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4화
13. 스물 여섯, 스물 여덟
유은영만 정말 잊지 못할 생일을 보냈다.
먼저 라이와 리아가 일어나자마자 언제 샀는지 모를 케이크를 ‘유은영’에게 냅다 던져버렸다.
생일에는 생일빵!
이라는 이상한 논리를 펼치면서 말이다.
지화자는 진심으로 라이와 리아를 죽여버리고 싶었다.
“생일 축하해, 유은영아!”
“은영 누님, 생일 축하해요!”
하지만 라이와 리아의 축하 인사에 유은영은 기뻐했다.
“은영 누님보다 화자 누님이 더 기뻐하는 것 같아요!”
“맞아! 나랑 오빠는 유은영을 축하해주고 있는데!”
아이들이 저런 소리를 할만큼 말이다.
그뿐이랴?
[0팀-가하성 씨]: 생일 축하드려요. 예의 상 문자 드립니다.
[0팀-하태균 씨]: 유은영 씨, 생일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맛난 음식 많이 드십시오!
가하성과 하태균이 축하 메시지를 보냈다. 지화자는 유은영에게 그 문자를 보여줬고 마찬가지로 기뻐했다.
“그렇게 좋아?”
“네! 저 직장 동료한테 축하 인사 받는 거 처음이거든요!”
지화자는 그 말에 간호 관리 부서를 언젠가 꼭 제대로 족치고 마리다 다짐했다.
그리고 마지막은 어머니.
물론, 유은영의 어머니가 보낸 메시지였다.
[♥엄마♥]: 딸~~ 생일 축하해~~! 엄마가 바빠서 문자로 먼저 축하 인사를 보낸다~~! 저녁에 통화할게ㅎㅎ~!
이 역시 지화자는 유은영에게 보여줬다. 문자를 확인한 유은영은 지화자에게 당부했다.
“오늘만큼은 꼭 전화받아주세요. 알겠죠?”
그동안 여러 이유로 유은영의 어머니로부터 걸려온 전화를 무시하고 있던 지화자였다.
지화자는 유은영의 부탁에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그 순간을 얼마나 후회했는지 모른다.
―우리 딸! 생일인데 미역국 먹었어?
“네? 네에.”
라이와 리아가 인터넷을 보고 배운 맛 더럽게 없는 미역국을 먹기는 했었다.
어쨌거나 지화자는 유은영을 연기했다. 문제는 그 연기 실력이 지화자답지 않게 너무 형편없었다는 거다.
―어머머? 웬일로 존댓말을 다 한대? 혹시 지금 직장 동료 분들이랑 파티 중이니?
“아, 음, 네.”
―그렇구나! 엄마가 눈치도 없이 전화했네? 여하튼 생일 잘 보내! 오빠한테 연락은 받았니?
“네.”
유은영의 오빠, 유승민.
그한테는 진작 메시지를 받았었다. 휴대폰을 확인해보니 자정이 되자마자 문자를 보냈더란다.
[오랑우탄]: 은영아, 생일 축하해.
지화자는 가볍게 답장을 보냈다.
[유은영(나)]: ㅗ
[오랑우탄]: 지화자 팀장님이신가 보군요^^?
그 후에도 유승민으로부터 계속 메시지가 왔지만 지화자는 그냥 무시해버렸다.
유은영에게 말하니 잘했다면서 엄지를 치켜들었다.
어쨌거나 지화자는 유은영의 어머니와 통화를 끝내고 기진맥진하면서 바닥에 드러누워버렸다.
“사람들한테 축하받는 거, 의외로 엄청 힘든 일이구나?”
“그래도 좋지 않아요?”
“좋기는 뭐가 좋아. 모두 언니를 향한 인사들인데.”
그 말에 유은영은 말했다.
“하지만 지화자 씨와 함께 축하받고 있잖아요.”
지화자는 어처구니가 없었다.
이 언니가 뭐라는 거야?
그런 생각이 들었지만 굳이 그 생각을 입 밖으로 내뱉지 않았다.
생일이지 않은가.
자신은 아니었지만 유은영은 마땅히 축하받을 사람이었다.
그렇게 그녀의 생일이 지나가기 몇 분 전이었다.
“뭐해?”
“하늘 보고 있는 중이에요.”
“그건 아는데 왜 하늘을 보고 있냐고.”
서울의 밤하늘은 별 하나 보이지 않았다.
그저 달 하나만 떠 있는 새까만 어둠.
유은영은 그 어둠을 향해 두 손을 꼭 모으고 있었다.
“바보같이 들리겠지만 아빠한테 오늘 있었던 일을 말해주고 있어요. 아빠 기일이랑 제 생일 때마다 이렇게 하거든요. 매일 하면 너무 구차해 보이니까.”
