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58화
퇴근 시간이 꽤 지났기 때문인지 센터는 적막했다.
유은영이 지화자와 함께 그 고요함 가운데를 걸어가며 걱정스럽게 목소리를 뱉어냈다.
“괜찮겠죠?”
“네 오빠?”
“네.”
“괜찮을 거야. 유승민 씨가 평범한 각성자도 아니고, 위험한 일이 생겨도 알아서 잘 대처하겠지.”
그리고.
“언니가 준 물건도 있잖아?”
암만 시제품이라고 해도 기술 관리 부서의 발명품답게 효과 하나는 확실해 보였다.
“그러니까 유승민 씨는 걱정말고 언니나 걱정해.”
지유화가 언제 어디에서 어떤 식으로 접근할지 모른다. 타박을 빙자한 지화자의 걱정에 유은영이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지화자 씨야말로 조심하세요.”
지유화는 ‘유은영’을 원하고 있는중이었다.
당장 그녀에게 자신의 손과 발이 되어 달라며 접근까지 했었다. 나름 정중하게 대한 것 같지마는.
‘언제 태도가 바뀔지 모르지.’
유승민의 앞에 나타난 것만 봐도 그랬다.
“누군가 저희보다 먼저 지유화 씨를 처리해주면 정말 좋겠는데 말이죠.”
유은영이 이를 갈며 험악하게 얼굴을 구겼다. 지화자가 신기하다는 얼굴로 그녀를 쳐다봤다.
“왜 그렇게 보세요?”
“정말 많이 변했다 싶어서.”
“누가요?”
“누구겠어?”
유은영이 고개를 갸웃거렸다가 입을 쩍 벌렸다.
“설마, 저요?”
“그래.”
지화자가 키득거리며 웃었다.
“바퀴벌레 한 마리 못 잡아서 벌벌 떨던 사람이, 이제 험한 말을 잘도 담잖아?”
“제가 언제 그랬다고!”
불퉁한 목소리에 지화자가 어깨를 으쓱이고는 앞서 나갔다.
“지화자 씨, 같이 가요!”
유은영이 다급하게 그녀를 부르면서 뒤를 쫓았다.
* * *
유은영도 지화자도 센터를 벗어났다. 하지만 유승민은 여전히 센터였다.
그는 동생이 손에 쥐여준 호루라기를 꼭 끌어 쥐었다.
하나뿐인 여동생이 자신을 생각해서 기술 관리 부서에서 얻어온 물건이다.
함부로 대할 수는 없었다.
더군다나.
‘…지유화.’
그녀가 본격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라고 말하는 건 살짝 어불성설이지.’
지유화가 움직이기 시작한 건 맞지만, 대외적으로 모습을 드러낸 건 아니니까.
‘왜 그러지 않는 걸까?’
지유화라면 마음 먹으면 세상에 자신을 드러낼 수 있을 거다.
하지만 그녀는 그러지 않았다.
‘뭐가 됐든 간에.’
유승민이 휴대폰을 꺼내 들었다.
평소에 들고 다니는 휴대폰이 아닌, 청와대와 따로 연락을 취할 때 사용하는 휴대폰이었다.
그는 곧장 제 상사에게 전화를 걸었다.
―무슨 일이야? 연락이 없어서 그대로 센터로 넘어가나 했더니만.
“선배님도, 참. 제가 평생직장 두고 어디를 가겠습니까?”
―말은 잘하지. 그래서 무슨 일이야?
“잠깐 시간 좀 내주실 수 있을까요? 급한 일입니다.”
―센터에서 수상쩍은 움직임이라도 포착했나 봐?
“그렇다고 할 수 있죠.”
센터의 국장이란 작자가 ‘더 완즈 인 더 서울’을 무너뜨린 테러범과 함께 하고 있었으니.
곧, 대답이 들려왔다.
―어디서 볼까?
들려온 대답에 유승민이 안도의 숨을 작게 내쉬었다.
도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 거나고 꼬치꼬치 캐물으면 어쩌나 싶었기 때문이다.
지유화에 대한 이야기는 전화로 할 수 있는 말이 아니었다.
어쨌거나 유승민은 말했다.
