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5화
유은영은 그대로 지화자와 함께 우종문을 만나러 갔다.
“마녀에 대한 건 내가 설명할 거야. 언니는 얌전히 있어.”
“그래도 돼요?”
“응. 부장한테 미리 이야기해둔 게 있으니까 그래도 괜찮아.”
그렇다니, 뭐.
유은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나머지는요?”
“보고서 외웠지?”
“대충은요.”
지화자가 한쪽 눈썹을 꿈틀거렸다. 유은영의 대답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 그런 건 아니었고 지난날의 기억이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유은영은 자신의 얼굴로 곧장 울상을 짓고는 했다.
그럴 때마다 말했었지.
“언니, 내 얼굴로 그딴 표정 짓지 말라니까? 그리고 아직 점심 끝나려면 시간 남았잖아? 핵심만 빨리 외워봐.”
“말이 쉽죠!”
그렇게 우는 소리를 낸 게 엊그제의 일 같은데, 새삼스레 유은영도 많이 발전했다 싶었다.
어쨌거나 두 사람은 사이좋게 부장실 앞에 도착했다.
똑똑, 유은영이 가볍게 노크를 두드렸다.
“부장님, 지화자입니다.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들어오도록 하게.”
우종문의 대답에 유은영이 곧장 문을 열었다가 그대로 얼어붙었다.
“지화자 팀장, 안 들어오고 뭐하나?”
“그, 선객이 있으신 것 같은데.”
“괜찮네. 곧 나갈 테니. 그러지 않나, 조수현 팀장?”
우종문의 선객인 조수현이 얼떨떨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고 해도 유은영의 표정은 그리 밝지 못했다. 지화자 역시 마찬가지.
그때, 조수현이 말했다.
“부장님, 아무래도 지화자 팀장님과 유은영 씨께서 급한 볼일이 있는 것 같으니 나가보겠습니다.”
“잠깐, 조수현 팀장. 지화자 팀장에게 할 말이 있지 않나?”
부장실을 나가려던 조수현이 걸음을 멈췄다. 곧, 물어봐도 되나 고민하는 것 같던 그가 ‘지화자’에게 물었다.
“크리스마스 날에 돌발 게이트에 휘말렸다고 들었습니다. 다친 곳은 없습니까?”
“보다시피요.”
유은영이 조수현 쪽은 쳐다보지도 않고 말했다.
그야, 조수현과는 안 좋게 헤어지지 않았나? 조수현과 마주 보고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불편한 그녀였다.
그건 조수현 역시 마찬가지인지라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군요.”
라고 중얼거리면서 말이다.
“유은영 씨는.”
“저 역시 괜찮아요.”
“그렇지만 이마에 상처가…….”
지화자가 방긋 웃으며 말했다.
“크게 다친 건 아니니 신경 쓰실 필요 없답니다. 조수현 팀장님.”
그 말은 꼭, 그러니까 신경 끄고 갈 길 가라는 것처럼 들려왔다.
조수현은 결국 할 말이라도 있는 사람처럼 입술을 우물거리다가 기어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알겠습니다. 그럼, 부장님과 편하게 이야기 나누십시오.”
어느 누가 상사와 편하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까?
하지만 조수현의 말에 토를 달기에는 유은영의 간이 그렇게 크지 않았다.
어쨌거나 조수현은 부장실을 떠났고 곧 우종문이 유은영에게 물었다.
“그래, 지화자 팀장. 보고서 작성은 끝냈나?”
“네, 부장님.”
유은영이 고개를 끄덕인 후 대답했다.
“돌발 게이트에 관한 건 유은영 씨께서 자세하게 설명해주실 겁니다. 그편이 좋을 것 같아서요.”
“그래, 나 역시 그렇게 생각한다네.”
우종문이 어디 한 번 말해보라는 듯 ‘유은영’을 향해 고갯짓했다.
그에 지화자가 기다렸다는 듯 입을 열었다.
“먼저, 이교도들이 말한 마녀의 특징은…….”
지화자가 설명을 시작했다. 유은영은 잠자코 들었다. 우종문은 지화자의 설명 중간중간에 질문을 던졌다. 지화자는 그가 던지는 질문에 꼬박꼬박 대답해줬다.
‘역시 대단하셔.’
아마 자신이 우종문에게 보고를 하게 됐더라면 몇 번이고 그의 질문에 버벅거렸을 거다.
‘애초에 대답도 제대로 못했겠지.’
상상만으로도 끔찍해 유은영은 온몸을 부르르 떨었다.
“이상입니다.”
때마침 지화자의 설명이 끝났다.
“흐음.”
우종문이 고민에 잠긴 얼굴로 아래턱을 만지작거렸다.
