상처든 입혔으면 되는 일인데.
‘멍청한 새끼.’
조수현이 그걸 다 망쳐버렸다.
“그 새끼는 왜 센터에 남아있어서는.”
지화자가 구시렁거렸다.
지나간 일이라고, 그러니 이제 앞으로의 일에 집중해야 한다고.
그렇게 마음을 다잡고 싶어도 쉬운 게 아니었다.
“후우.”
지화자가 작게 숨을 내쉬었다.
생각할수록 화가 뻗치는 게 이러다가 화병이 오는 게 아닐까, 그런 걱정이 됐다.
힐러가 화병이라니.
우스운 단어 조합이었다.
“일단, 돌아갈까?”
센터든 집이든 이곳을 계속 돌아다니고 있는 건 좋지 않은 선택인 것 같았다.
유은영을 그렇게 두고 온 것도 마음에 걸렸고.
“돌아가자.”
목적지는 센터.
유은영과 함께 바람이나 쐬며 집으로 돌아갈 작정이었다.
그렇지만.
퍽!
목을 강하게 치는 손길에 그녀는 그럴 수 없게 됐다.
“윽……!”
지화자가 비틀거리며 쓰러졌다.
“수현 씨, 힘조절을 너무한 것 같은데? 기절시키려면 그것보다 더 세게 때려야해.”
수현 씨?
아니, 그보다.
‘이 목소리는……!’
지화자가 이를 드러내며 힘겹게 고개를 들었다.
“봐봐, 수현 씨. 유은영 씨 지금 멀쩡하잖아. 한 번 더 부탁할게.”
지유화가 웃고 있었다. 천사와도 같은 미소를 띄운 채로. 그 옆에 조수현이 있었다.
초점이 없는 두 눈에 ‘유은영’이 초인적인 힘을 발휘했다.
타앙―!
가쁜 숨을 몰아쉬며, 총을 꺼내 쏴버린 거다.
지유화를 향해 겨눴던 대 몬스터용 총이었다.
‘반납하지 않기를 잘했지.’
그렇게 안심했지만 곧 지화자의 낯이 어두워졌다.
지유화도, 그리고 조수현도 모두 멀쩡했기 때문이었다. 지화자의 두 눈이 살짝 떨렸다.
동요하는 얼굴에 지유화가 키득거리며 웃었다.
“유은영 씨, 똑똑한 줄 알았는데 아니었나봐?”
그녀가 ‘유은영’을 향해 걸음을 내딛으며 말했다.
“고작 그런 총으로 우리를 상대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 물론, 센터에서는 그럴 수 있었겠지. 나도 수현 씨도 당황했으니까.”
그렇지만.
“지금은 아니야.”
‘유은영’의 코 앞에선 지유화가 활짝 웃으며 그녀의 목을 손으로 쥐었다.
“큭……!”
목이 졸리며 숨이 부족해지기 시작했다.
지화자가 황급히 손을 들어 제 언니의 힘을 뿌리치려고 했지만 역부족이었다.
‘망할!’
그녀가 다급히 조수현을 향해 구원의 눈길을 보냈지만.
‘아…….’
조수현은 넋이 나가 있었다.
‘빌어먹을.’
지화자는 결국 부족해지는 숨에 두 눈을 감고 말았다.
‘미안해, 언니.’
지금쯤 나화진을 상대하고 있을 유은영에게 사과하며 말이다.
* * *
“허억!”
여자가 가쁜 숨을 몰아내쉬며 몸을 일으켰다.
‘뭐지? 어떻게 된 일이지?’
여자가 두 눈을 데굴 굴리며 주변을 살폈다.
갑자기 몸이 바뀐 걸 보니, 제 몸을 차지한 사람한테 문제가 생긴 게 분명할 터.
‘일단, 일어나보자.’
여자가 그렇게 몸을 일으키려고 했지만.
“윽!”
그녀는 일어나지 못했다.
양 발목과 손목에 수갑이 채워져있었던 탓이다.
“뭐, 뭐야……?”
여자가 멍하니 목소리를 내뱉을 때였다.
“일어났어요?”
상냥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지유화!”
“네, 유은영 씨. 몇 번이나 생각하는 거지만, 목청이 정말 좋으시네요.”
