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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급 힐러가 랭킹 1위가 되어 버렸다-156화 (156/200)

제156화

지화자도 유은영도 지금쯤 유승민이 나화진을 만나고 있을 거라 그리 생각했다.

하지만.

“흐음, 어쩌지?”

그는 지금 나화진을 만나러 갈지, 말지 고민하고 있는 중이었다.

즉, 아직 나화진을 만나지 않았다는 말이었다. 애초에 그는 국장실이 있는 층에 올라가지도 않은 상태였다.

이유는 하나.

‘왜 그런 미래를 보여준 거지?’

갑작스럽게 펼쳐진 미래 때문이었다.

멀지 않은 미래에서 그는 나화진이 아닌 다른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 자리에 나화진도 있었지만, 대화를 이끌어가는 사람은 따로 있었다는 거다.

모르는 사람은 아니었다.

너무나도 잘 알고 있는 사람과 대화를 나누고 있어서 문제였지.

‘지유화.’

유승민이 미래에서 본 사람은 바로 지유화였다.

‘더 완즈 인 더 서울’을 무너뜨린 장본인이자 가장 많은 인명을 구한 영웅.

동시에 지화자의 손에 죽임을 맞이한 전(前) 랭킹 1위.

‘살아있는 건 알았어.’

어떻게 살아있는 건지는 여전히 알 수 없지만, 그는 지유화의 생존을 알고 있었다.

‘지화자 팀장님께서는 믿지 않는 눈치였지만.’

하지만 그녀 역시 내심 인정하고 있었을 거다.

지유화의 생존을.

문제는, 꽤 가까운 미래에서 자신이 그녀와 만나게 될 거라는 거다.

미래가 바뀌는 일이야 종종 있었지만 유승민은 이번에는 그렇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왜인지 모르게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대로 나화진 국장님을 뵙지 않는다면…….’

과연 미래가 바뀔까?

유승민은 문득 드는 의문에 고개를 가로저었다.

지금 당장 눈앞에서 펼쳐진 그 미래를 바꾼다고 해도, 그와 비슷한 상황이 언제고 다시 펼쳐지게 될 거다.

결국, 유승민은 작게 숨을 내쉬고는 국장실이 위치한 센터의 최상층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매도 먼저 맞는게 낫다고 하지 않나?

‘이렇게 된 거, 어디 한 번 정면으로 부딪쳐보자.’

혹시라도 그로 인해 무슨 문제가 생긴다면 지화자가 알아서 처리해주겠지.

지화자가 유승민의 생각을 들었다면 겁도 없으면서 잔소리를 해댔을 거다.

하지만 이 자리에 지화자는 없었고, 그렇기에 유승민은 씩씩하게 국장실로 향했다.

“국장님, 유승민입니다.”

똑똑, 가볍게 노크하며 유승민이 자신의 방문을 알렸다.

“들어오게.”

기다렸다는 듯 대답이 들려왔다.

유승민이 호흡을 가다듬은 후, 문을 열었다.

“늦었군.”

“죄송합니다. 아직 센터의 지리에 익숙하지 않아서요. 오는 길에 헤매고 말았습니다.”

속이 뻔히 보이는 거짓말이었지만 나화진은 사람 좋게 웃으며 그러려니 넘어갔다.

“앉게. 내 차를 내주지.”

“아닙니다, 국장님.”

유승민이 싱긋 웃었다.

“그보다 저를 왜 부르셨습니까?”

“성질도 급하군.”

“하하, 죄송합니다.”

유승민이 멋쩍은 얼굴을 보이며 뺨을 긁적였다.

당연히 연기였다.

하지만 나화진은 그의 연기에 손쉽게 넘어갔다.

“일이 많이 바쁜가 보군.”

“아무래도요.”

유승민이 처연하게 어깨를 축 늘어뜨렸다.

“키메라다 뭐다, 정신이 하나도 없네요.”

“원래 이렇게 정신이 없는 곳은 아닌데, 수고가 많네.”

“아닙니다, 국장님.”

유승민이 싱긋 웃었다.

유은영과 닮을 얼굴을 향해 나화진이 미소를 그리며 말했다.

“다름이 아니라, 센터에 잘 적응하고 있나 궁금해서 불렀네. 자네도 알겠지만, 센터는 청와대와는 일이 다르게 흘러가지 않나?”

