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F급 힐러가 랭킹 1위가 되어 버렸다-83화 (83/200)

제83화

이제 게이트 공략을 나서야 할 시간. ‘지화자’가 된 후로 벌써 몇 번째 게이트 공략인 걸까?

“지겹다, 지겨워.”

분명 처음에는 자신이 어떻게 게이트를 공략하냐면서 징징거렸던 것 같은데 말이다.

‘익숙해지는 건 금방이라고 하더니만.’

유은영이 ‘지화자’의 손을 쥐었다 펼치면서 픽 웃었다. 이 손에 익숙해질 일은 평생 없을 거라고 생각했었는데.

‘아무래도 아니었던 모양이야.’

그때 조수현이 그녀에게 다가와 말했다.

“제한 시간은 30분 정도로 예상하고 있습니다.”

“적당하네요.”

유은영은 또한 자신이 이런 소리를 하게 될 줄 몰랐다.

몇 달 전만 하더라도 조수현의 말을 들었더라면 “그 시간 안에 어떻게 게이트를 공략해요!”라며 울고불고 했을 거다.

“30분 안에 공략이라니 가능한 거예요?!”

“맞아, 조수현 팀장! 가능한 일인 거야?”

간호 관리 부서의 이혜나 팀장과 구순철 부장처럼 말이다.

하지만 ‘지화자’가 된 지 벌써 며칠, 아니. 몇 달이 지났다. 익숙해질 대로 익숙해진 상황에 유은영은 무뎌져 버렸다.

‘시간이 약이라더니.’

옛말이 꼭 들어맞았다.

유은영이 그렇게 소리 없이 웃고 있을 때 조수현은 간호 관리 부서의 힐러들을 안심시켰다.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제한 시간 안에 꼭 공략할 겁니다.”

“공략하지 못하면 어떻게 할 거예요?!”

빼액 소리를 내지르는 목소리에 구순철이 격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물었다.

“이혜나 팀장의 말이 맞아! 게이트 공략에 실패하면 우리는 어떻게 되는 거지?!”

쓸데없는 걱정 하기는.

유은영은 이혜나와 구순철이 한심하다는 듯 혀를 찼다.

하지만 조수현은 그들의 걱정이 이해된다는 듯 상냥하게 말했다.

“설사 공략하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두 분의 안전은 저와 지 팀장님께서 꼭 책임지겠습니다.”

그러고 싶지 않은 유은영이었다.

하지만 어쩌랴?

‘책임져야지.’

인정하기 싫어도 이혜나와 구순철은 센터 내에서 가장 등급이 높은 힐러였다.

그런 둘을 잃게 된다면 센터에 큰 손실일 터.

유은영이 픽 웃었다.

‘내가 언제 센터를 이렇게 생각했다고.’

분명 정년 퇴직할 날만 손꼽아 기다리고 있었는데 말이다. 어쨌거나 이제 게이트에 들어가야할 때였다.

“지화자 팀장님, 1팀 먼저 입장해도 되겠습니까?”

“네, 당연하죠.”

조수현의 1팀은 전방을 맡기로 했다. 그러니 그가 게이트에 먼저 입장하는 것은 당연지사.

“감사합니다. 그럼, 구순철 부장님? 움직이도록 합시다.”

“조수현 팀장, 정말로 내가 꼭 필요하겠어?”

“네, 이미 우종문 부장님께 보고까지 올렸습니다. 구순철 부장님께서 기꺼이 저희를 도와주기로 했다고 말입니다.”

구순철은 우종문과 똑같이 ‘부장’이란 직함을 달고 있었지만 그보다 연하였다.

더욱이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 후배. 그 때문에 구순철에게 있어 우종문은 어렵기 그지 없는 사이였다.

결국 구순철은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처럼 조수현을 따라 게이트 안으로 들어갔다.

그렇게 1팀이 사라진 후, 유은영이 0팀과 함께 게이트로 향하며 말했다.

“지난번 게이트 공략 때처럼 서로 떨어지게 될 수도 있어요.”

“그건 싫은데!”

리아가 우는 소리를 냈다.

“나 혼자서 오빠들이랑 유은영이랑 지화자랑 떨어지면 어떻게 해? 그런 건 진짜 싫어!”

“걱정 마, 리아.”

라이가 리아를 안심시켰다.

“나는 리아가 어디에 있든 금방 찾아낼 수 있으니까!”

“응! 오빠만 믿을게!”

정말이지 우애 좋은 남매였다.

“그럼, 모두 핵을 찾아 부수는 데 집중해주세요. 유은영 씨와 이혜나 팀장님의 안전도 최대한 확보해주시고요.”

“네!”

우렁찬 대답에 유은영이 만족스럽게 웃고는 지화자에게 다가가 손을 내밀었다.

