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68화
‘유은영’이 내비치는 명백한 적의에도 조수현은 물러나지 않았다. 오히려 더욱 지유화를 보호할 뿐.
“조수현!”
지화자가 목소리를 높였다.
당장에라도 방아쇠를 당길 듯이 구는 모습에 유은영이 자신도 모르게 움직였다.
타앙―!
지화자가 쥐고 있던 총이 위를 향해 탄알을 내뱉었다. 유은영이 그녀의 손목을 붙잡아 위로 들어 올렸기 때문이다.
“이게 무슨 짓……!”
“진정하세요!”
유은영이 다급하게 외쳤다.
“답지않게 왜 그래요!”
그 말에 지화자는 겨우 진정했다. 하지만 그러는 사이 두 사람은 지유화를 놓치고 말았다.
그녀만 놓친 게 아니다.
“조수현 팀장님?”
조수현도 자취를 감춰버렸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에 유은영이 멍하니 두 눈을 끔뻑일 때, 지화자가 얼굴을 찌푸리며 말했다.
“지유화가 가진 능력이야.”
“네?”
“내가 말했잖아. 지유화한테 빙의니 뭐니 그런 힘 따위 없었다고.”
그랬던 것 같다.
지화자가 유은영에 의해 놓쳤던 총을 다시 쥐며 구시렁거렸다.
“지유화는 자신의 흔적이 남아있는 곳으로 마음만 먹으면 이동할 수 있어. 횟수에 제한이 있기는 하지만.”
철컥, 그녀가 탄창을 갈며 말을 이었다.
“아무래도 그 힘을 사용한 것 같아. 쥐 새끼같은 놈. 그래서 처리하려고 한 건데.”
유은영이 속으로 뜨끔하고는 물었다.
“조수현 팀장님은요?”
“같이 이동했겠지.”
지화자가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투로 말했다.
“그렇게 사랑해 마지않는 연인과 오붓한 시간 보내라고 해. 다음에 만날 때는 두 사람 모두 쏴버릴 테니까.”
그러면서 그녀는 유은영을 쳐다봤다.
마치, 그때도 지금과 같이 말린다면 가만두지 않겠다는 눈빛으로 말이다.
흉흉한 기세를 거리낌 없이 내비치는 모습에 유은영이 우물거리며 말했다.
“조수현 팀장님을 다치게 둘 수는 없었어요.”
“덕분에 지유화를 놓치게 됐지.”
그리고.
“거기! 무슨 일인가!”
지화자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나화진 국장이랑 입씨름도 하게 됐네.”
입씨름만 하랴?
분명, 기 싸움을 하며 자신들을 억누르려고 할 터.
“언니가 알아서 처리해.”
그 말을 남겨두고서 지화자가 휙 몸을 돌렸다.
“어디 가세요?”
“머리 식히러.”
이런 상태로 나화진을 만나게 되면, 분명 그를 향해 방아쇠를 당기게 될 터.
유은영을 위해서도 그리고 자신을 위해서도 그런 불상사는 일어나지 말아야 했다.
지화자는 그렇게 자리를 떠났다.
“이봐, 지화자 팀장! 도대체 무슨 일인가?!”
어깨가 잡혔다.
유은영이 고개를 돌려 나화진을 쳐다봤다. 나화진이 흠칫거리며 잡고 있던 어깨를 놓아줬다.
‘지화자’가 그에게 잡혔던 어깨를 툭툭 털어내고는 말했다.
“국장님께서 데리고 있던 비서.”
나화진이 움찔거렸다.
그 작은 움직임을 놓치지 않은 ‘지화자’가 담담하게 목소리를 뱉어냈다.
“지유화더군요.”
***
지하 수로의 정적이 깨졌다.
“유화야, 지유화!”
조수현이 앞서 걸어가고 있는 여자를 다급하게 불렀다.
“응, 수현 씨.”
지유화가 멈춰서서는 웃는 낯으로 그를 쳐다봤다.
그린 듯한 미소를 지으며 자신을 보는 그 시선에 조수현이 파르르 입술을 떨었다.
“…정말 너야?”
“그럼, 나지.”