혹여 불편함을 겪고 있는 건 아닐까 걱정됐다면서 나화진이 싱긋 웃었다.

“자네 상사가 엄청 당부했거든. 자네를 좀 잘 봐달라고.”

“그러셨나요?”

청와대로 돌아가면 선배한테 커피라도 한 잔 사드려야겠다.

유승민이 그렇게 생각하며 입을 열었다.

“보다시피 저는 잘 지내고 있습니다. 지화자 팀장님도 그리고 다른 팀원들도 모두 잘 대해주고 있어요.”

“그래, 그런 것 같아 다행이군.”

나화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0팀에 잘 녹아든 것 같아 보기 좋네.”

그렇게 보이나요?

유승민은 순간 그렇게 물어볼 뻔 했지만 가까스로 치미는 말을 꿀꺽 삼켰다.

‘0팀에 잘 녹아든 것 같다니.’

아무래도 나화진에게 노안이 찾아온 모양이다.

물론, 겉으로 보기에 유승민은 0팀의 사람들과 아무런 문제가 없어 보였다.

하지만 그의 속은 말이 아니었다.

당장 오늘만 해도, 점심 시간에 하태균과 리아와 라이에게 시달렸다.

고작 기침 한 번 했다고 정말로 아프다고 생각했던 건지, 세 사람은 병원에 왜 가지 않는 거냐면서 아주 닦달을 했었다.

그에.

“글쎄요. 맛있는 점심을 먹으면 금방 나을 것 같군요.”

라고 했더니, 하태균이 저를 데리고 고깃집으로 향했다.

리아와 라이를 데리고 말이다.

‘농담을 농담으로 받아들이지 못할 줄 몰랐지.’

자신의 패착이었다.

어쨌거나 나화진의 말에 유승민은 입가에 웃음을 걸쳤다.

“그래서 저를 부른 이유는 그게 끝인가요?”

다소 날 선 질문이었지만 나화진은 개의치 않았다. 오히려 재미있다는 듯 입꼬리만 끌어올릴 뿐.

유승민은 그런 그에게서 대답이 들려오기를 기다렸다.

그렇게 잠깐의 침묵이 지난 후.

“자네에게 소개해주고 싶은 사람이 있네.”

나화진이 유승민을 부른 목적을 꺼내 들었다. 유승민은 아무것도 모르는 척 고개를 갸웃거렸다.

“저한테 소개해주고 싶은 사람이 있다고요?”

“그래.”

나화진이 고개를 끄덕인 후 자리에서 일어났다.

“유화.”

나지막하게 이름이 불리기 무섭게 고운 외모의 여성이 모습을 드러냈다.

“안녕하세요, 유승민 씨.”

곱슬기가 도는 머리칼을 귀 뒤로 넘기며 나긋하게 인사하는 모습은, 못 남성들의 마음을 훔치기 충분했다.

하지만 유승민에게는 아니었다.

눈앞의 여자는 ‘더 완즈 인 더 서울’을 무너뜨린 장본인이다.

자신의 아버지를 죽이고, 하나뿐인 여동생을 수년 간 잠들게 만들었던 원흉.

유승민이 주먹을 꽉 쥐었다.

‘참자.’

또한 숨겨야 한다.

분노를, 들끓는 감정을.

유승민이 거세게 뛰는 심장을 애써 모른 척하며 입을 열었다.

“지유화 씨……?”

“네, 맞아요.”

지유화가 예쁘장하게 눈웃음을 지으며 인사했다.

“처음 뵙겠습니다.”

* * *

“유승민 씨가 늦네요.”

유은영이 시계를 흘긋 쳐다보고는 구시렁거렸다.

그녀의 옆에서 업무를 처리하고 있던 지화자가 심드렁하게 입을 열었다.

“국장님이랑 할 이야기가 많나 보죠.”

“도대체 어떤 이야기를 나누는 중일까요?”

“글쎄요. 아무래도 청와대에서 파견 나온 직원이니까 이것저것 물어보지 않을까요?”

“예를 들면요?”

“불편한 건 없냐, 팀원들이 잘 대해주냐… 뭐 이런 거요. 그보다 팀장님.”

“네?”

“일하세요.”

지화자가 유은영을 향해 정리한 서류를 내밀었다. 유은영이 입술을 삐죽 내밀며 그것들을 받아 들었다.

