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44화
“처분이라니요?”
유은영의 날선 목소리에 조수현이 말했다.
“일단 나가서 이야기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그의 시선은 리아와 라이를 향해 있었다.
유은영이 고개를 끄덕였다.
지화자도 알겠다면서 함께 사무실을 나섰다. 그렇게 밖으로 나오자마자 조수현이 입을 열었다.
“이름, 김지후. 나이는 여섯 살입니다.”
조수현이 김지후에 대한 브리핑을 시작했다.
“천사 고아원에서 한 달 전, 박신애와 구준성이라는 부부에게 두 아이와 함께 입양됐습니다. 부부는 불임이었고요.”
유은영이 표정을 굳혔다.
김지후와 함께 입양됐다는 두 아이의 최후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입양 후 고아원에 매일 연락을 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보름 전부터 연락이 끊겼고.”
“이상을 느낀 고아원 원장이 가하성에게 조사를 부탁했죠.”
지화자가 조수현의 말을 끊으며 입을 열었다.
“맞나요?”
“네? 네, 그렇습니다.”
조수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참고로 부부 중 구준성 씨는 현장 조사 중 사망한 채로 발견됐습니다.”
“그렇겠죠.”
지화자가 비딱하게 입꼬리를 끌어 올렸다.
퀸 하르퓌아와 만나기 전, 이미 그의 시체를 발견했던 그녀다.
비아냥거리는 목소리에 조수현이 눈가를 살짝 찡그렸다.
어쨌거나 그는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키메라를 탄생시킨 건 박신애로 확인됐습니다. 젊을 적, 최 박사의 조수로 일한 경험이 있더군요.”
“그래서요?”
유은영이 물었다.
“박신애인지 뭔지 하는 사람에겐 관심 없어요. 제가 구한.”
잠시 말을 멈춘 그녀가 입술을 짓씹으며 말했다.
“지후를 왜 처분한다는지에 대해 어서 말해주기나 하시죠.”
“그게…….”
조수현이 작게 숨을 내쉬었다.
“나화진 국장님 명령입니다. 그 아이가 암만 인간으로 돌아왔다고 해도 키메라였던 성질을 버릴 수 있는지 의문이라고 하십니다.”
“그래서 처분하자는 건가요?”
유은영이 이를 드러냈다.
“고작 그런 이유 때문에요?”
“진정하세요.”
지화자가 그녀의 어깨를 잡았다.
“조수현 팀장님, 지후는 깨어났나요?”
“아직 깨어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나화진 국장님께서는 그렇게 말씀하신 거군요? 키메라의 본능을 버렸는지 버리지 않았는지 확인 되지도 않았는데.”
조수현이 입을 다물었다. 죄지은 사람마냥 고개도 숙였다.
유은영은 그한테서 고개를 돌려버렸다.
조수현에게 아무 잘못도 없다는 걸 안다. 잘못이 있는 사람은 나화진이었다.
아이가 위협이 될지, 되지 않을지 결론 나지도 않았는데 처분하라는 그가 제일 문제였다.
‘그렇다고 해도…….’
유은영이 주먹을 꽉 쥐고는 입을 열었다.
“나화진 국장님께서는 지금 어디 계시죠?”
“현재 사건이 벌어졌던 현장에 나가 계십니다. 아무래도 5년 만에 키메라가 다시 등장한 거라 신경이 많이 쓰이신 모양입니다.”
지화자가 소리 없이 웃었다.
‘나화진이 키메라를 신경 써?’
정말이지 웃기는 소리였다.
그는 5년 전, ‘키메라’라는 존재가 세상 밖에 나왔을 때도 콧방귀만 끼던 인간이었다.
“자네가 알아서 처리하도록 하게. 그 정도는 할 수 있으니까 유화를 대신해서 있는 거겠지.”
라고 말하면서 말이다.
우종문이 뒤를 봐주지 않았더라면 꽤 고생했을 터. 새삼스레 지화자는 그의 부재를 느꼈다.
