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20화
“저 사람이 진짜!”
유은영이 황급히 지화자에게 전화를 걸었다. 하지만 그녀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유은영 씨……!”
유은영이 자신의 이름을 부르며 머리를 쥐어 잡을 때였다.
“지화자 팀장님!”
조수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유은영이 표정을 갈무리 하고는 물었다.
“무슨 일입니까?”
조수현과는 정말 간만에 보는 거였다. 조수현이 굳은 얼굴로 입을 열었다.
“우종문 부장님의 일로 급하게 회의가 잡혔습니다. 국장님께서 지금 오고 계시다고 합니다.”
“그렇군요.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유은영이 가볍게 감사 인사하고는 걸음을 돌렸다.
“저, 지화자 팀장님.”
그런 그녀를 조수현이 붙잡았다.
“죄송하지만, 우종문 부장님께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아십니까?”
“아니요, 모릅니다.”
유은영이 고개를 저었다.
“유은영 씨 말로는 우종문 부장님께서 옥상에서 추락하셨다고 하더군요. 지금 옥상은 다른 직원들이 확인 중이라고 하는데.”
“이상한 점은 발견되지 않았다고 합니다.”
조수현이 그녀의 말을 끊으며 입을 열었다.
“유은영 씨는 지금 어디 계십니까? 아무래도 유은영 씨도 회의에 참석해야할 것 같아서 말입니다.”
“유은영 씨는 왜…….”
“듣기로는 유은영 씨께서 우종문 부장님을 치료했다고 하더군요.”
그 순간 유은영은 떠올렸다.
지화자의 손에 묻혀있던 피를 말이다.
‘그러고보니 우종문 부장님을 칠했다고 하셨지!’
유은영이 골치 아프다는 듯 앞머리를 쓸어올렸다.
“유은영 씨는 잠시 외출했습니다.”
“외출이요?”
조수현이 놀라 물었다.
그는 마치 ‘이런 상황에서 외출이라니, 그분은 도대체’라고 말하는 것처럼 보였다.
유은영이 어색하게 웃었다.
“유승민 씨를 잠시 만나고 오겠다고 하네요.”
“유승민 씨라면.”
“유은영 씨의 오빠 되시는 분이세요.”
유은영이 황급히 조수현의 말을 끊었다. 그가 혹시라도 스캔들을 운운할까 싶어서였다.
“그렇군요. 그럼, 최대한 빠르게 돌아와달라고 말 좀 전해주실 수 있겠습니까?”
아무래도 나화진 국장이 그녀를 부를 것 같다면서 조수현이 말을 덧붙였다.
“네, 그럴게요.”
유은영은 남몰래 한숨을 삼켰다.
지화자는 자신의 전화를 거부 중이었다. 애초에 받을 생각도 하지 않고 있을 거다.
지금쯤 지화자의 머릿속은 아주 엉망일 테니.
‘지유화.’
유은영이 그 이름을 떠올리며 조수현을 쳐다봤다.
지유화와 연인 사이였던 그.
그도 알고 있을까?
지유화가 살아있다는 것을…….
유은영이 황급히 고개를 저었다.
‘조수현 팀장님께서 알고 있었을 리가 없지.’
애초에 유승민이 잘못 본 걸 수도 있는 일이다.
‘그럴 확률은 낮겠지만.’
어쨌든 유은영은 조수현을 지나쳐 센터로 들어갔다.
센터는 아주 난리였다.
진작 출근을 했던 사람도 소란을 듣고 나온 모양인지 분위기가 아주 어수선했다.
“어? 저기 지화자다!”
“지화자 누님!”
유은영이 놀란 눈을 보였다.
“리아 씨, 라이 씨!”
“지화자야, 그게 정말이야?”
리아가 유은영에게 달려와서는 물었다.
“할아버지 죽었다는 거!”
“네?!”
유은영이 두 손을 내저었다.
“아니에요! 우종문 부장님 안 죽으셨어요!”
“정말?”