지화자는 조용히 입을 다물었다.
유은영의 아버지는 백화점 붕괴 사고로 목숨을 잃었다.
완즈 인 더 서울.
서울에서 가장 규모가 컸던 백화점은 순식간에 붕괴되면서 많은 사상자를 냈다.
유은영의 아버지는 그 피해자 중 한 명이었다.
유은영 역시 마찬가지였고.
“아빠가 살아계셨다면 지화자 씨를 꼭 소개 시켜줬을 거예요.”
“내가 언니 남친이야? 소개는 무슨 소개야.”
“친구로 소개시켜 줄 수는 있잖아요!”
“됐고. 나중에 원래대로 몸 돌아오면 어머니나 서울로 모셔와. 내가 밥 살 테니까.”
“정말요? 약속했어요!”
그렇게 유은영의 생일이 끝났다.
그리고 지금.
“아, 퇴근하고 싶다.”
월요일을 맞이한 유은영은 열정적으로 퇴근을 부르짖고 있는 중이었다.
지화자가 어처구니없다는 듯이 말했다.
“팀장님, 출근한 지 5분도 안 됐거든요?”
“그래도요.”
유은영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
평소보다 일찍 출근해서일까? 그것도 아님 생일의 여운이 아직 끝나지 않았기 때문일까?
유은영은 기운이 없었다. 하지만 그녀와는 달리 라이와 리아는 기운이 넘쳤다.
“유은영아, 보고서 작성 다 했어.”
“저도요!”
유은영이 리아와 라이의 말에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벌써요?”
라이와 리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보내드릴게요!”
“나도 보내줄게!”
아이들이 보낸 보고서는 1팀과 함께 공략했던 타임 브레이커 유형에 관한 것이었다.
문제는 보고서의 내용이 너무나도 처참하다는 것.
“…….”
“…….”
유은영은 지화자와 함께 할 말을 잃고 말았다. 그래도 리아와 라이를 칭찬하는 건 잊지 않았다.
“자, 잘했어요.”
“잘하기는 개뿔……!”
유은영이 언성을 높이려는 지화자의 입을 틀어막아 버렸다.
“리아 씨, 라이 씨. 크리스마스 때 있었던 시나리오 게이트에 관한 보고서도 작성해주실래요?”
“응!”
“네에!”
아이들의 대답에 맞춰 지화자가 유은영의 손을 입에서 떼어냈다.
“라이랑 리아한테 또 맡기려고요? 차라리 제가 다 할게요!”
“싫어요!”
“맞아, 싫어!”
라이와 리아가 거부했다.
“우리도 할 수 있어요!”
“맞아! 우리도 할 수 있어!”
“그야, 할 수 있겠지. 키보드로 타자 치는 건 초등학생도 할 수 있는 일이라고.”
그러니까 라이와 리아가 작성하는 보고서의 수준은 8살 아이와 비슷하다는 뜻.
라이와 리아가 불퉁하게 두 뺨을 부풀렸다.
“됐고. 카드 줄 테니까 커피나 사 와.”
리아가 냉큼 지화자가 내민 카드를 받고는 물었다.
“보고서는?”
“나랑 팀장님한테 맡겨.”
유은영이 입을 쩍 벌렸다.
맡기라니? 뭐를? 보고서를?
누구한테? 나한테?
“싫어요!”
유은영이 빼액 소리 질렀다.
“팀장님, 어차피 마무리만 하면 돼요.”
유은영은 그 말에 지화자가 돌발 게이트 공략을 끝낸 후 보고를 위해 우종문을 만나러 갔었다는 사실을 기억해냈다.
그녀는 곧장 컴퓨터를 확인했다.
지화자가 작성한 것으로 보이는 보고서가 보였다.
완성 직전의 보고서가 말이다.
그 사이에 리아는 라이와 함께 사무실을 나가버렸다.
“거의 다 끝내놨지?”
“네, 이걸 하룻밤만에 다 하신 거예요?”
“타임 브레이커 유형이었다면 못했을 거야.”
어쨌든 하룻밤만에 보고서 작성을 거의 끝냈다는 말이었다.
정말이지, 무서운 업무 처리 능력이었다.
“지화자 씨, 정말 대단해요.”
“그걸 이제 알았어?”
겸손만 구비하면 정말 좋을 텐데.
유은영은 그렇게 생각하면서 보고서를 천천히 읽어내려갔다.
“이건 언제 찍은 거예요?”
“언니가 모를 때.”
유은영이 가리킨 건 초상화였다.
이교도들이 숭배하고 있는 마녀를 그림 초상화.
“보고서 마무리 다 하면 말해. 우종문한테 같이 가자.”