‘애초에 우종문 부장이 멀쩡했다면 김지후를 처분하자는 이야기도 나오지 않겠지만.’
지화자가 속으로 짧게 혀를 찰 때, 유은영이 말했다.
“지후의 처분에 대해 나화진 국장님과 직접 이야기를 나눠보도록 하겠습니다.”
“지화자 팀장님.”
조수현이 타이르려는 듯 그녀를 조심스럽게 불렀다.
유은영은 고개를 저었다.
“지후를 그렇게 처분할 수 없습니다. 더욱이 아이한테서 키메라의 본능이 사라졌다면요?”
그럼, 정말로 개죽음이 되는 거였다. 유은영은 자신이 기껏 구한 아이가 그런 식의 죽음을 맞이하는 걸 절대로 지켜볼 수 없었다.
제 입으로 아이를 처분해라. 그렇게 말할 수는 더더욱 없는 유은영이었다.
“조수현 팀장님은 걱정마시고 그만 일 보러 가세요. 지후의 일은 제가 알아서 처리하겠습니다.”
유은영이 그렇게 말한 후 걸음을 옮기려는 찰나.
“잠시만요.”
지화자가 그녀를 붙잡았다.
“차라리 제가 나화진 국장님과 이야기를 나누고 오겠습니다.”
“유은영 씨.”
유은영이 나지막하게 목소리를 내었다.
“이건 제 일입니다.”
“아니요.”
지화자가 단호하게 말했다.
“제가 구한 아이잖아요.”
김지후를 구한 건 ‘유은영’이었다. 그러니 지화자는 옳은 말을 한 거다.
하지만 유은영은 사납게 얼굴을 찌푸렸다.
지화자에게 이 일을 맡기고 싶지 않았다. 터무니없는 고집이라고 해도 말이다.
하지만.
“팀장님, 지후를 구하고 싶다면 저한테 맡겨주세요.”
이어진 지화자의 말에 유은영은 결국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싫다면서 고개를 내저었다가는 정말 터무니없는 고집을 부리는 게 될 테니.
“나화진 국장님과 이야기 잘 끝낸 후, 지후도 보고 올게요. 겸사겸사 가하성 씨도요.”
지화자가 유은영을 달래려는 듯 다정하게 목소리를 내었다.
유은영은 조용히 말했다.
“부탁할게요.”
“알겠습니다.”
지화자가 자신만 믿으라는 듯 싱긋 웃었다.
“그럼, 지금 바로 다녀오도록 하겠습니다.”
그녀는 그대로 유은영을 향해 고개를 꾸벅거린 후 걸음을 돌렸다.
조수현에게 인사는 없었다.
유은영은 지화자가 사라질 때까지 그녀를 물끄러미 쳐다보다 입을 열었다.
“조수현 팀장님, 박신애는 지금 어디에 있습니까?”
지화자가 ‘유은영’으로서 이 일을 처리하러 든다면, 자신은 ‘지화자’로서 이 일을 처리해야한다.
‘지화자’의 질문에 조수현이 대답했다.
“현재 지하에 구금 중입니다. 2팀의 나혜선 팀장님께서 조사 중에 있고요.”
“그렇군요.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유은영이 그렇게 말한 후 걸음을 돌렸다.
사무실이 아닌 지하로 말이다.
“저, 지화자 팀장님.”
조수현이 그녀를 붙잡고서 조심스럽게 사과했다.
“죄송합니다.”
“조수현 팀장님께서 죄송할 일이 뭐가 있나요?”
유은영이 옅게 미소를 그렸다.
“오히려 제가 더 죄송합니다. 못난 모습을 보여드린 것 같네요.”
그녀는 그 말을 남겨두고서 그대로 지하로 가버렸다.
그렇기에 보지 못했다.
‘지화자’의 사과에 두 눈에 이채가 서린 조수현의 모습을 말이다.
***
“으아악! 아아아악!”
지하에 들어서자마자 날카로운 비명이 들려왔다.
