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40화
‘지화자 씨가 그랬던 것처럼 허벅지에 상처를 내면 몸이 바뀌지 않을까?’
허벅지는 혈관이 많이 지나가는 곳이었다.
‘하지만 어떻게 상처를 내지?’
그때와는 다르게 총도 없고 칼도 없었다. 더욱이 그것을 구한다고 해도 상처를 내는 게 문제였다.
‘하지만, 상처야 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서 내면 되지 않나?’
유은영이 그런 생각을 할 때.
“유은영 씨?”
누군가 그녀를 불렀다.
“아, 조수현 팀장님.”
유은영이 어색하게 그에게 인사했다.
“어디 나갔다 오셨나 보네요?”
“네, 지화자 팀장님께서 계실만한 곳을 찾아보고 돌아오는 길입니다.”
“그래서 지화자 팀장님은요?”
“찾지 못했습니다.”
“그렇군요.”
유은영이 어깨를 축 늘어뜨렸다.
“괜찮을 겁니다.”
“네?”
“지화자 팀장님 말입니다.”
조수현이 담담하게 말을 이어나갔다.
“그 분이 엄한 사람한테 쉽게 당할 분도 아니고, 분명 어딘가에서 일을 처리 중인 거겠죠.”
“네, 분명 그런 거겠죠.”
유은영이 싱긋 웃었다.
“걱정해주셔서 감사해요.”
“아닙니다. 그럼, 저는 이만.”
“네, 들어가세요.”
조수현이 고개를 살짝 꾸벅인 후 센터 안으로 들어가버렸다.
유은영은 그가 사라지기를 기다렸다가 두 손을 들어 얼굴을 덮어버렸다.
“진짜 무슨 생각을 한거야?”
조수현이 나타나지 않았더라면, 정말 총이든 칼이든 구해 허벅지를 찔렀을 거다.
유은영이 벤치에 몸을 기대었다.
“나도 정말 많이 변했네.”
하루하루 몸 성하게 정년 퇴직하기만을 기다렸던 자신이 이렇게 무서운 생각을 하게 될 줄이야.
“이게 다 지화자 씨 때문이야.”
유은영이 입술을 씰룩일 때였다.
“유은영아!”
“은영 누님!”
리아와 라이가 다급하게 그녀를 불렀다.
“리아 씨? 라이 씨? 무슨 일이에요? 설마 제가 걱정돼서 찾으러 나오신 거예요?”
분명 유승민한테 팀원들한테 잘 설명해달라고 했었는데?
‘망할 오랑우탄이 말하는 걸 까먹은 건 아니겠지?’
유은영이 고개를 갸웃거리던 그때, 라이와 리아가 잔뜩 들뜬 얼굴로 말했다.
“영웅 형이랑 호걸 형이 지화자 누님 찾으셨대요!”
“진짜 찾은 건 아니고, 어디에 있는지 알 것 같대!”
유은영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사무실을 향해 달렸다.
“유은영아, 같이 가!”
“은영 누님!”
아이들은 까맣게 잊고서 말이다.
***
쿠구궁!
바닥이 무너지며 몬스터가 매몰됐다. 지화자가 아래로 추락한 것들을 쳐다보며 불꽃을 피어냈다.
―키아아아!
―키에엑!
몬스터들이 불꽃에 타들어가며 비명을 질러댔다.
듣기 끔찍한 소리일테도 지화자는 눈 하나 깜빡하지 않았다.
함찬동안 아래를 쳐다보던 그녀가 몬스터들의 비명이 수그러든 후에 입을 열었다.
“끝났어.”
“그렇군요…….”
가하성이 꿀꺽 침을 삼켰다.
지화자가 강한 거야 진작 알고 있었던 그였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 무자비하게 몬스터들을 학살하는 모습이라니.
‘옛날로 돌아간 것 같으시네.’
굉장히 오랜만에 보는 모습이었다.
그야, 그녀는 되도않는 상냥함을 장착하면서 몬스터를 최대한 깔끔하게 죽이는 것을 선호하게 됐으니까 말이다.
그가 떠올리고 있는 ‘지화자’의 몸에 유은영이 들어있었던 것을, 가하성은 알 수가 없었다.
“뭐해?”
“네?”
“안 갈 거야?”
지화자가 몸을 돌렸다. 가하성이 황급히 그녀의 곁에 따라붙으며 물었다.
“길, 아시나요?”
“몰라.”
“아하.”
가 아니라.
“모르신다고요?”
너무 당당하게 앞으로 쭉쭉 걸어 나가서 당연히 길을 알고있을 줄 알았다.
지화자가 고개를 끄였다.
“그래. 너는 알아?”
“아니요, 저도 몰라요.”
알 리가 없었다.
애초에 행방이 묘연해진 아이들을 찾고자 온 곳이었다.
그런데 보기좋게 잡혀버렸으니.
지화자가 벅벅 머리를 긁고는 입을 열었다.
“일단, 앞으로 계속 가보자. 이 지랄을 떨었는데도 그 미친 부부가 안 보이는 걸 보니 꽤 깊은 곳에 갇혀 있었나봐.”
“도대체 이곳은 어떻게 되먹은 공간일까요?”
“그거야 나도 모르지.”
지화자가 주변의 인기척을 느끼며 구시렁거렸다.
“이게 무슨 고생이야.”
가하성이 조용히 입을 다물었다.
이 모든 일이 자신 때문에 일어난 것임을 잘 알았기 때문이다.
지화자가 부쩍 말이 없어진 그를 흘긋거리고는 짜증 가득한 얼굴을 보였다.
‘왜 저렇게 기가 죽은 거야? 한 마디 할 것이지.’