지유화가 조수현의 손을 잡고는 제 뺨에 가져다 대었다. 그러고는 물었다.
“어때, 수현 씨? 내가 거짓말 같아?”
조수현이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저었다.
손바닥 아래에서 느껴지는 온기는 분명 살아있는 사람의 것이었으니까.
그래, 눈앞의 여자는 정말 지유화였다.
조수현이 금방에라도 울 것 같은 얼굴로 그녀를 쳐다봤다. 그 시선에 지유화가 작게 웃음을 흘렸다.
“수현 씨, 왜 그래?”
“…거짓말 같아서.”
그녀를 다시 만난 이 순간이, 제 뺨을 어루만지고 있는 이 손길이 모두 거짓말 같아서.
그래서 눈물이 나왔다.
“울지마.”
지유화가 다정하게 그의 눈물을 닦아줬다.
“이렇게 될 줄 알아서 모든 일이 끝난 뒤에 찾아가려고 했던 건데.”
“뭐?”
조수현이 떨리는 목소리를 내뱉으며 물었다. 그 질문에 지유화가 싱긋 웃어주며 말했다.
“수현 씨도 곧 알게 될 거야. 자, 따라와.”
지유화가 다시 앞서 나갔다.
조수현이 멍하니 그녀의 뒷모습을 쳐다보다 황급히 따랐다.
“유화야, 잠깐! 화자는 네가 살아있는 걸 알고 있었던 거야?”
“그런 모양이더라고.”
지유화가 키득거리며 웃었다.
“혹시 몰라 국장님의 힘을 이용해서 유은영 씨께 제약까지 걸어뒀는데 말이지.”
그녀의 입매가 비틀렸다.
“도대체 우리 동생님은 어떻게 알아차린 걸까?”
내가 살아있다는 걸.
나지막하게 덧붙여 말하는 목소리에 조수현이 입을 벙긋거렸다.그렇게 다시 그가 질문을 던지려고 할 때.
“도착했어, 수현 씨.”
목적지가 눈앞에 나타났다.
조수현이 갑작스럽게 환하진 공간에 잠시 눈가를 찡그렸다가 입술을 오므렸다.
―키에엑! 키에!
―사… 살려…….
―이힛! 히히힛!
철창 속에 갇혀있는 것들이 알 수 없는 소리를 내며 조수현을 반겼다.
“유, 유화야, 이건 도대체.”
“놀랍지?”
지유화가 활짝 웃으며 말했다.
“조금만 더 있으면 ‘개벽(開闢)’이 실현될 거야.”
“개벽이라니?”
“말 그대로 새로운 세상 말이야, 수현 씨.”
지유화가 나긋하게 말을 이었다.
“불공평하다고 생각하지 않아? 우리 같은 각성자가 비각성자를 위해 게이트를 공략해야 한다는 게.”
그러니까.
“각성자들을 위한 세상을 새로 만들자.”
어때?
덧붙여 묻는 목소리에 조수현이 입술을 파르르 떨었다.
각성자들을 위한 세상이라니.
그 순간, 조수현은 철창 속에 갇혀있는 존재들 중 하나와 눈이 마주쳤다.
―사… 살려 줘어…….
뭉개진 발음, 흐릿한 목소리.
하지만 조수현의 귀에는 똑똑히 들렸다.
저것이 ‘살려달라’ 비는 것을.
“유화야.”
“응?”
아닐 거라 믿고 싶다.
그럴 리가 없다고 믿고 싶지만.
조수현이 꿀꺽 침을 삼킨 후 떨리는 목소리를 내뱉었다.
“저것들, 혹시.”
“맞아.”
지유화가 무슨 질문이 날아들지 알겠다는 듯이 웃으며 말했다.
“별 볼 일 없던 인간들이었어.”
그런데 그게 왜?
아무런 죄책감도 느껴지지 않는다는 듯 태연하게 묻는 목소리에 조수현의 얼굴이 아연해 졌다.
그러니까 사랑해마지 않는 제 연인은 지금 끔찍한 생체 실험을 저질렀다.
개벽인지 뭔지, 각성자들을 위한 새로운 세상을 만든다는 명목하에.
조수현이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지유화한테서 뒷걸음질 쳤다.
