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F급 힐러가 랭킹 1위가 되어 버렸다-85화 (85/200)

제85화

“지, 지 팀자아앙!!”

“지화자 팀장니이임!”

유은영은 양 팔에 매달려 울고불고 있는 구순철과 이혜나를 짜게 식은 눈으로 쳐다봤다.

“두 사람 다 물러나세요.”

“그치마안!”

“죽으면 어떻게 해요?!”

“제가요? 아님, 부장님과 팀장님이요?”

웃는 낯으로 묻는 목소리에 구순철과 이혜나가 조용히 입을 다물었다.

유은영이 비웃음을 입가에 걸쳤다.

“안 죽을 테니까 물러나 계세요. 하태균 씨?”

“네! 두 분 모두 제가 상처 하나 없이 지켜드리겠습니다!”

하태균이 씩씩하게 말하며 구순철과 이혜나를 가볍게 들어 올렸다.

“흐아악!”

“꺅!”

두 사람이 놀라 비명을 질렀다. 하지만 그들은 곧 입을 다물었다.

―크아아앙!

불꽃 독사자(B급)가 바로 앞에서 콧김을 내뿜고 있었기 때문이다.

구순철이 게거품을 물고 기절해버렸다.

“부장님! 부장님 정신 차려요! 죽으면 안 돼요!”

“안 죽을 겁니다. 잠깐 기절을 한 것뿐이니 걱정하실 필요 없습니다.”

하태균이 그런 그녀를 진정시키며 자리를 피했다. 유은영은 그들이 자리를 떠나기 무섭게 무기를 꺼내 들었다.

‘남은 시간은 이제 5분 남짓.’

그 시간 안에 최대한 빠르게 눈 앞의 몬스터를 처치하고 핵을 부서뜨려야했다.

―키에에엑!

―크르르르!

하지만 쉬운 전투가 될 것 같지 않았다.

불꽃 독사자의 주위로 수십, 수백, 수천 마리의 몬스터가 나타났기 때문이었다.

“1팀! 전원 지화자 팀장님을 엄호한다!”

조수현의 우렁찬 목소리가 들려온 건 그때였다.

“지화자 팀장님, 괜찮으십니까?”

“네, 덕분에 수월하게 몬스터를 처리할 것 같네요.”

“그랬으면 하군요.”

조수현이 유은영의 옆에 서서는 검을 꺼내 들었다. 유은영이 그를 흘긋거리고는 말했다.

“발목잡지 마세요.”

“물론입니다.”

그 말과 함께.

타앗―!

두 사람이 땅을 박찼다.

―크아아아!

볼꽃 독사자가 포효했다.

유은영은 몬스터의 숨결 속에서 익숙한 힘을 느꼈다.

“독이에요!”

그 말에 조수현이 검을 가볍게 휘둘렀다. 불꽃 독사자의 숨결 속에 있던 독기운이 사방으로 흩어졌다.

‘나이스, 조수현 팀장님!’

유은영이 속으로 그를 한껏 칭찬하고는 손에 쥔 것을 휘둘렀다.

화르륵!

일어난 불꽃이 유은영이 쥐고 있던 봉을 휘감았다. 그녀는 그대로 불꽃 독사자를 향해 달려들었다.

퍼억―!

불꽃 독사자가 유은영에게 한 대 얻어맞고는 휘청거렸다.

그녀는 그 순간을 놓치지 않았다. 봉을 휘감고 있던 불꽃이 불꽃 독사자를 집어 삼킨 것이다.

―크오오오!

불꽃 독사자가 고통스러운 듯 울부짖었다.

하지만 그 목소리는 고통에 의한 것이 아니었다.

“지화자 팀장님!”

조금 떨어진 곳에서 ‘유은영’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몬스터 이름을 보세요! ‘불꽃 독사자’라고 하잖아요!”

“저도 알고 있어요!”

“그런데 왜 불꽃을 사용하는 거예요?!”

지화자가 빼액 소리 질렀다.

“누가 봐도 화(火) 속성인 몬스터한테 불꽃이라니! 공격이 통할 리가 없잖아요!”

그 말대로였다.

―크아아앙!

불꽃 독사자는 화염 속에서 멀쩡했다.

날카로운 발톱이 유은영을 향해 쇄도했다. 유은영이 황급히 고개를 뒤로 젖히며 공격을 피했다.

유은영이 몬스터로부터 한 발자국 크게 물러나서는 혀를 찼다.

‘공략 끝나고 나면 지화자 씨한테 잔소리 엄청 듣겠네.’

그 시간을 줄이려면 눈앞의 몬스터를 최대한 빠르게 처치하는 방법뿐.

유은영이 타앗, 땅을 박찼다.

이번에도 무기에 불꽃을 휘감은 채였다.

“지화자 팀장님! 불은 안 된다니까요!”

