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52화
어떻게 하면 좋냐니?
아니, 그 전에.
“지유화 씨가 돌아왔다고요?”
그녀가 살아있을 거란 건 알았다. 듣고, 본 게 있으니 믿기지 않아도 그리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고 해도 저 반응은 마치.
“혹시, 지유화 씨 만나셨어요?”
유은영의 질문에 지화자는 묵묵부답이었다.
“일단, 앉아봐요.”
유은영이 지화자를 근처 벤치에 억지로 앉혔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그녀가 당장 쓰러질 것 같았기 때문이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묻고 싶은 것이 많았지만 유은영은 일단 참기로 했다. 지금은 지화자를 진정시키는 게 우선인 것 같았으니.
희게 질린 낯이 당장에라도 쓰러질 것처럼 보였다.
“자판기에서 커피 좀 뽑고 올게요. 뭐 드실래요?”
“괜찮아.”
지화자가 유은영의 손을 꼭 붙잡고는 고개를 저었다.
마치, 떠나지 말라는 듯 말이다.
“전혀 괜찮아 보이지 않아요.”
유은영이 그 손을 떼어내고는 걱정 가득한 얼굴을 보였다.
“지화자 씨, 지금 손 엄청 차가운 거 아세요?”
암만 겨울이라고 해도 그렇지, 동상에라도 걸린 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지화자의 손에는 온기가 하나도 없었다.
“잠시만 기다리세요.”
유은영은 기어코 자판기에서 커피를 뽑아 돌아왔다.
“자요.”
지화자의 손에 억지로 커피를 쥐어준 유은영이 한참 후에 물었다.
“진정 좀 되세요?”
지화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고마워, 언니.”
“뭘요.”
유은영이 어깨를 으쓱였다.
지화자는 커피를 홀짝거리며 속을 덥혔다.
그렇게 또 한참이 지난 후.
“안 물어봐?”
지화자가 입을 열었다.
느닷없는 질문에 유은영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뭐를요?”
“지유화에 대해서.”
“아아, 그거요?”
유은영이 별걸 다 물어본다는 듯한 태도로 말했다.
“지화자 씨께서 먼저 이야기해주시기를 기다리고 있는 중인데요?”
“뭐야, 그게.”
지화자가 픽 웃고는 나지막하게 목소리를 내뱉었다.
“나화진을 만났어.”
“국장님을요?”
“그래.”
지화자가 고개를 끄덕인 후 말을 이어나갔다.
“사실, 간간이 계속 만나고 있었어. 지유화 때문에.”
그러면서 지화자는 사과했다.
“미안. 숨기려던 건 아니었어. 그냥, 어느 정도 일을 해결한 후에 언니한테 말하려고 한 거야.”
“네네, 그러시겠죠.”
“정말인데.”
“믿어요.”
유은영이 담담하게 말했다.
“일이 해결되든 해결되지 않든 지화자 씨는 결국 저한테 모든 걸 말해줬으니까요.”
그러면서 유은영은 지화자를 향해 싱긋 웃어 보였다.
지화자가 입술을 달싹거리다 손을 들어 입가를 막았다. 제 표정을 드러내기 싫다는 듯 말이다.
“그래서 나화진 국장님과는 왜 만난 거예요? 지유화 씨 때문이라고는 하지만 이상하잖아요.”
지유화, 본인도 아닌 제3자가 그녀에 관한 일로 ‘유은영’을 계속 만났다니.
유은영의 지적에 지화자가 대답해줬다.
“그렇게 이상한 건 아니야. 내가 말했잖아? 나화진은 지유화를 엄청 아꼈다고.”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그리고 그 인간은 진작 알고 있던 모양이더라고.”
“뭐를요?”
“지유화가 살아있다는 것.”
지화자가 한쪽 눈가를 살짝 찡그리며 말을 이었다.
“나한테 접근한 건 지유화가 흥미를 보였기 때문이라고 했어. 그러니까 언니한테 말이지.”
