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4화
파스스―!
유운영을 중심으로 보랏빛 안개가 서서히 퍼지기 시작했다.
―키이이익!
―크르륵!
몬스터들이 경계하며 뒤로 물러났지만.
파아앗―!
안개가 살아있는 것처럼 그것들을 집어 삼키기 시작했다.
그 속도를 피하기는 무리였다.
―캬아아악!
몬스터들이 비명을 지르며 쓰러졌다. 거품을 물며 바닥에 쓰러진 것들이 꿈틀거리다가 몸을 축 늘어뜨렸다.
독안개에 당해 목숨이 끊어지고 만 것이다.
“제대로 못하면 어쩌나 했는데.”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아서 다행이었다.
멀쩡히 두 다리로 버티고 서있는 몬스터가 보이지 않자 유은영이 봉을 휘둘렀다.
후웅!
가볍게 일어난 바람에 독안개가 빠르게 사라졌다.
“후우.”
유은영이 산처럼 쌓인 몬스터들의 사체에 작게 숨을 내쉬었다.
‘서이안 씨를 떠올리지 못했으면 큰일날 뻔 했어.’
자칫 잘못했으면 핵은 찾지도 못하고 이곳에서 발목이 붙잡힐 뻔했다.
유은영이 방호벽을 두드렸다.
“끝났어요.”
그 말과 동시에 방호벽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지화자야!”
“누님, 괜찮아요?!”
리아와 라이가 한달음에 유은영에게 달려왔다.
유은영이 활짝 웃었다.
“저는 괜찮아요. 리아 씨랑 라이 씨는요?”
“우리는 멀쩡해!”
“맞아요, 멀쩡해요!”
리아와 라이의 말에 유은영이 다행이라는 듯 미소를 그렸다. 그때 ‘유은영’이 그녀에게 다가왔다.
“대단하군요.”
그 말은 꼭 언니가 내 힘을 이런 식으로 사용하다니, 장족의 발전을 했다.
라는 것처럼 들렸다.
그렇기에 유은영은 배시시 웃으며 멋쩍게 뺨을 긁적였다.
지화자의 얼굴이 구겨졌다.
유은영이 황급히 뺨을 긁적이던 손을 내렸다.
지화자는 그제야 표정을 풀었다. 유은영은 그에 입술을 삐죽이고는 말했다.
“그럼, 이동해볼까요?”
“잠깐만요!”
그렇게 소리 지른 사람은 이혜나였다. 이혜나가 희게 질린 낯으로 말했다.
“자, 잠시만 쉬면 안 될까요? 그게, 다, 다리에 힘이 풀려서!”
그 말이 정말인지, 이혜나는 거의 주저앉아있다시피 하고 있었다.
“제가 몬스터를 너무 오랜만에 만나서요…….”
울먹이며 말하는 목소리에 모두가 한숨을 내쉬었다.
“아줌마 한심해!”
“그러게 말이야!”
리아와 라이는 이혜나를 앞에 두고 구시렁거렸지만 말이다. 어쨌거나 유은영이 어쩔 수 없다는 듯 웃는 낯으로 말했다.
“으음, 그럼 잠깐만 쉴까요.”
“아니요.”
지화자가 고개를 저었다.
“계속 가야해요.”
그녀의 손가락이 허공을 가리켰다. 정확히는, 조금씩 줄어들고 있는 시간을 말이다.
【00:11:27】
10분 남짓 남은 시간에 유은영이 앓는 소리를 냈다.
“벌써 시간이 저렇게…….”
“조수현 팀장님께서도 고전하고 계신 모양이에요.”
“하긴, 숫자가 많으니까요.”
암만 강한 각성자라고 해도 다구리 앞에서는 장사 없었다.
유은영이 어깨를 으쓱였다.
“그럼, 앞으로 계속 가도록 하죠.”
“네? 휴식은요?!”
그 말에 유은영이 말했다.
“하태균 씨. 이혜나 팀장님께서 편하게 쉬면서 이동할 수 있도록 업어 주실래요?”
“네! 물론입니다!”
하태균이 씩씩하게 대답하고는 이혜나에게 등을 보였다.
“자, 업히시죠!”
“아… 아니요…….”
이혜나가 근육질 가득한 남자의 몸을 보고는 질색하며 말했다.
“혼자서 걸을 수 있어요.”
그 말에 유은영이 픽 웃었다.
‘저럴 줄 알았지.’
이혜나의 취향은 조수현이나 유승민처럼 마르면서도 적당히 근육이 있는 남자들이었다.
그러니까 하태균은 그녀의 취향에서 한참 먼 사람이라는 것.
그리고 이혜나는 자신의 취향이 아닌 이성과 붙는 것을 무엇보다 끔찍하게 여겼다.
어쨌든.