자신의 말을 귓등으로도 듣지 않은 거냐면서 지화자가 빼액 소리를 질렀다.

하지만 곧 그녀는 자신의 눈을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크아아아!

다시 한번 더 불꽃에 삼켜진 몬스터가 고통에 젖은 비명을 내지르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있잖아요, 유은영 씨. 불보다 강한 게 뭔지 아세요?”

화마 속에서 유은영이 모습을 드러내며 웃었다.

“…물 아닌가요?”

“맞죠.”

유은영은 마음 같아서는 불꽃 독사자(B급)의 머리 위로 물을 끼얹고 싶었다.

아님, 그대로 수장시키거나.

‘하지만 지화자 씨의 힘으로 물을 다뤄봤어야 말이지.’

실수라도 할까봐 무서웠다.

그래서 이번에도 불을 사용한 것이다.

다르다면.

―키야악…….

캠프파이어 때나 볼 법한 그런 불이 아니라, 활화산이 터질 때 볼 수 있는 마그마.

그걸 이용했다는 거다.

지화자가 유은영에게 다가와서는 말했다.

“위험했어요.”

“알아요.”

잘못했다가는 마그마에 휩쓸려 불꽃 독사자와 함께 녹아 사라지고 말았을 거다.

“하지만 저는 제 목숨이 얼마나 귀한 줄 아주 잘 알고 있어서요.”

유은영이 눈웃음을 지었다.

“적당히 제 몸 챙기면서 덤벼든 거예요.”

그 말에 지화자는 할 말이 없었다. 어쨌거나 게이트의 보스 몬스터로 추정되는 불꽃 독사자가 쓰러졌다.

“핵은 부서지지 않았나 봅니다.”

“그러게요. 마그마에 같이 녹았으면 좋았을 텐데.”

남은 시간은 이제 1분 남짓.

조수현이 팔을 걷어 붙였다.

“시간이 없으니 몬스터 채로 으깨버리겠습니다.”

“네?”

그게 무슨 소리냐고 물을 새도 없이.

꽈드득―!

조수현의 커다란 손에 불꽃 독사자의 상반신이 으스러지기 시작했다.

머리부터 허리 부근까지.

조수현은 몬스터의 사체를 착실히 으깼다.

유은영이 끔찍한 광경에 휙 고개를 돌렸다. 두 눈으로 보기 힘든 광경이었다.

[축하합니다.]

[서울특별시 마포구 와우산로 94번지에 생성된 타임 브레이커 게이트 B급의 공략에 성공하셨습니다.]

제한 시간을 30초가량 남겨두고 시스템 창이 나타났다.

조수현이 손 안에 쥐어진 파편을 유은영에게 보이며 말했다.

“머리 쪽에 있었던 모양입니다.”

알고 싶지 않은 정보였다.

어쨌거나 무사히 게이트 공략이 끝났다.

‘1팀 쪽에 피해가 조금 있는 것 같기는 하지만.’

0팀에는 피해가 없으니 됐다.

***

―국가 넘버, 82.

서울 마포구 와우산로 94에 생성된 게이트 공략 완료.

Type: 타임 브레이커.

Lank: B급.

Time Limit: 30분.

Atack Time: 29분 33초.

S급 각성자 ‘지화자’와 ‘조수현’ … E급 각성자 ‘유은영’의 이름이 A-Index에 기록되었습니다.―

***

“우웩!”

구순철이 게이트 밖으로 나오자마자 토했다.

조수현이 불꽃 독사자의 사체를 으깨는 모습을 멍하니 지켜봤기 때문이었다.

‘내가 미쳤었지!’

구순철이 가쁜 숨을 몰아내쉬며 입술을 닦았다.

크리스마스이브. 00시 30분.

무사히 게이트를 공략하고 밖으로 나온 시간이었다.

구순철은 살아있음에 기뻐하며 두 번 다시는 게이트 공략에 함께 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지화자’가 암만 협박을 해도 자신은 꼼짝도 하지 않겠노라.

그는 그렇게 다짐했다.

‘그래도 A-Index에 내 이름이 기록된 건 기분 좋군.’

게이트 공략에 기여해서 A-Index에 이름이 기록된 것이 얼마만인가?

구순철이 자신의 이름 석 자를 보며 흐뭇하게 웃을 때였다.

“음?”

그는 이상한 것을 발견했다.

[E급 각성자: 유은영]

그녀를 제외한 모두가 C급 이상의 각성자였다.

그렇게만 보면 이상할 게 없었지마는.

“E, E급? 폐급이 아니라 E급이라고?”

유은영의 등급은 F급이었다.

구순철이 깜짝 놀라 ‘유은영’을 쳐다봤다. 그와 시선을 마주친 여자가 싱긋 웃는다.

뭘 쳐다보냐는 듯이 말이다.

한편 유은영은 센터의 직원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중이었다.

