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9화
“지금, 그 말씀은 누군가 인위적으로 A-Index에 접근해서 정보를 해킹한 거란 말입니까?”
“그렇습니다.”
기술 관리 부서의 부장이 조수현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조수현이 얼굴을 굳혔다.
다른 팀장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부장들의 낯빛도 그렇게 좋지 않았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A-Index의 정보를 해킹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실력자가, 게이트를 터지게끔 만들었단다.
“지화자 팀장님께서 빠르게 움직여주시지 않았더라면 큰 피해를 입었을 겁니다.”
“네, 그렇게 생각합니다.”
조수현의 말에 기술 관리 부서의 부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범인은 잡았나요?”
나혜선이 물었다.
“아직 찾고 있는 중입니다.”
그 말에 영웅호걸이 질문을 던졌다.
“국외에서 벌어진 일이면 어떻게 하죠?”
“A-Index는 전 세계가 공유하고 있는 시스템이잖아요.”
두 사람의 물음에 기술 관리 부서의 부장이 말했다.
“그렇기는 합니다만, 국외에서 이런 일을 벌였을 가능성은 적습니다.”
기술 관리 부서의 부장은 말했다.
“서울 강남구 도곡 1동에서 게이트가 열릴 거라는 것을 그 누구보다도 빠르게 알기 위해서는.”
“센터, 그것도 A-Index를 주로 관리하는 부서에 속해 있어야 되겠죠.”
기술 관리 부서의 말을 끊으며 의견을 낸 사람은 다름아닌 유은영이었다.
“아닌가요?”
묻는 말에 기술 관리 부서의 부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렇습니다.”
장내가 또 한 번 술러였다.
“우리 센터에 그런 미친 새끼가 있다니!”
쾅!
나혜선이 테이블을 두드리며 서난 목소리를 내뱉었다.
“범인을 특정할 수 있을만한 단서는 찾았겠지?”
기술 관리 부서의 부장이 입술을 우물거리다가 푹 고개 숙였다.
특정할만한 단서를 전혀 찾지 못했다는 뜻.
나화진이 쯧쯧 혀를 찼다.
그때 시스템 통제 부서의 부장이 입을 열었다.
“하지만 단서는 하나 있습니다. 지화자 팀장이 말한 것처럼, 센터 내의 사람이라는 것.”
그것도 시스템 통제 부서에 속해있을, 혹은.
속해 있었던 인간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면서 그가 말을 이었다.
“보통 게이트의 예상 정보가 뜨는 건 길게 잡아도 석 달이지요.”
기술 관리 부서의 부장의 말을 뒤이어 통제 관리 부서의 부장이 입을 열었다.
“그 기간에 맞춰 시스템 통제 부서에 입사 및 퇴사한 직원들을 정리 중입니다.”
“그렇군. 명단이 정리되면 바로 우종문 부장에게 넘기게.”
나화진이 말했다.
“이 건은 자네에게 맡겨도 되겠지? 우종문 부장.”
“네, 국장님”
우종문이 싱긋 웃었다.
“맡겨만 주십시오. 이런 사태를 야기한 범인을 꼭 잡아내겠습니다.”
“그래, 자네만 믿겠네.”
나화진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회의는 이것으로 마치도록 하지.”
그는 그대로 대회의실을 나갔다.
“아아, 참.”
가 돌아와서는 말했다.
“현장 파견 부서의 각 팀장들은 보고서 작성해서 내일 중으로, 아니지. 오늘 중으로 우종문에게 올리도록 하게.”
그럼, 이만.
나화진은 그 말을 끝으로 완전히 대회의실을 나가버렸다.
유은영이 멍하니 입을 벌렸다.
어느새 자정을 넘긴 시간.
그런데 오늘 중으로 오늘 일을, 아니. 어제의 일을 보고서로 작성해서 올리라고?
‘미치신 건가?’
유은영은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현장 파견 부서의 다른 팀장들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픽 웃었다.
“밤 새야겠네. 호걸, 내기해서 보고서빵 할래?”
“싫어.”
영웅호걸이 장난을 치듯 여유롭게 이야기를 나눴다.
그때 우종문이 말했다.
“자자, 다들 수고 많았네. 보고서는 너무 촉박하게 쓰지 말게나. 내 국장님께 따로 양해를 구해놓을테니까.”
“와아! 부장님 최고!”
“최고에요, 부장님!”
신영웅과 나혜선이 열렬하게 두 손을 흔들었다. 유은영도 속으로 열심히 ‘나이스!’를 외쳐댔다.
어쨌든 긴급 회의는 그렇게 끝이 났고.
“아, 지쳤어요.”
유은영은 새벽 1시가 되어서야 집에 돌아왔다.
라이와 리아는 진작 잠에 든 상태, 그녀를 반긴 사람은 지화자 뿐이었다.
곧장 소파에 널브러진 유은영을 지화자가 발로 찼다.
“씻고 누워.”
“잠시만 이러고 있으면 안 될까요? 너무 피곤한데.”
“응, 안 돼.”
지화자가 단호하게 말했다.
“냄새나니까 어서 씻고와.”
냄새 난다는 말에 유은영이 비척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차피 이거 지화자 씨 몸에서 나는 냄새인데.”
“쓰읍.”
잔 말말고 어서 씻고 오라는 소리에 유은영은 결국 욕실로 들어갔다.
씻는 게 그렇게 귀찮고 싫었는데, 따뜻한 물로 몸을 씻기니 피로가 싹 가시는 기분이었다.