“제가 선배님 있는 쪽으로 가겠습니다.”
―그래, 그럼…….
알려준 위치에 유승민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잠시 후에 뵙겠습니다.”
그 말을 끝으로 전화가 끊겼다.
유승민이 작게 숨을 내쉰 후 걸음을 옮겼다.
그는 ‘지화자’에게 지유화와 관련된 모든 일을 맡길 생각 따위 없었다.
당연히 ‘유은영’에게도 그건 마찬가지였다.
두 사람의 반응을 보면, 그들은 지유화의 목적이 무엇인지 알고 있는 것 같았다.
동시에 그걸 경계하고 있는 모양새였고.
하지만 자신의 도움은 바라지 않는 눈치였다. 아니, 애초에 생각도 하지 않는 모양이었다.
그러니까.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자.’
그 두 사람이 전전긍긍 속으로 끙끙 앓으면서 모든 일을 해결하도록 내버려 두고 싶지 않으니까.
그렇기에 유승민은 자신의 자리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해보기로 했다.
비록, 유은영과 지화자가 그것을 원치 않는다고 해도 말이다.
***
유승민이 직장 선배를 만나러 떠난 시간, 유은영은 지화자와 함께 집에 돌아온 참이었다.
“치킨 먹고 싶다, 치킨!”
“우리 치킨 시켜요!”
리아와 라이도 함께 말이다. 물론, 김지후도 있었다.
“지후야, 치킨 먹고 싶지 않아?”
“치킨?”
“그래! 치킨!”
리아의 말에 김지후가 두 눈을 반짝반짝 빛냈다.
“유은영이 치킨시켜주면 닭다리 지후한테 양보할 건데!”
대놓고 사달라는 소리였다.
지화자가 어처구니없다는 얼굴로 말했다.
“팀장님한테 사달라 해.”
“지화자는 많이 사줬는걸! 그치, 오빠?”
“맞아요!”
라이가 옷을 갈아입고 나오며 입을 열었다.
“지화자 누님은 은영 누님 없을 때마다 이것저것 맛난 거 많이 사줬는 걸요!”
지화자가 살포시 미간을 좁히며 유은영을 쳐다봤다. 유은영이 그 시선을 피하며 휘파람을 불었다.
딴청을 피우는 모습에 지화자가 짧게 혀를 차는 순간.
“누나.”
김지후가 지화자의 옷을 꼭 끌어 잡으며 말했다.
“지후 치킨 먹고 싶어요.”
초롱초롱하게 두 눈을 빛내는 아이의 모습에 지화자가 와락 얼굴을 찌푸렸다.
그 험상궂은 모습에 김지후가 그녀의 눈치를 보며 입술을 우물거렸다.
“치킨… 하성이 형이 고아원에 놀러 올 때만 먹었던 건데…….”
우물쭈물 들려오는 목소리에 지화자가 결국 한숨을 푹 내쉬며 카드를 꺼내 들었다.
“알아서 시켜먹어.”
“네에!”
리아와 라이가 밝게 웃으며 지화자의 카드를 낚아챘다. 정확히는 ‘유은영’의 카드였지만 말이다.
‘저렇게 좋을까?’
기름에 튀긴 닭고기가 뭐가 그리 맛있다고 저 난리인지 모르겠다.
지화자가 신이 난 얼굴로 치킨집에 전화를 거는 아이들이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얼굴을 보였다.
그런 그녀에게 유은영이 키득거리며 속삭였다.
“지화자 씨도 애한테는 못 당하네요.”
“시끄러.”
지화자가 날선 목소리를 내뱉고는 방으로 들어갔다. 유은영이 그 뒤를 따르며 물었다.
“그래도 좋지 않아요?”
“뭐가?”
“평화요.”
방 밖으로 아이들의 웃음 소리가 들려왔다. 듣기 좋은 맑은 목소리들에 유은영이 말했다.
“지유화라는 골치 아픈 인간이 나타났기는 했지만, 그래도 평화로운 세상이잖아요.”
“아직까지는 말이지.”
유은영은 모를 거다.
지유화가 죽기 직전까지 얼마나 많은 악행을 저질렀는지.
그 악행을 이용해 명예를 쌓아올렸다는 것을, 유은영은 절대로 알지 못하리라.