“어렵군, 어려워.”
뭐가 어렵다는 걸까?
궁금증이 일었지만 유은영은 굳이 물어보지 않았다.
곧 우종문의 입이 떨어졌다.
“알겠네. 두 사람 다 이만 나가보도록 하게.”
“네, 부장님.”
유은영이 지화자와 함께 사이좋게 고개를 꾸벅인 후 부장실을 나가려고 할 때였다.
“잠깐, 지화자 팀장.”
우종문이 ‘지화자’를 붙잡았다.
“지화자 팀장은 남게. 따로 할 이야기가 있으니.”
유은영이 지화자를 쳐다봤다.
‘어떻게 해요?!’
소리 없이 묻는 말에 지화자가 어깨를 으쓱였다.
‘알아서 해.’
그 대답을 착실하게 알아들은 유은영이 어처구니 없다는 얼굴을 보였다.
그러거나 말거나 지화자는 그대로 우종문에게 인사한 후 부장실을 나가버렸다.
달칵, 문이 닫힌 후 우종문이 입을 열었다.
“A-Index상에 기록되어 있는 유화에 대한 정보는 이미 확인해봤겠지?”
“네? 아, 네. 부장님.”
“그럼, 유화가 여전히 사망했다고 기록되어 있는 것도 이미 확인했을 거고.”
“네, 그렇습니다.”
유은영이 우종문의 말에 적당히 맞장구를 쳐줬다.
“하지만 지화자 팀장, 말했듯 유화라면 언제 어디서 어떻게 살아돌아와도 이상하지 않는다네. 자네도 알지 않나? 유화가 가지고 있는 힘은…….”
우종문이 말을 하다 멈췄다.
“뭐, 나보다야 자네가 더 잘 알고 있겠지.”
아니요, 모르는데요.
그렇게 말할 수는 없는 노릇인지라 유은영은 조용히 입을 다물기로 했다.
“어쨌든 경계하도록 하게. 나도 한 번 알아보기는 할 테니.”
도대체 뭘 경계하라는 건지 모르겠지만 유은영은 대충 파악했다.
‘지유화 씨가 살아 돌아오는 경우를 경계하라는 거겠지.’
하지만 죽은 사람이 다시 살아돌아 오는 일이 가능한가?
어쨌거나 유은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상사가 까라면 까는 것이 직장인의 숙명이지 않나?
“그래. 이만 나가보게.”
“네, 부장님.”
유은영이 꾸벅거리며 인사한 후 부장실을 나왔다.
“이야기는 잘 끝나셨어요?”
“우왁! 깜짝이야!”
“제가 더 놀랐는데요.”
말과는 다르게 지화자의 얼굴은 평온하기 그지없었다. 유은영은 놀란 심장을 움켜잡으며 물었다.
“기, 기다리고 있었어요?”
“그럼, 혼자 갈까요?”
지화자가 싱긋 웃고는 유은영에게 속삭였다.
“부장이 언니한테 무슨 말을 할지 모르는데 말이야.”
유은영이 입술을 삐죽였다.
“언제는 관심 없는 척 알아서 잘 행동하라고 하더니?”
“저는 그런 적 없네요.”
지화자가 그렇게 말하며 다리를 움직였다. 유은영이 날래게 그녀를 쫓아갔다.
“부장이 뭐라든?”
주변에는 아무도 없었다. 느껴지는 인기척도 없었다.
그 때문에 유은영은 지화자의 질문에 친절하게 대답해줬다.
“경계하라고 하던데요?”
“역시.”
그럴 줄 알았다는 반응이다.
유은영이 입술을 우물거리다가 조심스럽게 목소리를 내었다.
“지화자 씨, 저… 한 가지 물어볼 게 있는데요…….”
“뭔데?”
물어봐도 되려나?
고민이 됐지만 유은영은 크게 마음 먹고 물어보기로 했다.
“지유화 씨가 받은 성언이 뭔지 아세요?”
지화자가 제자리에 멈춰 섰다.
역시 물어보면 안 됐었나 보다.
하지만 의외로 지화자는 유은영에게 답을 알려줬다.
“잊혀지지 말 것.”
“네?”
“지유화가 받은 성언이야.”
지화자가 다시 걸음을 옮기며 말을 이었다.
“자세히 말하면, ‘잊혀지지 않는한 계속해서 존재하리’지.”
“하지만 지유화 씨는.”
“죽었지.”
지화자가 단호하게 말했다.
“죽었어.”
한 번 더 강조하는 목소리에 유은영이 입술을 달싹였다.
“…그런데 부장님께서는 왜 경계하라고 한 걸까요?”
“지금 알면서 묻는 거지?”
