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59화
“죄송해요, 선배.”
유승민이 멋쩍게 머리를 긁적이며 사과했다. 괜히 그의 아픈 상처를 건드린 것 같아 미안했다.
다행히도 유승민의 선배는 그의 사과를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됐어. 나 기분 나쁘라고 그런 질문 던진 거 아니잖아? 그보다 왜 보자고 한 거야?”
“그게…….”
“잠깐.”
유승민의 선배가 웃으며 말했다.
“내가 맞춰볼까? 네가 무슨 이야기를 하려는 건지.”
유승민이 어깨를 으쓱였다.
마음대로 하라는 뜻이었다. 그에 그의 선배가 웃으며 말했다.
“지유화 때문이지?”
유승민의 두 눈이 동그래졌다.
“어떻게 아셨어요?”
“어떻게 알았기는? 뜬끔없이 지유화에 대해 물어봤잖아? 그래서 때려맞춰 본거야.”
남자가 킬킬 웃고는 물었다.
“아쩼든, 지유화가 왜? 센터에서 부활이라도 시키려고 하든?”
유승민은 조용히 입을 다물었다.
“왜 말이 없어? 불안하게.”
“선배.”
“응?”
“제가 말했잖아요. 지유화가 살아 돌아왔다고.”
“그래, 그랬지. 그게 왜…….”
남자가 입을 다물었다. 그를 향해 유승민이 나지막하게 목소리를 내었다.
“정말로 지유화가 돌아왔어요.”
사지 멀쩡하게.
덧붙여 말하는 목소리에 남자가 손을 들어 입을 틀어막았다.
비명을 삼키려는 듯이 보였다.
적잖이 놀란 것 같은 그의 얼굴에 유승민이 머쓱한 얼굴로 말했다.
“느닷없이 이런 이야기 꺼내서 죄송해요. 곧장 위에 알리려고 하다가 일단 선배한테 의견을 구하는 게 좋을 것 같아서요.”
“아아… 그래…….”
떨떠름하게 내뱉어진 목소리에 유승민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많이 놀랐어요?”
“당연히 놀랐지.”
남자가 입가를 가리고 있던 손을 내리며 말을 이었다.
“유승민 씨가 이렇게 예상대로 행동할 줄 꿈에도 몰랐거든요.”
“네……?”
유승민이 멍하니 묻기 무섭게 그의 선배가 손가락을 맞부딪쳤다.
따악!
경쾌한 소리와 함께 그들 주위로 투명한 막이 펼쳐졌다.
“선배! 지금 무슨 짓이에요?”
“남들 눈에 띄어서 좋을 게 없을 것 같아서요.”
남자가 나긋하게 목소리를 내뱉으며 싱긋 웃었다.
유승민이 표정을 굳혔다.
“당신, 누구야?”
눈 앞의 남자는 분명 자신의 선배였다.
청와대 소속으로 근무하게 된 이후로, 몇 번이고 저를 도와줬던 사수.
그렇지만 유승민은 본능적으로 느꼈다.
제 앞에 있는 선배는, 자신이 알고 있던 그가 아니다.
들려온 질문에 남자는 웃었다.
“누구일 것 같아요?”
누구일 것 같냐고?
“지유화.”
유승민이 내뱉은 대답에 남자가, 아니. 지유화가 유쾌하게 웃음을 터트렸다.
“정답.”
웃음기 섞인 목소리와 함께 선이 굵은 남자의 얼굴이 순식간에 여자로 바뀌었다.
지화자와 닮은 듯 닮지 않은 미모의 여자.
바로, 지유화였다.
유승민은 눈 앞이 아찔해지는 감각을 느꼈다.
도대체 언제부터 지유화였던 걸까?
‘처음부터겠지.’
자신이 선배한테 전화를 걸었던 그때부터 그녀였을 거다.
유승민이 이를 갈았다.
“선배는 어디 있죠?”
“당직실에서 꿈나라를 여행 중일 테니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지유화가 싱긋 웃었다.
“강제로 기억을 엿본 탓에 생각보다 오래 주무실 수는 있을 것 같지만요.”
“당신……!”
유승민이 발끈했다. 하지만 그는 섣부르게 움직이지 않았다.