그렇게 한참 후에야 욕실에서 나온 유은영은 대충 머리를 말린채 소파에 드러누웠다.
“아아, 아침해가 뜨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지화자가 고개르 갸웃거렸다.
“왜?”
“오늘 중으로 보고서 작성해서 올리래요.”
“부장이?”
“아니요, 국장님이요.”
지화자의 얼굴이 단번에 찌푸려졌다.
“그 꼰대 새끼가 그것 말고는 지랄 안하든?”
유은영이 지화자를 물끄러미 쳐다보며 말했다.
“했어요, 지랄.”
지화자가 두 눈을 동그랗게 뜨며 물었다.
“뭐라고?”
지금 유은영이 ‘지랄’이란 단어를 입 밖으로 내뱉은 건가?
잘못 들은 건가 하여 지화자가 다시금 물었다. 그에 유은영이 웃는 낯으로 말했다.
“국장님이 지랄 했다고요.”
지화자가 쩍 입을 벌렸다. 유은영은 그 모습에 키득거리면서 말을 이었다.
“저한테 지유화 씨 이야기를 꺼내는 거 있죠? 그것 때문에 분위기가 얼마나 싸해졌는지 몰라요!”
멍하니 두 누을 깜빡이고 있던 지화자가 픽 웃었다.
“그 인간 원래 그래.”
지화자는 말했다.
“국장 새끼가 지유화를 엄청나게 아꼈었거든. 그래서 한동안 좀 굴렀어.”
얼마나 구른 건지는 지화자가 말해주지 않아도 쉽게 유추가 가능했다.
“고생 좀 했겠네.”
지화자의 말에 유은영이 말했다.
“고생은 지화자 씨가 더 많이 한 것 같던데요?”
지화자는 어깨만 으쓱였다.
유은영이 그런 그녀를 물끄러미 쳐다 보다가 물었다.
“도대체 그런 개같은 상사들 밑에서 어떻게 버티신 거예요?”
“그 개같은 상사들에 우종문도 포함돼?”
“네.”
유은영이 불퉁하게 말했다.
“지화자 씨가 그랬잖아요! 우종문 부장님께서는 사람을 도구처럼 취급하는 분이라고요!”
“그랬지.”
“그 덕분에 매번 우종문 부장님을 다르게 보고 있다고요.”
안 좋은 쪽으로 말이다.
“어쨌든, 지화자 씨가 엄청 존경스러운 거 있죠?”
“내가 괜히 랭킹 1위가 아니지.”
“하여튼 겸손이란 게 없어요.”
지화자가 작게 웃었다.
“이 바닥에서는 겸손 떨어서 좋을 게 하나도 없어.”
특히나 나같은 사람은.
젓붙여 말하는 목소리에 유은영이 두 눈을 끔뻑였다.
“지화자 씨 같은 사람이 어떻다고 그래요?”
“나를 그렇게 보고도 모르겠어?”
“성격이 엄청 개차반이라는 건 알아요.”
“이 망할 언니가?”
지화자가 유은영의 이마에 딱밤을 때렸다.
“아야! 지화자 씨, 자꾸 자기 얼굴 때릴거예요?”
“응, 그럴 거야. 그리고 어차피 별로 아프지도 않잖아?”
“아프거든요?”
유은영이 우는 소리를 냈다.
그에 지화자가 키득거리며 웃고는 말했다.
“알겠으니까 이만 들어가서 자. 어제오늘 고생 많이 했잖아?”
“알아주셔서 다행이네요.”
고생이야 엄청 했지!
“액뗌 한 번 제대로 한 것 같아요. 올 한해 얼마나 줄 풀리려고 이러는 건지.”
“좋게 생각해.”
“안 그래도 긍정적인 마인드를 지니려고 하고 있어요.”
보고서를 생각하면 암담하지만 말이다.
“일단 잠 좀 자.”
“지화자 씨는요?”
“나도 곧 잘거야.”
그 말에 유은영이 몸을 일으켰다.
“알겠어요. 아침에 봐요.”
“응, 잘자.”
지화자의 인사에 유은영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방으로 들어갔다.
그녀는 곧장 침대 위에 몸을 눕혔다. 푹신푹신한 시트에 곧장 잠이 왔다.
“으음.”
힘들었던만큼 숙면해야지.
내일 또 출근해야하니까. 그리고 보고서 작성해야하니까.
유은영이 베개에 얼굴을 비볐다.
단잠에 빠져드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물론, 단잠에 빠져들었다고 해서 좋은 꿈을 꾸는 건 아니었다.
유은여은 얼마 지나지 않아 끙끙 앓기 시작했다.
“은영아! 달려!!”
와르르, 천장이 무너지는 것이 보인다.
더 완즈 인 더 서울.
무너지는 백화점 안에서 유은영은 누군가의 손을 잡고 달리고 있는 중이었다.
“은영아! 뒤 돌아보지말고 계속 달려! 앞만 보고 달리는 거야!”
자신의 손을 잡고 있는 사람은 바로 그녀의 아버지였다.
“달려!”
유은영은 엉엉 울며 달렸다.
무너지는 건물에 사람들이 깔리며 비명을 질렀다.
나도 저렇게 되는 건 아닐까?
죽음이 성큼 가까워진 느낌에 심장이 거세게 뛰었다.
“괜찮아, 은영아!”
그녀를 진정시켜준 건 다름아닌 아버지.
“안으로 들어가!”
그는 유은영을 화장실 안으로 밀어 넣고는 그대로 무너지는 파편에 깔렸다.
“아빠!”
유은영이 절규하며 벌떡 몸을 일으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