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F급 힐러가 랭킹 1위가 되어 버렸다-132화 (132/200)

제132화

“은영아, 괜찮아?”

“오빠.”

유은영이 떨리는 목소리를 내뱉었다.

“오빠는 알고 있었어?”

“뭘?”

유승민이 걱정스럽게 물었다.

유은영은 입술을 달싹거리다 이내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아무것도.”

아무래도 유승민은 자신의 힘에 대해 모르는 것 같았다. 그게 아니라면 연기를 하는 거겠지.

유은영이 관자놀이 부근을 꾹꾹 누르고는 입을 열었다.

“움직이자.”

“뭐?”

“위를 봐.”

유승민이 고개를 들었다.

정우영의 공격으로 금이 가있는 천장이 보였다.

“곧 무너질 거야.”

“…그럴 것 같네. 하지만, 은영아. 어디로 가려고?”

“지화자 씨한테.”

“지화자 팀장님이 어디에 있는 줄 알고!”

맞는 말이었다.

유은영도 유승민도 지화자가 어디로 갔는지 모른다.

하지만 유은영은 말했다.

“찾을 수 있어.”

왜인지 모르겠지만 그런 자신감이 들었다.

자신은 분명 지화자를 찾아낼 거라고.

“가자, 오빠.”

유은영이 걸음을 옮겼다.

그런 그녀를 유승민이 황급히 붙잡았다.

“너, 다리는.”

“아.”

유은영이 얼빠진 소리를 냈다.

정우영과의 전투로 다리에 신경을 쓰지 못했다. 아니, 비단 그 이유 때문만은 아니었다.

-Name: 유은영(劉隱映)

-Birth: 20X1. 12. 26

-Local: 82_대한민국

-Rank: C급

-Number: unknown

C급.

헛것을 본 거였다면 좋으련만, 자신은 정말 C급 힐러가 되었다.

유은영이 허벅지에 난 상처에 힐을 시전했다. 아무리 힐을 사용해도 겨우 지혈만 했었는데 이번에는 달랐다.

고통이 수그러든 거다.

‘상처도 조금 아문 것 같네.’

유은영은 허벅지뿐만 아니라 몸에 난 자잘한 상처도 치료했다.

“됐어.”

“됐기는 뭐가 됐어?! 너 지금 네 꼴이 어떤지 몰라?”

“몰라.”

유은영이 담담하게 말했다.

“선택해, 오빠.”

나랑 갈 건지, 아님. 여기서 게이트가 공략되기를 기다릴 건지.

“전자야? 후자야?”

유승민이 선택할 답은 하나뿐이었다. 그는 결국 유은영의 말을 따라 움직이기로 했다.

남매는 계속 걸었다.

곳곳에 전투의 흔적이 있는 것으로 보아 지화자는 이쪽으로 간 듯했다.

유승민이 주위를 두리번거리는 동생에게 말했다.

“맞게 가고 있어.”

“미래라도 봤어?”

“응.”

유승민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쪽으로 계속 가면 지화자 팀장님을 만날 수 있을 거야. 상황이 그렇게 좋아 보이지는 않지만.”

그가 본 미래에서 지화자는 피를 철철 흘리고 있었다. 자신들을 향해 경악한 표정을 지으면서 말이다.

“뭐, 미래는 가변적인 거니까 크게 신경 쓸 필요 없어.”

평소라면 암만 그래도 그런 말은 하지 말라면서 쏘아붙였을 동생이었다.

그러나 유은영은 조용했다.

‘정우영 팀장님을 죽인 게 많이 충격적이었나 보네.’

유승민이 한숨을 내쉬었다.

동생의 손에 피를 묻게 하다니. 오빠 실격이었다.

그때였다.

“오빠.”

“응?”

유은영이 갑작스럽게 유승민을 불렀다.

“미래는 오빠가 원할 때 언제든 볼 수 있는 거야?”

“그건 아니야.”

유승민이 대답했다.

“미래는 갑작스럽게 보여.”

“그럼, 과거는?”

“과거도 마찬가지야. 시간에 대한 건 내가 원할 때 볼 수 있는 게 아니라서.”