유은영이 걸음을 멈췄다.
저 비명이 누구의 입에서 튀어나오고 있는 건지 알아차렸기 때문이었다.
옛날 같았으면 두 귀를 틀어막고 벌벌 떨었겠지만 지금은 아니다.
유은영은 한없이 어두워진 얼굴로 다시 다리를 움직였다. 지하 안쪽으로 들어가자 쇳소리와 같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죄, 죄송해요. 죄송합니다. 제가 잘못했어요. 정말로 죄송합니다.”
조금 전, 비명을 지르던 여자가 내뱉는 말이었다. 그리고 그 여자는 다름 아닌 박신애였다.
불과 몇 시간 전만 하더라도 고개를 빳빳하게 들고서 자신을 향해 입을 놀리던 그녀다.
하지만 지금은 엉망진창이 되어 침을 뚝뚝 흘리고 있었다. 넋이라도 나간 모습이었다.
그렇게 박신애의 꼴을 구경하고 있는데 나혜선이 놀라 ‘지화자’를 반겼다.
“어머, 지화자 팀장이 여기는 무슨 일이야?”
“잘 되어가나 궁금해서.”
나혜선이 픽 웃었다.
“보다시피 잘 돼가고 있지. 곧 입 열거야. 그런 실험을 왜 진행하게 됐는지, 몬스터를 어디에서 얻었는지 말이야.”
그렇게 보였다.
“그보다 귀찮게 됐겠네?”
놀리듯 묻는 목소리에 유은영이 고개를 살짝 기울었다.
무슨 소리를 하는 건지 잘 모르겠다는 듯이 말이다.
그에 나혜선이 키득거렸다.
“이런 놈들 다 쓸어버린 줄 알고 있었을 것 아니야?”
“아니. 최 박사가 잡힐 때부터 예상했던 일이야. 몸을 숨기고 있던 또라이가 그 자식 하나만 있는 건 아니었을 테니까.”
물론, 유은영은 이런 일을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그저 ‘지화자’라면 이렇게 말할 것 같아서 재주껏 말을 지어냈을 뿐이다.
유은영이 박신애를 물끄러미 쳐다보다 입을 열었다.
“나머지는 내가 하고 싶은데.”
“지화자 팀장이 직접 심문을 하겠다고?”
“심문이 아닌 조사.”
“아참, 그렇지.”
나혜선이 까르르 웃고는 말했다.
“마음대로 해. 지화자 팀장이 조사를 도와준다면야 나야 좋지. 그런데 무슨 심경의 변화래?”
“뭐가.”
“그야, 지 팀장은 이런 식으로 나서는 거 엄청 싫어하잖아.”
그랬었구나.
유은영은 지화자에 대해 몰랐던 것을 하나 알게 됐다면서 속으로 중얼거린 후 말했다.
“이 사람한테 진 빚이 많거든.”
유은영이 박신애 앞으로 다가가서는 입꼬리를 끌어 올렸다.
“그렇지?”
“으… 으으…….”
박신애가 겁에 질린 눈으로 벌벌 떨었다. 그런 그녀를 보며 유은영이 나지막하게 속삭였다.
“기대해요.”
흠칫, 박신애의 몸이 떨렸다.
유은영은 사시나무처럼 떨고 있는 어깨를 한 손으로 세게 끌어쥐며 말했다.
“아이들이 받았던 고통, 그대로 돌려줄 테니까.”
‘지화자’는 그 말을 끝으로 곧장 힘을 사용했다.
우종문이 언제인가 최 박사에게 사용했던 그 힘을 그대로 꺼내어 박신애에게 사용한 것이다.
곧, 박신애의 입에서 차라리 죽여달라는 울부짖음이 튀어나오기 시작했다.
그러나 유은영은 멈추지 않았다.
“아직이야.”
조사는 뒷전이었다.
“이 정도로 죽여달라고 빌면 안 되죠.”
죽여줄 생각도 없지만.
‘지화자’가 서글프게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입매를 비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