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60화
유은영이 잠에서 깬 건, 해가 뜨기 전인 새벽이었다.
잠들기 전에 들이닥쳤던 불안감 때문에 그런 건 아니었다. 그녀가 잠에서 깨어난 건, 시끄럽게 울려대는 휴대폰 때문이었다.
“도대체 누구야……?”
유은영이 얼굴을 찌푸리며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야! 지화자!
잠이 훅 달아났다.
“서이안 씨……?”
새벽 중에 전화를 건 사람은 바로 서이안이었다.
“이렇게 늦은 시간에 무슨 일이에요?”
―폐급 힐러 번호 알지?
폐급 힐러?
유은영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유은영 씨요?”
―그래! 그 싸가지 없는 힐러!
누구보고 싸가지 없다는 거야?
유은영이 울컥 치밀어오르는 감정을 겨우 억누르고는 물었다.
“유은영 씨는 왜요?”
―그건 알 거 없고, 번호나 불러!
“유은영 씨는 자기 번호 함부로 가르쳐주는 거 싫어해요.”
―급한 일이니까 이러지!
서이안이 빼액 소리 질렀다.
도대체 무슨 일이기에 꼭두새벽부터 이러는 거람?
유은영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어쨌거나 꽤 급해보여 그녀가 순순히 자신의 번호를 서이안에게 알려주려 할 때였다.
―아, 그래?
서이안의 주변에 누군가 있는 모양이었다. 그가 갑작스럽게 말을 바꿨다.
―야, 지화자. 폐급 힐러 번호는 됐어. 네가 오면 되겠다.
“도대체 무슨 일인데 그래요?”
―유승민이라고 알지?
모를 리가 없었다.
자신의 하나뿐인 오빠인데 모를 리가 있겠는가? 그렇지만 그 이름이 도대체 왜 서이안의 입에서 나온단 말인가?
유은영이 긴장어린 얼굴로 말을 내뱉었다.
“네, 알아요. 제 팀원이니까요.”
내뱉은 목소리가 형편없이 떨리고 있었다. 다행히도 서이안은 그것을 눈치채지 못한 모양이지만.
―그럼, 당장 우리 길드로 튀어와. 상황은 그때 설명해줄게.
“알겠어요.”
유은영이 서이안의 전화를 끊자마자 외투를 챙겨 입었다. 그렇게 집을 나서려고 할 때.
“언니?”
때마침 물을 마시기 위해 나온 지화자와 맞딱드리고 말았다.
“어디 나가?”
“아, 그게.”
유은영이 어색하게 웃으며 입을 열었다.
“아무래도 오빠한테 무슨 일이 생겼나봐요.”
“유승민 씨한테?”
“네, 그럼 다녀올게요.”
“잠깐.”
지화자가 그녀를 멈춰세웠다.
“같이 나가.”
“아니에요!”
유은영이 황급히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저희 둘 다 나간 사이에 애들 깨면 어떻게 해요?”
분명, 많이 놀랄 거다.
“그건 걱정하지마.”
지화자가 그렇게 말하고는 아이들의 방문을 열어젖혔다.
“라이.”
“흐악! 깜짝이야!”
라이가 기겁하며 금붕어처럼 입을 뻐금거렸다.
“으, 은영 누님?”
“팀장님이랑 잠시 나갔다 올 테니까 애들 깨면 잘 말해줘.”
“네? 아, 네.”
“그리고 적당히 게임하다 자고.”
“네엡.”
지화자가 아이들의 방문을 닫고 유은영을 쳐다봤다.
“됐지? 이제 나가자.”
유은영이 얼떨떨한 얼굴로 지화자를 따라 나서며 물었다.
“라이 씨가 깨어있는 거 어떻게 알았어요?”
“저 자식, 항상 밤늦게 게임하다 자거든. 그보다 어서 가자.”
유은영이 고개를 끄덕였다.
***
별 일 없을 거다.
그런 마음으로 스콜피언 길드에 도착했건만, 유은영은 무너지고 말았다.
“…오빠.”
서이안의 집무실 근처에 마련된 방에 유승민이 누워있었다.