유은영은 대답 대신 헤실거렸다. 지화자는 픽 웃고는 대답해줬다.
“우종문은 지유화가 살아 돌아오는 걸 경계하고 있어.”
역시나였다.
하지만 유은영은 그게 궁금한 게 아니었다.
“지화자 씨가 걱정돼서요?”
궁금한 것은 우종문이 왜 그걸 경계하고 있느냐는 거였다.
그야, 지유화는 만인에게 사랑을 받았다는 여자이지 않은가?
더군다나 지화자에게 죽기 전까지 랭킹 1위였던 각성자였다.
그녀가 살아 돌아온다면 좋은 일이지 않나?
“그 인간이 나를 걱정한다고?”
지화자가 픽 웃었다.
“우조문한테 가장 중요한 건 ‘평화’야. 그리고 나는 평화를 유지하는 데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는 도구지.”
“그렇게는 안 보였는데…….”
“그러시겠지. 언니 눈에 나쁘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겠어? 아니, 싫어하는 사람이 존재하기는 해?”
“네.”
유은영이 대답했다.
“먼저 저희 집 오랑우탄을 싫어하고 그 다음으로는 간호 관리 부서의 모든 사람을 싫어해요.”
유은영이 대답이 됐냐는 듯한 얼굴로 지화자를 쳐다봤다. 그 시선에 지화자가 헛웃음을 터트리고는 말했다.
“이봐요, 유은영 씨. 먼저 혈육을 좋아하는 사람은 별로 없어요. 그리고 현장 파견 부서의 인간들은 누구라도 싫어할걸?”
맞는 말이었다.
“어쨌든, 우종문을 너무 좋게 생각하지 마. 그 인간이 정말 좋은 사람이었다면 이렇게 숨기지도 않았을 거야.”
언니와 나.
“우리가 몸이 바뀐 걸 말이야.”
그 말에 유은영이 조용해졌다.
“어쨌든 돌아가자. 돌발 게이트 보고서는 작성을 끝냈지만, 아직 남은 보고서가 하나 더 있잖아?”
그랬다.
유은영이 마무리해야 할 보고서는 아직 하나가 더 남아있었다.
“1팀한테 모두 맡기고 싶네요.”
“될 것 같아?”
유은영이 어깨를 축 늘어뜨렸다.
생일날로 돌아가고 싶었다. 물론, 어림도 없는 소리였다.
유은영은 지화자에게 질질 끌러가다시피 사무실로 돌아왔고 곧장 자리에 앉아 보고서 작성을 시작했다.
“팀장님, 보고서 정리해서 전달드렸습니다.”
“저도 조금 전에 막 전달드렸습니다, 팀장님!”
가하성이나 하태균이 보낸 보고서를 확인하면서 말이다.
라이와 리아는 아침까지만 해도 열심히 보고서를 작성하겠다니 뭐니 의욕을 활활 불태웠지만.
“음냐…….”
책상에 엎드린 채 자는 중이었다.
유은영은 한숨을 푹 내쉬며 팀원들이 보낸 보고서를 자신이 작성 중이던 보고서와 합해 다시 정리했다.
지루하고 또 지루한 작업의 연속이었다.
유은영이 참다못해 길게 하품할 때였다.
“팀장님, 1팀에 잠시 다녀오셔야 겠는데요?”
“네? 왜요?”
유은영이 놀라 물었다.
“불꽃 독사자 관련해서 정보가 부족하거든요.”
“불꽃 독사자라면 게이트의 보스 몬스터였죠? A-Index 상에 기록되어 있는 정보 없나요?”
“물론 있죠.”
그런데 왜 1팀에 가라는 건가요?
라고 유은영이 질문을 던지기도 전에 지화자가 말했다.
“불꽃 독사자의 외형만 기록되어 있어서요. 공격 패턴 같은 정보는 하나도 없네요.”
그러니까 1팀에 좀 다녀오라면서 지화자가 유은영의 등을 떠밀었다.
“조수현 팀장님과 함께 잡은 몬스터잖아요? 조수현 팀장님이라면 불꽃 독사자에 관해서 따로 정리를 해뒀을 테니까 알아와 줘요.”
“메일로 좀 알려달라고 하면 안 될까요? 굳이 찾아가야 하나요?”
“메일로 보내면 조수현 팀장님께서 직접 찾아오실 거거든요.”
“왜요?”
“저야 모르죠.”
지화자가 어깨를 으쓱였다.
“원래 그런 분이었잖아요?”
모르는데요.
유은영은 그렇게 말하고 싶었지만.
“…알겠어요. 다녀올게요.”
결국 자리에서 일어났다.
절대로 지화자의 시선이 무서워서 그런 건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