괜히 신경 쓰인다.
지화자는 불편한 감정을 모른척 무시할까 하다가 입을 열었다.
“야, 가하성.”
“네?”
하지만 그녀는 황급히 가하성의 입을 막아버렸다.
“?!”
가하성이 갑자기 왜 이러냐는 듯 그녀를 쳐다봤다.
“쉿.”
지화자가 목소리를 낮추곤 주의를 줬다. 가까이에서 인기척이 들려왔기 때문이었다.
―그… 그으…….
쇠를 긁는듯한 목소리가 가까이 다가오고 있었다. 지화자가 가하성과 함께 모습을 감췄다.
두 사람은 불쾌한 소음을 내는 몬스터가 사라지기를 기다린 후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조금 전에 그거, 그리프아니에요?”
“맞아.”
그리프(Greif).
독수리의 머리에 사자의 몸을 한 몬스터는 뿔을 달고 있는 것이 특징적이었다.
지화자가 미간을 좁혔다.
“아무래도 저 몬스터를 이용해 키메라들을 만들어낸 것 같은데 말이야.”
머리에 달린 뿔이 그 증거였다.
가하성이 표정을 굳혔다.
지화자가 굳게 굳은 얼굴을 보곤 가볍게 그의 이마를 때렸다.
“갑자기 뭐예요?”
“괜한 생각하지 말라고. 더욱이, 너. 무기도 뺏겼잖아?”
지화자의 말대로 가하성은 지금 빈 손이었다.
가하성이 얼굴을 찌푸렸다.
“총을 뺏기기는 했지만, 다른 걸 무기로 사용하면 되거든요?”
“그러시겠지.”
지화자가 어깨를 으쓱인 후 다시 움직였다.
“그리프, 안 잡아요?”
그리프는 무시무시한 생김새와는 다르게 B급의 몬스터였다.
지화자가 혼자서 충분히 잡을 수 있는 몬스터란 말이었다.
하지만 지화자는 말했다.
“응, 안 잡아.”
“왜요?”
“귀찮으니까.”
가하성이 미간을 좁혔다.
“마음에 안 들면 네가 처리해. 내 무기 빌려줄 테니까.”
“됐어요.”
가하성이 입술을 씰룩였다.
지화자라면 분명 그리프를 상대하지 않는 다른 이유가 있을 터.
“계속 가요.”
가하성이 지화자보다 앞서 걸어나갔다.
지화자가 픽 웃었다.
“이제 정신 좀 차렸나봐?”
“저는 언제나 제정신었습니다.”
“웃기시네.”
지화자가 가하성을 한껏 비웃을 때였다.
비릿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가하성.”
“네, 팀장님.”
가하성이 제자리에 멈춰섰다.
그 역시 코를 찌르는 피냄새를 맡았기 때문이었다.
‘지후의 피냄새인가?’
어디 다치기라도 한 걸까?
걱정이 되었지만 가하성은 고개를 내저었다.
“가하성, 네 마음 모르는 거 아니야.”
“그럼!”
“하지만 인정해야지. 그 아이들은 더는 네가 알고있는 아이들이 아니야.”
지화자의 말대로 이제는 정말로 인정해야할 때였다.
‘지후야…….’
가하성이 입술을 꾹 깨물었다. 지화자는 피냄새가 나는 곳을 향해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그러다 보고 말았다.
“윽.”
들짐승한테 뜯어먹힌 듯한 시체를 말이다.
부부 중 남자의 것이었다.
“그렇게 난리를 쳤는데 오지않는 이유가 있었구나?”
죽었는데 올 수 있었을 리가 없었다.
지화자가 짧게 혀를 차고는 주변을 살폈다. 남자의 옆에 문이 열려 있는 거대한 새장이 보였다.
‘새장?’
그녀가 고개를 갸웃거릴 때, 시체를 살피고 있던 가하성이 심각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도대체 누가 이런 걸까요?”
“글쎄.”
지화자가 어깨를 으쓱였다.
키메라들이 남자를 죽였을 리는 없었다. 그들은 자신을 탄생시킨 존재를 부모처럼 따랐으니까.
“몬스터들한테 당한 것 같은데.”
“도대체 어떤 몬스터한테요?”
지금까지 만난 몬스터들은 모두 입가가 깨끗했다. 남자를 물어뜯거나 그런 녀석들이 존재하지 않았다는 말이다.
“그거야 나도 모르지.”
지화자가 어깨를 으쓱거렸다가 휙 몸을 돌렸다.
“팀장님?”
“찾았어.”
“네?”
“저 새끼를 맛있게 물어뜯은 녀석을 찾았다고.”
어둠 속에서 두 눈을 빛내고 있는 거대한 새가 보였다.
“퀸 하르퓌아라니.”
S급 몬스터가 등장했다.
지화자가 비딱하게 입꼬리를 끌어 올리며 가볍게 봉을 쥐었다.
“저 몬스터가 어떻게 이곳에 있는 걸까?”
비행종이라 잡기도 쉽지 않은 놈인데 말이다.
지화자가 입매를 비틀었다.
***
쿠구구궁!
“으악!”
금방에라도 무너질 듯 흔들리는 건물에 유은영이 비명을 질렀다.
“우와, 지진인가?”
“그건 아닌 것 같은데? 그보다 유은영 씨, 괜찮으세요? 그러게 왜 따라오신다고 해서.”
“걱정되니까 따라왔겠지.”
영웅호걸의 대화에 유은영이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며 어색하게 웃었다.
그때였다.
“여기, 아래로 향하는 문이 있습니다.”
유은영과 영웅호걸과 함께 빈 주택을 탐색하고 있던 조수현이 그들을 불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