“그럼, 계속해서 가볼까요? 이대로 꾸물거리면 게이트가 터지고 말 거예요.”
그것만큼은 무조건 막아야했다.
“가하성 씨, 혹시 먼저 앞서가서 주변을 살펴봐주실 수 있나요?”
주변에서 몬스터의 기척따위는 느껴지지 않았지만 혹시 모를 일이었다.
“네에.”
가하성이 귀찮아 죽겠다는 얼굴로 앞서 나갔다.
유은영은 부디 몬스터들이 없기를 바라며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그리고 그 순간.
쿠웅, 쿵―!
유은영은 발 밑에서 미세한 땅울림을 느꼈다.
“……?”
유은영이 고개를 갸웃거릴 때.
“팀장님.”
가하성이 돌아왔다.
***
“팀장님!”
조수현이 다급하게 저를 부르는 목소리에 가볍게 검을 휘둘렀다.
―키야아악!
그를 향해 달려들던 몬스터가 반으로 쪼개지며 피분수를 뿜었다.
“괜찮으십니까?!”
조수현이 뺨에 묻은 것을 닦아내며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신경쓰지 말고 전투에 집중하도록.”
“네, 알겠습니다!”
조수현을 불렀던 1팀의 각성자가 다른 팀원을 돕기 위해 나섰다.
조수현은 작게 숨을 내쉬었다.
‘끝이 안 보이는 군.’
게이트에 들어선 후, 계속 몬스터들과 싸웠건만 상황이 나아지지가 않았다.
‘화자는 괜찮을까?’
그녀라면 괜찮을 거다.
어쩌면 이미 몬스터들을 처치하고 핵을 찾고 있을 수도 있다.
‘…화자의 발목을 붙잡는 일만큼은 없어야하는데.’
조수현이 입술을 살짝 깨물 때.
“으아아악!”
째질 듯한 비명 소리가 들렸다.
“구순철 부장님!”
구순철의 앞으로 몬스터가 아가리를 벌리며 다가오고 있었다.
당장에라도 그를 잡아 먹을 것처럼 구는 모습에 조수현이 냅다 검을 집어 던졌다.
―캬아아악!
날아간 검이 그대로 몬스터의 눈을 찔렀다. 조수현이 고통에 힘껏 몸부림치는 몬스터를 향해 손을 들고는.
푸욱!
그대로 심장 부근을 찔러 죽여버렸다.
타오르는 듯, 주홍빛 털을 가지고 있던 작은 짐승의 몸이 축 늘어졌다.
‘A-Index에 기록되어 있지 않은 몬스터군.’
그 말은 곧 이 게이트에서 처음 등장한 몬스터라는 것.
조수현이 게이트 공략 후, 보고서 작성을 위해 힘없이 늘어진 몬스터를 확인했다.
[불꽃 독사자의 새끼(D급)]
‘새끼?’
다른 몬스터들보다 몸집이 작은 축에 들기는 했지만, 새끼로 볼 수는 없는 개체였던 탓이다.
‘그보다 불꽃 독사자라니.’
역시 처음 듣는 이름.
조수현이 몬스터의 살갗에서 손을 빼냈다. 손가락을 타고 뚝뚝 떨어지는 몬스터의 피가 불쾌할만도 하건만,
“구순철 부장님, 괜찮으십니까?”
그는 그것에 전혀 신경쓰지 않고 구순철을 살폈다.
구순철이 빨갛게 물든 조수현의 손을 보고는 꿀꺽 침을 삼켰다.
“구순철 부장님?”
“응? 아아, 괘, 괜찮아! 조수현 팀장은?!”
“저도 괜찮습니다.”
다친 곳이라고는 하나도 없었다.
“다행이네, 정말 다행이야! 무슨 일이 있어도 조수현 팀장은 다치면 안 돼! 알겠지?!”
구순철은 이곳에서 자신을 제대로 지켜줄만한 사람은 조수현 뿐이란 것을 본능적으로 느꼈다.
“물론입니다.”
조수현이 죽어버린 불꽃 독사자 새끼의 눈에서 검을 뽑아들었다.
“팀장님, 정리 끝났습니다!”
“여기도요!”
다행히 주변 상황이 정리됐다.
들이닥쳤던 몬스터들을 모두 처치한 것이다.
“부상자는?”
“지연이와 은성이 뿐입니다.”
다행히 피해가 적었다.
“구순철 부장님, 저희 팀원들 좀 봐주실 수 있겠습니까?”
“어? 어어, 당연히 봐줄 수 있지! 나만 믿어 달라고!”
구순철이 굳이 덧붙이지 않아도 될 말을 하면서 자신만만하게 나섰다.
조수현은 그가 자신의 팀원들을 치료하는 모습을 보고는 팀내 A급 각성자들에게 말했다.