지화자의 얼굴에 그림자가 졌다. 하지만 유은영은 그것을 눈치채지 못하고서 재잘거렸다.
“지화자 씨도 참 걱정이 많다니까요? 좋게좋게 생각해요. 이런 상황에 게이트가 출현해봐요!”
생각할 것도 많은데 얼마나 골치 아프겠냐면서 유은영이 말했다.
“우리, 지금만이라도 속 편하게 생각하자고요.”
그 말에 지화자가 픽 웃는 순간.
―국가 넘버, 82.
서울 동작구 노량진로 247 본동시민공원에 게이트 생성 예정입니다.
예상 정보를 전달해드립니다.
Type: 타임 브레이커
Lank: S급
게이트 생성 예정 시간을 아래와 같이 전달해드립니다.
20■■. 02. 23
PM 11: 27―
두 사람의 앞에 푸른 창이 나타났다.
“어? 어어?”
유은영이 크게 당황했다.
게이트가 출현하지 않아서 다행이지 않느냐고 묻던 게 조금 전의 일이다.
‘그런데, 왜!’
왜 하필 지금 이 타이밍에 게이트가 생성될 거라고 시스템 창이 나타났단 말인가!
유은영이 지화자를 흘긋거렸다.
그녀는 못마땅한 기색이 역력한 얼굴로 시스템 창을 노려보고 있는 중이었다.
“저, 지화자 씨? 어차피 저희 팀이 맡지 않아도 될 것 같은데.”
동작구는 3팀의 담당이었지만, 언제나 4팀도 함께 움직였다.
그러니 암만 예상 등급이 S급이라고 해도 0팀이 나서게 될 가능성은 극히 적으리라.
하지만 지화자는 고개를 저었다.
“그건 모르는 일이야. 게이트에 출현할 몬스터의 숫자가 너무 많은 것 같으면 3팀과 4팀만으로 부족할 테니까.”
“하지만 다른 길드도 공략에 참가하게 될 텐데……!”
“언니.”
지화자가 은은하게 미소를 그리면서 물었다.
“우리 팀이 참가하지 않는 게 가장 좋은 일이겠지만, 윗대가리들이 과연 우리가 놀게 둘까?”
유은영이 조용히 입을 다물었다.
윗대가리들 중에서도 가장 큰 권력을 지니고있는 게 바로 나화진이다.
그라면 0팀이 손가락 빨며 놀고 있는 걸 절대로 보지 않을 터.
‘빌어먹을!’
안 그래도 신경쓸 일이 많은데!
유은영이 와락 얼굴을 구겼다.
***
유은영은 게이트를 언급하며 평화 운운한 것을 후회했다. 그때, 유승민은.
“유승민? 어이, 유승민.”
“아, 네.”
직장 선배와 이야기를 나누는 중이었다.
“갑자기 왜 그래?”
“게이트 생성 예정 정보가 눈앞에 떠서요.”
“그런 게 떠?”
“센터 소속이라 그런 가봐요.”
유승민이 어깨를 으쓱였다.
“동작구에 타임 브레이커 유형의 S급 게이트가 생성될 거라고 하네요.”
“그런 거 함부로 말해줘도 돼?”
“뭐 어때요. 어차피 나중에 다 알게 될 텐데.”
“그건 그렇지.”
유승민의 선배가 심드렁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고는 물었다.
“그래서 무슨 일로 시간 좀 내달라고 한 거야? 중요한 일이어야 할 거야.”
“다행히도 중요한 일이에요.”
유승민이 싱긋 웃었다.
“선배, 지유화 씨가 살아 돌아온다면 어떨 것 같아요?”
“다들 좋아하겠지.”
유승민의 선배가 고민도 않고 대답했다.
“선배는요?”
“나?”
유승민의 선배가 픽 웃었다.
“백화점 붕괴 사고로 인해 나 역시 가족을 잃었지.”
그가 가리키는 백화점은 당연히 ‘더 완즈 인 더 서울’이었다.
지유화가 무너뜨린 그 백화점에서 그는 모든 가족을 잃었다.
“내가 어떻게 여길 것 같아?”
유승민이 입을 다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