유은영이 묵묵히 그녀의 이야기를 들어줬다. 지화자는 계속해서 목소리를 내뱉었다.
“처음에는 당연히 개소리라고 생각했어. 그야, 죽은 사람이 돌아오다니. 미친 소리잖아?”
유은영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미친 건 나였던 모양이더라고.”
지화자가 괴롭게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정말 지유화였어.”
제 손으로 직접 죽인 언니는 살아 있었다.
다른 세계로 차원 이동을 했다니 뭐니 그런 이야기는 중요하지 않았다.
지화자에게 중요한 건, 지유화가 살아 돌아왔다는 것.
“어떻게 하면 좋지?”
겁에 질린 듯 떨리는 목소리를 내뱉는 그녀의 물음에 유은영이 심드렁하게 대답했다.
“저한테 맡겨요.”
“뭐?”
“저한테 맡기라고요.”
유은영이 씨익 입꼬리를 올렸다.
“그러라고 저한테 도와달라고 한 거 아니에요?”
“내가 언제 도와달라고 했다고 그래?”
“저는 그렇게 들었어요.”
유은영이 빈 종이컵을 구겨 쓰레기통에 던져 버리고는 말했다.
“어떻게 하면 좋을지 모르겠으니까 제발 좀 도와 달라고.”
저는 그렇게 들렸어요.
나지막하게 덧붙이는 목소리에 지화자가 조용히 입을 다물었다.
“그나저나 지유화 씨의 목적은 뭐죠?”
“개벽(開闢).”
“네?”
유은영이 놀란 눈을 보였다.
개벽이라니?
“그건, 처음 게이트가 터졌던 날을 말하는 거 아니에요?”
“동시에 성언을 부여받은 각성자가 등장한 날이기도 하지.”
그러면서 지화자가 말했다.
“지유화는 새로운 시대가 열리기를 원하고 있어.”
“새로운 시대라니…….”
“키메라들 기억해?”
유은영이 표정을 굳혔다.
“네, 기억해요.”
잊을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살려 달라 울부짖는 듯, 괴물이 되어버린 아이를 제 손으로 죽인 날이었으니.
“갑자기 그 이야기는 왜 꺼내는 거예요?”
“그거, 지유화 때문에 벌어진 일이니까.”
“뭐라고요?!”
유은영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소리 질러 물었다.
“거짓말이죠?!”
“거짓말 아니야.”
지화자가 얼굴을 쓸어내리고는 입을 열었다.
“지유화의 목적은 비각성자의 완전 소멸.”
즉.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인류가 각성자와 똑같은 힘을 가지는 거야.”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청천벽력같은 소리를 내뱉으며 지화자가 말했다.
“키메라는 그걸 위한 실험이었더라고.”
“그런……!”
유은영이 믿기지 않는다는 듯 입술을 달싹였다.
잠깐! 지화자는 지유화만 만난 게 아니었지 않나?
“나화진 국장님도 아세요? 키메라들에 관해서요!”
그녀는 분명 말했다.
나화진이 저를 이곳으로 불렀던 거라고.
유은영의 다급한 물음에 지화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 고갯짓에 유은영은 그만 할 말을 잃었다.
센터의 최고 권위자와 센터에서 가장 선망받던 각성자가.
“어떻게 그런 끔찍한 짓을 벌일 수가 있어요?”
세상이 분노할 일을 행한 장본인이라니.
“그딴 실험은 스스로한테 할 것이지! 애초에 비각성자들의 완전 소멸이라니! 누가 그런 걸 원한다고 그래요?!”
그렇게 한참을 분노하던 유은영이 씩씩거리며 물었다.
“지유화, 지금 어디 있어요?”
“나도 몰라. 자기 할 말만 하고 가버렸으니까.”
“그 인간이 뭐라고 떠들어댔는데요?”
‘그 인간’이라니.
누구에게나 친절하고 상냥하며 다정한 유은영이 사람을 저렇게 칭하는 건 처음 보는 것 같았다.
“지화자 씨!”