미동도 않고, 아주 죽은 듯이 말이다.
“오빠!”
유은영이 창백하게 질린 낯으로 그에게 달려갔다.
“오빠?”
서이안이 저게 무슨 소리냐는 듯 ‘유은영’을 쳐다봤다. 지화자가 그 시선을 무시하고서 물었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이죠?”
“나도 몰라.”
서이안이 어깨를 으쓱였다.
“서도운이 갑자기 길드로 나와 보라고 해서 왔더니 다 죽어가는 놈이 있잖아.”
“서도운 씨는 지금 어디 계시죠?”
“여기 있습니다.”
때마침 서도운이 나타났다.
그가 ‘유은영’을 향해 반갑게 인사했다.
“오랜만입니다, 유은영 씨.”
하지만 지화자는 그가 전혀 반갑지 않았다.
애초에 이런 상황에서 정답게 안부를 물을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인사는 됐고,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말해주시죠.”
지화자가 굳은 표정으로 물었다.
“제 오빠가 왜 저 꼴이죠?”
그리고.
“왜 병원이 아닌 스콜피언으로 데리고 온 거죠?”
날선 질문에 서이안이 불쾌하다는 듯 말했다.
“이봐, 폐급힐러. 고맙다고 못할망정 그게 무슨 태도야?”
“고맙다는 인사는 서도운 씨께 이야기를 듣고난 후 하겠습니다.”
“뭐 저런 게 다 있어?”
서이안이 기가 차다는 듯 헛웃음을 흘리며 중얼거렸다. 그런 그를 서도운이 달랬다.
“길드장님, 저는 괜찮습니다. 제가 말했지 않습니까? 저 분께선 유은영 씨의 오빠되시는 분이라고. 많이 놀라셨을 겁니다.”
“내가 보기에는 지화자가 더 많이 놀란 것 같은데?”
“어쨌든요.”
서도운이 그렇게 대꾸해주고는 ‘유은영’에게 설명을 시작했다.
“먼저, 저도 유승민 씨께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모릅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골목길에 쓰러져있던 그를 발견한 것 뿐이라면서 서도운이 말했다.
“곧장 병원으로 모시고 가려고 했지만 유승민 씨께서 거절하셨습니다.”
“거절했다고요?”
“네, 병원은 안 된다고 그러시더군요. 그래서 황급히 길드로 모시고 온 겁니다.”
서이안이 서도운의 말을 뒤이어 입을 열었다.
“저 녀석, 정말 위험한 상태였다고. 우리 쪽에 실력 좋은 힐러가 있어서 망정이지.”
안 그랬으면 죽었을 거라며 서이안이 말했다.
“물론, 지금도 위험한 상태이기는 해.”
“…그렇군요.”
“그래서 감사 인사는?”
“해야죠. 우선, 오빠 상태부터 확인 좀 하고요.”
지화자가 그렇게 말하고는 몸을 돌렸다. 서이안이 어안이 벙벙한 얼굴로 그녀의 뒷모습을 쳐다봤다.
“진짜 뭐 저런 게 다 있어?”
“많이 놀라셨을 겁니다.”
“그러니까 암만 봐도 지화자가 더 놀란 것 같다니까?!”
지화자는 뒤에서 들려오는 목소리들을 무시하며 걸음을 옮겼다.
가까이에서 본 유승민은 빈 말로도 좋다고 할 수 없는 상태였다.당장, 흰 침구가 모두 붉게 물들어져 있었다.
“팀장님, 잠시 비켜보세요.”
지화자가 유승민의 손을 꼭 잡고 있는 여자를 다시 불렀다.
“팀장님.”
“이대로 죽으면 어떻게 하죠?”
물기 젖은 목소리에 지화자가 입을 다물었다.
유은영은 당장에라도 울음을 터트릴 것처럼 울먹이며 목소리를 내뱉었다.
“저 때문이에요.”
지화자가 얼굴을 찌푸렸다.
“유승민 씨가 이렇게 된 게 왜 언니 때문이야?”
서이안과 서도운은 자신들을 배려해서인지 방으로 따라오지 않았다.