“그렇구나?”

유은영이 살짝 실망한 기색을 내비치며 입을 열었다.

“알겠어. 계속 가자.”

유승민이 앞서 나아가는 유은영의 뒷모습을 물끄러미 쳐다보다 말했다.

“은영아, 네 잘못 아니야.”

정우영을 죽인 일에 대해서 말하는 거였다. 유은영이 걸음을 멈췄다가 다시 움직이며 목소리를 내뱉었다.

“알아.”

그건, 유승민의 말대로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정우영을 죽이지 않았다면 자신이 죽었을 테니까.

‘어쩌면 오빠가 죽었을 거야.’

그러니 그의 죽음은 쉽게 묻을 수 있었다.

하지만 정우영의 죽음으로 힘을 얻은 건 다른 문제였다.

남을 해치면서 얻은 힘이라니.

유은영이 주먹을 꽉 쥐었다.

‘싫어.’

정말 싫었다.

지화자는 자신을 D급까지 올리면서 도대체 얼마나 많은 피를 묻혀온 걸까?

유은영이 주먹쥔 손을 펼쳤다.

‘지화자 씨가 알려줄까?’

그녀라면 알려줄 거다.

아무렇지도 않게 말해 주겠지. 그러면서 또한 말할 거다.

언니가 놀랄까봐 입 다물고 있었다고.

유은영이 실소를 흘렸다.

쿠구궁―!

굉음이 들려온 건 그때였다.

그 소리에 흠칫 놀란 것도 잠시, 유은영이 내달리기 시작했다.

“은영아!”

유승민이 황급히 그녀를 쫓았다.

“멈춰, 은영아! 그러다 상처가 덧나면 어떻게 하려고 그래!”

“그런 걱정할 때야?!”

저 앞에 지화자가 있다.

“은영아! 유은영!”

유은영은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를 무시하고서 계속해서 달렸다.

* * *

“흐아아악!”

정우영의 팀원, 김민우가 비명을 질렀다. 그는 할 수만 있다면 당장 이곳을 벗어나고 싶었다.

그야, 이곳은 지옥이었으니까.

콰과과광!

커다란 폭발음과 함께 하늘에서 돌무더기가 우수수 떨어져내렸다.

“으악! 악! 아아악!”

김민우가 비명을 지르며 혼신의 힘을 다해 그것들을 피했다.

“지, 지화자 팀장님! 제발, 진정! 네?! 진정 좀 해주세요!!”

지화자는 지금 핵을 지키고 있는 몬스터와 전투 중이었다.

그럼에도 정우영은 빌었다.

제발, 살살 싸워달라고.

가능할 리가 없는데도 말이다.

하지만 고래 싸움에 새우등 터진다고 하지 않는가?

김민우는 이러다 싸움의 여파에 휘둘러 세상 하직할 것만 같았다.

“지화자 팀장님!”

“시끄러!”

지화자가 소리 질렀다.

그녀는 몬스터가 흘린 피로 붉게 적셔져 있었다.

지화자가 씩씩거렸다.

“나도 이렇게까지 하고 싶지 않아! 하지만 저 망할 몬스터 새끼가 죽지를 않잖아!”

불사신이라도 되는 건지, 핵을 지키는 몬스터는 죽지 않았다.

심장을 찌르고 머리를 베는 등.

온갖 수단을 다 도용했음에도 몬스터는 멀쩡했다.

“저거 도대체 뭐야!”

지화자가 분노 섞인 고함을 터트렸다.

핵을 지키는 몬스터는 ‘웃지 않는 도자기 인형(B급)’과 마찬가지로 A-Index에 기록된 적이 없는 신규 몬스터였다.

어쨌거나 지화자의 분노에 김민우가 겁을 먹은 얼굴로 대답했다.

“글레시스 옥토요!”

지화자가 상대 중인 몬스터에 대해 가르쳐준 거다.

“누가 그걸 몰라?!”

몬스터에 대한 정보는 진작 확인했던 지화자였다.

“저거 어떻게해야 죽냐고!”

글레시스 옥토.

여덟 개의 다리를 지닌 몬스터는 문어와 비슷한 생김새였다. 다만, 글레시스 옥토는 눈이 없었다.