지유화가 키득거리며 웃었다.
“수갑은 미안해요. 나중에 때가 되면 풀어드리도록 할게요. 아님, 지금 풀어드릴 수도 있어요.”
단.
“저를 따르겠다고 맹세해주시면요. 그냥 풀어줬다가 또 총구를 겨누면 어떻게 해요?”
유은영이 이를 갈았다.
왜 갑자기 몸이 바뀌었나 했더니, 저 여자가 지화자한테 접근했었나 보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지화자는 그냥 당하고 있었단 말인가?!
‘총도 가지고 있었으면서!’
어쨌든 이 상황을 모면해야한다.
유은영이 작게 숨을 내쉬며 마음을 다스린 후 입을 열었다.
“풀어주시죠.”
“그럴 생각이었다면 애초에 이런 식으로 납치하지 않았겠죠?”
맞는 말이었다.
유은영이 뚱하게 입술을 씰룩거렸다.
“제가 실종되면 지화자 팀장님께서 바로 알아차릴 거예요. 당신이 저를 납치했다는 걸요.”
“그래서요?”
지유화가 눈웃음을 지으며 그녀에게 물었다.
“걔가 뭘 할 수 있겠어요? 제가 살아있다고 동네방네 떠든다고 쳐도 사람들이 그 말을 믿을까요?”
믿지 않을 거다.
오히려 지화자를 손가락질하며 욕하겠지.
제 언니를 그 손으로 죽였으면서 이제와서 돌아왔다니 뭐니 헛소리를 지껄인다고 말이다.
“유은영 씨.”
언제 다가왔는지 모를 지유화가 웃는 낯으로 그녀의 앞에 무릎을 굽히고 앉았다.
“저는 유은영 씨와 좋은 파트너가 되고 싶어요. 더욱이 개벽을 위해서는 유은영 씨의 힘이 꼭 필요하단 말이에요.”
유은영의 힘이 있으면 실패작을 처분 대신 다시 되돌려 실험을 계속 진행할 수 있었다.
“어때요?”
어떻냐고?
유은영이 비딱하게 입꼬리를 끌어 올렸다.
“엿이나 쳐드세요.”
지유화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 * *
“쿨럭, 큭!”
지화자가 연신 기침을 터트리며 눈을 떴다.
코 앞에서 놀란 눈을 뜨고 있는 나화진이 보였다. 제 목을 향해 검을 치켜들고 있는 그가 말이다.
“아.”
나화진이 얼빠진 소리를 냈다.
“지화자 팀장, 그게, 이건 말이지. 자네가 갑자기 쓰러져서!”
“변명할 필요 없습니다.”
“컥!”
지화자가 나화진의 복부를 걷어찼다.
저보다 연장자라는 것도, 자신의 상사라는 것도 이 순간에서는 아무 필요 없는 것이었다.
우당탕!
나화진이 단검을 놓치며 바닥에 쓰러졌다.
“크윽!”
그가 분하다는 듯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며 적반하장으로 나왔다.
“지화자 팀장! 나를 이렇게 하고도 무사할 것 같은가!”
“네.”
지화자가 담담하게 대답해주고는 휴대폰을 꺼내 들었다.
“가하성? 부탁 하나 좀 하자.”
―또요?
“지후 사진 안 받고 싶나봐?”
―팀장님은 정말 양아치에요.
지화자가 콧방귀를 끼고는 가하성에게 명령이나 다름없는 부탁의 말을 꺼냈다.
“나화진 국장이 나를 죽이려고 했다는 식으로 말 좀 흘려줘.”
―네?!
“지화자 팀장! 지금 뭐하는 건가!”
“그럼, 가하성. 부탁한다.”
―잠시만요! 팀장님!!
가하성이 애타게 그녀를 불렀지만 지화자는 매몰차게 전화를 끊어버렸다.
그러고는 나화진을 쳐다봤다.
“……!”
아무런 감정도 담겨있지 않은 그 눈빛에 나화진이 흠칫 몸을 움츠렸다.
지화자가 비딱하게 입꼬리를 끌어 올렸다.
“나화진 국장.”
존칭따위 없었다.
“당신이 나를 싫어하는 건 알고 있었어. 하지만 이건 아니지.”
