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46화
20. 추후의 일
카페에 가자고 하더니, 지화자가 유은영을 데리고 간 곳은 그녀만 알고 있는 비밀 장소였다.
“생각해보니 카페에서 이야기하기에는 너무 시끄러울 것 같아서.”
그런 이유 때문이었다.
“먼저, 사과할게.”
“네?”
“일부러 그런 건 아니다.”
그렇게 말한 지화자가 머리를 벅벅 긁고는 말을 정정했다.
“솔직하게 말하면 일부러 그런 거야. 정정할게.”
유은영이 멍하니 그녀를 쳐다봤다. 그 시선에 지화자가 얼굴을 찌푸렸다.
“왜 그렇게 봐? 나름대로 솔직하게 털어놓고 있는 건데, 무슨 불만이라도 있어?”
“아니요, 그런 건 없는데…….”
유은영이 멋쩍게 뺨을 긁고는 말했다.
“그냥 놀라워서요. 지화자 씨께서 그렇게 솔직하게 나오실 줄은 몰랐거든요.”
“그래?”
“네, 당장 이렇게 몸이 바뀌기 전에 저랑 이야기하는 거 피했었잖아요.”
지화자가 입술을 삐죽였다.
“피한 적 없어.”
“그러시겠죠.”
“지금 비아냥거리는 거야?”
“설마요!”
유은영이 황급히 두 손을 내젓고는 웃었다.
“고마워요, 지화자 씨.”
그 말에 지화자가 픽 웃었다.
“화 낼 줄 알았더니.”
“솔직히 지화자 씨께서 가하성 씨랑 실종되기 전까지 엄청 화났었어요.”
하지만 그러고서 며칠이 지났다.
있던 화가 식어버리기에는 충분한 시간이었다.
“지금은 무사히 돌아오셔서 다행이라는 생각뿐이네요.”
“그거 다행이네. 앞으로 곤란한 일이 생기면 종종 이런 짓을 벌여야겠어.”
“끔찍한 소리 하지마세요!”
유은영이 미간을 좁혔다.
“다음에도 이런 일이 생기면 저 진짜 화낼 거예요.”
“그래, 알겠어.”
지화자가 능글맞게 웃었다.
유은영이 그런 그녀를 물끄러미 쳐다보다 그녀도 모르게 질문을 던졌다.
“지화자 씨께서는 무섭지 않으셨나요?”
“뭐가?”
“사람을 해치는 일이요.”
지화자의 입이 다물어졌다.
그녀는 잠시 고민하는 듯 아래턱을 어루만지고는 입을 열었다.
“무서웠어.”
지금은 아니란 소리다.
지화자가 유은영을 보며 미소를 그렸다.
“언니, 이곳에 있으면 다양한 사람을 엄청 많이 만나. 그리고 그들 중에는 당연히 쓰레기도 무척 많지.”
자고로 쓰레기는 쓰레기통에 버리는 게 상책.
하지만 사람은 그럴 수가 없었다.
그러니 어쩌랴?
“한 명씩 처리하다보니 무뎌지더라고.”
지화자가 싱긋 웃었다. 그녀와는 다르게 유은영의 표정은 한없이 어두워졌다.
“언니.”
유은영의 어깨 위로 손을 얹은 지화자가 다정하게 말했다.
“언니 손에 피를 묻히는 일은 이제 일어나지 않을 거야.”
“지화자 씨께서 대신 피를 묻혀 주실 테니까요?”
“응.”
유은영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저는 힘같은 거 필요 없어요. 지금도 충분하다고요.”
“언니는 내가 힘을 위해 이러고 있는 것 같아?”
“아니에요?”
“처음에는 그랬지.”
지화자가 어깨를 으쓱였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야.”
유은영의 등급이 올라갔다는 사실이 상부에 알려지지 않았더라면 계속 그랬을 거다.
A급 힐러도 귀한 마당에, 유은영은 마음만 먹으면 S급 힐러가 될 수 있었으니까.
그렇게 된 후에 상부에 알려지는 건 별 상관이 없었다.
하지만 S급 힐러가 되기도 전에 ‘유은영’의 등급이 올랐다는 사실이 상부에 알려지게 됐다.
‘그때는 어쩔 수 없었지만.’
어쨌든 간에 그 일로 지유화가 유은영에게 눈독을 들이게 되어 버렸다.
단순히 ‘유은영’이 ‘지화자’와 친밀한 관계라 그녀에게 관심을 가지고 있는 건 아닐 터.
더욱이 이번 일로 아예 그녀와의 만남이 성사되어 버리지 않았나?
“언니.”
지화가 나지막하게 목소리를 내뱉었다.
“나는 무슨 일이 있어도 언니의 몸을 지킬 거야.”
이제 그걸 위해 지화자는 손에 피를 묻히게 됐다. 유은영이 구겨진 얼굴로 그녀를 쳐다보다 입을 열었다.
“제 몸은 제가 지켜요.”
“그러시겠지.”
지화자가 픽 웃었다.
유은영이 못마땅한 기색이 역력한 얼굴로 그녀를 쳐다보다 휙 몸을 돌렸다.
“어디가?”
“가하성 씨 보러요. 이야기 다 끝났잖아요.”
지화자가 놀란 눈을 보였다.
“잔소리 안 해?”
“네, 안 해요.”
유은영이 우뚝 멈춰서서는 지화자를 향해 말했다.
“지금 잔소리 안 해도 조만간 할 수 있을 것 같아서요.”
“뭐를? 잔소리를?”
“그럼 뭐겠어요?”
유은영이 퉁명하게 쏘아 붙이곤 다시 걸음을 옮겼다.
지화자는 목언저리를 긁적이고는 그녀의 뒤를 따라 천천히 다리를 움직였다.