어서 대답하라는 듯 소리 지르는 목소리에 지화자가 입을 열었다.
“그냥, 내가 언니한테 들려준 이야기를 쭉 늘어놓았지. 아, 그런 이야기도 했어.”
“무슨 이야기요?”
“내가 언니의…….”
지화자가 말을 하다 말고 입을 다물었다.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화자가 얼굴을 찌푸렸다.
“나화진이 그새 수작을 부리고 갔나봐.”
빌어먹을.
지화자가 나지막하게 욕을 내뱉고선 얼굴을 찌푸렸다.
“괜찮아요. 지화자 씨가 대충 무슨 말을 하려고 한 건지 알 것 같으니까요.”
“그래?”
“네.”
유은영이 입술을 삐죽였다.
“보나 마나 자기 힘이 되어달라 했겠죠. 아니에요?”
지화자가 입술을 오므렸다.
“어떻게 알았어?”
정답이었나 보다.
유은영이 코웃음을 치고는 재잘거렸다.
“지유화 씨께서 저한테 흥미를 가지고 있었다면서요?”
그래서 나화진이 계속 접근했다면서 지화자는 말했었다.
“흥미를 보이는 이유는 당연히 제가 가진 힘 때문일 거고.”
지화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저는 지화자 씨가 엄청 드물게 아끼는 사람이죠.”
“나 딱히 언니 안 아끼는데?”
“쓰읍!”
잘 가는데 찬물을 끼얹는다.
유은영이 조용히 하라는 제스쳐를 취한 후 계속 말을 이어갔다.
“어쨌든, 개벽이니 뭐니 지유화가 원하는 걸 얻는 데 있어 가장 큰 방해물은 저일 거 아니에요?”
정확히는, 지화자.
“그러니까 지유화 씨께서는 어떻게든 저를 처리하려 하겠죠.”
“그렇겠지.”
지유화라면 분명 그럴 거다.
“그 전에 몸이 원래대로 돌아갔으면 좋겠는데.”
“꼭 그럴 필요 있나요?”
유은영이 방긋 웃었다.
“지화자 씨는 지화자 씨대로, 저는 저대로. 각자의 자리에서 함께 지유화 씨를 막아봐요.”
지화자가 멍하니 두 눈을 끔뻑이다가 픽 웃었다.
“말이 쉽지.”
“그래서 대답은요?”
“좋아.”
지화자가 그렇게 대답하며 유은영에게 손을 내밀었다.
“대신, 우리 약속 하나 하자.”
“무슨 약속이요?”
“지유화가 몸을 차지한 것 같으면 망설임 없이 공격하기로.”
그 말에 유은영이 살짝 입술을 벌렸다.
“싫어?”
“당연히 싫죠!”
하지만.
“지유화 씨를 몰아내는 방법이 그 수밖에 없다면 해야죠.”
유은영이 지화자가 내민 손을 덥석 잡았다.
“고마워요, 지화자 씨.”
“뭐가?”
“도와달라고 솔직하게 말해주셔서요.”
지화자의 두 눈에 이채가 서렸다. 곧, 그녀는 잡고 있던 손을 내팽개치듯 놓고는 구시렁거렸다.
“그러니까 도와달라고 말한 적 없다니까.”
“네네, 그렇다고 해줄게요.”
유은영이 짓궂게 말하고는 하늘을 쳐다봤다.
별이 촘촘하게 박혀있는 것이, 도저히 서울 밤하늘이라고는 생각되지 않았다.
그런 하늘을 바라보며 유은영은 생각에 잠겼다.
지화자가 어떻게 지유화를 죽이게 됐는지, 두 사람 사이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모른다.
하지만 유은영은 알았다.
지유화는 절대로 깨끗한 사람이 아니란 것을.
자신의 목적을 위해 아이들을 괴물로 만든 그녀가 깨끗한 사람일 리가 없었다.
‘지유화…….’
밤하늘을 보던 유은영의 두 눈이 낮게 가라앉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