“수현 씨?”
지유화가 왜 그러냐는 듯이 그를 불렀다.
“유화야, 너…….”
남자가 힘겹게 말을 골랐다.
“달라졌구나.”
여자가 멍하니 두 눈을 끔뻑이다 유쾌하게 웃음을 터트렸다.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수현 씨? 내가 달라졌다니!”
성큼, 순식간에 조수현의 앞으로 다가온 여자가 씨익 입꼬리를 끌어 올렸다.
“나는 원래 이랬어.”
***
“도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 건가, 지화자 팀장! 유화가 살아있다니! 그런 헛소리를 나보고 지금 믿으라는 건가?!”
국장실이 떠나가라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는 목소리에 ‘지화자’가 얼굴을 찌푸렸다.
저렇게 나올 줄 알았지만, 정말 저런 식으로 구니 진이 빠졌다.
하지만 여기에서 ‘제가 잘못 알았나 봅니다’라고 사과하며 고개 숙일 수는 없는 노릇.
유은영이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
“믿든 믿지 않든 지유화는 살아있습니다.”
“지화자 팀장!”
“못 믿으시겠다면 증거를 보여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이를 수집하기 위해 우종문 부장님께 게이트 공략을 부탁드린 거니까요.”
“뭐, 뭣……!”
‘증거’라는 소리에 나화진이 크게 당황했다.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유은영이 입가에 비웃음을 걸치고는 그에게 영상 하나를 보여줬다.
“……!”
나화진의 눈이 동그래졌다.
영상 속에 지유화의 모습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기 때문이다.
“보고 계시는 영상은 한국 종합 병원의 CCTV 영상입니다. 우종문 부장님께서 깨어나셨던 그날, 지유화를 본 것 같아서요.”
그래서 따로 병원 측에 영상을 부탁했었다며 유은영이 거짓말을 늘어놓았다.
“국장님, 이제 저를 좀 믿어주시겠습니까?”
“크흠, 흠!”
나화진이 헛기침을 터트렸다.
“유화가 아닐 수도 있지 않나?”
“물론, 그럴 수도 있겠죠. 그런데 그렇다면 더욱 큰일이지 않나요?”
“무엇이?”
“누군가 제 언니를 흉내 내는 거란 소리니까요.”
영상 속의 여자는 누가 봐도 지유화였으니.
“국장님.”
유은영이 나지막하게 목소리를 내었다.
“지유화가 정말 살아있는 거라면 국장님께도 좋은 일이지 않습니까?”
그러니.
“조사를 진행하게 해주십시오. 앞으로 일어날 모든 게이트에 대한 공략을 빠질 수 있도록요.”
나화진이 침음을 삼켰다.
마음 같아서는 ‘지화자’의 요청을 거절하고 싶었지만 그럴 명분이 없었다.
‘설마, 유화가 살아있는 걸 알고 저러는 건 아니겠지?’
총성이 울린 자리에는 ‘지화자’말고 다른 한 명이 더 있었다. 누구인지 보지는 못했지만 분명 그랬다.
‘유화라도 있으면 좋으련만!’
그녀는 갑작스럽게 사라진 상태였다.
‘빌어먹을.’
나화진이 얼굴을 찌푸렸다.
서이안에게 붙잡히지만 않았다면 이런 상황이 일어나지 않았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어쨌든 이미 지나간 일.
이 상황에서 그는 선택해야 했다.
곧, 나화진이 결론을 내렸다.
“좋네.”
‘지화자’의 얼굴이 환해졌다.
“단!”
나화진이 엄한 목소리로 그녀에게 당부했다.
“유화와 관련된 일은 모두 철저하게 비밀로 부치도록 하게!”
‘지화자’가 씨익 입꼬리를 끌어 올렸다.
어차피 남들한테 말하고 싶어도 그럴 수 없을 거다.
조금 전, 나화진이 그런 당부를 내뱉으며 자신에게 힘을 사용했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녀는 아무것도 모르는 척 말했다.
“네, 국장님. 저만 믿어주십시오.”
믿어주기는 개뿔이다.
유은영이 속으로 그 말을 삼키며 미소를 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