* * *
한국 종합 병원에 도착한 유은영과 지화자는 곧장 가하성의 병실을 찾아갔다.
“가하성 씨, 저희 왔어요.”
“팀장님.”
병상에 누워있던 가하성이 비척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유은영이 그럴 필요 없다는 제스쳐를 취한 후 물었다.
“몸은 좀 어떠세요?”
“보다시피 괜찮아요.”
전혀 그렇게 보이지 않았다.
“꼴이 말이 아니네요.”
“유은영 씨!”
유은영이 지화자를 나무란 후, 웃는 낯으로 말했다.
“지후는 걱정하지 말아요. 아무 이상 없이 잘 자고 있으니까요.”
“정말요?”
“네, 깨어나면 바로 데리고 올게요.”
가하성의 얼굴이 환해졌다. 곧 어두워졌지마는.
“가하성 씨?”
“…다른 애들은 어떻게 됐나요?”
유은영이 입술을 달싹거리다 고개 숙였다.
그녀를 대신해 지화자가 말했다.
“현재 센터에서 보관 중이에요. 가하성 씨께서 원하신다면 사체를 인도할 수 있도록 조치를 취해보도록 할게요.”
가하성이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괜찮아요.”
“정말요?”
지화자가 고개를 비스듬히 기울이며 입을 열었다.
“후회할 짓은 하지 않는 게 좋아요, 가하성 씨.”
“후회 안 해요.”
가하성이 일그러진 얼굴로 미소를 그렸다.
“키메라의 사체는 함부로 반출될 수 없잖아요.”
가하성이 처음으로 아이들을 ‘키메라’라고 불렀다.
그가 금방에라도 울듯한 얼굴로 억지로 입꼬리를 끌어 올리며 말했다.
“지후만이라도 구한 게 어디에요? 감사해요, 유은영 씨.”
유은영도 지화자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피곤하네요. 이만 잘게요. 기껏 병문안 와주셨는데 죄송합니다.”
“아니에요. 그럼, 쉬세요.”
유은영이 지화자를 데리고 병실을 나왔다.
“가하성 씨, 아무래도 충격을 많이 받은 것 같죠?”
“그런 것 같지는 않던데?”
복도에 아무도 없음을 확인한 지화자가 말을 편하게 놓았다.
“설령 그렇다고 해도 가하성은 금방 회복할 거야.”
“그렇겠죠?”
유은영이 음울하게 물었다.
키메라 중 하나를 두 손으로 직접 처리 처리한 입장이다. 마음이 불편할 수밖에 없었다.
지화자가 그녀를 흘긋거리고는 말했다.
“언니 잘못 아니야.”
“알아요.”
그렇지만 마음이 불편한 건 어쩔 도리가 없는 일이었다.
그녀는 지화자처럼 남을 해치는 일에 익숙해지지 않았으니까.
‘아마 평생 익숙해지지 않겠지.’
유은영이 얼굴을 일그러뜨릴 때, 휴대폰이 울리기 시작했다.
그녀가 황급히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지화자 팀장님, 조수현입니다.
“아, 네.”
―김지후 군이 깨어나서 연락드립니다. 아무래도 알려드려야할 것 같아서요.
유은영이 화들짝 놀라 물었다.
“그게 정말이에요? 네, 네! 지금 당장 갈게요!”
전화를 끊자마자 지화자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왜 그래?”
“지후가 깨어났대요!”
“지후?”
“뭘 모르는 척 묻고 있어요! 어서 가요!”
유은영이 황급히 지화자를 잡고 내달렸다.
“언니! 병원에서는 뛰면 안 돼!”
“아, 맞다.”
출입구가 보이기 직전에야 그녀가 눈치를 보며 잰걸음으로 움직였다.
그렇게 도착한 센터는 난리였다.
“으아아아앙!”
김지후는 울고 있었고.
“지화자 팀장님, 오셨습니까?”
“조, 조수현 팀장님?”
조수현은 엉망이었다.
고양이가 할퀴기라도 한 듯, 뺨에 상처가 가득 나있는 건 물론이고 머리도 잔뜩 해집어져있었다.
“무슨 일이에요?”
“그게 말입니다…….”
조수현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
“아무래도 키메라였던 때의 일을 모두 기억하고 있는 모양입니다. 그 힘도 일부 남아있는 것 같고요. 리아와 라이의 상태와 비슷해졌다고 생각하시면 되겠습니다.”
“그런!”
유은영이 황급히 아이가 있는 방 안으로 들어갔다.
“지후야!”
“싫어!!”
김지후가 유은영을 향해 탁자를 집어 던졌다. 일곱 살 아이가 도저히 낼 수 없는 힘이었다.
유은영은 아이가 집어던진 것을 가볍게 잡고는 말했다.
“지후야, 착하지?”
“으아아앙!”
아이의 울음이 커져갔다.
“지화자 팀장님, 잠시만요.”
그때, ‘유은영’이 나섰다.
유은영이 그녀가 방에 들어오는 걸 만류하려고 했찌만 이미 늦은 때였다.
“김지후.”
지화자가 아이의 이름을 나지막하게 부르고는 입을 열었다.
“나 기억나지?”
김지후가 훌쩍이다가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누, 누나.”
김지후는 키메라였을 적의 일을 모두 기억하고 있다.
그 말은, 즉.
“그래, 너를 구해준 누나야.”
‘유은영’이 그를 구해줬던 일도 기억한다는 뜻.
김지후가 두 눈에 눈물을 그렁그렁 매달며 지화자를 향해 뛰어가 안겼다.
“누나아!”
유은영이 떨떠름한 표정으로 그 모습을 쳐다봤다.
‘내가 구해준 건데.’
괜히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