“지유화 씨 때문에요?”
지화자가 표정을 굳혔다.
‘실수했다.’
유은영이 어색하게 웃으며 말을 덧붙였다.
“그러니까 지유화 씨를 닮은 이 마녀 때문이냐고요.”
“응.”
지화자가 언제 표정을 굳혔냐는 듯 심드렁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지유화일 리가 없겠지만 너무 닮았잖아? 그렇다고 언니한테 그 그림에 대한 설명을 맡기자니.”
“불안하죠?”
“그래. 잘 아네. 그러니까 어서 마무리하도록 해.”
“네에.”
유은영이 입술을 삐죽이며 키보드를 두드리기 시작했다.
지화자는 그녀를 흘긋거리고는 A-Index의 기록을 살폈다. 확인하고 있는 기록은 지유화에 대한 것.
-Name: 지유화(池柳花)
-Birth: 20X1. 3. 2
-Local: 82_대한민국
-Rank: S급
-Number: (前)1st
그녀에 대해 ‘유은영’으로 열람 가능한 정보에는 한계가 있었지만 지화자는 필요한 것을 얻었다.
-혈육에게 죽임을 당함.
-현재 사망.
지유화가 살아 있더라면 저 정보는 진작 삭제됐을 거다.
하지만.
‘지유화라면…….’
지화자가 오른쪽 팔꿈치를 왼손으로 받치며, 제 턱을 쓰다듬었다.
생각은 길게 이어지지 않았다.
“유은영아, 우리 왔어!”
“디저트도 사왔어요!”
“그리고 하성이 오빠랑 태균 오빠 것도 사왔어!”
“저희 마음대로요!”
리아와 라이가 요란하게 0팀으로 돌아왔기 때문이었다.
생각에 잠겨 있던 지화자가 미간을 살포시 좁히며 말했다.
“라이, 리아. 내가 디저트를 사오란 말은 하지 않았을 텐데?”
“알아! 그냥 우리가 먹고 싶어서 사온 거야!”
“맞아요! 그리고 일하려면 당이 필요하잖아요?”
“당은 두뇌 회전에 도움을 많이 준다고 했어!”
지화자가 헛웃음을 흘렸다.
“누가 그러든?”
“지화자가!”
지화자가 유은영을 쳐다봤다. 유은영은 그녀의 시선을 무시하며 열심히 키보드를 두드렸다.
요란한 아침은 계속됐다.
“오늘 다들 일찍 출근하셨네요?”
“하성이 오빠!”
“다들 좋은 아침입니다!”
“태균 형님!”
가하성과 하태균이 차례대로 출근하며 ‘유은영’에게 선물을 내밀었다.
“웬 선물이에요?”
“생일이셨잖습니까! 챙겨드리지 못한 게 걸려서 말입니다!”
“저는 태균 형님이 챙겨줘야 한다고 하도 잔소리를 하셔서요. 싫으면 안 받으셔도 돼요.”
“하성아! 그렇게 말하면 어떻게 하냐! 유은영 씨, 하성이가 저렇게 말해도 무슨 선물을 주면 좋나 엄청 고민했습니다!”
“형님!”
가하성이 빼액 소리 질렀다. ‘유은영’은 별꼴을 다 본다는 듯이 비웃음을 입가에 걸었다.
“유은영 씨, 뭐하세요?”
“네?”
“선물 어서 받으셔야죠. 고맙다는 인사도 꼭 하시고요.”
입가에 걸린 비웃음이 얼마 지나지 않아 일그러졌지만 말이다.
지화자가 마지못해 가하성과 하태균의 선물을 받아 들면서 꾸벅 고개를 숙였다.
“고마워요.”
밋밋한 인사였지만 가하성과 하태균은 그것만으로도 만족해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유은영은 아니었다.
“뭐해요, 유은영 씨? 가하성 씨랑 하태균 씨가 준 선물 안 풀어보세요?”
선물은 자신이 받았는데 왜 저 언니가 난리인가 싶었다.
하지만 이 선물은 결국 유은영의 선물이었다. 결국 지화자는 오만상을 찌푸리며 선물을 확인했다.
머리핀과 브로치.
화려한 것 같으면서도 심플한, 유은영에게 꽤 어울리는 디자인의 장신구들이었다.
“우와, 예뻐요! 머리핀도 브로치도 내일 꼭 차고 올게요!”
라고 말한 유은영이 황급히 말을 덧붙였다.
“유은영 씨가 그렇게 말하고 있는 것 같네요!”
저 망할 언니가.
지화자가 사납게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어쨌거나 0팀의 모두가 시끌벅적하게 출근했고.
“유은영 씨, 보고서 마무리 다 했어요.”
유은영이 자리에서 일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