“어째, 서류는 줄어들지가 않네요? 매일 처리하는 것 같은데.”

“매일 처리하는 만큼 새로운 일이 들어오니까요.”

그건 그랬다.

유은영이 책상에 가득 쌓인 서류에 한숨을 푹 내쉬었다.

“게이트만 터지지 않았으면 좋겠네요.”

“왜? 나는 게이트 터졌으면 좋겠는데!”

그림을 그리며 놀고 있던 리아가 쾌활하게 말했다.

“몬스터 친구들이랑 놀고 싶어!”

“몬스터 친구들은 너랑 놀고 싶지 않아 할 텐데?”

“아니거든! 유은영, 바보!”

리아가 빼액 소리 질렀다.

‘유은영’은 어깨를 으쓱거리고는 ‘지화자’의 걱정을 덜어줬다.

“게이트가 터진다거나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거예요. 연초의 일로 시스템 통제 관리 부서의 인원이 대폭 늘어났으니까요.”

“그래도 혹시 모르잖아요.”

지유화의 장난질에 또 그런 일이 일어날지 말이다.

“나참, 팀장님께서는 걱정을 사서 하시네요.”

“만약의 일은 몇 번이고 대비해도 부족하다는 말 몰라요?”

“네, 몰라요.”

얄밉다.

유은영이 와락 얼굴을 찌푸리며 지화자를 노려볼 때였다.

달칵, 문이 열렸다.

“늦어서 죄송합니다. 국장님을 좀 뵙고 오느라 그랬습니다.”

“오셨어요?”

유은영이 활짝 웃으며 제 오빠를 반겼다.

“나화진 국장님이랑은 무슨 이야기를 나누셨대요?”

“아아, 뭐.”

유승민이 멋쩍게 뺨을 긁적이고는 대답을 얼버무렸다.

“그냥, 센터에 적응을 잘하고 있는지 뭐 그런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정말요?”

그렇게 질문을 던진 사람은 지화자였다.

“네?”

묻는 목소리에 지화자가 굳은 표정으로 물었다.

“정말 그런 이야기만 나눴어요? 나화진 국장님이랑요?”

유승민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유은영 씨. 제가 많은 관심을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만 국장님과 나눈 이야기는 그게 끝이랍니다.”

지화자가 못미덥다는 눈으로 유승민을 쳐다봤다.

나화진이 고작 그런 이야기를 나누겠답시고 유승민을 불렀을 리가 없다.

말했듯, 그는 지유화의 든든한 조력자였고 그녀는 ‘유은영’을 노리는 중이었다.

당연히 나화진도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런데 ‘유은영’의 오빠인 유승민과 그런 시답잖은 이야기만 나눴다고?

‘거짓말하시네.’

지화자가 속으로 혀를 찼다.

아무래도 나화진과의 만남에서 켕기는 게 있어 저와 유은영에게 숨기기로 한 모양인데.

‘소용 없지.’

숨긴다고 될 일이 아니었다.

더욱이 그가 자신들에게 숨길 일이야 하나뿐이었다.

지화자가 유은영을 향해 뜻모를 시선을 보냈다. 하지만 유은영은 그 시선 속에 담긴 뜻을 알아차렸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유승민은 두 여자가 시선을 교환한 것을 알아차리지 못하고 자리에 앉았다.

그가 자리에 앉기 무섭게 하태균이 몸은 좀 괜찮냐고 물었다.

유승민은 웃는 낯으로 말했다.

“괜찮습니다.”

“정말입니까? 아아, 다행입니다. 맛있는 걸 드시면 나으실 것 같다더니 그 말대로였네요!”

“하하, 네, 뭐.”

어색하게 웃는 남자를 보던 유은영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유승민 씨, 잠깐 저 좀 보실까요?”

“네? 갑자기, 왜…….”

“할 이야기가 있어서요.”

‘지화자’가 싱긋 웃었다.

“생각해보니 제가 엄연히 유승민 씨의 상사인데, 그간 챙겨주지 못한 것 같더라고요.”

“아닙니다! 은, 아니. 지화자 팀장님께서는 그 존재만으로도 제게 굉장히 큰 힘이!”

“네, 무슨 말 하려는지 잘 알겠으니까 그쯤 하세요.”

유은영이 다급하게 유승민의 입을 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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