그런데도 어떻게 보고 있는건지, 정확하게 지화자를 향해 여덟 개의 다리를 휘둘렀다.

지화자가 빨판이 달려있는 것들을 피하며 바닥을 굴렀다.

촤좌좌좍!

지화자를 놓친 글레시스 옥토의 다리가 애꿎은 바닥을 파헤쳤다.

“으아아악!”

김민우가 자신을 향해 쏟아지는 흙무더기를 가까스로 피하며 펄쩍 뛰었다.

“지화자 팀장님! 어떻게 좀 해주세요!”

“시끄러! 도와줄 생각 없으면 구석에 얌전히 찌그러져 있어!”

김민우는 처음부터 구석에 찌그러져 있었다. 전투가 격해지면서 구석에 박혀있던 보람이 없어졌을 뿐.

김민우가 억울해하며 코를 훌쩍거렸다.

지화자는 신경질적으로 앞머리를 쓸어 올렸다.

베어낸 머리는 다시 재생되었다. 여덟 개의 다리 역시 몇 번이고 잘랐어도 재생됐다.

‘정신계 공격을 경계했건만.’

글레시스 옥토는 걱정과는 다르게 단 한 번도 그런 공격을 하지 않았다.

‘숨기고 있는 건가?’

그럴 가능성이 높았다.

‘그렇다면.’

글레시스 옥토가 본격적으로 제 힘을 드러내보이기 전에 처치해야 한다.

―국가 넘버, 82.

전남 순천시 비례골길 24에 생성된 게이트 공략 중입니다.

Type: 타임 브레이커.

Lank: S급.

Time Limit: 240분

현재 공략 진행 178분째입니다―

1시간도 채 남지 않은 상황.

“야.”

지화자가 나지막하게 김민우를 불렀다.

“피해있어.”

김민우가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지화자와 글레시스 옥토간의 전투로 입구라 할 수 있는 곳들은 모두 돌무더기에 막혀버렸다.

한정된 공간 속.

“어디로 피하는 거예요?”

김민우가 물었다.

지화자가 봉을 휘둘러 잡고서는 말했다.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 알아서 피해 있어.”

그 말과 함께 지화자의 주위로 불꽃이 피어 올랐다.

화르륵.

점점 거세기는 불길에 김민우가 화들짝 놀라 피할 곳을 찾았다.

그러거나 말거나 지화자는 글레시스 옥토의 앞으로 성큼성큼 다리를 움직였다.

“야.”

이번에 부른 건 김민우가 아니라 글레시스 옥토.

지화자가 비딱하게 웃었다.

“통구이로 만들어줄게.”

타앗!

지화자가 땅을 박찼다.

그와 동시에 몬스터가 가지고 있는 여덟 개의 다리가 그녀를 향해 쇄도했다.

그녀는 멈추지 않았다.

저를 향해 쇄도하는 것들을 베어내며 글레시스 옥토의 앞에 도달했을 뿐.

놀라기라도 한건지, 글레시스 옥토가 움찔거렸다. 그 움직임에 지화자가 씨익 입꼬리를 올리며 봉을 휘둘렀다.

화르륵!

거센 불길이 몬스터를 덮쳤다.

글레시스 옥토가 고통에 몸부림치기 시작했다.

쿵! 쿠궁!

여덟 개의 다리가 벽면에 부딪치며 크게 흠을 냈다. 그러든 말든 관심 없었다.

그녀의 관심은 오직 하나.

“보자, 핵이 어디 있나?”

게이트의 핵이었다.

다행히도 지화자는 글레시스 옥토가 지키고 있던 핵을 금방 발견할 수 있었다.

“찾았다.”

지화자가 빠르게 움직였다.

남겨두고 온 유은영이 걱정됐기 때문이었다.

‘이제 저것만 파괴하면!’

끝이다.

라고 생각한 순간.

―……!

글레시스 옥토가 소리없이 비명을 내지르며 눈을 떴다.

수십, 수백 개의 눈을.

지화자가 그것들 중 하나와 눈이 마주친 순간.

“지화자 씨!!!”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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