살펴보니 방에 감시 장치도 없는 듯했다.
날카롭게 물은 질문에 유은영이 입술을 꾹 깨물었다가 흐느끼며 말했다.
“그깟 아이템 하나 쥐어줬다고, 오빠한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거라 생각했으니까요.”
정말 멍청한 생각이었다.
“이렇게 될 줄 알았으면 안전이 확보될 때까지 잠시만 같이 지내자고 할 걸 그랬어요.”
“누구 마음대로?”
지화자가 불퉁하게 말하고는 입을 열었다.
“스콜피언 측에서 따로 치료를 진행했대.”
여전히 위험한 상태라고 했지만 말이다.
‘이건 굳이 말해줄 필요 없겠지.’
지화자의 말에 유은영이 입술을 우물거렸다.
“그렇지만…….”
“정 걱정되면 좀 비켜줘. 내가 한 번 보게.”
그 말에 유은영이 자리를 비켜줬다. 살짝 뒤로 물러난 그 모습에 지화자가 곧장 유승민에게 힐을 시전했다.
“실력 좋은 힐러가 치료를 진행했다고 하더니 그 말대로네. 금방 깨어나겠네.”
“정말요?”
“그래.”
사실, 거짓말이었다.
‘이런 상태라면.’
S급 힐러가 아닌 이상 회복되기 어려워보였다.
내상이야 스콜피언 측의 힐러가 치료를 해준 모양이지만 외상이 너무 심각했다.
지혈은 된 것 같지만, 곳곳의 뼈가 부러져있었다. 어디에서 추락이라도 한 것처럼 말이다.
‘깨어나기 어렵겠는데.’
라고 생각하는 순간.
“으윽…….”
유승민이 신음을 흘리며 힘겹게 의식을 차렸다.
지화자가 놀라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가 그러지 않은척 유은영에게 말했다.
“봐봐, 깨어났지?”
“오빠!”
다급하게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에 유승민이 멍하니 입술을 달싹거렸다.
“…천국인가?”
“무슨 헛소리를 하는 거야?!”
유은영이 목소리를 높였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이런 꼴로 스콜피언에 누워있으면 어떻게 해!”
유승민이 느릿하게 두 눈을 끔뻑이다가 미소를 그렸다.
“은영아…….”
힘이 없는 목소리에 유은영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미안해. 내가 더 신경 썼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해서 유승민을 이 꼴로 만들고 말았다.
그녀가 끊임없이 스스로를 자책하다가 차갑기 그지 없는 목소리로 물었다.
“지유화지? 그 자식이 오빠를 이렇게 만든 거잖아.”
맞지?
확신에 차 묻는 목소리에 유승민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오빠.”
“…아니야.”
“거짓말하지마.”
지유화가 아니라면 도대체 누가 그를 이렇게 만든단 말인가?
“솔직하게 말해. 나혜선 팀장님 불러오기 전에.”
“은영아…….”
“숨김없이 말하라고!”
유은영이 분노하며 소리 질렀다.
머리로는 알았다.
유승민에게 이러면 안 된다는 것을. 그에게 괜한 화를 내고 있다는 것을 그녀는 알았지만.
“오빠, 제발.”
감정이 주체가 안 됐다.
자신의 방심 때문에 그가 다친 것 같았기에.
“언니, 진정해.”
그런 그녀를 지화자가 달랬다.
“유승민 씨, 일단 좀 쉬세요. 또 오겠습니다.”
유승민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서 그는 지화자를 향해 시선을 보냈다.
마치, 자신의 동생을 잘 부탁한다는 듯이 말이다.
그 시선에 담긴 뜻을 읽었는지 모르겠으나, 지화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유은영은 입술을 꾹 깨문 얼굴로 유승민을 노려보다 그대로 방을 나가버렸다.
지화자가 작게 숨을 내쉰 후, 그녀의 뒤를 쫓았다.
“언니.”
“용서할 수 없어요.”
유은영이 눈가를 급히 닦고는 날선 목소리를 내뱉었다.
“지유화, 꼭 죽여버리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