리아의 두 눈에는 눈물이 그렁그렁 맺혀 있었다. 유은영이 손수 그것을 닦아주며 말했다.
“네, 그러니까 걱정하실 필요 없어요.”
“다행이다아.”
리아가 크게 안도하며 훌쩍였다.
“밖에서 쿵 소리가 나서 무슨 일인가 했는데 오빠랑 언니들이 그러잖아! 사람이 떨어졌다고!”
“그런데 그 사람이 할아버지래요!”
언제 다가왔는지 모를 라이가 리아의 말을 뒤이었다.
“다들 할아버지가 떨어졌다고, 죽었다고 해서.”
“그래서 오빠랑 같이 나왔어!”
그렇지만 정작 우종문이 보이지 않아 걱정하고 있었다면서 리아가 말했다.
“할아버지 죽으면 안 돼. 나랑 오빠한테 얼마나 잘해줬는데!”
유은영이 리아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우종문 부장님께서는 멀쩡히 돌아오실 거예요. 그러니까 저희는 이만 사무실로 갈까요?”
“으응.”
“네에.”
리아와 라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유은영은 그렇게 아이들과 함께 사무실로 돌아왔다.
“지화자 팀장님!”
가하성이 그녀를 반겼다.
“이야기 들었습니다. 우종문 부장님께서는 괜찮으십니까?”
“괜찮은 것 같아요. 다행히도 유은영 씨가 근처에 계셔서 곧바로 치료를 시작했다고 하더라고요.”
“유은영 씨가요……?”
가하성이 멍하니 두 눈을 끔뻑였다. 폐급 힐러가 우종문을 치료했다니.
‘제대로 치료한 것 맞나?’
라는 의문이 들었지만 괜찮겠거니 했다.
그보다.
“유은영 씨는 어디 있습니까?”
“오빠한테 급한 일이 생겼다면서 잠시 외출하셨어요.”
“이 상황에서 말입니까?”
가하성이 놀라 물었다.
그는 우종문이 절대로 자살 따위 하지 않을 사람인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니 곧 센터에서 직원들을 상대로 조사가 시작될 터.
그런데 자리를 비웠다니!
“오빠분께 무슨 일이 생겼는지 모르겠지만 최대한 빨리 돌아오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하태균의 말에 유은영이 고개를 끄덕였다.
“안 그래도 계속 전화 중인데, 받지를 않으시네요.”
유은영이 한숨을 푹 내쉬고는 말했다.
“일단, 저는 곧 회의에 들어갈 것 같으니까 가하성 씨랑 하태균 시께서 유은영 씨께 연락을 해 주시겠어요?”
“네, 그럴게요.”
“알겠습니다.”
가하성과 하태균이 고개를 끄덕일 때였다.
“지화자 팀장님, 계십니까?”
국장의 비서가 그녀를 찾아왔다.
“국장님께서 찾으십니다. 가시죠.”
유은영이 눈가를 살짝 찡그렸다.
나화진이 어떤 힘을 가지고 있는지는 모른다. 하지만 이렇게 빨리 센터에 왔다니.
어쨌거나 그녀는 말했다.
“네, 알겠습니다.”
“유은영 씨도 함께 가셔야 합니다. 국장님께서 그분도 찾으시거든요.”
어디 계시죠?
묻는 목소리에 유은영이 말했다.
“유은영 씨는 잠시 일이 있어서 자리를 비웠습니다. 금방 돌아오실 겁니다.”
국장의 비서가 미간을 살포시 좁혔다.
하지만 상대는 ‘지화자’였다.
곧, 그녀는 고개를 끄덕인 후 유은영을 안내했다.
그렇게 도착한 곳.
“왔군.”
나화진이 그녀를 반겼다.
그리고 그 시간, 유은영은.
“무슨 일로 찾아오셨습니까?”
유승민이 있는 청와대에 도착한 참이었다.
***
게이트가 등장하기 전, 청와대는 쉽게 출입할 수 없는 곳이었다.
