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31화
지화자는 얼어붙었다.
“이게 무슨 소리죠?”
“나도 몰라.”
하지만 심상치 않은 일이 벌어진 건 분명했다.
정우영의 팀원이 물었다.
“정말… 저쪽으로 가도 괜찮은 건가요……?”
“나도 모른다고!”
지화자가 버럭 소리 질렀다.
정우영의 팀원은 울상이 되었다.
랭킹 1위를 만나 이제 살겠거니 했더니만 아무래도 일이 잘못된 것 같다.
정우영의 팀원은 잔뜩 겁에 질린 얼굴로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지화자가 가라고 했던 곳으로 말이다.
“어디가?”
“저쪽으로 가라고 했잖아요.”
그래서 가는 것뿐인데, 왜 붙잡는 걸까?
정우영의 팀원이 지화자를 쳐다봤다. 그 시선에 지화자가 사납게 머리를 헤집고는 입을 열었다.
“이름.”
“네?”
“네 이름 뭐냐고.”
“아! 김민우입니다!”
“좋아, 김민우 씨.”
지화자가 김민우가 가던 방향과 반대로 걸음을 옮겼다.
“지금부터 정신 바짝 차리고 나를 따라오도록 해.”
“어…….”
김민우가 우물쭈물거렸다.
“저쪽에 팀원들이 있다고 하지 않았나요?”
“그랬지.”
“걱정되지 않으세요?”
“걱정돼.”
김민우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걱정되면 팀원들의 안위를 확인하러 가야하지 않는가?
‘역시 소문대로 피도 눈물도 없는 사람이구나!’
김민우가 멋대로 생각했다.
사실 지화자는 지금도 고민 중이었다.
유은영과 유승민이 있는 곳에서 들려온 소리를 무시하고 게이트의 핵을 부수러 갈 것인가, 아니면.
‘두 사람이 무사한지 확인하러 갈 것인가.’
고민의 결과는 전자였다.
지화자가 A-Index를 확인했다.
―국가 넘버, 82.
전남 순천시 비례골길 24에 생성된 게이트 공략 중입니다.
Type: 타임 브레이커.
Lank: S급.
Time Limit: 240분
현재 공략 진행 104분째입니다―
아직 시간은 충분히 남았다.
그러니까 유은영과 유승민의 안전을 확인한 후 게이트의 핵을 찾으러 나서도 충분하다는 소리.
하지만 지화자는 게이트의 핵을 부수는 데 집중하기로 했다.
믿었기 때문이다.
유승민을 믿는 건 아니었다.
지화자가 믿는 사람은 유은영이었다.
‘언니.’
그녀라면 분명 난관을 헤쳐나갈 수 있을 것이리라.
지화자가 무기를 쥔 손에 힘을 줬다.
쿠구구궁!
다시 두 사람이 있는 쪽에서 굉음이 들려왔다.
“히이익!”
김민우가 소스라치게 놀라며 지화자의 뒤에 바짝 붙었다.
“저, 정말 괜찮나요?”
“그래.”
지화자가 봉을 꽉 쥐었다.
“내 팀원-원, 아니.”
잠시 말을 멈췄던 그녀가 다시 말을 이었다.
“팀원들은 강하거든.”
타앗!
그 말과 함께 지화자가 땅을 박찼다.
“지, 지화자 팀장님!”
순간 지화자를 놓친 김민우가 황급히 그녀를 뒤쫓기 시작했다.
쿠구구궁!
굉음은 계속됐다.
***
“은영아, 어떻게 하지?”
유은영은 대답하지 않았다. 할 수가 없었다.
“우… 우윽…….”
지화자가 피어 낸 불꽃 바깥에서 정우영이 괴상한 소리를 내는 중이었기 때문이다.
소리만 내고 있다면 몰라, 그는 유은영과 유승민을 공격하기까지 했다.
다행히도 지화자의 불꽃이 그 공격을 막아냈지만 말이다.
문제는 주변.
정우영의 공격에 주변이 파괴되고 말았다.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상황.
유은영이 고개를 들었다.
천장에 여러 갈래로 금이 간 게 보였다.
“오빠.”
“응?”
“정우영 팀장님이 왜 저러는지 알 수 있어?”
“으음.”
유승민이 두 눈을 가늘게 뜨고서 정우영을 쳐다봤다.
“아무래도 우리가 상대한 몬스터에 당한 모양인데?”
“그 마트료시카 인형한테?”
“응, 그런 것 같아.”
유승민이 말을 이었다.
“아무래도 환각에 사로잡혀서 이성을 잃은 것 같은데…….”
유승민이 목소리의 끝을 흐리고선 유은영에게 물었다.
“어떻게 할까?”
“어떻게 하기는.”
유은영이 총을 들었다.
“우리도 그 몬스터한테 당했었잖아. 그때 어떻게 정신을 차렸는지 몰라?”
외부의 자극.
정신이 번쩍 들 정도의 고통에 환상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유은영이 크게 숨을 내쉰 후.
철컥.
탄창을 갈았다.
“은영아, 내가 할게.”
“아니.”
유은영이 정우영을 향해 총구를 들었다.
“내가 할 거야.”
유승민은 그런 동생을 보고서 몇 번 입술을 달싹이다가 포기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유은영은 숨을 멈췄고, 방아쇠를 당겼다.
아니, 그러려고 했다.
“내가…! 내가 최고야……!”
정우영이 갑작스럽게 움직이지만 않았다면 그랬을 거다.