“게이트 공략 끝났으니 다들 뒷정리하고 퇴근하도록 해요.”

“통제는 해제할까요?”

“네.”

유은영의 말에 센터의 직원들이 분주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조금에라도 빨리 퇴근하고 싶은 마음 반, 꾸물거리며 움직였다가 ‘지화자’에게 잔소리를 들을까 두려워하는 마음 반으로 말이다.

“가하성 씨랑 하태균 씨도 그만 퇴근하세요. 보고서는 출근하고 천천히 작성하도록 하죠.”

“네, 팀장님.”

“알겠습니다!”

가하성의 말을 뒤이어 하태균이 우렁차게 대답했다.

“하성이 오빠, 태균 오빠! 잘 가! 내일 봐!”

“내일이 아니라 오늘.”

“오늘 봐!”

지화자의 지적에 리아가 냉큼 말을 고쳤다.

가하성이 가볍게 고개를 꾸벅인 후 타고 왔던 오토바이에 몸을 실었다.

하태균은 두 손을 들어 인사한 후 집이 있는 방향으로 뛰어가기 시작했다.

“저희도 이만 퇴근할까요?”

“좋아요.”

유은영이 그렇게 대답하면서 기지개를 쭉 켰다.

“팀장님께 하고 싶은 이야기도 많으니까 빨리 돌아가죠.”

그 말에 그대로 멈칫했지마는.

유은영이 어색하게 웃으며 지화자에게 물었다.

“저한테 하고 싶은 이야기라니, 그게 뭘까요?”

“그러게요. 그게 뭘까요?”

제가 먼저 물어봤잖아요.

유은영이 말을 삼키며 어깨를 축 늘어뜨렸다. 지화자가 자신에게 할 이야기야 뻔했다.

‘잔소리 엄청 듣겠네.’

불꽃 독사자를 상대할 때 물을 사용할 생각은 하지 않았냐면서 엄청 닦달할 게 분명했다.

유은영이 보지 않아도 뻔할 미래에 한숨을 내쉴 때였다.

“팀장님! 괜찮으세요?!”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게이트가 일어났던 곳 주변에서 팀장은 총 세 명.

그들 중에서 이혜나는 게이트를 빠져나오자마자 누구보다는 빠르게 자리를 벗어나버렸다.

그러니까 남은 팀장은 조수현과 ‘지화자’ 뿐.

유은영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나를 부르는 목소리는 아닐 테고. 설마 조수현 팀장님께 무슨 일이라도 생겼나?’

유은영이 목소리가 들린 쪽을 쳐다봤을 때였다.

“헉!”

그녀는 헛숨을 삼켰다.

불꽃 독사자를 인정사정없이 으깨던 조수현의 손이 아주 엉망이었다.

흐물흐물 녹아떨어진 살점에 근육이 드러날 정도로 심한 상처.

“조수현 팀장님!”

유은영이 자신도 모르게 조수현에게 달려갔다. 그리고 그에게 달려간 사람은 그녀뿐만이 아니었다.

“유, 유은영 씨! 상처 좀 봐주세요! 어서요!”

“안 그래도 그럴 거예요.”

유은영의 곁에는 지화자도 함께 있었다. 언제 달려왔는지 모를 그녀가 곧장 힐을 사용했다.

“힐? 유은영 씨, 언제부터 힐을 사용하게 된 거예요? 원래 할 줄 아는 거라고는.”

“끝내주는 안마뿐이었죠.”

지화자가 1팀의 전담 어시스트 힐러인 지소연의 말을 끊었다.

“구순철 부장님!”

“으응?”

“와주세요.”

“나 이제 퇴근하려고 했는데?”

조수현이 다친 것이 보이지 않는단 말인가?

유은영도 지화자도 험악하게 얼굴을 구겼다.

구순철이 두 여자의, 아니. 정확히는 한 여자의 얼굴을 보고는 겁먹은 얼굴로 그들에게 다가왔다.

“무, 무슨 일인데?”

“조수현 팀장님께서 많이 다치셨어요.”

“그렇게 크게 다친 건 아닙니다.”

조수현이 담담하게 말했다.

“불꽃 독사자가 품고 있는 독에 당한 것뿐이죠.”

“그러니까 크게 다친 거잖아요! 부장님, 뭐하세요?! 어서 봐달라니까요?!”

“응? 으응, 그, 그래야지.”

구순철이 말을 더듬으며 조수현을 치료하기 시작했다.

“지화자야.”

“은영 누님.”

그때 리아와 라이가 유은영과 지화자에게 다가왔다.

“수현 형님 많이 다쳤어요?”

걱정스럽게 묻는 목소리에 유은영이 미소를 그렸다.

“아니요. 걱정하실 필요 없어요, 라이 씨.”

라이를 달래는 그녀를, 조수현은 의미심장한 눈으로 쳐다봤다.

유은영은 눈치채지 못한 시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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