지유화는 동생인 지화자에 의해 죽임을 당하기 전까지 대한민국의 랭킹 1위 각성자였던 자.
자신이 어떻게 해볼 수 있는 상대가 아니었다.
‘지화자 씨라면 몰라도.’
하지만 그 ‘지화자’의 몸은 지금 제 동생이 차지하고 있다.
‘어쩌면 좋지?’
도대체 왜 이런 미래를 보지 못한 건지 모르겠다.
어쨌든 어떻게든 이 상황을 지화자에게 알려야했다. 이성적으로는 동생에게 알리는 게 더 좋다고 말하고 있지만.
‘그건 싫어.’
하나뿐인 동생이 위험에 처하는 일을 보고 싶지 않았다. 이기적이라고 욕할 지라도 그는 그랬다.
“그보다 유승민 씨, 실망이에요.”
지유화가 눈매를 누그러뜨리며 실망했다는 듯이 말했다.
“오래 전부터 제 팬이었다니 뭐니 잘도 말하시더니, 다 거짓말이었나 보네요?”
“그럼, 사실일 줄 알았습니까?”
유승민이 이를 드러냈다.
“당신 때문에 제 아버지가 돌아가셨습니다. 제 동생은 무려 10년이나 혼수 상태로 병상에 누워있었고요.”
“저런.”
지유화가 진심으로 안타깝다는 듯이 울상을 지었다.
“하지만 그게 왜 저 때문이죠?”
“그야, 당신이 백화점을 붕괴시켰던 주범이니까!”
“백화점?”
지유화가 고개를 갸웃거렸다가.
“아아, 더 완즈 인 더 서울?”
생각 났다는 듯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유승민 씨의 아버지랑 유은영 씨가 그 피해자셨구나! 이것, 참. 미안해라.”
어깨를 부딪쳐서 미안하다는 태도로 사과하는 그 모습에 유승민이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지유화를 쳐다봤다.
그 시선에 지유화가 여전히 웃는 낯으로 말을 이었다.
“하지만 유승민 씨, 아버지 일은 유감이지만 유은영 씨께서는 사셨잖아요? 바로, 저 덕분에.”
“…뭐라고?”
눈 앞의 여자가 도대체 무슨 소리를 지껄이 건지 모르겠다.
지유화는 어안이 벙벙한 얼굴을 향해 계속해서 재잘거렸다.
“제가 그 백화점을 붕괴시킨 건 맞지만, 그만큼 많은 사람을 구했잖아요?”
사실이었다.
지유화가 아니었더라면 더 많은 사상자가 발생했을 거라며 다들 입을 모아 말했었으니.
그렇지마는.
“애초에 당신이 백화점을 붕괴시키지 않았으면 됐잖아!”
“그렇기는 하지만요.”
지유화가 순순히 수긍하며 입꼬리를 올렸다.
“그 건물은 무너져야만 했단 말이에요. 제 명성을 위해서.”
“명성……?”
“네, 유승민 씨.”
지유화가 싱긋 웃었다.
“저는 이 세상의 모든 사람이 제 이름을 기억해줬으면 하거든요. 왜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지만,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고 하잖아요?”
그녀가 자신의 가슴에 손을 얹고서는 입을 열었다.
“그래서 그런 거예요. 사람들이 제 이름을 오래도록 기억하게끔 만들려면 영웅이 될 수밖에 없었으니까.”
“고작 그런 이유로 백화점을 무너뜨린거야?”
“고작 그런 이유라니요.”
지유화가 차갑게 목소리를 내뱉었다.
“제게 있어서는 그 무엇보다도 더 중요한 거예요.”
하하! 유승민이 실소를 터트렸다.
“지화자 씨께서 왜 당신을 죽였는지 알겠군.”
동생의 이름이 나오자 지유화의 낯빛이 순식간에 어두워졌다.
유승민은 분위기가 바뀐 그녀를 향해 조롱 섞인 목소리를 내뱉었다.
“나 같아도 댁 같은 손위 형제가 있다면 죽이겠어.”
이 세상을 위해서라도.
나지막하게 덧붙인 목소리에 지유화가 미소를 그렸다.
“안타깝네요. 좋은 친구가 될 줄 알았는데.”