“너희 둘은 나를 따라오도록. 나머지는 이곳을 지키고 있는다.”
“네, 팀장님!”
1팀의 A급 각성자 두 사람이 한달음에 조수현에게 달려왔다.
“팀장님, 혹시 핵이 있는 곳을 찾으셨습니까?”
“아직. 하지만 곧 찾을 수 있을 것 같군.”
지금까지 상대했던 몬스터들과는 차원이 다른 힘이 조금 멀리 떨어진 곳에서 느껴졌다.
분명 보스 몬스터의 기운일 터.
‘그렇다고 해도 고작 B급의 몬스터겠지만.’
S급 각성자인 조수현에게는 큰 위협이 되지 않는 상대였다. 문제는 그를 제외한 다른 팀원들이었다.
A급 각성자가 몇 있기는 했지만 대다수가 B급 이하의 각성자들로 구성된 1팀.
더군다나 절대로 잃어서는 안 되는 귀한 자원인 A급 힐러, 구순철까지 있었다.
‘큰 피해를 입기 전에 최대한 빠르게 잡는다.’
조수현은 그렇게 두 명의 A급 각성자와 함께 길을 내달렸다. 그렇게 달리던 그가 돌연 자리에 멈춰섰다.
“잠깐.”
“왜 그러십니까, 팀장님?”
“느껴지지 않나?”
“네? 무엇이…….”
조수현을 따라온 팀원 중 한 명이 말을 멈췄다.
“뭔가 다가오고 있습니다!”
무언가 빠르게 접근하고 있는 것을 그제야 느꼈기 때문이었다.
조수현도, 그리고 그의 팀원들도 단번에 알아차렸다. 가까이 다가오고 있는 몬스터가 핵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말이다.
“여기서 잡는다.”
“네!”
10분 남짓했던 시간이 5분 가까이로 줄어들어 있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여기서 잡아야만 했다.
하지만.
―크르르릉!
그들에게 빠른 속도로 다가오고 있던 몬스터가 돌연 땅을 박차며 날아 올랐다.
“이런……!”
몬스터는 아래에 있는 인간들을 흘긋거리고는 그들을 피해 그대로 내달려버렸다.
조수현의 팀원들과 구순철이 있는 곳을 향해 말이다.
조수현이 다급하게 외쳤다.
“당장 무전 하도록! 보스 몬스터가 접근하고 있다고!”
“네! 알겠습니다!”
조수현과 함께 온 A급 각성자가 황급히 무전을 했지만.
“팀장님! 무전이 안 됩니다! 신호가 안 잡혀요!”
“그럴 리가!”
게이트에 들어온 후, 잘만 작동했던 무전기였다. 물론 지화자와는 소통이 전혀 불가능했지만 말이다.
“팀장님, 어떻게 합니까?!”
“너희는 천천히 따라오도록!”
“네, 알겠습니다!”
조수현이 속도를 높였다.
무슨 일이 있어도 보스 몬스터보다 먼저 팀원들과 구순철이 있는 곳에 도착해야만 했다.
―크아아앙!
다행히도 조수현은 보스 몬스터와 비슷한 속도로 그들이 있는 곳에 도착했다.
그는 제일 먼저 구순철의 안전을 확보하기로 했다.
“괜찮으십니까, 부장님?!”
구순철은 금방 찾을 수 있었다.
게이트 공략에 들어온 각성자 중 대머리인 사람은 그밖에 없었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누구를 누구랑 착각한 거예요?”
짜증 섞인 목소리에 조수현이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유, 유은영 씨?! 당신이 왜 여기 있는 겁니까!”
당연히 구순철인 줄 알았건만, 조수현이 구한 사람은 ‘유은영’이었다.
지화자가 얼굴을 찌푸렸다.
“당연히 팀장님을 따라 왔으니까 여기 있는 거겠죠?”
“네?”
“그보다 비켜 주실래요?”
불쾌하다는 듯 찡그려진 얼굴에 조수현이 황급히 몸을 일으켰다. ‘유은영’이 몸을 툭툭 털어내고는 말했다.
“생각보다 실력이 별로이신가 봐요? 진작 핵을 찾아 부술 줄 알았는데 말이에요. 그리고 저를 그 망할 대머리, 아니. 구순철 부장님과 착각하다니”
비아냥거리는 목소리에 조수현이 입술을 우물거렸다.
“…죄송합니다.”
“됐어요. 어차피 보스 몬스터도 찾았겠다. 곧 게이트를 공략할 수 있겠네요.”
그 말에 맞춰 몬스터의 카랑카랑한 비명 소리가 들려왔다.
―크아아아!
불꽃 독사자(B급)가 내지르는 비명이었다.
그리고 그 비명 한가운데 속.
“우와, 시끄러워라.”
유은영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