“…손은 왜요? 잡으라고요?”

떨떠름하게 묻는 목소리에 유은영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접촉을 하고 있으면 서로 떨어질 확률이 낮아 진다고 하더라고요.”

“그건 어디서 들은 소리랍니까?”

“A-Index에서 알게 된 거예요.”

직접 공부한 거라면서 유은영이 뚱하게 말했다.

“지난번 게이트 때처럼 유은영 씨가 다치는 일은 없었으면 해서 말이에요.”

“다른 팀원들은 다쳐도 되고요?”

“그럴 리가 없잖아요!”

유은영이 빼액 소리 질렀다.

“다른 분들은 유은영 씨와는 다르게 자기 몸 하나 충분히 건사할 수 있는 분들이잖아요!”

“그렇기는 하죠.”

태연하게 대꾸하는 목소리가 얄미웠지만 유은영은 억지로 지화자의 손을 잡아버렸다.

“지, 지화자 팀장님…….”

그녀의 반대 손이 누군가에게 잡힌 것은 그때였다. 이혜나가 유은영의 손을 꼭 잡고는 말했다.

“저, 저도 잡아도 되죠?”

유은영은 마음 같아서는 이혜나의 손을 매몰차게 뿌리치고 싶었지만.

“네, 물론이죠.”

어쩌랴?

인정하기 싫었지만 이혜나는 이번 공략에 있어서 중요한 각성자였다.

귀하디귀한 A급 힐러.

이번 게이트에 변수가 많은 만큼 이혜나의 역할은 무척 중요했다.

‘그렇다고 해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수도 있지만.’

유은영은 부디 그래주기를 바라면서 게이트에 입장했다.

그리고.

―키에에엑!

―캬아아악!

순식간에 눈앞에 나타난 수십, 수백, 수천의 몬스터에 그만 넋이 나가고 말았다.

“지화자 팀장님!”

지화자의 목소리에 곧장 정신을 차렸지만 말이다.

충종과 동물형, 곤충형까지.

다양한 종류의 몬스터들이 한데 어우러져 있는 광경에 유은영이 봉을 꺼내 쥐었다.

그녀는 곧장 그것을 몬스터들이 모여있는 한가운데를 향해 날렸다. 화르륵, 무기를 타고 일어난 불꽃이 순식간에 몬스터를 집어삼켰다.

“하태균 씨! 방벽을 세우세요!”

“네, 팀장님!”

콰과광―!

하태균이 맨땅에 주먹을 내리치기 무섭게 방벽이 형성됐다.

“가하성 씨, 계시죠?!”

“네, 팀장님. 여기 있어요.”

다행히도 지난번 게이트처럼 서로 뿔뿔이 헤어지지는 않은 모양이었다.

“엄호 좀 부탁드릴게요.”

“직접 처리하려고요?”

“그래야죠.”

유은영이 방벽 위에 섰다. 가하성이 귀찮아 죽겠다는 얼굴로 그녀의 옆에 서서는 총을 꺼냈다.

“지화자야! 우리는?!”

“우리도 도울래요!”

아래쪽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유은영이 말했다.

“리아, 라이. 유은영 씨와 이혜나 팀장님을 잘 지켜주도록 하세요. 하태균 씨와 함께요.”

“응!”

“네!”

리아와 라이가 활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하달받은 명령이 아이들의 마음에 들은 모양이었다.

“가하성 씨, 부탁하겠습니다.”

“네, 팀장님.”

철컥, 가하성이 탄창을 갈고는 방아쇠를 당겼다.

타앙―!

날아간 탄창이 그대로 몬스터의 머리를 꿰뚫었다. 유은영은 방벽 위에서 뛰어내리며 다시 무기를 꺼내 들었다.

뒤에서 가하성이 엄호를 해주고 있는 덕분에 그녀는 편하게 움직였다.

불꽃을 일으키거나 날카롭게 바람을 일으키며 몬스터를 태워 죽이거나 갈가리 찢어버렸다.

하지만 그럼에도 몬스터의 숫자가 줄어들 생각을 하지 않았다.

유은영이 후두둑 튀는 몬스터의 피에 얼굴을 찌푸리며 짧게 혀를 찼다.

‘몬스터가 많을 거라는 예상을 듣기는 했지만.’

이렇게 많을 줄은 몰랐다.

‘1팀은 괜찮을까?’

앞서 들어간 조수현과 그의 팀이 걱정됐다.

자신이야 지화자 덕분에 빠르게 정신을 차려 사태에 대비했다고 하지만 조수현은?

유은영이 자신을 붙잡으려 드는 몬스터를 뿌리치며 무기를 있는 힘껏 휘둘렀다.

―키야아악!