하지만 세계가 바뀌고 A-Index가 등장한 후에 청와대의 출입은 전보다 더 쉬워졌다.
게이트가 심심찮게 터지던 시절 청와대는 하루에 몇 번이고 각계 인사들과 회의를 해댔었다.
그 여파로 출입을 통제하는 문은 서서히 열리고 말았고 오늘에서는 완전 개방이 되었다.
VVIP의 안전을 생각하지 않는 건 아니었다.
VVIP 주변에는 언제나 뛰어난 각성자들이 함께였고 그의 안전을 지켰다.
그리고 그들 중에는 유승민이 있었다.
“유승민 씨.”
VVIP에게 우종문에 대한 보고를 올리고 쉬고 있던 유승민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무슨 일입니까?”
“동생 분이 찾아오셨습니다.”
“은영이가요?”
유승민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하지만 그는 곧 미간을 좁혔다.
자신을 찾아온 동생이 지화자란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센터의 우종문 부장님과 관련해서 이야기를 전해주러 왔다는데 어떻게 할까요?”
우종문이 센터의 옥상에서 투신했다는 이야기는 청와대 곳곳에 퍼져버렸다.
그와 관련해서 VVIP가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것도.
유승민이 비딱하게 입꼬리를 올렸다.
“후원으로 안내해주십시오. 금방 가겠습니다.”
“네.”
‘유은영’의 소식을 알린 이가 꾸벅 인사하고는 물러갔다.
유승민은 주섬주섬 재킷을 챙겨 입고는 청와대 내 후원으로 향했다.
귀빈 인사를 맞이하는 곳을 구경 중인 여자가 보였다.
“은영아.”
“편하게 부르지? 주변에 사람이라고는 없으니까.”
“그렇다면야.”
유승민이 어깨를 으쓱였다.
“무슨 일로 찾아오셨습니까, 지화자 팀장님?”
“유승민 씨가 그랬잖아. 자기 힘이 필요하게 될 거라고.”
“그럴 일 없을 거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글쎄, 그랬던가?”
지화자가 기억이 나지 않는다는 얼굴로 새초롬하게 말했다. 유승민은 어처구니가 없었다.
“우종문 부장님은 괜찮습니까?”
“몰라. 유승민 씨가 떠난 후 바로 온 거거든.”
“그래도 됩니까?”
“안 될 건 없지.”
지화자가 긴 다리를 움직여서는 유승민 앞에 섰다.
“지유화를 봤다면서? 우종문 부장의 몸 안에서. 제대로 본 것 맞겠지?”
“네, 제 눈이 워낙 좋아서요.”
유승민이 능글맞게 웃었다. 그에 지화자가 입매를 비틀었다.
“그렇다면 힘 좀 빌려줘.”
“네?”
“빌려준다고 했잖아.”
그녀가 유승민을 향해 예쁘장하게 웃었다.
‘유은영’의 얼굴로.
“지유화, 다시 죽여야 하거든.”
이번에는 제대로.
두 번 다시는 그 이름이 들리지 않게 말이다.
유승민이 놀라 물었다.
“진심입니까?”
“진심이야.”
지화자가 담담하게 말을 이었다.
“협력하는 게 좋을걸? 지유화의 목적이 누구겠어?”
유승민이 꿀꺽 침을 삼켰다.
지유화의 목적이야 어렵지 않게 알아차릴 수 있었다.
‘지화자.’
지유화가 노릴 사람은 그녀일 게 뻔했다.
하지만 지금 그 몸 안에는 지화자가 아닌 유은영이 들어가 있었다.
자신의 하나뿐인 동생.
어머니 다음으로 소중한 유은영이 말이다.
유승민이 양 손을 꽉 쥐었다.
“협력하도록 하죠. 제가 어떻게 도와드리면 되겠습니까?”
지화자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씨익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
“나와.”
“네?”
“청와대에서 나오라고.”
유승민이 멍하니 두 눈을 끔뻑거리며 생각했다.
‘내가 잘못 들은 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