자신이 잠시 기절을 했던 틈을 타 죽이려고 하다니.
“그건 오해라고 하지 않았나!”
“오해?”
지화자가 키득거렸다.
“그건 대중이 판단할 일이지.”
그러면서 그녀는 제 목에 상처를 내버렸다. 나화진이 떨어뜨린 검을 이용해 말이다.
“지, 지금 무슨!”
“어차피 죽이려고 했잖습니까?”
지화자가 나화진이 있는 쪽을 향해 단검을 내던졌다.
지문이야 괜찮았다.
그런 게 묻지 않도록 검을 잡아 휘두른 거니.
상처가 그렇게 깊지는 않지만, 이렇게 계속 피를 흘리면 목숨이 위험해질 터.
지화자가 창백하게 질린 낯을 두 눈에 담으며 말했다.
“그거 아십니까? 조금 전, 영웅호걸 팀장이 S급 게이트 공략에 성공했습니다.”
나화진의 두 눈이 동그래졌다.
S급 게이트 공략에 성공했다는 말은, 즉. 자신에게 공략 보고를 올리려 오기 직전이라는 뜻.
“빌어먹을!”
나화진이 황급히 지화자를 향해 손을 뻗었다.
이렇게 된 이상, 현장 파견 부서의 직원들이 오기 전에 지화자를 완전히 죽여야했다.
저 멍청한 게 검에 독이 묻은 것도 모르고 스스로 상처를 냈으니.
‘죽일 수 있을 거다!’
하지만 지화자가 움직이는 게 더 빨랐다.
그녀는 나화진이 자신에게 접근하기 전에 힘으로 문을 열어 젖히며 복도로 나갔다.
“꺄악!”
지유화에게 빙의된 상태였다가 풀려난 진채화가 비명을 질렀다. 지화자가 그녀를 향해 소리 질렀다.
“어서 신고를!”
“아! 네넵!”
많이 놀랐을 텐데도, 진채화는 벌벌 떨며 경비를 불렀다.
그러는 사이 나화진이 지화자의 위에 올라탄 나화진이 그녀를 향해 검을 치켜들었다.
“이 빌어먹을 년!”
“꺅! 지화자 팀장님!”
진채화가 비명을 질렀다.
지화자는 짧게 혀를 차고는 손을 들었다.
피할 수 있었지만, 이런 식으로 막아야 나중에 일이 수월하게 풀릴 것 같았다.
“지화자! 뭐하는 거야?!”
다급한 목소리와 함께 나화진의 몸이 붕 허공을 나른 건 그 순간이었다.
“너 미쳤어?! 충분히 피할 수 있는 놈이 왜 굳이 칼빵 맞으려고 해!”
“…서이안.”
지화자가 멍하니 그의 이름을 불렀다가 허탈하게 웃음을 터트렸다.
“야! 이런 상황에서 웃음이 나와?”
“응, 나오니까 저 자식이나 좀 제압해줘. 나는 급하게 가봐야할 곳이 있으니까.”
“그런 상태로 어디를 간다는 거야?! 그보다 유은영은?! 그 폐급 힐러는 어디 있어? 같이 있던 거 아니었어?”
유은영.
그 이름에 지화자가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유은영은 지금 지유화와 함께 있을 거다. 그러니 한시라도 빨리 움직여야했다.
하지만.
“쿨럭……!”
목구멍을 타고 올라오는 붉은 액체에 지화자의 무릎이 꺾였다.
다시 일어나려고 했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목 안쪽이 계속 뜨거워졌다. 눈 앞도 흐려졌다. 별 거 아닌 상처에서 피가 끊임없이 솟구치기 시작했다.
‘빌어먹을.’
아무래도 나화진의 검에 독이 발라져 있던 모양이다. 그것도 S급 각성자에게 타격을 입힐 수 있는 강한 독이.
‘이 정도 독이면 그냥 독살을 할 것이지.’
굳이 검에 묻혀 자신을 찌르려고 했단 말인가?
‘취향 고약해.’
지화자가 그런 생각을 하며 쓰러졌다.
‘언니…….’
구하러 가야하는데.
그래도 다행인가? 이 정도면 다시 또 몸이 바뀔 테니까.
지화자는 바보같이 그런 생각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