유은영과 유승민을 향해 정우영이 몸을 날렸다. 지화자의 불꽃 따위 아랑곳하지 않고서 말이다.
“은영아!”
“꺅!”
유승민이 유은영을 밀쳐냈다.
흙바닥을 여러 차례 구른 유은영이 벌떡 몸을 일으켰다.
“오빠!”
정우영이 유승민의 목을 조르려 하고 있었다. 유은영이 황급히 총을 찾았다.
정우영의 근처에 떨어져 있는 총이 보였다.
‘어떻게 하지?’
총을 잡으려 하는 순간 정우영의 목표는 바로 자신이 되리라.
‘어떻게 하면 좋지?’
유은영이 파들파들 떨었다.
“은영아, 도망쳐!”
유승민이 소리친 건 그때였다.
그의 목소리는 유은영의 정신을 일깨웠다.
그녀는 움직였다.
“유은영!”
정우영의 근처에 떨어져 있는 총을 붙잡고자 말이다.
유승민의 목을 조르려던 정우영이 그녀를 발견하고서 입을 크게 벌렸다.
“나아…! 나를……!”
발음이 잔뜩 뭉개진 말을 내뱉으며 그가 발을 들었다.
“우습게 보지마아아악!!”
정우영이 괴성을 내지르며 유은영을 걷어찼다.
“은영아!”
정우영의 발길질에 멀리 날아간 유은영은 정신을 잃은 것처럼 보였다.
“은영아! 유은영!!”
유승민이 애타게 동생을 불렀지만 그녀는 미동도 하지 않았다.
“이 빌어먹을 자식이!”
유승민이 이를 악물고서 정우영을 밀어내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도리어 우습다는 듯 유승민을 향해 히죽거리며 그의 목을 붙잡고자 힘을 줬다.
“크윽……!”
결국 유승민이 밀려나고 말았다.
“컥!”
목을 억세게 잡는 손에 유승민이 버둥거렸다.
당장에라도 의식의 끈을 놓을 것 같았다.
‘안 되는데.’
자신이 죽으면 다음 타킷은 분명 유은영일 터.
‘안 돼……!’
유승민이 제 목을 조르고 있는 손에 있는 힘껏 저항했다. 그럴수록 의식은 빠르게 멀어져만 갔고.
‘아.’
끝내 몸에서 힘이 빠져나가고 말았다. 그렇게 유승민이 저항을 멈추는 순간.
타앙―!
총성이 울렸다.
“아… 아아……?”
정우영이 얼빠진 소리를 내며 유승민의 목을 조르던 손에서 힘을 뺐다.
그와 동시에 유승민이 격하게 기침을 토해냈다.
“쿨럭, 쿨럭!”
갑작스럽게 맞이한 공기가 괴로웠다. 유승민이 눈가에 맺힌 눈물을 닦아내고선 고개를 들었다.
정우영을 향해 총구를 들고 있는 동생이 보였다.
“은영아!”
유승민이 다급하게 그녀를 외치는 것과 함께 정우영이 몸을 일으켰다.
“나, 나를…….”
어깨가 붉게 적셔진 정우영이 쿵, 쿵! 유은영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네까짓 게에… 나르을……!!”
“은영아, 피해!!”
유은영은 피하지 않았다.
대 몬스터용 특수 총을 정우영을 향해 겨눌 뿐.
“죽어버려어!!”
정우영이 악을 내지르며 유은영을 향해 손을 뻗었고.
탕―!
유은영은 방아쇠를 당겼다.
정우영이 유은영의 코앞에서 멈춰섰다.
“아… 아아……?”
그의 심장 부근이 붉게 적셔지기 시작했다.
“아아…….”
쿠웅!
정우영이 힘없이 쓰러졌다. 그의 주위를 피가 붉게 적셨다.
유은영이 털썩 주저앉았다.
정우영을 향해 총을 쏠 때와는 다르게 온몸이 주체 없이 떨리고 있었다.
“은영아.”
“오, 오빠.”
유은영이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내가, 사람을.”
그녀가 손을 들고선 흐느꼈다.
“내가 사람을 죽였어.”
“괜찮아. 괜찮아, 은영아.”
유승민이 유은영을 품에 안고선 토닥였다.
“정우영 팀장님을 죽이지 않았으면 우리 둘 다 죽었을 거야.”
그래, 그랬을 거다.
하지만 그 말은 전혀 유은영을 안심시키지 못했다.
오히려 죄책감만 증폭시켰다.
정우영을 죽이지 않고 그를 막을 다른 방법은 정말 없었을까?
‘아니, 애초에 나랑 오빠가 정말 정우영 팀장님의 손에 죽었을까?’
머릿속을 어지럽히는 생각에 유은영이 입술을 꽉 깨물 때.
[성언(聖言)의 효과로 고유 특성 ‘안녕(安寧)’과 보조 특성 ‘힐(Heal)’의 능력치가 100% 향상되었습니다.]
[A-Index가 각성자 ‘유은영’의 변화를 감지합니다.]
그녀의 앞으로 푸른 시스템 창이 떴다.
-Name: 유은영(劉隱映)
-Birth: 20X1. 12. 26
-Local: 82_대한민국
-Rank: C급
-Number: unknown
D급에서 C급으로 등급이 한 단계 더 올랐다.
‘…상처 주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라.’
유은영은 그제야 자신의 성언이 가진 진정한 힘을 깨달았다.
더불어 지금까지 어떤 식으로 등급이 올랐는지도.
‘지화자 씨……!’
꽉 깨문 입술에 살짝 핏방울이 맺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