“혼자서 김칫국 마시고 있었나 보군. 나는 당신 같은 친구 절대로 사양이야. 아아, 아니지.”
유승민이 비웃음을 흘리며 말을 덧붙였다.
“당신이 지화자 씨처럼 군다면 친구해 줄 의향이 있어.”
명백한 조롱에 지유화의 입매가 비틀렸다.
***
쨍그랑―!
접시가 깨졌다. 평화로운 저녁을 깨우는 소리에 리아가 놀란 눈을 보였다.
“지화자야, 괜찮아?”
“네? 아, 네.”
유은영이 멍하니 대답했다. 그때, 닭다리를 들고 있던 라이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화자 누님, 움직이지 마세요. 제가 치울게요.”
“네가 치우기는 뭘 치워?”
그런 그를 지화자가 도로 자리에 앉혔다.
“내가 치울 테니까 너희는 마저 먹고 있어.”
“제가 치울 수 있는데!”
라이가 불퉁한 얼굴로 우는 소리를 냈지만, 지화자는 가볍게 그의 투정을 무시했다.
그대로 부엌으로 간 그녀가 유은영에게 물었다.
“팀장님, 괜찮으세요?”
“네… 괜찮아요…….”
전혀 그렇게 보이지 않았다.
유은영의 얼굴은 창백하게 질려 있었다. 당장에라도 쓰러질 것처럼 말이다.
“언니, 갑자기 왜 그래?”
지화자가 소리 죽여 물었다.
아이들이 치킨을 덜어 먹을 수 있도록 접시를 가지고 오겠다며 부엌으로 갔던 그녀다.
그것도 싱글벙글 웃으면서 말이다. 그런데 갑자기 벼락이라도 맞은 듯한 얼굴로 얼어붙어있다니.
지화자가 걱정 가득한 얼굴로 물었다.
“말 좀 해봐, 언니.”
유은영이 입술을 우물거렸다.
“저도 잘 모르겠어요.”
“뭐?”
그게 무슨 소리냐는 듯 지화자가 얼굴을 찌푸렸다. 유은영은 우물쭈물 말을 내뱉었다.
“갑자기 심장이 내려앉는 기분이 들어서…….”
“부정맥이라도 왔어?”
“그럴 리가요!”
S급 각성자의 신체는 기본적으로 튼튼했다.
부정맥따위 올 리가 없었다.
“그럼, 갑자기 왜 그런 건데?”
“그러게 말이에요.”
유은영이 목소리를 내리깔았다.
“갑자기 불안한 마음이 드네요.”
“혹시, 공황 장애?”
지화자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에 유은영이 빼액 소리 질렀다.
“그럴 리가 없잖아요!”
이제 와서 공황 장애라니!
그런 게 올거면 지화자와 처음 몸이 바뀌었을 때 왔어야 했다.
“치우는 거 도와줄 거 아니면 저리 가세요!”
“도와줄게.”
“됐네요!”
유은영이 기어코 지화자를 부엌에서 쫓아냈다.
“나참, 기껏 걱정 해줬더니”
지화자가 거실로 향하면서 불만 가득한 얼굴로 툴툴거렸지만 유은영은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그저, 산산조각난 접시 조각을 치울 뿐이었다.
‘도대체 뭐였을까?’
왜 갑자기 세상이 무너진 듯한 감각을 느낀 거지?
그 감각은 두 번 다시는 느끼고 싶지 않을 정도로 불쾌했었다.
‘설마…….’
유승민한테 무슨 일이라도 생긴 걸까?
유은영의 얼굴에 그림자가 졌다.
하지만 곧 그녀는 고개를 저으며 걱정을 털어냈다.
‘그럴 리가 없어.’
설사 그런 일이 생겼다고 해도 유승민이라면 자신이 쥐어준 아이템을 사용했을 거다.
그러지 않았다고 해도, 유승민은 미래를 볼 수 있지 않는가? 그라면 위험한 미래따위 충분히 대비했을 거다.
아이템을 사용할 일도 없이 말이다.
‘그러니까 너무 걱정하지말자.’
자신도, 그리고 지화자도 이곳에 멀쩡히 있지 않는가?
조금 전에 들이닥쳤던 불안감은 기우일 뿐이다.
유은영은 어리석게도 그렇게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