유은영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하나를 죽이면 둘이 튀어 나왔고, 둘을 죽이면 셋이 튀어 나왔다. 그야말로 끝없는 전투.

‘1팀 걱정할 시간에 우리 팀을 먼저 걱정해야겠는데?’

이대로 가다가는 전멸이다.

‘한꺼번에 많은 적을 처치하는 방법이 뭐가 있을까?’

그 순간 유은영의 머릿속에서 기가 막힌 방법이 떠올랐다.

“스콜피언 길드장님 맞죠? 독주, 서이안!”

서이안.

스콜피언의 길드장인 그가 떠오른 덕분이었다. 정확히는 그의 별명, ‘독주(毒主)’가 말이다.

‘그래, 독이야.’

왜, 그런 말이 있지 않은가?

전쟁터에서 가장 무서운 무기가 바로 생화학 무기라고. 단 한 번의 공격만으로 수천의 목숨을 앗아갈 수 있는 것.

그 방법을 떠올린 유은영이 씨익 입꼬리를 올렸다. 독을 사용한 적은 단 한 번도 없는 그녀였다.

하지만 왜일까?

유은영은 자신이 공격을 성공시킬 수 있을 거라고 확신했다.

“하태균 씨!”

“네, 팀장님!”

방벽을 타고 올라오는 충종 몬스터, ‘맹독을 품은 전갈(C)’ 무리를 상대하고 있던 하태균이 우렁차게 대답했다.

유은영이 단번에 그것들을 처치하고는 물었다.

“혹시 방벽을 제가 원하는 형태로 움직여주실 수 있나요?”

“네?”

“여기에서 발목이 붙잡힐 수는 없잖아요?”

제한 시간은 조수현이 예상한 바와 똑같이 30분. 그 시간 중에서 벌써 10분 가까이를 이곳에서 허비하고 말았다.

이대로 가다가는 게이트 공략에 실패할 게 분명할 터.

“게이트 공략에 실패하면 어떻게 될지 잘 아시죠?”

하태균이 꿀꺽 침을 삼켰다.

제한 시간 안에 게이트 공략에 실패하면 해당 게이트는 터지고 말았다.

다르게 말하면 ‘게이트 브레이크(Gate break)’.

그것만큼은 막아야했다.

“그럼, 하태균 씨. 부탁할게요.”

유은영은 그렇게 말하면서 그에게 소곤거렸다. 하태균이 그녀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었다.

“어때요? 할 수 있겠어요?”

“네, 팀장님! 맡겨만 주십시오! 안 되도 되게 만들겠습니다!”

“좋아요.”

유은영이 하태균의 어깨에 한 손을 얹고는 미소를 그렸다.

“하태균 씨만 믿을게요.”

“네, 팀장님!”

하태균이 군기가 바짝 선 목소리로 대답했다. 유은영은 그의 어깨를 두어 번 두드려주고는 방벽 위로 올라갔다.

“가하성 씨, 하태균 씨께서고 방벽을 움직일 거예요.”

“어떻게요?”

탄창을 갈며 가하성이 물었다. 유은영은 그를 향해 날아들던 몬스터를 가볍게 처치하고는 입을 열었다.

“방공호처럼 만들 거예요. 방벽이 움직이면 안으로 들어가 몸을 숨기도록 하세요.”

“팀장님은요?”

“저는 괜찮아요. 걱정해줘서 고마워요.”

“딱히 걱정한 건 아닙니다만.”

가하성이 철컥, 탄창을 갈고는 불퉁하게 말했다.

“다치지 마세요. 라이와 리아 녀석들이 시끄럽게 구는 건 딱 질색이니까요.”

“네, 가하성 씨도요.”

“저는 제 몸 하나는 제대로 챙길 줄 알아서요.”

그러니 다칠 일 따위 없을 거라면서 가하성이 방벽을 타고 올라오는 몬스터를 향해 방아쇠를 잡아 당겼다.

타앙―!

명쾌한 총성과 함께 맹독을 품은 전갈이 땅으로 떨어졌다. 그와 동시에 방벽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가하성이 둥글게 몸을 마는 콩벌레처럼 움직이는 방벽 안으로 몸을 피했다.

‘팀장님께서는.’

‘지화자’는 몬스터들의 한가운데에 서 있었다.

그리고 그 모습이 마지막.

쿠웅!

방벽이 반원의 형태로 닫혔다.

자신을 두고 닫힌 방벽에 유은영이 씨익 입꼬리를 올렸다.

“정말 방공호처럼 만드셨네.”

자신이 말한 바를 정확하게 구사하다니.

유은영이 눈웃음을 지었다.

“그럼.”

탁―!

막대기의 윗부분을 두 손 모아 잡은 유은영이 입매를 비딱하게 틀었다.

“빠르게 처리해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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